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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벽을 해킹하기] 섹션 4 '다들 브로콜리를 좋아하는데, 저는 싫어해요.'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가람 2024. 1. 15.

[벽을 해킹하기] 섹션 4 '다들 브로콜리를 좋아하는데, 저는 싫어해요.'

〈에두아르 글리상: 관계의 한 세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16일(토) 오후 19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유진 기획자, 제람 작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19기 김소정 님의 기록입니다.

 

 

 

만티아 디아와라 감독의 2010년 다큐멘터리 〈에두아르 글리상: 관계의 한 세계〉 상영 후 박유진 기획자와 제람 작가의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카리브 해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나 디아스포라적 감각을 키워온 에두아르 글리상의 이야기는 문화적 기원이 서로 다른 타인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박유진 기획자와 제람 작가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가 혼종적으로 얽히는 인디토크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박유진 기획자(이하 박): 안녕하세요, 눈이 갑자기 내려서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날이 되었는데요. 추운 날 와 주셔서 관객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박유진입니다.

제람 작가(이하 제): 저는 제람이라고 합니다.

박유진: 간단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읽고 쓰고 번역도 하고 가끔 전시 기획도 하면서 문화예술 쪽에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본격적으로 에두아르 글리상의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가 이번이 처음이에요.
 1990년에 나온 글리상의 가장 유명한 저작 『관계의 시학』이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논문만 몇 편이 있는데 먼저 지금 2023년에 2010년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부터 공유를 드리고 싶어요. 제가 올해 네덜란드에 1년 동안 있었어요. 네덜란드에서 다른 문화권과 다른 지역에서 온 큐레이터들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사이프러스, 카메론, 그리고 미국 등의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모이면서 서로의 문화권과 언어가 다르다 보니까 같이 설 수 있는 공통의 땅이 필요했는데, 이 영화가 바로 서로의 토대를 만드는 첫 번째 영화였어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언어와 지역성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수용하고 서로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어떤 과정으로서 이 영화가 있었기에 저한테는 이 영화가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생각하다 보니까 네덜란드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아시아인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시적 타자임을 느꼈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여기가 굉장히 편하지만 한국에서도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가 없지 않을 거란 말이죠. 그랬을 때 이러한 문제를 내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와 분명히 아주 많은 위기와 생존의 문제들이 있을 텐데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찾아봤더니, 2023년 5월의 통계에 의하면 미등록 이주민이 42만 2105명이고 한국 인구의 4.1%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주로 중국, 베트남, 태국, 미국,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일본에서 온 분들이 많고요. 제람과 준비하면서 이야기했었던 사건은 11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단속한다고 법무부 직원이 한 여성의 목을 조르면서 끌고 나오는 영상이 퍼져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일이 지금 현재 시점에서 근거리에 있었고, 제가 가장 먼저 생각했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좀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8년에 예멘에서 제주도로 난민이 왔을 때 반대 집회가 광화문에서 많이 열렸었죠. 그때 안전이 최고다, 난민들이 우리의 세금을 가져간다, 우리가 위협받는다, 한국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될 것이다,라는 어떤 반대 집회의 구호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 기억이 나더라고요. 2023년에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일과 2018년의 일들을 연결했을 때 한국에서 분명히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지금 이 시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제람을 초대했습니다.
  제가 제람을 알게 된 것은 〈암란의 버스〉라는 작업 때문인데요. 서로 3년 전에 처음 만나면서 ‘난민됨’에 대해 제람이 이야기해줬었어요. 그 당시 대화의 일환으로 오늘 그 이야기를 이 영화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제람을 소개를 하자면 ‘제주 사람’의 준말로, 제주를 기반으로 다양성, 지역성, 그리고 소수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온 작가이자 활동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저랑도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청소 노동자, 성소수자, 군인, 미등록 이주민, 농인, 난민, 여성과 같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자기다울 수 있으면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주 사람의 정체성으로 제법 믿음직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제람이 본인 소개를 그렇게 많이 해요. 그래서 〈암란의 버스〉 부터 지금 하고 있는 작업까지 연결이 되면 좋을 것 같고요.

