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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 리뷰들

by indiespace 2008. 10. 3.

리뷰 01 영화잡지 OTRO CAMPO의 Pablo Klappenbach (영화평론가)

영화 속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낯설다. 한마디로 단정 지어지지 않는 부족감에서 오는 이 생경함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어 대화와 배경음악으로 한층 커진다. 스페인어 자막도 이 영화를 아르헨티나와 상관없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 보이게도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아르헨티나 영화이다. 이렇게 영화는 모순의 공존을 통해 완전한 아르헨티나인이 될 수 없는 이민자의 갈등과 애환을 스크린에 옮겨놓는다.
배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영화생활에서 유일한 이민을 주제로 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가 특정 주제를 다루는 독립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더 넓은 시각으로 자신의 영화세계를 연구, 발전시키겠다고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 받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이미 그는 그의 영화 Do U Cry 4 Me Argentina? 에서 특정한 한 이민집단의 이야기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이질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에 들어와 동질성을 추구하는 이민자들의 노력들이 한갓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냉정한 현실을 고발한다. 외면당한 슬픔은 곧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특별히 예외적이다.) 아르헨티나 영화계에서도 끊임없이 다뤄졌던, 해결책이 없는 국적과 정체성의 불일치에서 야기되는 이민자들의 갈등은 실망감이란 모습으로 영화화 되었고 이 실망감은 동시에 영화 제목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한다.
 
Do U Cry 4 Me Argentina? 는 조각 맞추기 놀이이다. 먼저 동양문화의 차용으로 여러 장르들을 교묘히 절충했던 기존 서양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빌에서 보여주었던 액션 그리고 코미디, 멜로, 뮤지컬, 애니메이션까지, 모든 장르들의 요소를 완벽하게 끼어 맞추었다면 이 영화에는 이 요소들이 과장 없이 적절히 녹아있다.

또한, 이 절충된 재료들은 특정한 지역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틀에 끼워 넣어진다. 이 과정은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의 그 것과 비슷하지만, 아르헨티나인들과 이민자들간의 불분명하고 복잡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홍콩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진 해피 투게더 보다 더 강하고 현실적이다.
 
Do U Cry 4 Me Argentina? 는 어린 나이에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고향을 떠난 아픔을 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던 소위 이민 1.5세대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는 반복된 현실에 부딪치게 되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번민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한 소녀는 가족이 운영하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다. 그녀는 집안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스페인어를 잘 못하며,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잘 모른다.

한 청년은 그와 나이는 비슷해도 부자인 그가 일하는 가게주인 아들이 자신을 함부로 부리는 것도 참아낸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느낀다.

사춘기의 한 소년은 어머니가 운영하는 야채가게에서 가게주인인 한국인이 어머니를 협박하는 것을 목격한 후 인생을 바꿀만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해 악기를 다루는 재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장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갈등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끝냄으로써 다른 인물들의 결말과 정반대인 두 가지 요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첫째, 그녀는 결국 노력과 인내의 결실을 얻었고, 둘째, 아티스트로서 현실을 해석하기 위한 진실과 열쇠를 보여주는 “길”(그녀가 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탱고 제목)을 얻었다. 이로써 현지인들과 동화되지 못했던 문제를 극복하고 화해를 도모하여 스토리 전개를 뒤집어 놓는 낙관적인 기색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왜 아르헨티나 사회의 환영을 받게 되는 이가 아티스트일까? 사회조직에 진입할 때 아티스트가 얻게 되는 유리한 점은 무엇일까?

