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5. 15.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5월 3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광국 감독

진행 정성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 님의 글입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는 제목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도 퍼즐이 명확히 풀리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갸웃거리며 상영관을 걸어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 날 자리한 손님들이 무척 반가웠다. 이광국 감독과 정성일 영화평론가였다.

다행히 인디스페이스에는 오늘 다음 회차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날의 인디토크는 무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영화 칭찬만 하는 GV만큼 따분한 게 없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지론처럼, 감독이 난처할 법한, 그러나 여태 망설이느라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에 이끌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러분도 긴 글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 안녕하세요. 정성일입니다. 우리들의 대화가 감독에게 응원이자, 어떤 논쟁적인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광국 감독을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이광국 감독(이하 이광국): 안녕하세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연출한 이광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일: 아무래도 이미 백 번쯤 들어보았을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제목을 들으면, 도대체 이 제목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호랑이가 직접 나온 것은 아닙니다만, 호랑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과 호랑이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오기도 합니다. 제목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이광국: 2016년 여름에 집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저희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말씀 중에 그러니까 여름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들 하지 않냐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관용구잖아요. 예전에 에어컨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을 시기 한 여름에 누군가 집에 오면 얼마나 접대하기 고역이었을지 생각하니 직감적으로 영화 제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이 제목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여름이었으니까 여름부터 구상을 해서 가을쯤에 시나리오가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든 부지런히 움직여서 겨울에 촬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고,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촬영을 꼭 해야 된다는 각오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제목을 겨울손님으로 바꿔보았어요. 겨울에 찍으니까. 제목을 겨울손님으로 바꾸고 나니까 이 제목에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더 생겨나고 본격적으로 하나씩 갈피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는데, 저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목을 짓고 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영화가 시작하는 부분에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을 하면 어떨까였어요. ’한 남자가 같이 동거중인 여자친구로부터 영문도 모르고 버림받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이어지고 그 이후에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맥락 구상을 시작한 것 같아요.

 

정성일: 고현정이라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습니다. 고현정이라는 배우를 이광국 감독께서 처음 본 건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을 했었던 시절, <해변의 여인><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일겁니다. 홍상수 감독은 배우의 성질, 능력, 특질 같은 것을 매우 특별하게 이끌어내는 연출자인데, 그걸 조감독의 자리에서 지켜보면서 아마도 남다른 것들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보면서 제 기대와 달랐던 건, 의외로 고현정의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현정 배우가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그녀가 갖고 있는 아우라 때문에, 혹은 카리스마 때문에 거의 영화를 멱살을 잡듯이 끌고 갈 것이 자명한데, 한편으로 이런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광국: 말씀해주신 것 중에 재미난 지점이 고현정 선배님이 갖고 계신 어떤 아우라에 대한 것인데요, 이 영화 안에서도 일종의 착시가 있긴 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분량으로 치면 고현정 선배님이 연기한 '유정'은 경유’ 역의 절반의 절반이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서브캐릭터일 수 있는 역할이고, 실제로 시나리오도 경유가 혼자서 쭉 끌고 가는 이야기로 썼어요. 하지만 고현정 배우가 갖고 있는 어떤 아우라가 착시를 만들어주면서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조감독 때 처음 고현정 배우를 만나 뵀었는데요, 말 그대로 카메라 뒤에서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거나 혹은 감독님이랑 말씀하시는 걸 듣기만 했는데 되게 독특한 리듬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말씀하실 때나 연기하실 때, 고유한 리듬인데 불규칙적이고 예측이 안 되는. 대사만 그런 게 아니라 선배님 행동, 몸짓도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이상한 리듬이 있더라고요. 저 대사를 어떻게 저런 호흡과 저런 리듬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고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저 혼자 고현정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공상에 빠졌던 거죠. 영화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후 한 2년 있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때 좀 선배님하고 얘기를 많이 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이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시나리오는 유정역할에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쓴 부분도 있고요. 10월 말 경에 시나리오가 나왔는데, 정말 무턱대고 선배님한테 말씀을 드려서 시나리오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선배님이 통화하시다가 따로 그럼 날을 잡지 않고 지금 바로 만나서 받겠다고 하셨어요. 저도 생각보다 빨리 시나리오를 전해드리게 됐고, 쓴지 이틀 만에 드렸기 때문에 사실은 드리고 나서 후회를 엄청 많이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 쓸 때 수정을 여러 번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 때 보여드린 게 초고였거든요. 드리고 나서 더 다듬고 드릴 걸 그랬다 싶고 너무 보여드린 게 후회가 되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제작비도 하나도 없는데 선배님한테 ‘2월 달에 무조건 촬영에 들어갈 거니까 선배님이랑 같이 하고 싶다, 제작비를 못 구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도 들고 찍을 텐데 그런 상황이 되어도 선배님이랑 하고 싶다라고 되게 무모한 부탁을 드렸었거든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시나리오 드린 지 이틀 만에 전화로 되게 재밌게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먼저 캐스팅을 하고 거기에 맞는 서브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게 순서인데, 본의 아니게 유정먼저 캐스팅이 된 거죠. 선배님이 함께 하시기로 하면서 동기부여나 독려 같은 것들도 생기고, 마찬가지로 김형구 촬영감독님께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내가 선배님하고 영화를 찍은 게 맞나싶을 정도로 저한테는 되게 막연한 희망 같은 일이어서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합니다.

