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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이장〉: 그 무수한 모순에 대한 대답

by indiespace_한솔 2020. 4. 8.











 〈이장〉  리뷰: 그 무수한 모순에 대한 대답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의 이장님이 아니라 묘를 옮기는 이장(移葬)’이다. 아버지의 무덤을 옮겨야 하는데 막내 남동생 승락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다섯 남매는 한데 모여 이장을 할 수 있을까? 이장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통해 가부장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또 비튼다.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한 자들이 뭉쳤다 흩어지고, 싸우고 화해하는 모습을 거쳐 영화는 은근한 온기를 자아낸다.

 



 

보통 아이가 아닌아들 동민을 혼자 키우는 첫째 혜영은 퇴사권고를 받은 참에 이장 안내 문자를 받고 형제들을 호출한다. 넉넉한 살림이지만 짐을 가득 챙겨 나온 둘째 금옥은 어딘가 수상하다. 셋째 금희는 부모에게 의존적인 연인과의 결혼이 걱정이고 짧은 머리에 항공점퍼 차림의 넷째 혜연은 페미니스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막내 동생이자 유일한 남성인 승락은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누나들은 그의 거취조차 알 지 못하는 등 평소 무심했던 관계가 드러나는 한편 그가 돈이 궁할 때에만 가족들에게 연락했다며 그를 은근하게 폄하한다. 결국 승락 없이 고향에 도착하지만 큰아버지는 장남 없이 이장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네 사람을 쫓아낸다. 자매들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불안은 서로를 향해 다른 형태로 폭발하고, 위태위태한 상태로 승락을 찾아 떠난다.

 

 



네 여자의 싸움은 퍽 유치하지만 서로의 약점을 정확하게 때린다. 그 속에는 지난한 세월 동안 겪은 차별이 관여한다. 혜영에게 애 하나 키우면서 힘든 티는 다 낸다라는 금희의 말은 여성 스스로가 타 여성의 노동을 평가절하 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장에서 보이는 가부장제는 주객이 명확하게 이분화 되거나 도식적이지 않다. 집안의 모든 노동을 도맡아 하는 큰어머니는 피해자에 가까운 인물이면서도 네 자매와 막내아들을 다르게 대우한다.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은 승락 또한 입체적인 인물이다. 누나들의 시선에서 승락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편안하게살아왔다. 그러나 큰아빠의 명령에 복종하며 앵무새처럼 말을 전하는 모습은 그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장에서 가족 영화의 뭉클한 감동이나 갈등 해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락이 벌에 쏘여 이장 의례를 혜영이 맡게 되는 장면은 퍽 허무하고, 자매들의 갈등 요인이었던 이장 배상금 배분 문제는 끝내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때문에 더욱 영화는 설득력을 가진다. 현실이 그렇듯이 영화 속 인물들은 양면성을 가지며 서로를 사랑하고 또 증오한다. 딸들에게 보내지 못한 아버지의 마지막 문자처럼, 아버지의 묘 앞에 가지 않겠다던 혜연이 이장 후 흘리는 눈물처럼. 


 



비가 오는 새벽 다섯 사람은 모여 앉아 무심한 대화를 나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전해진다. 비가 갠 뒤 다섯 남매는 각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결된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어떤 말소리도 흐르지 않는 차 안. 그러나 그들은 향할 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채워진 온기를 가지고, 다시 흩어진 가족으로 살아갈 차례이다.









이장〉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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