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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정말 먼 곳〉: 시를 담은, 시를 닮은 영화

by indiespace_한솔 2021. 3. 30.

 

 〈정말 먼 곳〉 리뷰:  시를 담은, 시를 닮은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유진 님의 글입니다. 

 

 

동명의 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주석을 읽으면 어쩐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 영화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단 직감이 들고는 한다. 박근영 감독의 〈정말 먼 곳〉은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박 감독은 거리감을 주제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대학 동기인 박은지 시인의 등단작이 영화 속 상황과 비슷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시에서 출발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시를 닮게 되는 걸까? 이 영화는 꼭 한 편의 시 같다. 단순히 시를 시나리오에 차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방식이 꼭 시를 써 내려가는 모습처럼 느껴져서다. 양의 죽음에서 시작해 새끼 양의 탄생으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 -식혜-눈으로 이어지는 흰 색채의 탁월한 활용과 영화 곳곳에서 빛나는 메타포. 무엇보다 긴 호흡과 아름다운 풍경에서 이 영화는 시를 해독하듯이 지긋한 시선으로 감상해야 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동명의 시 「정말 먼 곳」은 극 중 성당에서 시를 가르치는 현민이, 마을 사람들에게 진우와의 관계가 알려진 뒤 단 두 명의 수강생이 출석한 수업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장면 속에 녹아 있다. 정말 먼 곳.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람보다는 자연과 더 가까운 화천이라는 동네로 도망쳤던 현민과 진우가 간절히 바랐던 곳. 그들이 서울에서 상상했던, 아무런 방해도 소음도 없이 둘로서 온전해질 수 있는 정말 먼 곳은 아마 화천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종착지라고 굳게 믿었던 공간마저 끝끝내 둘을 밀어낼 때 현민은욕심 부리지 말자”고 말한다. 진우가 현민과 설이를 키우고 싶어 했던 것도, 사람들이 진우와 현민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라는 것도 모두 욕심이라고. 현민은 아마 화천에 오기 전에도 수없이 체념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않을까 이 정도는 바라도 괜찮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꺾이고 꺾이기를 반복하며 현민은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감정은 욕심일 뿐이라고 단념했을 것이다. 진우는 그런 현민에게 이 모든 일이 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오고 난 뒤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됐다고 소리친다.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애쓰던 현민도, 믿었던 낙원마저 상실한 외상에 몸부림치던 진우도 결국에는 절벽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현민의 시는 진우와 현민만의 것은 아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린 딸아이를 쌍둥이 동생의 손에 떠안기고 도망친 은영도, 아주 어린 나이에 제일 절친한 친구였던 할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설이도, 소중한 가족을 잃은 문경과 중만도, 모두 어떤 형태의 상실을 겪는다. '정말 먼 곳'은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넘어 극장 안의 관객들까지도 좇고 있는 - 내가 나로서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불 꺼진 방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서로를 빈틈없이 껴안을 수 있던 진우와 현민도, 딸 설이와 단둘이 함께하는 밤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방문을 잠갔던 은영도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서 최소한의 행복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이 정말 먼 곳까지 도착하지 않고서도 오롯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말 먼 곳에 도착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이 또다른 진우와 현민, 은영과 설이를 정말 먼 곳으로 밀어내지 않길 바란다.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는 게 욕심이 되지 않길, 정말 먼 곳을 찾아 헤매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떠밀려 추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단지 그런 것들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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