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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애비규환〉 인디토크 기록: 무해한 세계를 위한 도원결의!

by indiespace_한솔 2020. 12. 14.


 


무해한 세계를 위한 도원결의!  〈애비규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12월 4(금) 오후 7시 30분

참석 최하나 감독 |전고운 감독(소공녀〉 연출)

진행 윤가은 감독(〈우리집〉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추워진 날씨에 들려오는 소식은 시리기만 하다. 정말이지 웃을 일 없는 요즘, 무해한 웃음을 선사할 가족영화가 등장했다. 최하나 감독의 첫 장편영화 애비규환이다.

극중 캐릭터 토일 만큼이나 통통 튀는 매력의 최하나 감독이 직접 극장을 찾았다.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우리들,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영화들의 감독님들이 한곳에 모인 자리라니. 마블 유니버스 부럽지 않은 대통합의 순간! 유쾌했던 그 날의 대화를 기록한다.

 


 

 


윤가은 감독 (이하 윤가은): 안녕하세요, 저는 애비규환GV 진행을 맡은 윤가은이고.

 

최하나 감독 (이하 최하나): 안녕하세요, 저는 애비규환을 연출한 최하나입니다. 반갑습니다.

 

전고운 감독 (이하 전고운): 저는 소공녀연출한 전고운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최하나: 들어오기 전 제가 직접 모더레이터를 하면 어떻겠냐고 얘기했었는데... 두 감독님들이 짜주신 순서대로 가겠습니다. 감독님들 애비규환을 어떻게 보셨는지. 감상을 일목요연하게 말씀해주세요! 윤가은 감독님부터 부탁드립니다.

 

윤가은: 진짜 이렇게 하실 거예요사실은 전고운 감독님이 오늘 GV를 앞두고 되게 좋은 대본을 미리 짜주셨어요. 되게 촘촘하게 짜주셨는데 들어오기 직전에 최하나 감독님이 모더레이터를 하시자는 얘기를 두서없이 나누다가 들어와서 약간 정신없이 얘기를 했네요. 저는 애비규환을 시나리오 단계에서 한 번 모니터링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영화가 어떻게 나올까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애비규환팀에 제가 아는 분도 되게 많고 감독님과도 안면을 터서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해서 편집본도 너무 궁금했는데 저한테 더 이상 피드백을 묻지 않으셨어요

 

최하나: 그때 감독님의 우리집이 개봉했잖아요. 바쁘시니까 배려의 차원에서.

 

윤가은: 개봉하고 바쁜 거 지나가고 나서도! PD님이나 주변 분들한테 물어봤어요. "애비규환너무 궁금한데 편집본 보여주면 안 돼?" 했는데 아무도 안 보여주셨어요.(웃음) 그러다가 시사회 날 영화를 봤는데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일단 이렇게 건강하게 가족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토일이가 너무 좋아서 하트 뿅뿅상태로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봤어요. 그런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 것 같은데. 물론 이러저러한 환경 영향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자라난, 호기심도 많고 실행할 수 있고 용감하게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여자를 본 적이 있나... 나는 그렇게 못 살아봤는데. 저 친구는 용감하게 저렇게 사는 구나. 그것에 취해 나는 토일의 나이를 한참 지났지만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아볼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고운: 저는 이 영화가 재밌었던 지점이, 메인 플롯 자체는 특별하거나 신선하진 않잖아요. 되게 심플하거든요. 그런데 남성, 여성의 롤을 살짝씩 비튼 것만으로도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어요. 예를 들면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하는 액션을 엄마가 하고, 그런 엄마의 액션을 아버지가 따라가는 식이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톤이 되게 유익하다고 해야 할까요? 보통 임신이나 결혼, 이혼, 재혼을 다룰 때 특히 우리나라 영화들은 굉장히 무겁게만 다루는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만화적이거나 연극적인 톤으로 이야기를 푸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임신과 결혼을 너무 심각하게 문제시 하고, 환경 탓도 있다 보니 여자들의 마음에 이에 대한 공포가 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토일이 같은 친구가 임신을 하고, 행동하는 것 보고 부럽다는 생각도 했어요. 저는 첫 장면부터 좋았어요. ‘유교문화 때문에 사랑을 충직으로 해석한다라는 대사부터 공감이 됐어요. 토일이가 먼저 적극적으로 자빠뜨리고 임신하고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게 봤습니다.

