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청춘〉리뷰: 궤도 밖에서 부르는 각자의 이름
* 관객기자단 [인디즈] 유송이 님의 글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늘 효율과 통제라는 명목하에 아이들을 하나의 정답으로 묶어놓곤 한다. 하지만 〈열여덟 청춘〉은 희주 선생님의 부임으로부터 조금씩 풀어짐이 시작된다. 휴대폰을 자율에 맡기고 반장직을 돌아가며 수행하자는 제안은 무책임한 방임처럼 비칠 수 있으나 아이들 각자의 주체성을 회복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름 지우기 수업은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마지막 한 사람을 남겨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가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지키려다 눈물을 터뜨린다. 특히 엄마와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먼저 지워내던 순정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나’보다 ‘책임’을 먼저 가르쳐온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기회를 박탈당한 열여덟의 삶은 이름 지우기 수업에서조차 쉽게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때로 나의 속도를 늦추거나 상대의 보폭에 나를 억지로 맞추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순정이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며 아프리카로의 탈출을 꿈꿨던 것처럼, 나 또한 나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타인과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영화 속 희주 선생님이 순정의 서툰 핑계에 “독창적이지만 빈틈이 많다”고 건네는 농담 섞인 위로를 보며 깨달았다. 누군가의 빈틈을 지적하기보다 그 빈틈조차 그 사람의 삶임을 인정하는 태도가 바로 진정한 이해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열여덟 청춘〉은 유리창을 깨뜨리던 분노의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적어 넣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결말을 약속하진 않지만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라는 희주의 단단한 소신을 통해 각자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빌려준다. 나 역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나만의 길을 만들고 싶어 했던 시도들이 떠올라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궤도 밖으로 기꺼이 발을 내디뎌 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서툴지만 따뜻한 온기가 이 영화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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