 사실 글리상이라는 이름이 한국에는 굉장히 생소해서 아주 기본적인 정보들만 소개를 하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철학자 에두아르 글리상은 1928년 출생으로 카리브 군도에 있는 마르티니크에서 출생했습니다. 카리브 해는 미국 아래의 대서양에 위치하고 있고 마르티니크는 쿠바, 자메이카가 있는 여러 군도들 중 하나입니다. 글리상이 출생한 마르티니크는 1635년에 프랑스가 상륙을 했고 현재는 지금 프랑스의 해외 영토입니다. 역사적으로 아주 많은 이주민들이 있었고 흑인 노예 사탕수수의 산업이 있었으며 백인과 아프리카인의 혼혈인 몰라토가 대부분의 주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글리상은 90년대 이후부터 아주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카리브 해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탈식민주의, 문화정체성, 그리고 영상에서 나왔던 크레올화, 타자성, 불투명성을 주제로 소설과 시 작업을 해왔던 사람입니다. 영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 공간이 나오는데 하나는 배입니다. 이 배는 2009년에 감독 만티아 디아와라가 탄 퀸 메리 2호입니다. 영국의 사우스 햄튼(South Hampton)에서 뉴욕의 브루클린(Brooklyn)까지 향하는 배였기 때문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부분이 나오고요.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에두아르 글리상의 집이었던 마르티니크 섬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이 섬과 이 배가 계속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나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 너무 많은 말들이 많이 쏟아져서 좀 혼란스러웠는데요. 그럼에도 ‘크레올화’, ‘관계’, ‘불투명성’과 같은 매력적이고 힘이 되는 문구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나 제람이 글리상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독해하고 정의 내리는 자리로 남기기보다는 저희의 경험 내에서 지금 한국의 현실과 어떻게 이것을 연결할 수 있는지 군도처럼 그 이야기를 확장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짧게 제람과 대화를 나눌 겁니다. 혹시 관객 분들 중에서도 질문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중간에 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제람: 저는 앞서 유진이 소개해 주신 대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섬에서 나고 자라서 그곳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게 참 좋아서 제 활동명을 제주 사람의 앞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딴 제람으로 정했는데요. 영화를 다시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영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첫 수업이 이주에 관련된 수업이었어요. 열댓 명 정도가 있었고 제가 해외에 처음 나가서 들었던 대학원 수업 첫날이었어요. 그럼 둘러앉은 사람들끼리 각자 자기소개를 하기 마련이잖아요. 각자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보래요. 저는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거의 마지막 순서여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고 하면 되겠다 하고 봤는데 많은 친구들이 제가 보기에는 유럽 근처에 있는 나라들의 인종, 문화, 종교, 민족 등의 배경을 가진 것처럼 보였어요. 하나씩 들어보니까 우리 아빠는 포르투갈 사람이고 우리 엄마는 이탈리아인이어서 나는 포르투갈 절반 이탈리아 절반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가 스웨덴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와서 나는 3세대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 엄마도 제주 사람이고 아빠도 제주 사람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제가 알기로는 다 제주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는데 학교에서 배운 게 생각났어요. 곰이 마늘도 먹고, 단일 민족, 그런 얘기 해야 되나 했는데 그럼 너무 제3세계에서 온 느낌이 날 것 같은 거예요. 이상한 애일 것 같고 왕따 될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저희 할머니께서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세요. 어느 날 어떤 벌판에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는데 그날 난사되던 총알 중에 할머니를 향하던 총알만 빗나가서 그날 유일하게 생존하셨다고 저는 들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저희 할머니께서 저희 어머니를 낳으셨기 때문에 그게 아주 오랜 옛날에 있었던 일일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너무 직접적인 경험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날 할머니에게서 총알이 빗나간 이후 3세대다, 학살의 생존자로서 ‘제람’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싶다. 그렇게 저의 기원을 그날 처음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단순히 지역적으로 제주라는 섬에서 나고 자랐다는 특성 뿐만 아니라 섬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들이 말하기 쑥스럽지만 제가 해오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시작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누군가 저를 아까 유진이 ‘제람’하고 부를 때 생각이 훅 나요.