 




윤가은: 본보기가 될 만한 남자들이 나와서 좋았던 것 같아요. 토일이 아빠도 그렇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최덕문 배우님이 연기하신 톤 자체도 너무 좋았고요. 어떤 순간들, 토일이를 위로하고 엄마를 위로할 때 소위 흔히 봐오던 아버지의 가부장의 권위에 빗대서 얘기하지 않고 그냥 사람을 바라보고, 관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한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호훈이 같은 경우, 골격을 포함해서(웃음) 여러 가지로 저런 남자친구가 있으면 되게 귀엽고 좋겠다, 하는 생각도 했어요. 무해해보여요. 무해엔 무지도 함께 있어서 의도치 않게 해로워질 수도 있지만. 정말 무해한 캐릭터처럼 느껴져서 위험하지 않아보였어요. 그렇게 표현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은데.

 

전고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토일이와 엄마가 같이 입장하는데 저는 그 생각을 한 번도 못 했거든요. 이런 반전이 사실 별 것도 아닌데 너무 좋았어요.나도 어쩔 수 없는 유교걸이구나 싶었고.(웃음) 그런 지점도 좋았던 것 같아요.

 

최하나: 두 분 감독님의 말씀 잘 들었고요. 그럼 다음 코너로 넘어갈까요?

 

전고운: 저희가 진실게임을 준비했어요. 소소하게 영화 만들면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게요. 영화 찍으시면서 언제 처음 우셨어요?

 

최하나: 프리 프로덕션 때 당연히 울었고...

 

전고운: 프리 프로덕션 때 왜 우셨어요?


최하나: ... 가장 처음에 운 게... PD님들 때문에 울었어요.(일동 웃음) 진실게임이니까! PD님이 배석하신 가운데 말씀드리는데. 처음에 PD님들과의 소통이 조금 힘들었어요. PD님들도 저 때문에 우셨을 수도 있죠.(웃음) 제가 처음이고 여러모로 미숙했어요. 장편영화 연출이 처음이고 다른 장편영화 스태프 경험도 없어서 과정을 속속히 알지 못하니까 피디님도 힘드셨을 것 같아요. 뭔가 스파르타 식으로... 위플래쉬같은 느낌으로(일동 웃음)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덕분에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진실게임이니까 거짓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 진실게임은 저만 대답해요?

 

전고운: 저희 영화가 셋 다 같은 PD님이 함께 하셨거든요. 김순모 피디님. 그럼 가은 감독님 언제 우셨어요?

 

윤가은: ... 너무 많이 울었는데. 전 감독님들 만나면 언제 울었는지 항상 묻는 것 같아요. 감독님들 GV할 때는 되게 멋있게 이 영화에 대한 의미와 어떤 가치를 찾고자 애를 쓰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진짜 녹록치 않고 멘탈이 뿌셔뿌셔되는 과정이라... 저도 진짜 많이 울었는데, 저는 사람들 앞에서 운 게 기억이 나요. 첫 영화 만들 때 회사 대표님들 앉혀놓고 촬영 3주 앞두고 엎었어요. ‘이렇게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통곡에 가까운 오열을 했던, 너무 쪽팔린 순간이 기억나요. 근데 저만 울었어요. 저는 이게 너무 큰일이라 회사에 누가 될 수도 있고 이 과정이 너무 힘들고 도망가고 싶고 감당이 안 돼서 울었는데. 모두가 그래. 너 그런 거 같더라. 쉬자.’ 이런 분위기가 돼서 술을 진창 먹고 카드를 잃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TMI! 전고운 감독님은 언제 우셨어요?

 

전고운: 전 안 울었어요.

 

윤가은: 진짜? 이러기야?

 

전고운: 피도 눈물도 없어서... 저는 언제 울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화 다 끝나고 배급할 때 독립영화다 보니까 돈이 없어서 시사회를 못 하는 거예요. 같이 만든 스태프, 배우 분들을 초대하는 자린데 그걸 못해서 전화 끊고 엄청 울었던 것 같아요.

 

최하나: 가은 감독님 말씀 듣다가 제가 가장 처음 운 순간이 생각났어요. 전 처음 울었을 때 가은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울었어요. 참다 참다 못 참겠어서 가은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감독님! 진짜 어떡해요!’ 하고, 감독님은 나도 울 것 같아!’ 하면서...(웃음) 그리고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있어요. 저에게 큰 힘을 주셨던 그 순간을, 이 자리를 빌려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요?

