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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여성, 귀신, 신뢰의 언어를 받아적을 준비가 되셨나요?

by indiespace_한솔 2022. 3. 22.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리뷰: 여성, 귀신, 신뢰의 언어를 받아 적을 준비가 되셨나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영화 속 박인순의 당당한 기세는 어느 시야에 놓이는지에 따라 세기가 확장된다. 이를테면 인순의 진술을 듣고도 앞뒤가 일관되지 않아 난감했다는평은 그를 단번에 신뢰할 수 없는 화자로 위치시킨다. 이때 우리는 연결되는 유모차 신으로 낙차(落差)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유모차엔 인순의 생계를 위한 상자가 켜켜이 접혀있었다. 자갈이 보폭을 막아 잘 밀리지 않았다. 분명 인순은 나아가기 위해 계속 힘을 주고 있었다. 이때 유모차의 정지를 말의 엉킴으로 치환하여 보자. 문장이 턱에 걸린 것 같아도 원인을 발견하면, 그럼에도 그 길목을 감수한 이유까지 들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결코 오독으로 기울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니 번복된다는 성질로 타자의 발화에 제동을 거는 건, 가장 배제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청자로 섰던 그들이 애초에 말의 유효를 그은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보며 들었다.

 

 

그렇다면 인순의 기세는 어디에서 상승하게 될까. 바로 귀신과 저승사자 앞에서이다. 뺏벌엔 여전히 인순의 동료인 기지촌 여성들이 떠돌고 있었다. 이름을 부여받지 못해 저승으로도 호명될 수 없던 혼. 그들이 꿀렁거리며 외친 욕과 웃음 그리고 울음. 그 소리는 다수에게 문을 잠그는 행위로 거부되었다. 인순을 쉽게 결론지었던 이와 일행이던 작가도 그들을 소재로써 선점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막상 파자마를 두른 귀신과 대면하자 잔디의 거스러미를 뜯어가며 도망간다. 유일하게 인순만 꽃분이(영화 속 석 자가 존재하지 않는 여성 귀신에게 임의로 붙여진 칭호) 욕을 버티고, 고구마의 껍질을 까 손에 넣어주며 출입을 허가한다.

 

 

뺏벌은 귀신을 제외하고 설명될 수 없음에도, 꾸준히 제외된다. 그들이 세계 내에서 기록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가지며 보고 있었는데 그 지점에서 저승사자가 전면에 나온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측면으로 우회하는데, 이 연속이 무척 재미있었다. “명부가 없으니 이야기를 만들어줘야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세 명의 저승사자는 일렬로 앉아 인순에게 이런저런 사연을 기워넣으려 하지만 번번이 탈락된다. 그때 인순이 본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승사자가 있는 옆에 착석한다. 본인이 강해서 살아남았다고믿은 인순이기에, 죽음을 가까이 두고도 화장을 수정하며 태연한 자세를 보인다. 오히려 긴장하는 건 저승사자의 몫이었다. 그들은 이어 믿음의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들이 믿으면 이야기가 되고, 그때부터 자연스레 증거들이 만들어진다.”

그럼 사실이 되는 거야?”

저 여자를 봐라. 이 마을에서 우리를 믿는 건 저 여자뿐이다.”

 

 

결국 믿음은 수에 따라, 믿는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분명한 실체가 있음에도 의심의 영역에 잔류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순은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가 참을 수 없었다는 내레이션 후, 미군의 목을 서걱서걱 자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가 인순의 이야기를 재조립하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인순은 희생이 반복되는 이야기에서 타자를 꺼내어줌으로써 이야기를 새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맥락에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보여주는 인순이란 인물의 다면성은 무척 유의미하다고 느꼈다. 나 역시 창작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이야기안에 꼭 서 있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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