 




정성일: ‘유정역을 연기할 고현정 배우가 먼저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경유를 연기할 이진욱 배우는 그 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텐데요.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상대가 고현정입니다할 때 약간 망연자실 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고현정은 그냥 배우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진욱 배우가 보였을 반응이 조금 궁금한데요.

 

이광국: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경유역할이 너무너무 어려웠었거든요. 다 쓰고 나서도 말 없는 이 답답한 친구를 누가 연기하는 게 좋을지 막막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고현정 선배님이 유정을 하기로 한 이후에는 남자배우의 폭 자체가 좁아지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는 건데, 시각적으로나 기운으로 눌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이진욱 배우를 신인 때 만났던 기억이 났어요. 너무 잘생겼는데 그냥 잘생긴 느낌이기보다는 눈빛이나 얼굴의 모양 같은 것들이 저에게 되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진욱 배우가 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타이트하게 남은 상태에서 혹시 모르니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고 누구라는 말씀도 드렸는데, 약간 갈증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이진욱 씨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한편으로는 소모된 것이 있었는지 본인이 되게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약간 다른 방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상대역에 대한 당연한 부담도 있었겠지만 어떤 호기심 같은 것들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정성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를 멈춰 세운 것은 배우가 아닌 김형구 감독이었습니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살인의 추억><괴물>을 찍었고,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연인>도 촬영했고요. 또 조명에 이의행이란 이름이 있는데, 이의행 씨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계속 조명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스텝은 얼마든지 누구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고현정, 김형구, 이의행, 그리고 이들과 함께 조감독 시절을 보냈던 감독의 이름을 함께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조합이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어떤 효과를 염두에 두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김형구 감독이 임권택 감독님의 <화장>을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서도 김형구 촬영감독은 자기가 완전히 선택이 안 되면 그냥 찍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보다는 저게 어떻겠습니까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영화를 사진에서부터 시작한 촬영감독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광국: 촬영감독님도 제가 조감독 하면서 같이 작업을 했던 분이고요, 제 첫 영화 <로맨스 조> 만들 때 시나리오를 드렸었어요. 시나리오를 보시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으나 촬영 스케줄이 안 맞아서 작업을 같이 못하게 되어 아쉬웠는데, 제가 김형구 촬영감독님의 샷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물론 많은 분들이 좋아하지만 그 중에 저는 정적인 샷에서 되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봄날은 간다>도 촬영 하셨는데 그런 고요하면서도 핸들이 느껴지는 샷들을 제 영화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고, 카메라는 최대한 안 움직이고 여백이 있는데 어떤 기운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저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촬영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드리자 운이 좋게도 흔쾌히 작업을 승낙을 해주셨고, 감독님하고는 촬영 컨셉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카메라가 땅에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안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두 번째로 인물들에게 서서히 다가갔으면 좋겠다, 경유의 뒷모습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다가가서 결국엔 타이트한 바스트 샷으로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컨셉에 대한 말씀들을 많이 드렸습니다. 촬영감독님께서 본인이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시면 마찬가지로 감독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어렵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정성일: 최근 한국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 헬드 촬영이 거의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다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보면 거의 완강하리만큼 카메라가 멈춰 서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도 거의 동선이 없습니다. 대부분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하죠. 이 멈춰 서있는 카메라와 함께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건 영화가 인물들로부터 갖고 있는 독특한 거리감입니다. 인물들이 아주 특별하게 상대가 반대편에 서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투 샷, 한 구도에 두 인물이 같이 있는 구도로 나오는데,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약점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상 인물의 표정을 거의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경유’나 유정이 대사를 할 때 어떤 표정을 보여주는 지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유정은 제스처가 크지만 경유를 연기하는 이진욱 배우는 그 소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의 어떤 제스처도 보여주지 않거든요. 