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밤은 누구의 낮보다 아름답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밤빛〉 대담 기록
일시 2019년 10월 30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무영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처음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는 영화가 가진 매력은, 결론에 다가서는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밤빛〉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와 그 사실을 모른 채 따로 살아온 아들의 2박 3일을 무심히 좇는다. 작품에는 두 사람의 대사도 많지 않을 뿐더러 음악은 첫 장면과 엔딩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김무영 감독은 배우의 연기도, 이미지도, 사운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안녕하세요 월례비행 대담을 맡은 정지혜입니다. 김무영 감독님 모시고 이야기 나눌 텐데요. 오늘 와주신 관객분들 모두 영화 흥미롭게 보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요. 저도 이 작품이 관객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하는 기대와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관객분들께 인사말씀 부탁 드리겠습니다.
김무영 감독(이하 김무영): 〈밤빛〉 연출한 김무영입니다.
정지혜: 이 작품은 극장에서 꼭 보셨으면 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특별히 극장이라는 공간의 암막 속에서 보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였습니다. 제목도 ‘밤’과 ‘빛’이 이어져있는데, 더 자세히 보면 밤과 낮, 어둠과 빛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제목으로 밤과 빛을 붙이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김무영: '밤빛'은 제가 생각할 때에는 별빛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일출일 수도 있고 촛불일 수도 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런 빛이 저한테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희태(아버지)가 불안해하면서 빛(불)을 켜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제가 마음이 불안할 때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찍을 때에는 몰랐는데요.
정지혜: 이 영화를 보신 관객분이 ‘어둠의 스펙타클을 보여준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스펙타클’이란 것이 현란한 무언가 보다는 아마도 ‘스펙타큘러’, 그 자체로서의 영화라는 말씀인 것 같아요. 어둠이 펼쳐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광경’을 이야기하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감정이나 정서를 말로서 전달하지 않고, 상당히 이야기가 많이 진행 된 중후반부에서야 말을 해요. 앞부분은 거의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홀로 있는 단독자로서의 개인을 보여주고 풍광에 주목하는 의도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 상의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양새가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시나리오는 처음이랑 많이 다릅니다. 찍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바꿨고, 실제로 이 집에 사시는 심마니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랑 같이 있으면서 듣게 된 에피소드를 가져와서 영화에 넣고 그랬어요. 병원 부분은 그 분 이야기예요.
정지혜: 초반에 나타난 대화의 느낌으로 영화가 계속 가지 않고 인물의 행동, 상황이 척척 쌓여가면서 진행되는데요. 이게 전체적인 영화의 기본적인 톤인 것 같아요.
김무영: 상황을 계속 보여주면서 쌓아가는 방식으로 인물의 감성과 심리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정지혜: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문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장에서의 변수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배우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일단 사전에 스크립트를 확실히 정하지 않고 그냥 느슨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현장에 가서 배우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슛이 들어가면 배우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했습니다. 톤이 올라가거나 페이스가 빨라질 때에만 제가 제 리듬으로 조절했습니다
정지혜: 그런 식으로 조정했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김무영: 누나 찻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연기한 뒤에 톤이나 페이스 조절을 했었는데요, 마지막에 희태랑 아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은 제가 여러 가지 해보려고 했는데 계속 상상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두 분께 알아서 해보시라고 놔뒀죠.
정지혜: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할 때 배우 입장에서 조금 난감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무영: 둘의 대화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촬영한 장면이었고 아마 이제 다 익숙해져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촬영 초반이었으면 어려웠을 거예요.
정지혜: 저는 이 영화에서 접촉, 겹침이라는 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내와 소년이 함께 2박 3일 간 반복되는 여정들에서 중첩이 진행되는데 겨울과 여름의 맞붙음은 시간적으로 급격한 변화잖아요. 처음부터 이 두 계절을 선택하신 건가요, 아니면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그렇게 찍으신 건가요?
김무영: 애초에 이렇게 하려고 했고요. 잘 드러날 지 모르겠는데 다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잖아요. 계절만 다르고 똑 같은 공간에서 여러 번 찍은 거예요.
정지혜: 중첩과 겹침에 대해서는 특히 엔딩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별이 쏟아지는 장면은 별에 제가 가까이 가는 듯한 느낌, 별이 저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감독님의 어떤 의도가 담겼다고 보면 될까요?
김무영: 개인적으로 어떤 환생한다는 느낌으로, 아버지가 아들로 환생한다는 생각으로 찍었고요. 초월적인 그런 장면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운드 디자인도 처음에는 작은 풀벌레 소리로 시작해서 점점 확산되는 사운드로 만들려고 했어요.
정지혜: 2박 3일의 짧다면 짧고 두 사람에게는 길었을 수 있는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면서 이들의 관계가 진척이 되거나 달라지거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서로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는 그 거리를 저는 중요하게 감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가까워지려고 하면 다시 멀어지고.
