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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는 것 <파란입이 달린 얼굴>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2.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는 것  <파란입이 달린 얼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120일 오후 740분 상영 후

참석 김수정 감독, 장리우 배우

진행 정지혜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파란입이 달린 얼굴> 속 세상은 거칠고 고단하다. 인물들이 무표정할 수밖에 없도록 내몬다. 소소한 행복을 선물했다가도 공허함을 안기고, 기대를 품게 했다가도 절망 앞에 인물을 방치시킨다. 주저앉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서영은 질기게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1월의 토요일 저녁, 정지혜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김수정 감독, 그리고 서영을 연기한 배우 장리우가 함께했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이하 진행): <파란입이 달린 얼굴>2015년에 만들어졌다. 개봉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관객 분들을 만나는 이 자리가 더없이 소중할 것 같은데,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김수정 감독(이하 김): 연출을 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관객 분들과 만나게 되었다.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굉장히 놀랐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싶었다.(웃음) 내가 2년 전에는 더 젊었었나 보다. 과거의 나 자신을 대하는 게 새롭고 낯설었다.

 

장리우 배우(이하 장): 오랜만에 주인공을 했는데 개봉을 못할까봐 노심초사 했다. 그리고는 잠시 작품을 잊어버리고 있었다.(웃음) 서영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리고 이렇게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진행: 어떻게 서영이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되었나? 캐릭터가 중요한 출발이었을 것 같다.

 

: 처음부터 내러티브로 시작한 영화가 아니다. 무표정한 여자, 비호감인 여자, 장애인, 스님이란 캐릭터에 대해 스스로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던 것 같다. 서영이란 인물의 모티프는 마트나 도시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분들에게 얻었다. 같이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분들이었다. 내가 그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한 후 갖고 있던 편견을 조금 바꿔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살을 붙여서 이야기가 탄생했다.

 

진행: 서영이라는 인물을 받아보았을 때 첫인상이 어땠는가?

 

: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역할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감독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진행: 두 분이 캐릭터를 만든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었다. 정말 이야기가 잘 통했고 합의가 잘 되었다. 그런데 배우님이 리허설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적다 보니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리허설을 안 하겠다는 이유가 굉장히 좋았다. 이미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합의된 지점이 있고,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들이 배우님은 좋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가자고 했다. 그런데 전날 잠이 안 오더라.(웃음) 하지만 촬영에서 보여주신 모습들을 보고 첫날부터 좋아서 울었다.(웃음)

 

진행: 어떤 장면이었나?

 

: 첫날에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리허설, 리딩 등 정해진 대로 하다 보면 서영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다. 서영이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되었으니까. 그리고 서영의 의상을 감독님과 사러 간 적이 있다. 홍대 구제샵에서 의상을 고르며 서영의 이미지가 확실히 다가왔다

 

: 옷을 보고 이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냐고 짜증내셨다.(웃음) 수긍을 하는 과정들이 또 있었다.

 

: 영화에 저 의상들이 없었다면 서영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진행: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 일단 의상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구제샵을 돌아다녔다. 서영이 입을법한 의상들을 나름대로 골랐는데 옆에서 장리우 배우님이 너나 입어라라고 했다.(웃음조합을 어떻게 잘 하면 그래도 간지’ 나는 옷들이다. 아닌가?(웃음) 약간 촌스러운 느낌으로 조합을 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거다.

 


진행: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만드는 데 서영의 무표정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다. 무표정을 통해 이 인물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길 원했는지 감독님과 배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 말도 하기 싫고 애써 표정을 만들고 싶지도 않은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모티프가 되었던 분들도 그러했을 테고. 그런 감정들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구축해가지 않았나 싶다.

 

: 그 무표정 안에 서영의 감정들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 속에서 나오는 울음, , 분노 등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진행: 일자로 앞을 보고 서 있는 자세도 인상적으로 남았다. 각목 같다고 해야 할까. 그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 그 서영의 자세로 서있으면 허리가 많이 아프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야 하고, 내 것을 가져야 하니까 그렇게 서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세는 사실 서영에게 굉장히 불안하다. 마음을 감추고 서 있으니까.

 


진행: 카메라가 계속 삼각형의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그런 카메라 세팅을 지향한 게 아닐까 생각했고, 그 구도가 주는 불안감이 있었다.