표정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마음은 더더욱 더 불투명하게 보이는 점을 각오하고서라도 완강하게 멈춰 선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가진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광국: ‘경유캐릭터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경유가 가진 그 답답함, 혹은 어떻게 보면 무능력하고 누구와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며 카메라 역시 인물의 감정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철저히 경유의 곤경과 난처함을 지켜보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감독님이랑 인물을 어디서부터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었던 것 같고요. 카메라가 인물 캐릭터를 도와주지 않으면 이 인물이 좀 더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처음 이광국 감독이 설명하신 것처럼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겨울손님으로 바꾸셨는데, 간단하게 겨울에 찍느라고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전작 <꿈보다 해몽>에 이어서 다시 한 번 겨울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정이 이광국 감독에게 이 영화에서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이었으면 아 그냥 배경이 여름으로 바뀌었겠구나가 아니라 완전히 모든 게 바뀌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많은 장면이 야외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계절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겨울은 고양이가 돌아다니기에 좋은 계절이 아닙니다. 단지 제목 이상으로 저는 이 영화에서 겨울이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광국: 제가 평소에 생활 패턴이기도 하고 습관이기도 한데, 길에 많이 있어요 평소에. 걸어 다니거나 어디 앉아서 사람들 구경한다거나 실내보다는 야외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20대 후반쯤, 조감독 하다가 작업이 끝나면 그 다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냥 지낼 때, 한 마디로 그냥 백수생활 하게 될 때, 집에서 제가 있지를 못하더라고요. 집에서는 밥 먹고 씻기만 하고 일단 무작정 나오는데 막상 정류장에 섰을 때 갈 데가 없더라고요. 어디를 가야 될 지도 모르겠고. 이게 그냥 하루면 모르겠는데 계속 몇 달, 일 년, 이렇게 반복이 되니까 어느 날에는 정류장에서 한 시간 서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갈 곳이 없다는 느낌이 그나마 봄, 여름, 가을에는 저를 치명적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았었는데, 겨울에 그렇게 서 있다 보면 춥기도 하고 스스로 더 위축되고 더 쓸쓸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던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저한테 겨울에 대한 인상은 그런, 어딘가 목적지가 없이 거리에 던져진 인상이 제일 크고요. 이 영화의 제목을 겨울손님이라고 정한 이유가 단순했다고 말씀드렸고 그게 사실이지만,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겨울에 대한 정서가 담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성일: 배경이 겨울이 되면서 이야기에서 뭘 더 강력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광국 감독에게 홍상수 감독은 좋은 스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에게 없는 것이 이광국 감독에게 있습니다. 그건 영화에서 다루는 빈곤이었습니다. 경유는 빈곤 때문에 한겨울에 거리를 떠돌아야 하고, 대리기사를 하면서 못 볼 꼴을 보게 됩니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만나는 손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제목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렇게 짓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빈곤에 대한 의식은 <로맨스 조><꿈보다 해몽>에도 있었지만 매우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는 빈곤의 감정, 또는 감각이 전면에 나서서 영화를 끌고 가는 힘 같다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또 몇몇 대목에서는 이광국 감독이 그 빈곤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의 감정도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어떤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광국: (웃음) 이건 저 혼자 스스로 생각하는 건데요, 사회적인 각자의 사이클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 나이대가 갖는 기대치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서로에게 갖게 되는 이정도 나이 되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사회적인 기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제가 그 기준에 저를 대입해봤을 때 평범한 제 나이또래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사이클이 한 10년 정도는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빈곤이라는 것에 대해 되게 막연한 낭만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막연한 낭만. ‘뭔가 하나를 붙잡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겠지’ 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생각으로 30대까지 보낸 것 같아요. 그런데 40대가 되면서부터는 갑자기 , 이게 진짜 대책이 없는 거였구나, 내가 독립영화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게 경제인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민폐를 누군가에게 끼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는제가 빈곤하다고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웃음) 독립영화작업이 경제활동 면에 있어서는 '직업'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되게 큰 낙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40대 지나서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그런 것들이 좀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계속 독립영화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그럼 이 시점에 내가 영화를 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뭘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더라고요.

