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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준 <피의 연대기>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2. 5.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준  <피의 연대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월 18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보람 감독 | 박이은실 작가 ('월경의 정치학' 저자)

진행 최지은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생리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는 건 금기에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감추고 숨기고 움츠러들수록 생리를 둘러싼 소문들은 무성해지고 생리를 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묘하게 뒤틀어졌다. 생리란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아무도 귀띔해주지 않았다. 생리통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일찍이 깨달았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삶의 한 패턴으로 자리잡은 생리라는 것이 일종의 생존반응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리란 인간이 숨을 쉰다는 논리만큼이나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이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총 2년이란 제작기간과 90분의 러닝타임을 거쳐 한 시간 동안의 대화가 필요했다. 상영 이후 최지은 기자의 진행으로 김보람 감독, 박이은실 작가가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최지은 기자(이하 최지은):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과 작가님께 궁금했던 점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 관객 분들과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피의 연대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봤으면 해요. 단지 교육적이고 좋은 영화임을 넘어서서 보는 재미까지 있었습니다. 우선 제목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고, 이 작품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보람 감독(이하 김보람): 영화 초반에도 등장하지만 제가 15년도 가을에 네덜란드 여성들과 우연히 생리에 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로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물건들이 거의 다 메이드 인 차이나더라고요. 근데 마침 저희 할머니께서 천을 엄청 떼와서 생리대 주머니를 만들고 계셨어요. '이거다!' 싶어서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해줬고 그게 사건의 발단이 됐어요. 서구 여성들은 탐폰을 많이 쓴다는 사실을 어쩌다 들어보긴 했지만, 한국의 여느 친구들처럼 당연히 생리대를 쓴다고 생각했던 거죠.  서양여성들은 탐폰을 쓰고 한국여성들은 생리대를 쓰는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저는 연출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짧은 단편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자료 탐색 차 구글링을 하던 중 우연히 2015년에 영미권 국가에서 엄청난 생리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는 걸 알았죠. 그렇게 오프닝 시퀀스를 만들게 됐고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는 해볼 가치가 있다고 느낀 지점이 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어떤 자료가 있나 검색을 해봤는데 딱 그 시기에 출간됐던 책이 '월경의 정치학'이였어. 바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선생님께 의견을 전했어요. 사실은 그 책이 저에게 있어 의지할 수 있는 근간이자 바이블이었고 영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은 2년의 시간이 지나 선생님과 함께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최지은: <피의 연대기>는 생리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 다양한 정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화에요. 여러 기사를 보면 생리에 대한 위키피디아이런 소개를 하기도 하는데, 흥미로웠던 부분은 감독님의 인터뷰를 보면 생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고, 마켓 피칭에 나가도 과연 이게 90분짜리로 만들어지겠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월경의 정치학' 서문도 월경에 대한 책을 쓰겠다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해요. 때문에 선생님께 어떻게 해서 월경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질문하고 싶어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나요?

 

박이은실 작가(이하 박이은실): 저는 여성학자로서 페미니즘을 주로 다뤄요. 페미니즘에선 여성의 몸과 그 차이에 주목하는데,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명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여성의 몸은 다르다는 입장에도 여러 가지 관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월경이라는, 매달 피를 흘린다는 사안은 오랫동안 종교와 과학, 의학 분야까지 영향을 미쳐서 중요하게 다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지금까지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과 차이가 어떻게 다뤄지는가를 꼭 연구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고 책을 쓰게 되었는데, 출간되고 나서 얼마 후에 감독님이 찾아왔어요. 책에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너무 반가웠고 마치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그만큼 저 또한 힘이 되었고요. 독서를 안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니까 책은 접근성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어요. 이 영화는 중요한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도 전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월경에 대해 얘기하는 이 영화의 존재가 너무 소중해요. 영화를 한 장소에 모여 다 같이 본다는 사실이 기쁘고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최지은: 영화 타이틀에서 '연대기'라는 단어가 'Chronicle(代)'로서의 연대기지만 여성들의 '연대(連帶)'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어요. 영화에는 사람들이 공적인 장소에 모여 월경을 화두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많이 담겨있어요. 감독님이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도 내레이션을 통해 드러나고요. 월경에 대한 시행착오 역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들일 것 같아요. 두 분은 월경에 관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나요?