 




윤가은: 첫 영화를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을 잠시 알려드렸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어제 다시 봤는데 또 보고 싶은 장면이 있어요. 호훈이의 찌질한 친구들 4인방과 토일의 가족들이 테니스장에서 만났을 때 싸우게 되는 과정이 굉장히 긴 롱테이크 장면인데. 영화관에서 볼 때 체감했던 거 보다 실제 시간을 재니 더 길더라고요. 이렇게 긴 씬을 배우들이 합을 맞추면서 어떻게 찍었을지 너무 궁금했어요. 너무 재밌기도 했고요. 배우들 각자 대사도 많은데 이 장면 연출할 때 어떠셨는지 궁금했어요. 8명의 배우가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건 진짜 쉽지 않은 거라 이건 야심이 있는 테이크다 싶더라고요. 저는 이런 장면 시도했다가 편집 단계에 잘려 나간 적도 있고, 다시 보니 합이 전혀 안 맞은 적도 있었는데, 하나 감독님은 어떻게 연출하셨는지 궁금했어요.

 

최하나: 저희 영화는 독립영화 치고 롱테이크가 없는 편이라 그런지 배우 분들이 그걸 찍을 때 제일 신이 나셨어요. 네 명의 배드민턴 회원들과 네 명의 가족들이 각자 동선이 있는데, 우선 배드민턴 회원 중 한 분은 계속 돌아다니면서 공을 통통 튀기시는데 그런 걸 되게 자연스럽게 해주셨어요. 물론 리허설을 했고, 슛 들어가니까 동선의 문제는 없었어요. 근데 카메라 수평 트레킹을 하다보니까 카메라 워크가 조금 부자연스럽다던가, 듀레이션이 길어지면서 인물이 어딘가에 가려진다거나 그런 문제는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들의 동선이나 연기에 있어서 어렵거나 지치는 문제는 없었어요. 오히려 배우님들이 테이크 갈 때마다 더 욕심을 내서 해주셨고 저도 욕심을 내서 찍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상 제일 즐겁게 찍은 회차였고 수정 배우께서도 되게 재밌었다고 해주신 걸로 기억해요. 애드리브도 하게 되고. 원래 혜진 배우님이 해영 배우님 끌고 나온 뒤부터는 콘티가 따로 있었는데, 현장에서 합이 너무 좋다보니까 뒤까지 롱테이크로 가고 패닝으로 마무리했음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오히려 테이크 길이가 늘어난 거죠. 테이크는 8, 9번 갔던 것 같고... 테이크 마다 미덕과 단점이 있어서 그 중에 가장 꽉 찬 테이크를 골랐어요.

 

윤가은: 사실은 진실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이런 롱테이크를 찍을 때 혹시 반발은 없었는지, 이 장면을 찍을 때 숨은 TMI는 없는지 여쭤보려 했는데 이게 제일 재밌었던 회차일 줄은 몰랐네요.

 

최하나: 자신 있게 대답 드립니다.

 

윤가은: 훌륭하십니다. 정말 야심 있는 컷이라. 혹시 영화를 한 번 더 보시게 된다면 유의 깊게 봐주세요. 생각보다 되게 긴 장면인데 모두의 합이 유려하게 잘 맞아요. 테이크가 스무 번 서른 번은 갔겠구나 싶었는데.

 

전고운: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영화에 사자성어가 되게 많이 나오잖아요. 원래 감독님이 잘 아시는 건지.

 

윤가은: 전 앞부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전고운: 저도 못 알아들었어요.

 

윤가은: 다행이다. 나만 못 알아듣는 줄 알았어요. 자막으로도 안 나오잖아요. 자막으로 왜 안 나와? 나 같은, 우리 같은 사람 별로 없나?

  