 

 

 


정성일: ‘경유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유정이 몇 번 물어보아도 이제는 안 쓴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유정경유가 쓴 소설 <나그네>를 자기가 고쳐서 발표해도 괜찮겠냐고 질문했을 때, 사실상 자신이 소설을 포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겁니다. 하지만 경유가 왜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 부분은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이광국: 이번에는 되게 미니멀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저한테 항상 딜레마이긴 한데요,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찍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제가 찍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고, 그러다 보니 '경유'가 글을 그만 둔 이유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고 그 이후에 다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성일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현지'가 '경유'를 내보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현지'는 그냥 이별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해서 '경유'를 쫓아낸 다음 연락처를 바꿉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를 추론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유정보다 현지가 훨씬 미스테리하게 여겨집니다. 이 인물은 어떤 각도로 다가가도 잘 설명이 안 됩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미스테리한 인물을 놓고 영화를 시작했을 때 여기서 얻고자 한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광국: ‘현지경유한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을 했고요, ‘경유의 비겁함들이 쌓이고 두려움들이 쌓여서 결국 상대들이 떠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날 아침에 경유가 용기를 냈다면 현지는 그렇게 가버리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래서 '현지'가 사라진 사건이 영화 전체에 그림자처럼, ‘경유밑에 깔려서 공기처럼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마지막에 경유가 전화를 한 번 걸어보는 것으로 첫 장면의 현지를 환기했습니다.

 

