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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마더 인 로> 신승은 감독 인터뷰: 발화되지 못한 언어를 위해

by indiespace_한솔 2020. 7. 24.


 발화되지 못한 언어를 위해

 〈마더 인 로〉 신승은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유선 님의 글입니다.






사법부가 성범죄자를 다루는 방식에 분노하며 한 주를 보낸 뒤, 레즈비언 영화로 라인업을 채운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20’을 찾는 길. 꼭 안전한 세계로 대피하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영화 <마더 인 로>는 가족 관계를 일컬을 때 더욱 촘촘해지는 우리말 사이에서 언어의 허점을 묻는다. 어쩐지 끌어안고 싶어지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과 태도로. <마더 인 로> 상영과 GV를 마치고, 다음 날 사법부 규탄 집회에서 노래할 예정인 뮤지션이기도 한 신승은 감독을 만났다.

 



<마더 인 로>썸머프라이드시네마로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감이 어떠신가요?


요새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마더 인 로>와 다른 영화들을 보는 동안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늘 얻은 기운으로 내일 집회 잘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감독님의 언어로 영화 <마더 인 로>를 소개해주세요.


<마더 인 로>는 현서 집에 얹혀사는 민진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현서 엄마가 오시게 되면서 벌어지는 어색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복층 오피스텔 형태의 단일 공간에서만 진행되는데, 장소를 찾으실 때 특별히 염두에 두신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복층 구조가 중요했고, 비용도 고려했습니다. 에어비엔비를 빌려 촬영했는데 괜찮더라고요. 아래층에 있던 침대를 끌어올리느라 고생했지만요. 그리고 계단이 나무로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정도의 조건만 신경 썼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다 함께 비건식을 나눠 먹어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어요. 감독님께서 촬영 현장도 작품 완성도에 못지않게 신경 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더 인 로> 촬영 때는 제가 비건이 아니라 페스코 베지테리안이었어요. 그래서 참치도 나오는데, 지금은 그 장면 볼 때마다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 다음 영화를 찍을 때 비건이 됐죠. 손수현 배우님도 비건이에요. 현장에서는 비건과 비건 아닌 분들이 따로 먹을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다 같이 먹고, 스태프 분들도 비건식에 협조해 주셔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요새도 촬영하면 같이 비건식을 먹고요. 비건이신 PD님이 계셔서 식사를 잘 준비해 주십니다. 또 비건 요리사 친구가 있어서 얼마 전 조감독으로 작품 들어갔을 때에도 그 친구가 도시락을 해줬어요.

 


좋은 팀으로 좋은 작업을 하고 계시네요. 여성 배우와 여성 제작진까지 있을 때의 좋은 에너지가 있을 것 같아요.


<마더 인 로> 때 좋은 PD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좋은 스태프들을 계속 만나서, 요즘은 뭘 같이 하는 게 참 좋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관계와 감정이 변하는 것을 안민영 배우님과 손수현 배우님 두 분께서 인상적으로 표현해주셨습니다. 연출하신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트레일러에도 두 분 모습에 눈에 띄어요. 캐스팅 계기가 있을까요?


손수현 배우님은 전에 제 공연을 보러 와주셨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같이 술 마시면서 친해졌어요. 시나리오를 썼는데 섭외는 못하겠더라고요. 이 분은 큰 현장에 가시는 분이라는 안 좋은 선입견이 저에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읽어달라고 드렸는데, 함께 하고 싶다고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안민영 배우님은 PD님 통해 소개받았습니다. 두 배우를 너무 잘 만났죠. 광주에서 상영이 있었을 때는 셋이 12일로 여행도 다녀왔어요. 나이 차이도 있고 직업적으로도 선배님이시지만 전혀 차이를 못 느낄 만큼 편했고, 너무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화면에 덩그러니 떠오르는 글자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의도로 글자를 시각화해 넣으신 것인지, 들어갈 단어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탁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만드는 편이에요. 단어 역시 고민하고 골랐다기보다는 생각난 대로 만든 것이라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답변을 고민하게 됩니다. 다만 단어로 영화를 나눠놓은 이유는, 급변하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관계 변화에 따라 다른 장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배우도 공간도 같은데,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요.


 

뮤지션으로 활동하시면서 쓰시는 가사들 또한 공들이면서 고른 단어라는 느낌 보다는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감독님의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공들여서 잘할 수 있는 분들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공들이면 오히려 이상하더라고요. 아무 거나 탁 생각나는 걸 1, 그래도 열심히 준비해서 2번 기획안까지 써 가면 다들 1번을 고르시고요.(웃음) 공들여서 잘 하게 되는 능력도 갖고 싶습니다. 직관에만 의존하는 게 어떨 때는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직관을 잘 잡아내려면 평소에 잘 살아야겠죠.


 

이미 잘 살고 계신 거 아니에요?(웃음)


노력해야겠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의자가 불편하다고 어른을 바닥에 앉히는 것이 한국 문화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보통 그런 구도로 잘 앉지 않으니까요. 흔히 영화에서 구도와 높이가 관계를 표현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굉장히 어려워하는 상대를 바닥에 앉힌 건 긴장해서 실수한 것인지, 배려했는데 잘 되지 않은 건지,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그 의자는 저희 집에 있던 의자거든요. 조금만 앉아있어도 진짜 꼬리뼈가 아파요. '왜 이렇게 꼬리뼈가 아프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 때문이더라고요.(웃음) 그러다가 영화에도 그 설정을 넣게 됐습니다. 그 의자에 앉으면 불편하니까 바닥에 앉힌 것이 사실은 배려인데, 겉으로 볼 땐 어떻게 감히!” 이런 느낌이고 이상해 보이잖아요. 민진이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민진이가 내려다보는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대표적인 스틸 컷이기도 해요. 그 구도 자체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신 건가요?