최하나: 얼마 전에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에 나갔는데, 다들 똑같이 반응하셨어요. 이렇게 나만 모르나?’ 하는 반응을 보는 게 전 조금 즐겁더라고요. 일부러 더 어렵고 생소한 말들을 넣었어요. 일단 저는 사자성어에 전혀 능하지 않고 한자 급수도 못 땄어요. 사자성어를 넣자는 의견은 김순모 PD님의 의견이었는데, 전 사자성어를 모르니까, 포털 사이트 사전에 들어가면 테마별로 사자성어가 나와 있어요. 거기서 몇 백 개를 보고 그 중에 어려울 법 하면서도 우리 대사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걸 추려서 메모를 했어요. 그걸 대사에 적용을 했는데. 이게 토일이랑 태효의 어떤 경쟁이자 유대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거든요. 태효는 훈장님 같은 사람이라 자기 딸한테 이런 한자어를 가르쳤고, 토일이는 지기 싫으니까 일부러 더 어려운 걸 공부해서 쓰는 거죠. 그러다보니 좀 더 일상적으로 쓰는 것보다 생소한 사자성어를 쓰고 싶었어요. 자막을 넣자는 의견은 편집 중에 계속 나왔는데 호흡이 되게 빠른 대화다보니 자막을 읽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어요. 이 대화에서는 뜻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사람들 되게 이상한 대화를 하고 있다, 이상한 배틀을 하고 있다, 이상한 부녀다, 이런 느낌이 더 중요하니까 결과적으로는 불친절하지만 자막을 뺐어요. 그 결과 모두 이런 상황이 되어서 즐거워요. 보고 있으면.

 




윤가은: 저는 배우 분들에 대한 놀라움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잘 알던 배우들도 나오고, 평소 동경하던 아이돌도 나오고. 저도 정말 f(x)의 팬이거든요. 못 보던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사실은 신인 감독으로서 아이돌 출신의 아이코닉한 배우와 칸의 배우이신 장혜진 배우님,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오랜 경력의 노련한 선배님들과 같이 하신 그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전고운 감독님도 굉장히 다양한 경력을 가진 좋은 배우 분들과 같이 작업 하셨잖아요. 저는 쫄보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날 못 믿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도 하는데. 이런 배우 분들과 작업하시는 기분이 어떠셨는지, 혹시 쫄리신 적은 없는지 궁금해요.

 

최하나: 당연히 쫄렸죠. 수정 씨랑 미팅할 때는 되게 신기한 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의 멤버와, 사실상 팬미팅 같은 거잖아요.(웃음) 근데 수정 씨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은 f(x)의 크리스탈로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같이 작업할 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인지되는, 되게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이 사람이 토일을 맡으면 이런 숙제가 생기고, 이런 걸 이렇게 해결하면 되나?’하는 식으로 머리가 굴러갔던 거 같아요. 수정 씨와는 미팅을 하러 온 동료로서 시나리오 얘기도 하고 영화 얘기도 많이 했어요. 영화 어플 얘기도 하면서 그 영화 별점 몇 점 주셨어요?’ 하는 얘기들도 하고.(웃음) 그래서 수정 씨에 대한 쫄리는 마음은 미팅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고. 혜진 선배님을 비롯한 배우분들을 만날 땐 당연히 너무 긴장 됐어요. 혜진 선배님은 피디님들 없이 단 둘이 뵀는데. 그때 제가 윤가은 감독님이랑 봉준호 감독님 영화 나오신 분이 제 영화를 왜...’ 했더니 선배가 이창동 감독님은 왜 빼요?’ 이러시고.(웃음) 막 웃으시면서 그런 게 어디 있어. 시나리오 재밌으면 하는 거지.라고 해주셨어요. 다른 선배님들 만날 때도 긴장 했는데, 어쨌든 우리는 이 영화에 함께 참여를 하는 거잖아요. 팀이 된 거니까. 내가 내 몫을 제대로 하면 어느 정도 관용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이기도 하고 어리니까 그런 부분도 감안해주시면서 제 말을 잘 들어주셨던 것 같고. 저도 저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대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선배님들은 정말 영화를 같이 만드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생소하기도 했어요. 촬영 쉬는 시간에 저는 덕문 선배랑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런 식으로 대사를 바꾸면 어때?’ 이런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럴 때 그치, 이 분은 지금 내 손님이 아니라 나와 함께 만드는 분이지.’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쫄리는 마음을 풀어나갔습니다!

 

윤가은: 들을 때 엄청 부러웠어요. 수정 씨... 나도 수정 씨 동료 하고 싶다. 이어서 전고운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전고운: 저는 수줍음이 많아서 처음 만나서 수줍어하면 다들 좋아해주셨던 거 같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려고 노력을 해요. 이솜 배우님 만났을 때도 그랬고 아이유 배우님 만났을 때도 얼굴이 시뻘개져서 쳐다보질 못했거든요. 제가 신경 쓰지 마세요!’ 하면 다들 그냥 귀여워 해주셨던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저보다 나이가 있는 남자 배우들이 어려운 것 같아요. 만날 때마다 항상 긴장 되고. 그럴 땐 그냥 집에 가서 술 마시고 푸는 수밖에.(웃음) 그냥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최하나: 맞아요. 고운 감독님이 솔직하게 대하면 귀여워 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사회생활 아직 잘 못 하는 애다.’ 싶으면 되게 가엾게 여겨주시는 거 같아요. 귀여워 해주시는 게 오히려 저희의 무기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요.