 

김보람: 영화 스태프 중에 음악감독님만 유일한 남성분인데, 마지막 음악 수정작업을 진행할 때가 생리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어요. 음악 작업실에서 작업을 마치고 안녕히 계세요하고 일어나는데 의자에 검은 점 두 개가 찍혀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설마 하고는 바로 화장실에 가서 확인했는데, 생리혈이 조금 새있더라고요. 그래서 음악감독님께 말씀 드려야겠다 하고서는 아직도 깜빡 하고 말씀을 못 드렸네요! 잊고 살다가 질문 받은 순간 생각났어요.(일동 웃음) 다음에 뵈면 꼭 말씀 드려야겠어요.

 

박이은실: 초등학생 때 겪은 일인데요, 제 위로 언니 둘이 있어요. 여동생들은 언니의 옷들을 자주 탐하잖아요. 그때 당시에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예쁜 파카를 하나 샀는데, 밝은 색의 옷이었어요. 그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가 실수로 생리혈을 조금 묻힌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는 모른 척하고 옷을 걸어놨어요. 그 뒤로 아무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 엄청난 일이 있었나봐요.(웃음)

 






최지은: 감독님께서 영화 작업을 한 지난 2년 사이에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면서 한국에서도 전에 비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는 계기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생리대 가격문제와 유해물질 파문도 있었죠.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발전적인 상황이라 생각하는데, 정작 감독님께서는 영화 속 인터뷰이를 섭외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김보람: 초반에는 저희가 열 분 정도 섭외를 하면 한 분 정도만 응해주셨어요. 보수적인 조직에서 사회활동을 하시는 분들, 예를 들면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 같은 분들 위주로 섭외를 시도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에는 지인방사형으로 섭외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처음 섭외한 분은 PD님의 친구들이었고 두 분 모두 기혼자였어요. 그분들을 인터뷰 하며 참 재밌었던 게 ‘우리는 이미 결혼도 했으니까 상관없어하시면서 인터뷰에 응해주셨고, 또 다른 기혼자를 소개해주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아직도 결혼 전에 뭘 했는지가 한국 사회 여성들을 옭아매는 하나의 프레임이란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나중에는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저희를 프로젝트 진행자로 소개하면서 연락을 드렸어요. 인터넷 상에서 찾은 사람들에게도 무작정 연락을 했고 해외 쪽도 마찬가지로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게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생리가 이슈였던 시기여서 어떤 시점이 되고 나니 굉장히 흔쾌히 섭외에 응해주셨어요. 실제로 한 공무원 집단에 속한 여성분들께 섭외를 요청했는데, 인터뷰는 어렵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많다고 하시면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안타깝기도 했어요. 또 지방에 거주하는 여성분들, 그리고 육체노동직 종사자 분들을 정말 섭외하고 싶었지만 무산된 이유는 예산문제가 컸어요. 타지역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관계를 쌓는 게 필요했지만 불가능했어요. 그 점이 영화의 한계점이자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최지은: 예산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2년이라는 제작기간 동안 큰 돈이 필요해서 '엄마펀드'에 손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산 문제를 해결하신 과정을 여쭤보고 싶어요.

 

김보람: 피칭에서도 영화의 기획안을 보고는 반응이 안 좋았어요. 연출 경력도 없었고 영화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고요. 그래서 더더욱 영화 경력이 있는 스태프들로 팀을 꾸렸어요. 제가 작가 출신인데, 노동에 비해 받는 수당이 너무 초라하고 내 노동이 소진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때문에 일하는 모두가 억하심정을 가지면 안 된다, 우리는 절대로 열정페이로 일 안 한다, 스태프들이 어디 가서 합리적인 보수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자고 PD님과 의논했어요. PD님과 제가 각자 돈을 준비해서 투자하고 엄마펀드의 힘을 빌리기도 하면서 버티다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와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어요. 투자형 펀딩이었기 때문에 수익이 나면 다시 돌려드리는 구조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투자해주신 분들이 이후에 어떤 영화에 투자하더라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주실 것 같았어요.