정성일: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 나오는 두 인물 경유유정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 속 이야기 이후에 아마 상태가 더 나빠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벼워 보이는 이 영화의 내면은 사실상 참담하고 참혹하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로맨스 조><꿈보다 해몽>은 인물들이 더 나아지려고,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유'는 점점 더 나쁜 손님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심지어 맨 마지막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소녀까지 포착하게 됩니다. ‘유정은 새 삶을 살겠다는 듯이 소주를 다 갖다 버리지만 또 술에 손을 댑니다. 심지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작가로서의 경력도 끝납니다. 말하자면, 두 인물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앞의 두 영화에서 보여준 더 나은 삶, 더 나은 인간으로 가려던 노력에 관한 태도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이광국: 제가 스스로한테 어떤 절망감 같은 것들이 전보다 좀 크게 생긴 것 같고요, 제가 시나리오 쓰면서 경유유정이 결국은 한 사람의 모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조금씩 이루면서 사는 사람이 둘 다 불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고, 계속 영화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지만 이어 나간다고 해도 그렇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섞이다 보니 이야기가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정성일: ‘유정은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습니다. 창작의 재능이 고갈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유정은 처음에 경유를 만났을 때 자기가 결혼했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뜻은 나한테 조금도 가까이 오지 마라는 방어선일 겁니다. 그런데 소설이 써지지 않자 유정경유에게 연락합니다. 영화는 모호합니다. 한편으로는 경유가 보고 싶었다는 느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유가 남겨 놓은 소설 <나그네>에 관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은근히 들게 만듭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경유유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반대의 방식으로 창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재능이 있는 경유는 포기하고, 재능이 없는 유정은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광국: 결국 이 이야기는 저의 고민에서부터 나온 것 같은데, 제가 다른 인터뷰에서 많이 얘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이야기를 쓰면서 제 안의 두려움하고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그 동안은 도망치거나 스스로 무서워서 피하거나 모른척하면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그럴듯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가도, 또 어떤 날은 다른 좋은 영화를 접하고는 나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고 싶으니까 지금까지 했는데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과연 내가 이것을 업으로 평생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매일매일 있거든요. 꿈을 포기한 사람과 꿈을 이룬 사람이 한 사람으로 보이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이 결국에 동전의 양면처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물음 같은 게 이번 이야기에 담긴 것 같아요. 결국 제 딜레마들이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 우리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에 관심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의 책상을 보면 정확하게 알게 되지 않습니까. '유정'의 집에 우리들의 시선을 유난히 끌었던 건 여러 권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한 권도 아니고 여러 권이 있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노인과 바다>는 상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경유가 유일하게 가방에 넣고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삼중당 문고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노인과 바다>가 무언가 '경유'와 '유정' 사이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저는 사실 이게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연결시켜주면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광국제가 뒤늦게 소설을 좋아하면서 번역에 따라서도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좋아하는 소설이 있으면 출판사별로 보면서 어떤 게 내가 읽기에 제일 좋은 번역인지 살피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재밌고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유라면 좋아하는 소설을 그렇게 출판사별로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유정집에 있는 <노인과 바다>들을 다 '경유'가 선물했다고 설정했습니다, 아까도 살짝 말씀드렸듯 저는 이 영화의 큰 맥락이 결국 <노인과 바다>와 닿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치열하게 실패하고, 거기서 오는 쓸쓸함이 저에게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경유혹은 유정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과정들이 <노인과 바다>와 닿아있다고 생각하여 그 책을 선택했습니다. 삼중당 문고는중학생 때부터 갖고 다니는 작은 문고판 책이 있으면 좋겠어서요. 여전히 연결은 안 되시겠지만.(웃음)

 


관객: <노인과 바다>에서 나오는 노인이 청새치한테 뜯기고 꾸는 꿈이 아프리카 초원 속의 사자 꿈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호랑이잖아요. 호랑이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마치 꿈처럼 존재하는데, <노인과 바다> 속 사자와 꿈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만드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영화를 보면 사는 공간과 생활, 결혼에 대한 문제에 있어 감독님이 개인적으로도 뭔가 난감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역시도 궁금합니다.

 

이광국: <노인과 바다>의 사자 꿈 부분을 의식하고 책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책 안에서의 사자는 제가 느끼기에 희망적인 느낌인데 이 영화에서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비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 타이밍을 한번 놓쳤고요. 그 때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제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후로는 당연히 결혼을 못했고, 계속 결혼에 대한 공포감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결혼이 여전히 무섭고, ‘결혼 절대 안하고 혼자 살 거야보다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 무서운 호랑이 같은 존재다라는 생각인 것 같고요.

 

 