박유진: 처음 듣는 얘기네요. 글리상이 이야기했을 때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 ‘기원’의 의미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의 기원이 아니라 세대와 역사와 기억을 넘는 방식의 기원인 것 같아서 제 기원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을 하게 되네요. 저는 사실 미국에서 태어나기는 했어요. 근데 6살 때 저희 아버지가 미국에서 한국인 남성으로서 일을 못 찾아서 다시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죠. 외가 쪽이 미국에 있어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거리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자라면서 그 거리에 대해 인지하는 것도 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이 변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글리상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우리는 계속 변화하는 존재고, 관계 속에서의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거나 막막해하거나 그걸 약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다시 2018년 당시를 돌아보자면 전에 난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제주도에 난민들이 갑자기 들어온다는 것이 마치 충격적 비보처럼 전해지고, 광화문에 막 시위가 일어났을 때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봤을 때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굉장히 많이 혼란스러웠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 집회의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사실 그 기원을 아직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근데 제람은 또 제주 사람이고 2018년부터 지금 2023년까지 그 당시를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람이 그 당시에 했던 작업이나 그 과정을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람: 저는 주로 제주에 있을 때 안전함을 느껴요. 아무래도 그곳에는 가족이 있기 때문인데 꼭 그게 혈연 중심의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가족들과 좋은 관계로 유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유대감도 사실은 우연히 행운처럼 얻게 된 그런 감각이에요. 제가 군 생활을 할 때 제가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제가 성소수자인 게 드러났어요. 한국에는 군 형법 92조 6항이라는 조항이 있어요. 그게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근거가 되거든요. 그런데 저는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인 게 명확하게 드러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에게 그 화살이 돌아와서 제가 처벌에 준하는 어떤 조치를 받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됐어요. 정신병원을 몇 달간 경험하고 나서 저에게는 좀 큰 트라우마가 생겼던 거예요. 그래서 군에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권위적이면서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에 대해서 더 민감해졌어요. 저는 섬세한 감수성을 갖게 됐다고 말하고 싶은데요. 그러다 보니까 사회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만연한 공기처럼 느껴지는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그런 문화들이나 말투들, 눈빛들 이런 게 저를 약간 질식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도 행운인데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저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도와줘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국으로 도망가듯이 유학을 떠나게 됐어요. 그곳에서 4년 정도를 보내면서 용기가 생겼어요. 그곳 사회 역시 완벽하진 않겠지만 다행히 저에게는 안전할 수 있다는 감각을 준 거예요. 성소수자여도 괜찮고 그냥 내가 나로서 있어도 호흡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어서 저는 처음으로 물리적이면서 또 관계적인 안전한 공간의 필요성들을 느끼게 됐어요.