김무영: 저는 어떤 관계가 항상 완성되어서 끝나지 않았으면 해요.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 공유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뒤로 가면 아들이 아버지 행동을 따라하고, 아버지도 태도가 바뀌고, 이런 미묘한 변화가 보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정지혜: 아마 관객분들도 느끼셨을 것 같아요. 미묘한 그 포인트가 영화의 중요한 지점인데요. 저는 특히 지대한 배우의 아주 짧은 탄식 같은, 그 장면의 연출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배우들에게 상당 부분을 맡겼다고 하셨는데 이 장면은 어떠셨는지요.
김무영: 그 부분은 제가 요구를 했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찍었는데 정확히 왜 중요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네요. 깨어있는 순간이라고 생각을 했고, 아쉬움의 탄식이 아니었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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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엔딩과 관련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게요. 환생일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아들이 그곳에 왔을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있는데요. 엔딩이 ‘중첩’과 ‘이어짐’이라는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를 응축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사운드 디자인도 신경을 많이 쓰셨고, 여름의 소리가 겨울의 장면으로 흘러 들어가는 연출을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김무영: 처음에 그 아버지가 산에 올라가는 장면 있잖아요. 그 부분을 체크해서 거의 똑같이 해놓고 계속 찍었어요. 그리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하강하는 이미지는 거의 없고요. 그런 것들은 일부러 연출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산이라는 공간이 중간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희태가 죽기 전에 아들이랑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들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요.
정지혜: 감독님 영화는 정서적이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정적인 느낌인데 연출자로서의 고민은 형식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있네요.
김무영: 음, 저는 밸런스를 잘 맞추려고 했어요. 물론 정서가 먼저고요. 그 다음이 형식이고요.
관객: 강아지가 출산하는 장면이 있는데 의도하신 장면이었나요?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김무영:시나리오 상에서는 개와 아버지의 유대관계가 더 드러나 있었어요. 아버지가 개를 데리고 다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돈이 없어서 그런 연출이 불가능했고요. 그래도 그런 환경에 있으면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그런 두려움을 덜어주는 역할로만 개의 역할을 축소했습니다. 마지막 꿈같은 장면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고 개를 동네에서 데리고 왔는데 갑자기 출산을 한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땅을 파더니 새끼를 낳아서 찍게 됐죠. 촬영이 많이 거칠어요. 그래도 저는 그 순간이 좋았던 것 같고.
관객: 촬영 현장이 어쩔 수 없이 열악했을 것 같아요. 제작비도 충분하지 않으셨던 것 같고 스탭분들도 고생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감독님께서 직접 출연도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김무영: 네. 언 강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접니다.
정지혜: 김보람 촬영감독님은 〈철원기행〉(2016), 〈컴, 투게더〉(2017)와 같은 작품들을 해오신 분인데요. 이 영화 작업 정말 힘들게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감독님 뿐 아니라 전 스탭분들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촬영에 있어서는 밤에 새어 나오는 빛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 것인지가 중요한 포인트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촬영감독님과 고심해서 찍었거나 고민했던 장면이 있을까요?
김무영: 촬영감독님 정말 대단하시고, 이 영화는 촬영팀, 조명팀이 따로 없어요. 최소한의 인원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보통 감독은 로우키를 원하고 촬영감독은 밝게 하기를 바라요. 그래서 로우키가 필요할 것 같은 부분은 어둡게 갔고 전반적으로는 자연광을 사용했어요. 촛불도 사용하고. 조명은 한 두 개 밖에 안 쓴 것 같아요.
정지혜: 작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열혈스태프상도 받으신 걸로 알아요. 진드기에도 물리셨다고.
김무영: 여름에 촬영하다가 아예 하루 촬영중단하고 병원 바로 다녀왔었죠.
정지혜: 사운드 관련에서도 현장의 소리를 많이 담으시려고 한 것 같은데요.
김무영: 솔직히 사운드는 전문 스탭이 담당한 게 아니에요. 후반 작업에서 많이 손봤고 추가로 따로 녹음해서 쓰기도 했어요.
정지혜: 이 영화의 오프닝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은 사운드, 곡인데요. 사용된 서체도 그렇고 전반적인 영화의 무드에 주목을 하게 한 것 같아요. 영화에 음악을 많이 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상대적으로 덜 알법한 곡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김무영: 영화가 전반적으로 옛날 톤이에요. 서체도 예전 서체를 쓰고, 음악도 잔잔한 걸 쓰고. 배호 노래를 몇 번 들었는데 상당히 목소리가 좋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곡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정지혜: 감독님께서 미술작업도 하고 영화도 찍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상영하면 어쨌든 공간이 고정되어 있잖아요. 미술관은 오히려 반대의 재미가 있고. 그렇다면 〈밤빛〉의 극장 상영, 영화 상영을 통해서 담아내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무영: 이 영화가 저의 시간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시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생각했어요. 각자 사람마다 시간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의 시간을 영화를 통해서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 시간 안에서 최대한 이미지랑 사운드를 통해 어떤 경험,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이 공간이 갖고 있는 경험과 가능성을 다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혜: 오늘 끝까지 함께 자리해주신 관객분들께 인사말씀 드리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무영: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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