 

윤가은: 주접을 떨어도 괜찮은 분위기가 되는 거네요. 스타일이 잘 안 맞는 배우라면 여러 가지로 맞춰 가면 되는 건데, 내가 이 배우를 너무 좋아하면 진짜 주체 못 하는 감정들이 나온단 말예요.(웃음) 부담스러우면 어떡하지 싶고, 나도 저 사람을 배우가 아닌 스타로 대하고 있는 건가 싶고. 동등한 동료로 대해야 하는데,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싶은 경계에서 어떤 선택을 하시는 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팬의 입장에서 동료의 입장으로 넘어설 때. 상상하면 기분 좋지만 상상과는 다른 어떤 부대낌이 있을 것 같아요.

 

최하나: 그건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달려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대방이 그래, 나 스타야!’ 하면 저도 굽실거렸을 거 같기도 하고요. 제가 만난 배우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수정 씨의 대단함 아닐까요?

 

윤가은: 전고운 감독님은 얼굴 시뻘게지신 다음에 어떻게 하셨어요?

 

전고운: 그냥 잠깐만 기다려주세요하면 계속 웃으세요. 그럼 그때 쑥 들어가는 거죠. 웃겨 놓고.

 




윤가은: 다 팁이 있으시네요. 이제 관객 질문을 읽어볼게요. "최하나 감독님 혹시 음악 좋아하시나요? 극중 토일이가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감독님의 음악 취향이 궁금합니다." 전 이 영화의 되게 묘한 멜로디가 되게 좋았는데 감독님 음악 좋아하세요?

 

최하나: 음악 자주 듣는데 음악 좋아해요.’ 하기엔... 영화는 좋아하면 어떤 배우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서 디깅(digging)을 하잖아요. 근데 전 음악은 그렇게 까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냥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놓고 듣는 편이에요. 제가 힙합에 알러지 같은 반응이 있는데 수정 씨가 감독님은 너무 협소해! 음악을 너무 좁게 들어!’하면서 저한테 막 힙합 음악 추천도 해주고 같이 있을 때 힙합 틀어놓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 음악을 제가 잘 알진 못해요. 근데 수정 씨가 음악 취향이 진짜 좋아요. 다방면으로. 그래서 저도 조금씩 듣고 있어요. 저는 토일이처럼 아주 드센 메탈 장르까진 들은 적은 없고 10대 땐 마릴린 맨슨 정도는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영화에 나오는 음악을 듣지 않았습니다.

 

전고운: "혹시 감독님도 대구 출신이신가요?"

 

최하나: . 토일이처럼 수도권으로 올라왔습니다.

 

전고운: "감독님은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애비규환이란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하나: 되게 정석적인 질문이네요저는 10대 때... . 아까 진실게임의 일환으로 감독님들은 언제 처음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전 기억이 잘 안 나요. 고등학교 땐 맞는 거 같은데. 계기가 무엇인지는 잘 생각이 안 나요.

 

윤가은: 그냥 자연스럽게 꿈꾸게 된?

 

최하나: . 그냥 좋은 영화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었어요. 창작을 하고 싶단 생각은 어려서부터 꾸준히 해왔지만 그게 영화가 됐던 건 고등학교 때, 좋은 영화들을 보면서 확고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히 영화과에 입학을 했는데, 입학하고 나선 영화를 안 보게 되었어요. 힘들었어요. 영화 많이 보는 게. 그래서 영화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계속 고민을 품고 있다가 애비규환을 졸업 시나리오로 쓴 거예요. 이걸 공모전에 냈는데 모든 곳에서 다 떨어지고, 다른 시나리오를 한 번 더 썼는데 또 다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제작 지원 사업에 냈는데 그게 돼서 이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윤가은: 사실 이건 진실게임에서도 하고 싶은 질문이었는데. 관객분이 "토일은 결국 행복해졌나요? 이혼 안 하고 살아갈까요?" 하는 걱정 어린 질문을 하셨어요. 저도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토일과 호훈의 미래가 어떤지 궁금했어요.