 

최지은: 하지만 아직 감독님과 PD님은 본인의 인건비를 받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관객 수가 어느 정도 돼야 가능할까요?

 

김보람: 배급사에 여쭤보니 5만정도가 돼야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요 근래에 다큐멘터리가 5천관객 넘기기도 힘들거든요. 꿈의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최지은월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불결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고, 또 여성들만이 하기 때문에 성적인 이미지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월경을 하는 본인도 월경이 더럽기 때문에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여성성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경계심도 가지고 있죠. 월경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위협과 편견이 작용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성적 대상화가 될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월경을 감추고자 하는 강박이 생기는 것 같아요. 화장실을 갈 때 생리대를 감춰 들고 간다든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곳에서만 생리대를 사고 검은 봉투에 넣어간다든지,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도 보면 얼굴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여성 인터뷰이들이 있잖아요.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를 한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표정을 살려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서도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김보람: 영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생리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편안한 경험을 주고 싶었고 진입 장벽을 많이 낮추고 싶었어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지만, 극장까지 와서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방송사에서는 일방적으로 구성을 주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섭외하는데, 저희는 무조건 자신의 스타일과 표현력이 확고한 감독님을 섭외했고 대략의 구성과 내레이션 정도만 드리고 작가 분이 해석한 대로 작업하기를 요청했어요. 저 또한 삽입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인터뷰 장면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표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게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거든요. 그런 사소한 부분들까지 관객 분들이 다 알아주신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감사해요.

 

최지은: 생리란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삶의 패턴인데, 남성들에게는 완전한 무지의 영역일 거라 생각해요. 여성들만이 하기 때문에 성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어요. 온라인에서 본 짤막한 글인데, ‘여자애들 중에 안 그럴 것 같은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애들도 생리를 한다는 게 귀엽고 신기하다라는 글이었어요. 이런 뒤틀린 시선에 대해 한 페미니스트는 생리가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생리혈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자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어요. 이와 똑같은 메시지를 담은 장면을 <피의 연대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죠. 감독님이 직접 이마에 카메라를 달고 생리컵을 비우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 장면을 찍고 편집하기까지 여러 고민을 하셨을 것 같고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김보람사실 영화에 제가 등장할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는 어떤 여성 주인공을 쫓아가는 형식으로 영화를 찍으려 했는데, 몇 년 후에는 그 분이 출연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취재를 가거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카메라에 잡히게 되니까 주인공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직접 나서기로 했어요. 생리컵을 비우는 장면에 있어서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어요. 제가 직접 고프로를 머리에 차고 촬영을 하는 것과 촬영감독이 들어가서 저의 모습을 찍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생리는 정말 개인적이고 혼자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그 부분을 살리고자 혼자 촬영하기로 결심했어요. 또 옆에 있는 카메라에 대고 생리컵을 보여주고 씻는 행위를 한다는 자체가 작위적으로 보여질 위험성도 고려했고요. 사실 그 장면을 저만 촬영한 게 아니고 저희 PD님도 참여하셨거든요. 저는 키가 작은 편이라 화면구도나 높이, 보여지는 정도가 딱 좋았는데, PD님은 키가 크셔서 화면도 많이 불안정했어요. PD님 컷은 결국 넣지 못했습니다.


최지은: 생리컵뿐만 여러 가지 다양한 생리 용품이 등장하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의 선택지를 넓혀가느냐에 따라 그만큼 자유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여성들이 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불안감도 줄어든다는 것 또한 체험할 수 있었어요.

 






관객: 저 또한 월경에 대한 자료를 찾다 '월경의 정치학'을 읽게 됐습니다. 책에는 말레이시아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로 나와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아쉬움이 채워진 기분이라 좋았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가족들과 함께 월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감독님께서 어떻게 가족 분들과 얘기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작가님께는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여성들 사이에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하고 싶어요.