  그러던 찰나 제주에 550여 명의 예멘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이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들었어요. 한국 인구를 대략 5,500만 명 정도로 생각하고 제주도 인구를 대략 55만 명으로 생각했을 때 550명의 예멘 사람들이 찾아온 게 그렇게 엄청난 숫자일까, 그런데 왜 국민청원이 시작된 이후로 최고 신기록인 71만 2천 몇 명이 될 정도의 기록을 세우게 됐을까, 잘 몰랐고요. 잘 모를 때 ‘알못’ 이라는 말을 붙이잖아요. 저는 정말 1도 모르는 ‘알못’인데 내가 안전한 공간에서 회복됐던 힘들을 가지고 용기를 내서 다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제주로 무작정 돌아왔어요. 한 사람 몫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돌아왔고 그때 예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곳에 가서 만남을 시작했어요.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난민으로 통칭됐지만 개별 서사가 뚜렷하게 있었어요. 각자 온 이유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모든게 달랐거든요. 모두의 이야기가 소중했지만 특별히 그 시점에 저에게 암란이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폐차 직전에 한국에서 예멘으로 수출된 하얀색 다마스를 산 거예요. 그래서 암란의 버스라고 이름을 붙이고 아침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시청 광장 같은 데 가서 사람들이 원하는 곳을 가는 그런 방식으로 버스를 운행하면서 돈을 모아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거예요.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고 암란은 할 수 없이 그 버스를 팔고 그걸 노잣돈 삼아서 한국의 제주까지 오게 된 거예요.
  암란이 저에게 뭐라 그랬냐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 얘기 듣고 나서 제 마음속에 암란의 버스가 출발을 하지 않는 거예요. 어떻게 같이 운행할까 어디로 향해야 할까 그걸 같이 고민하면서 이 작업이 시작됐고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사람들이 다들 딱한 이야기 혹은 조금 감동적인 이야기, 그런데 나하고 너무 먼 얘기, 내 이야기 아닌 얘기, 아니면 누군가에게 닥쳐온 특별한 불행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접적인 경험이나 이야기가 없다면 차별과 혐오로 가기가 보다 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새로운 만남을 좋아할까 왜냐하면 제가 만나본 암란을 포함한 많은 난민으로 정체화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너무 배울 점이 많았거든요. 삶의 깊은 어려움과 고통을 관통해서 겪어온 사람들이 길어 올린 서사와 태도와 마음가짐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찾아보는데 책 중에 『난민, 난민화된 삶』이라는 아주 좋은 책이 출간돼 있더라고요.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그 책에서 저는 조금 갈증을 느꼈어요. 난민이 이런 사람들이고 점점 난민화되고 있다는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으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과 또 어떤 실천들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해결되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저는 감히 ‘난민됨’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꼭 내가 난민처럼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난민들이 각자 처한 그런 어려움들을 함께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행동으로서 연대할 수 있는 혹은 난민이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모습에서 우리의 삶과 맞닿는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도 난민처럼 어려운 시절을 겪을 수 있다는 가능성들을 확장할 수 있는 언어로서 ‘난민됨’이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살찌워가고 있는 그런 중이었습니다.