정성일: 마지막 장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양수역. 그 역까지 가시려면 경의선 전철 타고 양수리 근처까지 가셔야 됩니다. ‘경유는 거기에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의 제목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입니다. 그때 호랑이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타납니다. 이 장면을 볼 때 갑자기 영화 중간의 유정이 떠올랐습니다. ‘유정이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자신의 글 호랑이가 우리에서 탈출하던 날을 쓰다가 계속 지울 때, 여러 명의 아이들이 호랑이 마스크를 쓰고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어떤 초현실주의적인 인상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그 둘이 동일하지만 그만큼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정은 지나가는 호랑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며 어떤 예술적 감흥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재능이 없는 거죠. 마지막 장면에 양수리에서 '경유'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쓰다가 한 사내를 마주쳤을 때, 한 번도 쓰지 않은 와이드 앵글을 써서 갑자기 화면이 늘어나고 그것은 어떤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둘의 삶만큼이나 다른 엔딩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엔딩을 조금만 설명해주시면 우리는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광국: ‘유정이 글을 쓸 때 지나가는 아이들이 가면을 쓴 것은 호랑이가 우리를 탈출한 상태지만 도심의 사람들이 이를 무감각하게 느끼는 모습, 그 사실이 공포가 아니라 하나의 뉴스이자 놀이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모습입니다. ‘유정은 되게 절실하게 자기 주위의 모든 것들에서 쓸 수 있는 ‘꺼를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그 타이밍에 지나갔기 때문에 호랑이에 관련된 뭔가를 써보게 되고, 자기 일상에서 뭔가 빨리 캐치해내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면서 그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하구요. 엔딩에서 나온 '사내'라고 말씀하신 그 인물은 소년이에요. 10살 정도의 키 작은. 엔딩은 경유가 자신 안에 있는 어떤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장면으로 생각하고 썼는데, 어떻게 보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다 취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는 상징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환영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실제로 그 공간에 꼬마아이가 호랑이 가면을 쓰고 경유 앞에 우연히 서게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환영 쪽이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실제 그 공간에서 어린아이를 만났다기 보다는 하나의 해석의 여지로 작용했으면 더 좋겠고, 자기 안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한테 갖는 바람이기도 하고, ‘경유한테 갖는 바람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관객:경유라는 인물이 감독님 자신이 투영된 분신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보다가 궁금한 건데 유정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삼청각에서 입고 있는 옷과 머플러, 가방, 신발 이 모든 것들이 출판사 블랙리스트 이야기하는 장면과 똑같거든요. 시나리오 쓰실 때 출판사 장면의 유정이 먼저 등장을 하고, 그 다음에 '경유'를 만나는 그런 상황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광국: 정확하게 보셨는데요, ‘유정이 편집자 먼저 만나는 씬이 시나리오 상에서는 앞부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화를 찍고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붙여보니까 흐름이 너무 뻔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유정이 갖고 있는 곤경은 뒤에 보여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나리오랑 다르게 그 씬을 뒤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의상이 의도치 않게 같아진 건 저는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질문은그냥 뭐 외모 빼고는 제가 많이 투영 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관객: 감독님의 전작들을 모두 봤는데요, 환상과 현실 두 가지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혼재 또는 발현으로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광국: 이유라기 보다는요, 예를 들어 잠을 자며 꿈을 꿨을 때 꿈 안에서는 그게 현실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가끔 꿈에서 깼을 때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싶을 정도로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 마다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면?’이라는 하는 물음이 항상 있었고, 만약에 내가 잠을 하루에 12시간 꼬박 잔다면 정확히 인생의 절반을 꿈속에서 보내는 건데,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혼자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미학적인 접근을 위해서 하는 생각이라기 보단 그냥 제가 평소 생활에서 하는 질문이고, 그 지점들이 이야기를 쓸 때 들어있었던 것 같고요.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그런 지점들이 줄어들기는 한 것 같아요.

 

 



정성일: 그러면 제가 마지막 질문을 하면서 이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공식상영으로는 마지막 GV 자리인데, 이 세 번째 영화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광국 감독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 같습니까?

 

이광국: 저한테는 가장 오래 꾸던 꿈같은 건데, 고현정 선배님하고 작업하고 싶은 제 소망이 현실이 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격할 때 영점이라는 걸 잡잖아요, 자기 눈에 맞는. 제가 많은 영화를 찍은 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제 스타일, 앞으로 평생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제가 붙잡고 가야 되는 영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격할 때도 딱 세발 쏘고 영점이 잡히면 좋다고 하거든요. 장편 영화를 세편 만들었으니까 다음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가야 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제 영화를 보고 구조적인 재미가 있다고들 하시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작업을 계속 재미있게 해나갈 수 있는 근거를 찾고 있어요. 그래야지만 제작비가 있건 없건 제가 영화를 적극적으로 찍을 동력이 생길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에 다양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냥 움직여서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다음으로 빨리 또 넘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정성일: 이광국 감독님의 네 번째 영화를 원하면서, 여러분들을 이광국 감독의 다음 영화 GV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