 

최하나: 이 질문이 거의 매번 있는데, 그래도 토일이가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물어봐주시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잘 살 것 같아요. 10년까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토일이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고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 그 뒷바라지를 호훈이가 잘 해줬을 것 같아요. 일단 시키면 잘 하는 편이니까. 물론 부침이 있겠죠? 힘든 게 있겠지만 토일이라면 새로운 길을 개척을 해서 잘 살았을 거라 생각해요.

 

윤가은: 호훈이가 누나 같은 사람이 대통령 해야 된다고 했으니까, 토일이는 크게 올라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혹시 최토일의 최씨 성은 감독님의 성에서 따오신 건가요?"

 

최하나: 대구가 제가 살았던 곳인 것처럼 사실 최씨도 그래요. 다만 토일이가 새아빠한테 철없는 반감을 가지기엔 성이 김씨로 바뀌면 더 짜증이 날 것 같았어요.

 




전고운: 이 질문 되게 신박한 것 같아요. "혹시 속편 계획이 있으신가요?"

 

최하나: 이거 재밌는 거 같아요. 이 얘기 하고 싶었어요. 저희 영화에 제일 많이 달리는 악플이 애미규환은 없냐? 애미규환도 찍지 그러냐? 애미규환이면 난리났지!’ 하시는데. ‘애미규환하면 완전 재밌죠!(일동 웃음) 실제로 배우들끼리도 애미규환찍자고, 토일이가 애 낳고 나서 애미 찾으러 가는.(웃음) 엄마들만 나오는 영화 찍자, 느와르로 찍자. 이런 얘기도 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지도 않으시고 애미규환은 없냐고 하시니까. 애미규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쇼!(일동 웃음)

 

윤가은: 여러분,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0년 후 느와르로.

 

전고운: "감독님의 마음이 제일 닿았던 씬이나 대사는 어느 부분인가요?"

 

최하나: 저는 토일이가 친아빠랑 헤어질 때요. 되게 짧은 대화인데 쓸 땐 이게 어떤 울림이 있을까? 이게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은데?’ 싶었거든요. 그런데 배우 두 분이 복잡한 심상을 되게 단호하게 잘 표현 해주신 것 같아요. 특히 토일이의 나머진 안 닮을래.’라는 말이 아빠를 처단하는 방식이 아니면서도 단호하게 선을 긋잖아요. 당신은 내가 바라는, 나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아빠는 아니야, 라는 걸 그 한마디로 표현하는 수정 씨의 미소 띈 단호한 표정이 되게 좋았어요. 돌아설 때랑.

 

윤가은: 이런 질문도 있네요. "일월이의 엄마는 누구인가요?"

 

최하나: , 일월이의 엄마는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해영 선배님이랑 두 번째 미팅 쯤에 얘기해보긴 했어요. 저는 일월이의 엄마가 도망을 갔다고 생각했어요. 일월이랑 환규를 두고 도망을 갔고 그게 환규의 업보라고 생각했고요. 이 사람이 토일이한테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했던 업보라고 생각하지만, 환규가 일월이를 방치할 악인은 아니어서 나름의 책무를 다 하면서 둘이 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마음일 것 같단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윤가은: "토일이의 불안한 연기가 인상 깊어요. 결말에서도 토일이의 인생은 그녀가 책임질 테니 그 인생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웃으며 떠나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관객에게 안정감을 주는 데엔 토일이 아버지 캐릭터의 역할이 컸던 것 같은데 솔직히 한국에서 그리 흔치 않은 남편상이라고 생각해요. 무해한 캐릭터들 때문에 기분 좋은 동시에 좀 더 현실적이거나 비교적 악의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있는 시나리오를 혹시 상상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있었다면 왜 이런 방향으로 설정하셨는지?"

 