박유진: 지금 제람이 해줬던 많은 이야기들 중에 계속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서 저는 요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말한 우리라는 것은 아주 많은 경우에 특히 인종의 문제를 대면했을 때 국민, 한국 사회, 한국인과 같은 단어들로 의미화되거든요. 요즘 접두사처럼 ‘K’가 붙는 현상들도 많은 것들을 한국화 해버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글리상의 작업을 보면서 특히 좋았던 부분이 제가 발췌를 해 놨는데 ‘오직 시나 지식을 통해서만 자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DNA 결과로 우리가 같은 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저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같은 반응과 직관을 가질 때 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노예들의 뼈로 가득한 대양의 심연 너머로 우리를 유지시켜주는 유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를 계속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의 끊임없는 구별이 저는 가상의 DNA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내 이야기 아니야. 거리가 멀어’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될 수 없다는 어떤 전제가 있다는 것이겠죠.

 글리상도 이 문제에 대해서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어요. 세제르와 파농 이야기가 잠시 나오는데 특히 흑인 해방 운동을 이야기할 때 세제르의 주장이 흑인 본질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글리상이 발견합니다. 그래서 글리상이 이것을 보면서 우리의 유대를 만드는 것은 시나 지식이다, 유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유대를 함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던 것 같아요. 글리상이 국경을 완전히 폐지하자고 얘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를 폐지하지는 않거든요.
 이번 해에 다양한 문화권의 친구들과 함께 우리를 형성해 나가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우리를 폐기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어떤 범주나 범위 그리고 우리를 묶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람도 암란의 버스를 이어 나가면서 또 다른 작업들에서 여러 우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과정으로 저는 해석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 또 공유해 줄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람: 우리라는 말을 떠올리면 따뜻함과 연결 같은 이미지나 한편으로는 견고한 경계를 구획하고 구분짓는 의미도 같이 떠오르게 되는데요. 그렇게 복잡하게 뒤섞인 가운데서 제가 최근에 경험한 일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어제 음악 감상회를 열었어요. 규빈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규빈은 농인이에요. 귀가 아예 안 들리는 친구인데 이 친구랑 암란의 버스 프로젝트를 하다가 만났어요. 특히 2020년 코로나19가 널리 확산됐을 때 난민들이 총체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요. 어려움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도무지 그 사람들의 언어로 위기 상황에 대한 정보들을 충분히 접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특히 대학에 다녔던 분들은 다시 번역해서 듣고 하는 과정에서 눈물 나게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때 연락이 된 규빈이 나도 난민일 수 있겠다는 인터뷰를 해줬어요. 그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들면서 잡담을 하다가 제가 규빈한테 취미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음악 감상이래요. 그래서 제가 아주 놀랐어요. 너는 귀가 안 들리는데 어떻게 음악 감상이 취미일 수가 있니? 그랬더니 음악을 왜 꼭 귀로만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 나는 가사를 읽기도 하고 요새는 음악 몇 곡 들었어 이렇게 하기보다는 몇만 뷰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은 너무 다양하고 특히 나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 리듬과 분위기를 여러 가지를 함께 경험할 수 있으니까 훨씬 더 풍성하게 음악 감상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선한 충격을 받고 올해 1년 동안 함께 어떻게 다양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지를 리서치해서 어제 ‘상대음감’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감상회를 열었어요. 절대음감이라 그러면 누군가의 음악적인 능력을 말하는 훈장 같은 거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상대음감은 같이 듣고 어떻게 서로 더 많이 누릴 수 있을지를 우리가 함께 현장에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상상하고 대화하는 음악 감상회’라고 한다면 훨씬 다채로운 가능성들을 가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요. 저는 서로가 같은 순간에 좋았다고 해도 서로 좋았던 포인트가 분명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상하고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공감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순간적이고 불안전하고 짧지만 느슨하게 우리가 되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에두아르 글리상: 관계의 한 세계〉 스틸컷

 

 

관객: 얘기를 듣다 보니까 한국 사회도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사회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지칭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요. 두분 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미국이라는 다양성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데 저는 한국 전통의 긍정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고 저도 한국 사회도 분명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죠. 이렇게 다양성을 가진 한국 사회를 하나로 통칭하는 것이 맞는 건지 불편함이 느껴져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박유진: 일단 언어의 부족함에 대해서 제람과 저도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도 사실 저희가 ‘우리’, ‘한국 사회’, ‘여성’, ‘남성’과 같은 범주들과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저 또한 제가 말하고 있는 ‘우리’라든지 ‘한국 사회’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을 해요. 글리상이 이야기한 것처럼 중첩되어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이 세계가 진동할 때 나도 진동하고 내가 진동할 때 또 이 관계도 진동을 하고 있는 관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단어의 부족 혹은 저의 상상력의 부족으로 한국 사회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글리상을 가져와서 여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말씀해 주신 한국 사회 혹은 우리라고 통칭되는 상상력이 빈곤한 언어를 좀 더 잘 들여다보고 어디와 어디가 얽혔는지를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 같아요.