배연석 감독은 어린 시절 스페인어 자막 때문에 언제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영화에서 도피처를 찾았다고 밝힌 것처럼, 지금 그의 영화에서는 한편으로 항상 새로운 시각을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다른 한편으론 현실은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이해가 되며, 오직 그 조각들만이 인식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리뷰 02 NKINO 전은정기자

각기 사연은 달라도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의 목표는 같다. 삶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돈이든, 교육이든, 삶의 질이든 어쨌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얻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뿌리 뽑힌 사람들이 다른 땅에서 성공적으로 열매를 거두면서 살기란 한국에서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

배연석 감독은 1986년 한국을 떠났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는 아르헨티나에 한국인 이민자가 급증했던 시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를 따라 지구반대편 땅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던 이민 1.5세대들이 대부분 그렇듯 배 감독도 원주민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오는 불안감을 안고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배연석 감독이 가장 답답하게 느꼈던 건 아르헨티나의 이민 1.5세나 2세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연한 꿈은 있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죠”

사실 이민 1.5세대들의 우울한 이야기라면 우리는 익히 많이 보고 들어왔다. 정체성 고민에 빠진 젊은이들의 방황을 다룬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 그냥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연석 감독의 작품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다. 영화는 빠른 리듬의 전자 바이올린 음악을 배경으로 현란하게 편집된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은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찍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뜬금 없이 주인공들이 랩 음악에 맞춰 대화를 하는가 하면 갱 영화처럼 총 싸움을 하기도 한다. 보름과 덕규가 데이트 하는 장면은 또 멜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하고 싶은 걸 다 해 봤다.”라는 감독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 하다.

우울한 현실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괴리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어쨌든 “희망과 꿈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다.

어쩌면 배연석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 그 자체가 자신뿐만 아니라 이민 세대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였다고 말하는 것 같다. 최소한 그는 ‘막연한 꿈’을 ‘현실에서 가능한 꿈’으로 바꿔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두 번째 영화를 꼭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리뷰 03 경희대학교 4학년 김유리

 영화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희망을 얘기한다. 그래서 어쩌면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 그리고 1.5세대라 불리 우는 그들의 아이들, 한국 사람도 아닌 아르헨티나 사람도 아닌 그들 정체성의 부재 그리고 한국과 다른 사회와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 그 치열함…그 싸움을 통해 입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

"이민"이라는 것이 그리고 내가 느꼈던 "여유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는 것 만큼 편하고 아늑한 것이 아니라, 마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물밑에서는 열심히 발길질을 해야 하는 백조의 헤엄과 같은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겉으로 보이는 것은 기만적이라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인상 깊었던 것은 옷 공장 아저씨는 비리 가득한 행동을 하면서도 가훈만은 "정직"이라고 당당히 액자에 걸어놓았던 장면, 또 비록 극단적이지만 보름이가 원했던 "꿈-행복한 순간에 죽는 것-"을 이루었다는 것에서 나름의 해피엔딩, 형식이가 죄를 짓고서도 착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성모님의 관을 볼 수 있었던 것..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장면으로 더 많은 생각을 했고 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덕규, 형식 보름이를 잇는 하나의 수렴 점인 띠나를 통해 모든 희망과 꿈들이 좌절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인생의 목표가 없는 밑바닥을 드러낸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삶에서 모든 일은 다 잘될 거라고 영화는 얘기한다. 그녀는 곡을 연주하기만 하면 중간에 실수를 해 한 곡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는 "네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안된 다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나는 네가 될 거라고 믿는다고.." 또, 클래식도 못하는데 다른 장르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지점에 서 있는 거라고 했을 때 "하나를 선택해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냐고.."라고 얘기한다.
한국인이든 아르헨티나 인이든 하루하루 현재의 삶에 충실 하는 것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는 대사처럼 희망과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값지고 풍요롭게 만드는 일인지..

누구나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미련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 덕규가 꿈꾸었던 한국에서의 평범한 삶… 군대 가고 , 재수도 하고 대학도 가고, 하지만 "만약..그랬더라면" 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만약이고 지금 그렇지 않는 일이다. 지나간 일, 어쩔 수 없는 일에 연연해하지 말고 앞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것 그리고 그 결승점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살아가면서 잃지 않아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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