 

김보람: 그 촬영이 저희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어요. 사실 영화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그 장면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연령대별로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희 가족의 연령대가 8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더라고요. 제작비도 아끼고 한 큐에 끝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어요. 친척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다 모이는 게 쉽지 않았는데, 마침 외국에서 생활하던 삼촌이 한국에 오신다고 하셔서 다 모이게 됐어요. 영화에는 담지 못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정말 많았어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저희 집이 이모님들은 일곱 자매고 막내 삼촌이 한 분 계시거든요. 딸만 있는 집안에 아들이 태어나니까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이모들이 삼촌을 업어주려고 하는데 혹시나 성기 부분이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다는 얘기,(일동 웃음삼촌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막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마음 아팠던 이야기도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계속 딸만 낳으시니까 주위 마을 분들이 또 딸 낳았네라는 말을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할머니께서 아이를 낳으면 아무도 안보는 새벽에 몰래 나가서 미역을 빨았다고 해요. 나중에 가서는 가족들끼리 막 웃다가 울고 난리가 났었죠.

 

박이은실: 말레이시아는 다문화 사회예요. 미국처럼 굵직한 문화가 있고 모든 나라가 흡수되는 그런 의미의 다문화는 아니지만, 각각의 문화들이 나란히 살고 있는 다인종,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문화 간 차이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 몸에 체화된 한국 문화들이 있죠. 한국에서 듣고 관찰한 문화가 한국만의 특징인지, 아시아 혹은 전세계적인 현상인지가 궁금했어요. 당시 80년대 영미권에서 나온 인류학적인 책들도 몇 권 있었지만 아시아를 다루는 자료는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월경을 다루는 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했어요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차이는 단지 아주 약간의 차이였어요. 제 강의를 듣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여성들의 답변이 말레이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와 대동소이 하다는 판단을 했어요. 저는 굳이 피를 흘리는 주체를 여성의 몸이라고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그냥 월경을 하는 몸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아요. 왜냐면 여성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잖아요. 항상 월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월경을 안 하는 여성은 여성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될 문제예요. 영화에서도 한 여성이 초경을 하고 축하해, 너도 이제 소중한 몸이 됐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월경을 하기 전 내 몸은 소중하지 않았나 의문을 가졌다고 증언하죠. 그렇듯이 월경이 중요한 사안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해야 하는지도 굉장히 중요해요. 사회에서 월경에 대해 중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런 이유들의 가장 밑에 깔려있는 것은 여성의 몸이 표준이 아니라는 판단이에요. 표준의 몸이란 월경을 하지 않는 사람의 몸인 것이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남성의 몸인 거죠. 때문에 월경을 하기 전에는 표준의 몸에 가까웠다가 월경을 하기 시작하면 표준에서 탈락한 몸이 돼버리니까 부끄러워지고 감출 것도 많아진 거에요. 이제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 개개인의 몸이 타인의 몸과 다르다는 건 명백하고 당연한 사실이예요. 어느 몸도 표준이라 할 수 없어요. 또 표준을 정하고 거기에 부합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그래야지만 언제든지 월경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 할 수 있어요. 어떤 분이 지하철에서 제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감췄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겉 표지에 월경의 정치학이라고 크게 써있으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거죠. <피의 연대기>가 너무나 소중한 이유는 모두가 같이 앉아서 영화를 보고 월경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있어요. 내 몸이 표준의 기준에서 탈락된 몸, 이상적이지 않은 몸, 감춰야 할 몸이 아니라 이 몸도 괜찮다라는 생각의 경험이 중요해요.