최하나: 현실적인, 말하자면 가부장적인 아빠를 상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지금보다 고압적인 말투를 쓰는 아빠를 상상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래도 새아빠가 친아빠와는 달리 토일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이건 결국 토일이가 자기의 성장배경인 이혼, 재혼 가정이라는 일종의 콤플렉스와 정상가족에 대한 선망을 버리고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니까 거기에 가부장적인 억압이 장애물로써 필요할까 싶었어요. 토일이는 이른 나이에 임신을 했고 호훈이라는 조금 못 미더운 남자친구가 사라지는 이 사단에서 다른 갈등들이 필요할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굳이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가부장적인 아빠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이곳이 가부장제가 없는 세계라고 가정할 순 없겠죠. 근데 굳이 이 이야기에 그런 캐릭터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윤가은: "호훈이 엄마 아빠 캐릭터도 기존 가족과 다르고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토일이 아빠가 두 분이란 걸 안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간 반응이 재밌었다"고 하시는데. 호훈이 부모님 캐릭터도 장난 아니잖아요. 미치겠더라고요. 도대체 그 레게풍 의상은 뭐고, 밥상에 빠에야 나오고. 직업도 너무 궁금해.(웃음) 돈도 많아 보이잖아요. 아들도 되게 잘 키웠어. 건실하고 착하게. 도대체 뭐예요? 그 부모님들은?

 

최하나: 졸부일 거 같았어요.(웃음) 비교적 단기간에 부를 축적한 중소기업의 사장일 거라고 배경을 설정했어요. 그렇게 설정했던 이유는 가부장을 등장시키지 않았던 이유랑 비슷한 건데, 어차피 토일이한텐 고민이 너무 많고 이 콤플렉스에만 집중해도 되는데, 굳이 전형적인 시월드상을 제시해서 그런 스트레스까지 부과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보통의 고압적인 시부모가 될 사람들이라면 토일이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호훈의 부모님은 토일의 선택을 환대할 수 있을 만큼 괴짜이면서 건강한 사람들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되게 쿨하고 뭔가 잡다한 취향들을 가졌는데, 그게 대부분 탈()한국적인 것들. 빠에야, 하와이안 셔츠, 레게. 하나도 통일성이 없거든요. 그냥 한국으로부터 무조건 멀리 떨어진 것들만 모아서.(웃음) 첫 씬에서 먹는 과일도 용과예요. 관객들이 저런 집에 시집가서 어떡해하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전고운: 이제 마지막으로 감독님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맘껏 하세요.


최하나: 배우 분들 없이 저만 참여하는 GV인데 많은 관객들이 오셔서 너무너무 기쁘고, 이렇게 두 분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관객분들이 많이 와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해요. 오늘 인디토크의 이름이 '여풍당당'인데, 제가 '도원결의'로 바꾸자고 제안 드렸어요.


윤가은: 근데 전고운 감독님과 최하나 감독님이 오늘 처음 본 거라 초면인데 어떻게 도원결의를 하냐는 이슈가 있었고...

 

최하나: 근데 흔쾌히 승낙해주셨죠?

 

전고운: . 저는 처음 만나도 도원결의 잘합니다.


최하나: 오늘 와주신 한분한분께 너무 감사드리고. 사연 없는 가족은 없고 저도 마찬가지여서 저 스스로를,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쓰고 찍었어요. 리뷰를 읽다가 가장 좋았던 말이 이 영화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게 있을 줄 몰랐다. 이 영화를 보고 너무 큰 위안을 얻어서 지금 좀 혼란스럽다, 벙쪘다.’하는 반응이었어요. 여러분들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않으셨더라도 저는 그런 마음으로 찍었으니까 이 마음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윤가은: 오픈채팅방을 보니 결혼 앞두신 분께서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이혼하면 뭐 어때, 라는 토일이의 마지막 대사에 힘을 얻고 가신다고 해요.

 

최하나: 이런 성취가 있을까요?(웃음)

 

윤가은: 저도 아님 말고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 엄청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 통해서 아님 말지, !’ 하는 생각을 좀 더 해도 되겠다, 목숨 걸고 이것이 영원할 것처럼 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이런 영화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고요. 또 오늘 너무 좋아하는 전고운 감독님도 오랜만에 뵈니 너무 좋았고. 극장에서 이렇게 관객분들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고운: 저도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영화를 봤어요. 저는 결혼을 했으니까 임신과 이혼에 대해 좀 더 가볍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최하나: 너무 뿌듯하네요.

 

전고운: 정말 용기를 얻어 가요. 사실 저는 감독님들이랑 놀러왔거든요. 그래서 다들 의미 있는 시간이었길 바라고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애비규환입소문 많이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도 유효한 듯하다. ‘아님 말고!’를 외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고 자주 엉엉 울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일과 미소, 하나, 유미, 유진이 만드는 우리 집은 쭉 따뜻하고 안전할 것이다. 세 감독님들이 만든 무해한 세계가 있기에 관객은 유해한 세계 속으로도 한발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것이 고마워 세 감독님들의 도원결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언젠가 개봉할 애미규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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