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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 관하여
〈최소한의 선의〉와 〈빅슬립〉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어른의 나이를 하고 일상 속 불쑥 찾아오는 불안을 헤집으며 걷는다. 마음 구석에서는 어른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며, 하지만 눈앞에 그 고민을 스스로 꺼내는 방법은 모른 채, 새로이 나타나는 불안으로 그 자리를 일단 메우며 걷고 또 걷는다. 〈최소한의 선의〉는 그 불안으로 메운 자리를 부정하지도, 타인을 위한 고민으로만 영화의 시간을 가두어두지도 않는다. 위치한 공간마다 부여된 역할은 희연(장윤주)에게 늘 새로운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그의 앞에 문득 선 유미(최수인)는 어떤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런 희연을 기다린다. 그가 유미 옆에 손을 잡고 함께 서기까지 영화 〈최소한의 선의〉는 희연을 기다리고, 유미를 굳건히 믿는다.
희연의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다. 어른의 상징과도 같은, 심지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스무 살이 되는 아이들이 만나는 가장 가까운 어른. 그 아이들의 담임 교사 희연에게 유미의 임신은 교사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가오는 동시에 자신의 불안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복잡한 기분을 유발한다. 그렇게 희연의 불안은 새로 이사한 집의 벽지 안 가득히 피어난 곰팡이가 스크린에 가득 차듯 번져온다. 학교 안 유미의 존재 또한 희연에게는 안방 벽지 속 가득 찬 곰팡이처럼 하루빨리 해결되었으면 하는 문제인 듯 희연은 유미에게 자퇴와 퇴학 둘 중, 더 나은 것을 회유하며 선택을 강요한다. 줄곧 교사와 학생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소리치던 유미와 희연이 마주하는 순간은 스스로 서로를 찾아 나서며 시작된다. 가쁜 숨이 차오르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유미가 찾아간 곳은 희연의 집이었고, 다시 만삭의 몸을 이끌고 유미의 집을 찾아간 것은 희연이었다. 두 사람이 낸 각자의 용기는 그들 앞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고,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유미 앞에서 얼버무려 보기도, 도망쳐 보기도, 회유해 보기도 하던 희연은 유미의 아이를 안고 유미의 두 번째 고등학교 입학식을 축하해주고 있다. 그런 유미는 희연을 보고 활짝 웃어 보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맞잡는 용기로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 속에서 이들은 서로의 웃음을 확인한다.
희연과 유미처럼, 〈빅슬립〉의 기영(김영성)과 길호(최준우), 두 사람은 서로의 용기로 마땅히 자야 할 잠을 청하고 서로의 안정을 확인한다. 기영은 〈최소한의 선의〉 속 희연처럼 어른의 상징적인 직업을 가진 인물도 아니고, 길호에게 따뜻한 말만을 전하는 사람도 아니다. 새벽녘 집 앞 웅크려 자고있는 학교 밖 청소년 길호를 두 번째 본 날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기영이 길호에게 발코니에 놓인 화분들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그렇게 함께 빛을 쐬면서 안온한 집의 공간에 대한 의미를 키우기 시작한다. 숟가락을 하나 더 놓고, 이불을 하나 더 꺼내고, 자신의 옷을 길호에게 내어주던 기영은 길호의 일탈에 크게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소리침이 자신에게 향해있는 듯 깊이 괴로워한다. 길호와 기영 두 사람에게는 부정한 일로 공통되는 불안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아있다. 그 불안에서 그들 스스로 걸어 나와 따뜻한 빛을 함께 쐬었던 기영의 집으로 돌아올 용기를 내면서, 이들이 함께 만든 안온함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고 지켜간다. 노란빛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비로소 푹 따뜻한 잠에 드는 길호와 기영, 영화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잔잔히 바라본다.
눈앞에 불쑥 걸어들어온 어떤 아이를 만나며 〈최소한의 선의〉 속 희연과 유미 그리고 〈빅슬립〉의 기영과 길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른의 나이를 하고 그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홀로 방황하기도, 때로 자신만만하기도, 어른임을 내세우며 삶의 방식을 강요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이유 없는 선의의 방식은 그들이 서 있는 곳 바로 옆에 함께 서 서로의 용기를 바탕으로 함께 손을 맞잡는 것임을 깨닫는다. 여전히 그들은 그 모든 순간이 마음 구석에 자리하던 골똘한 탐구의 실현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어른에 관하여 계속해서 고민하며 잠에 들지도 모른다. 어느새 푹 잠이 든 그들을 스크린 너머 고요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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