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리뷰: 쉼 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문경(류아벨)은 우리 주변의 흔한 현실 직장인이다. 눈은 텅 비어 있고 몸 안과 밖으로 몹시 지쳐있으며 무언가 답답해 계속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건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직장 내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과부하 상태에 다다른 문경은 결국 급성 위경련으로 입원까지 하게 된다. 여기에 충분히 능력 있는 후배 초월(채서안)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 초월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스스로 3일간의 짧은 휴가를 빙자한 현생으로부터의 도피 시간을 주기로 한다. 초월의 고향이자 자신과 이름이 같은 문경으로 내려간 그는 우연히 첫 만행 중인 비구니 스님 가은(조재경)과 떠돌이 강아지 길순을 만나게 되고 또 우연히 유랑 할매(최수민)를 만나 손녀 유랑(김주아)과 함께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렇듯 우연인 듯 운명적으로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유쾌하고도 우정 어린 여정이 시작된다.
처음엔 그저 길순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동행하게 된 문경과 가은이지만 문경의 자연 속에서 문경은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가은은 명상과 사유하며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영화는 문경의 평화로운 자연 풍광을 함께 느끼면서 유랑하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바쁜 현실에 치여 들여다보지 못했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쥐여준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질주하듯 살지는 않았는지, 잠시 쉬어가자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애써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마음에만 묻어둔 채 보듬어주지 못했던 상처를 고백하고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가지며 번뇌를 함께 비워냈던 밤이 지나고 이들은 길순에게 스스로 보호자를 선택하게 하지만 길순은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버린다.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문경, 가은, 유랑이 서로의 길동무이자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도록 매 순간 가은이 외던 관세음보살이 길순의 모습을 한 채 이들 앞에 나타났던 것일까.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길순은 자기만의 길을 떠난다. 문경 또한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가슴 속 답답한 무언가가 내려간 듯 비로소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이지만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대신 문경에서의 시간을 연료 삼아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 뒤 다시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비워낸다는 건 분명 쉽지 않겠지만 몽땅 다 비워버려도 잘 살아진다는 것, 잘 비워내야 그만큼 또 다시 잘 살아간다던 유랑 할매의 조언처럼 틈이 없을 정도로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을 비워내야 다시 하나씩 잘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쉼 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문경〉이전하고픈 삶의 방식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나요? 잠시 멈추고 약간의 쉼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아마 우리도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 또한 영화 속 문경처럼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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