. 어른이 밑에, 청년이 위에 있는 그 구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민진이가 처음엔 그렇게 의자에 앉아있다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거든요. 그런데 어디에 앉아있든 둘이 잘 얘기해요. 사실 위치에 대한 생각은 허상이거든요. ‘어른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 이런 얘길 한다지만 지나가다 보면 어떻게 안 밟겠어요.(웃음) 그런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직접 부르신 엔딩곡의 노랫말대로 시어머니라고도 장모님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소재를 어떻게 떠오르게 되신 건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것도 그냥 탁 생각났는데요. 생각하고 보니 이런 게 많더라고요. 장모님과 시어머니도 그렇지만, '마더'도 '파더'도 아닌 사람도 있잖아요. 논바이너리라고 남성/여성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성별 지칭을 벗어난 사람도 있으니까요. 제가 어떤 부분은 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민진이와 현서가 결혼해서 아이를 입양하게 됐을 때도 이 둘은 "부모"가 아니잖아요. "모모님"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영어에는 ‘parents’라는 말이 있는데 말이에요. 성별 이분법적이고 이성애 중심남성 중심적인 언어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조금씩 바뀌고 있잖아요.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꾸는 것처럼요. 이렇게 조금씩 단어가 바뀔 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게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아요. 또 예를 들면 밥집이나 술집에서 사람들이 이모!”라고 부르는 일이 많잖아요. 친근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남자가 일할 땐 '삼촌'이라고 하기 보단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죠. 이런 단어들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무언가 바뀔 때마다 내가 역사의 현장에 있구나그런 느낌이 듭니다.(웃음)


 

그렇게 생각하니 “I will find it. I will call you. Please answer me!”라는 가사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이 어떤 것들을 새롭게 상상해 나가기를 바라시나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세계에 자리가 없다는 걸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에는 몰랐더라도 , 그렇지, 맞는 말이다.’하고 알아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유모차가 왜?' 그랬어요. 저도 그럴 때가 많거든요.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있고,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순간에 '그냥 유모차가 유모차지, !' 하는 게 아니라 ', 그렇지!' 하면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항상 차별 받는 사람이 있고 언어로 부르지도, 불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항상 생각하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엔딩 곡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음악 이야기도 여쭤보겠습니다. 원래는 음악을 하실 생각이 없으셨다고 들었는데, 뮤지션으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 그리고 한동안 활발하게 뮤지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시다가 다시 영화 작업을 계속하시게 된 계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마더 인 로> 전에도 영화를 몇 편 찍었는데 많이 올라가지는 않았어요. 공연은 어쩌다 하게 됐는데 불러주시는 곳들이 있어 계속하게 됐어요. 공연은 10원이라도 벌게 되더라고요. 영화는 돈을 열심히 모아서 찍는 것,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것 같고요. 공연을 하면서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좀 겁이 났어요. 영화를 만들다가 작업이 끝나면 계속 이렇게 하는 건가? 사람들이 말하는 입봉이라는 건 뭐지? 다들 대체 뭘 하면서 찍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많아지고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현장이라도 가고 싶어서 사운드 일을 한 1년 하다가 손에 말초신경염을 앓고 있단 걸 알아서 못하겠다 싶었는데그러다 용기를 내서 <마더 인 로>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상영할 기회들이 계속 생겼어요. 저는 항상 제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너무나 고민이었거든요. 재능이 없어도 좋아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겁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든 게 영화가 아닐까 봐. 저는 영화라는 매체가 너무 좋은데 내가 영화를 해치는 걸까 봐 고민이 많았습니다.

 




감독님의 영화와 음악에서 큰 힘과 용기를 얻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시면서 계속 믿고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도 큰데, <프론트맨>이라는 작품을 작업하신 걸로 알아요. 이 작품도 소개해주세요.


지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필름x젠더라는 단편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찍은 영화로, 촬영부의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스태프 분들과 함께했습니다. 국악전문고등학교에서 아쟁을 전공하는 여자 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신작에서도 손수현 배우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두 분이 작품의 동반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창작적으로도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일까요?


영감까지는…(웃음) 손수현 배우님이 이번에 연출하신 작품(<프리랜서>)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그것도 제가 조연출을 했어요. 감사하게도 서로가 팀처럼 된 것 같아요. 최근에 디지털 성폭력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촬영감독님이 해주시고, 계속 같이 하는 PD님이 조연출 해주시고, 손수현 배우님이 PD 해주시고. 되게 좋아요.

 


여성 크루들이 이렇게 같이 하는 모습을 보니 서로 든든하실 것 같고 너무 멋집니다. <프론트맨> 이후에도 준비 중이신 프로젝트 있으시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호모포비아와 종교에 대한 코미디 영화예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마더 인 로>를 새로이 접하고 검색하다가 이 인터뷰 기록을 보시게 될 미래의 분들께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컴퓨터로 보고 계실지 폰으로 보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시고요. 세상이 느리지만 달라지는 사람들은 계속 달라지고 있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같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식사와 잠을 잘 챙기시고요. 같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어디선가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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