 


관객: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큰 영화관에서 같이 봐서 울컥했어요. 생리통을 느끼면 여자들끼리는 아프다고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지만, 직장에서 남자 상사에게 생리통이라 아프다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없잖아요. 때문에 진통제를 먹으며 참아내고 업무시간을 견뎌야 해요. 사실 친구들과 함께 생리통 얘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주제가 생리대 거든요. 근데 영화에선 생리혈을 받는 도구가 주로 등장해요. 취재하시면서 중요한 소재로 생리컵을 선택한 이유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통증에 관한 다른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김보람: 일단 통증을 다루지 못한 아쉬움은 있어요. 다루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고 90분짜리 영화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선택해야 했어요. 생리통이라는 하나의 주제만으로 90분 짜리 영화를 제작해도 될 만큼 사회역학적으로 많은 일들이 관련돼있더라고요. 15분 분량의 챕터 하나로 통증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꼈고 통증을 깊게 다루지 못할 거면 아예 다루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통증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신 관객 분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요. 저희가 알아본 것만 해도 통증의 원인은 몸의 문제일 수도 있고 환경이나 정신적인 문제, 식생활, 사용하는 제품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어요. 면생리대와 생리컵을 쓰면 생리통이 완화된다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어요. 주변만 봐도 생리컵을 통증 때문에 못쓰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어느 순간 저희가 통증에 대한 의견을 더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없는 지점들이 생겼고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만 이런 선택지도 있습니다정도였어요. 이런 자리를 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그렇다면 생리컵이 최선의 대안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 달라요. 인터뷰이로 등장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생리컵을 본인이 케어할 수 없는 환경에는 질염이나 골반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질이나 자궁 모양에 따라서 아예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또 초기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모든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책이라고도 볼 수 없어요. <피의 연대기>가 인트로덕션 정도의 영화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선택지의 폭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 물꼬를 트고 싶어서에요. 그 지점이 바로 영화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한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관객: 유쾌하고 해방감을 주는 영화라 좋았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많은 여성분들 또한 감동받았으리라 생각해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분들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감독님께서는 영화가 남성들에게 어떻게 보여졌으면 좋겠는지, 또 개봉을 맞이한 지금은 어떤 바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월경이란 결국 여성들만의 기억이고 경험이기 때문에 많이 공론화되고 보편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피의 연대기>의 기획단계부터 남성들을 고려한 부분이 있었어요. 남성들이 월경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그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때문에 이미지로 기억될 수 있도록 일러스트나 음악에 더 신경을 썼어요. 신기하게도 매번 영화제 때마다 남성분들이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에 대한 질문을 하세요. 저는 책이나 시를 읽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을 알게 하고 간접경험을 선사하는 매체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냥 여성분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그것만으로도 본인의 세계가 많이 열리지 않을까요. 생리가 남성의 몸에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상생리대 논쟁이나 생리휴가 논쟁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남들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하는 와중에 계속 피를 흘린다고 생각해보면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려? 그럼 한 달에 한 번은 쉬어야지’라는 마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월경휴가로 쉰다고? 나는 못 쉬는데 당신이 쉬어?’ 이런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 계속 마찰이 생기고요. 경험이 없어서 자신의 입장으로 상황을 끌어오지 못하는 건 사실 그분들만의 탓이 아니라 사회 교육이 그런 기회를 전혀 마련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제도 작가님과 오랫동안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박이은실: 지금까지 표준 몸이란 어떤 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피의 연대기>를 단순히 월경 영화가 아닌, 우리가 표준 몸을 상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못했던 한 인류사회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또 저는 이 영화를 이렇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남사친과의 우정 확인 영화, 썸타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를 필터링해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연인과의 사랑 확인 영화로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인류사회에서도 화두가 돼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나는 모르고자 한다, 무식을 선택하겠다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또 월경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관심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안 보겠다 하면 그 분과의 헤어짐을 생각해보세요.(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피의 연대기>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완전히 확장시켜주는 영화에요. 영화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활짝 넓어진 이해의 장을 체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지은: 이 영화에 대한 기사 댓글에는 매번 '생리충'이라는 단어가 등장해요. 이것이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이 영화가 생리충이라는 말이 힘을 가진 욕으로 통하지 않도록, 비하나 혐오의 표현으로 쓸 수 없는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들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거죠

 






우리를 낳고 기른 건 강한 여성들이었다. 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여성들은 무수한 생리 주기를 거쳐야만 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찾아오는 통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여성의 일이었다면, 그런 여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피 흘리지 않는 몸들의 일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노력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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