제람: 잘 짚어주신 대로 어떤 단어나 개념을 말할 때도 각자 너무 다양한 상상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우리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하다는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이 많았으면 좋겠고 저는 오늘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해서 기쁜 마음으로 왔어요. 지난주 주말에 제가 속삭임 캠프라는 걸 열어가지고 다섯 분을 강화도에 모셨어요. 규칙은 저와 낯선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분들만 신청해 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정말 한 번도 안 만나봤던 다섯 사람이 모여서 1박 2일을 같이 보냈어요. 그런데 친한 친구들끼리 있으면 묘한 유대감이 있어서 별말 안 하고도 ‘뭔지 알지’ 라고 말하면 의미가 통하는데 이게 전혀 작동이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고.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세계가 만나면서 지각 변동할 때 대륙이 만나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는 이런 거였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가 그리는 지평이 다르다는 걸 느꼈는데요. 확정적이고 지적인 체계 안에서 갖춰진 개념으로서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저는 배움이 짧아서 조금 쑥스럽고 부끄러울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글리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는 현장에서 저는 우리라는 말을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 화두를 열어주셔서 제가 꿈꾸고 좋아하는 우리라는 감각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됐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에서 땅의 울림에 대한 얘기를 하잖아요. 땅의 울림이라는 건 사실 인간의 언어는 아니죠. 근데 모두가 땅을 밟고 있으니까 우리가 판단하고 이해하거나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울림에 대해서 느끼고 함께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은 불투명을 얘기하는 것과 같다고 보거든요. 그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유진: 안 그래도 제가 좀 마지막으로 가지고 오고 싶었던 이야기를 잘 연결을 해주셨는데요. 글리상이 『레자르드 강』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장을 썼어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땅이 드러내는 진실을 말하도록 창조되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자신의 땅이라는 것은 단순히 지질학적인 땅만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글리상이 지평선을 상상하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요. 지평선을 실제로 자각할 수 있는 방법은 상상력 뿐이고 이 상상이 섬과 도시의 윤곽을 만들고 군도의 현실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이라는 것이 여러 경험과 언어가 교차하는 살아있는 경험으로서의 땅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그래서 나 혼자 이 좌표 밖에서 이것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관계에서 어떻게 같이 흔들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섬과 섬 사이의 물처럼 같이 흐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저도 하게 된 것 같아요. 

관객: 오늘 영화도 너무 재밌었고 두 분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도 재밌게 들었어요. 그래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궁금했던 점을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오늘 프로그램의 타이틀이 짓궂다고 생각을 했어요. 글리상이 중간에서 타이틀 언급하는 대목도 상당히 냉소라든가 통합 불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꼬장꼬장함이 느껴졌는데 그래서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이해와 불투명성, 그리고 상상력의 관계가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좀 여쭤보고 싶더라고요. 말씀해 주셨던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판단을 단순히 넘어서는 감성의 작동이 우리를 만드는 감각에서 큰 작용을 한 것처럼 이해를 했는데 이것이 불투명성이라고 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이 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글리상이 말하는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이 극복의 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요.

 

제람: 저는 그 불투명성이라는 지점이 저에게 안도감을 줬던 것 같아요. 남자, 여자, 맛있음, 맛없음, 좋음, 싫음을 확고하게 말하기 참 어려운 순간들이 많은데요. 딱 정하면 너무 좋을 때가 많잖아요. 하지만 그것들의 의미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을 텐데 확정하지 않고 이후에 변화의 가능성들을 열어두는 것이 우리의 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두고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영어가 짧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난민과 이주민 친구들 만날 때 하는 말이 떠올랐어요. “I see.” 지금 당장 그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일단 알았다, 그렇구나, 그 이후에 조금 더 생각해 봐도 괜찮겠지,라는 어떤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변해도 된다는 것, 변할 수 있다는 여지와 가능성이 우리의 불완전함을 서로가 납득하는 공간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유진: 저한테 불투명성은 자기 이해랑 관련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관계를 계속 맺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저를 정의내리게 되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저도 오늘 이 자리에 기획자로 초청된 거고 그에 맞는 역할이나 규범들 같은 것들이 있겠죠. 근데 가끔은 제가 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끊임없는 자기 규율이나 자기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은 피로감을 줬던 것 같아요. 근데 아까 글리상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브로콜리 안 좋아해, 나도 왜 그런지 몰라,라면서 자기 자신을 규명하려는 것을 막아버리잖아요.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투영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지만 그전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들도 해방감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측면으로는 불투명성이라는 게 시간과 관련된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왜냐하면 계속 어떤 것이 불투명하게 유지가 되려면 그 순간에만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속 이해 못해도 괜찮다는 과정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도 캡처하듯이 이해하고 정의내리려는 어떤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글리상의 영화를 처음 보고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 접한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들의 앞으로 아주 많은 순간들 중에 한 순간이겠죠. 그래서 이런 순간이 또 다음에 어떤 순간으로 이어질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연말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최이다 님과 인디스페이스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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