 

: 컷을 많이 나누지 않았다. 정적인 화면 안에서 배우들과 카메라 앵글이 만들어 내는 불안과 불편, 관객이 마주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내 폭력성이 드러난 지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계속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배우들 간의 에너지도 컷의 변화로 보여주기 보다는 라이브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관객: 서영이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카메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두 인물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리고 나중에 오빠가 죽음을 맞이할 때는 철저하게 앞모습을 보여준다. 두 장면이 대비되어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연출의도가 궁금하다.

 

: 콘티를 짤 때 우리가 뒤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나 앞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 찾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뒷모습을 선택했고 오빠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앞모습을 선택했다.

 


관객: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나온다. 엄마와 오빠는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이는데, 서영은 왜 그렇게 살고 싶어 했는지 궁금하다.

 

: 20대 때 좋아하던 작가가 있었는데, 요절했다. 그 분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속에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시인 분이 내가 너무 그것을 미화시키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보면 서영은 굉장히 맹목적이고 동물적인 것 같다. 짐승이 아무 이유 없이 살려고 하는 것,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그 고비를 하나하나 넘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응원하고 싶었다.

 


관객: 질문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영화를 보는 내내 서영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잠재성이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드러낸 이유 또한 궁금하다.

 

: <파란입이 달린 얼굴>이라는 제목은 시나리오를 다 쓰고 떠오른 서영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입술이 아닌 입이라 표현을 하니 굉장히 추상적이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 준비를 하며 배급사에서 주목한 장면이 있었다. 서영이 시루떡을 열심히 먹는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생존을 위한 파란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중에 배급사 덕분에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잘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개발되어 돋보이느냐, 돋보이지 않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내보이지 못하면 평가절하 되는 게 싫었다. 서영을 응원하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했다.

 


관객: 장리우 배우님께 질문이 있다마지막 장면에서 서영의 감정이 궁금하다.

 

: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탁구를 치는 것탁구를 안 치고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그 두 가지를 연기할 때 모든 감정을 떠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 입이라는 것이 주는 인물의 독특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서영파란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 연기를 할 때 크게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질문을 받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먹고, 노래하고 이런 것들은 서영의 입장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 입을 떼 말을 하는 것은 어려웠던 것 같다.

 

진행: 몸을 쓰는 일들도 굉장히 많지 않았나.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도 인물이 굴복하고 인정한다는 느낌보다는 그것이 이상한 방식의 저항처럼 보였다.

 

: 무릎을 꿇는 것도 먹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죄의 의미, 반항의 의미를 모두 제쳐두고 살아야 하니까.

 

진행: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다가가려 했던 것 같다.

 

: 오히려 더 편하게 표현했다. 꾸밀 필요도 없이 그냥 본 대로만 하면 됐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 역시 편견을 지니고 있단 사실을 발견했다. 계속 베풀고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그 자체가 불편한 거다. 여기 나온 에피소드들은 그 친구와 함께 겪었던 불편함이다. 문턱이 있으면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택시를 부르면 두 시간 후에나 오고. 사소하게 겪었던 그런 불편함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관객: 장리우 배우님이 생각한 서영의 전사를 듣고 싶다.

 

: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지지리 가난하고 아버지는 온데간데없다. 서영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오빠의 장애다. 그 장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떤 사고로 인해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빠에게 사고가 난 지점, 그리고 엄마가 아픈 지점이 지금과 똑같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져 왔을 것 같다.

 


진행: 감독님은 영화작업 이전에 희곡작업을 먼저 했던 걸로 알고 있다. 영화에서 연극적인 연출이 돋보였다.

 

: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영화는 쇼트가 바뀌는 데서 오는 에너지가 있고 연극은 배우가 무대를 통째로 끌어가는 데서 오는 에너지가 있는데, 연극을 먼저 해서 그런지 후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게 특히 많이 드러난 것 같다.



 




진행: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인사 부탁드린다.

 

: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차가운 영화를 2시간 동안 보셨지만, 따뜻해지셨으면 좋겠다.(웃음)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 몇 년 전 영화제에서 <파란입이 달린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뭔가 낯선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혼자 영화를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보았다. 너무 좋았다. 오늘 와주신 것도 정말 감사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보시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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