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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마냥 엄혹할 것 같은 그곳에도 경쾌한 스텝이 있다 <땐뽀걸즈>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10. 18.

마냥 엄혹할 것 같은 그곳에도 경쾌한 스텝이 있다  <땐뽀걸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0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승문 감독

진행 이현주 감독 (<연애담>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시절’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땐뽀걸즈>의 ‘땐뽀반’ 고등학생들은 시종일관 활력 넘치는 에너지를 스크린 가득 채웠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좋아하는 춤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영화만큼이나 아름답고 유쾌했던 <땐뽀걸즈> 인디토크에 이승문 감독과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이 함께했다. 





이현주 감독(이하 진행): 다른 영화를 만들려다가 <땐뽀걸즈>를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어떤 영화를 준비했는지, 어떤 점에 매료되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승문 감독(이하 이): 저는 ‘KBS 스페셜’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마음가짐으로 작년 6월에 그 팀에 들어갔어요. 그때 한국의 기간산업인 조선업, 애국가가 나올 때 배경으로도 나오는 그 산업이 붕괴하고 있고, 거제가 유령도시가 되어간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유령도시? 재미있을 것 같다! 저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 도시가 끝나간다는 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제라는 도시를 기록해 보고 싶었어요. 도시가 어떻게 쇠락해가는지,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답사를 가서 조선소에서 일하는 분들을 뵙고 그 분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 깜냥으로는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인 ‘이 도시를 보라’는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거제 관광지도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의 귀여운 학교 마크를 발견했어요. 요새는 ‘여상’이라는 표현을 잘 안 쓴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여상 졸업생들에 대한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학교에 연락을 해서 졸업생들의 진로를 물어보니 대부분이 조선소 경리로 취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이 친구들을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찾아갔어요. 학교 명물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을 듣고 가봤는데 정말 신기한 광경을 봤어요. 밖이 다 논이라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음악을 틀자마자 눈빛이 싹 바뀌는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그러다 밤 9시쯤 됐을 때 선생님 한 분이 천 원짜리 다발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더라고요.(웃음) 이 공간과 이 아이들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진행: 저도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한 번 작업해 보려다가 도저히 못 만들 것 같아서 포기한 적이 있어요. 제 앞의 주인공이 나를 믿고 너무 내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 내용을 공개해도 될 지, 무서움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고민을 저에게 영화를 가르쳐준 분에게 털어놨더니 카메라에 담기는 인물을 사랑하면 된다는 답변을 해줬어요. 감독님도 <땐뽀걸즈>를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내밀한 것을 찍으려고 했었어요. 그런 욕심들이 안 생길 수 없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와 영화 속 친구들이 맺은 관계와 신뢰의 선 안에서만 (그들을) 표현하는 것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혜영이가 동생들 줄 빵을 사 들고 가는 장면을 찍을 때 저는 혜영이 집에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걸 혜영이가 되게 껄끄러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유를 들어봤는데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한 내용이었어요. 혜영이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장면들도 어떤 부분까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찍은 것 같습니다.



진행: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투리와 반말을 섞어 쓰는 대화가 서로를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감독님의 태도가 영화 속 선생님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출로 강조해서 감정을 끌어내는 대신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대상화의 문제를 피해간다는 인상이 들었는데요,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물들과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저나 촬영감독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앞장서 이끄는 역할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에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도 한 달간 무작정 찍기만 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뭘 찍는 지 모르겠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을 해라.’라고 할 정도로 답답해했어요.(웃음) 그런데 계속 그렇게 지내다 보니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누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굉장히 목말라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두 달 정도 됐을 때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줬고 그 이후로는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관객: 시영이 아버지가 서울에서 생활하는 장면이 영화에 담겨 있는데, 처음부터 부녀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작업을 한 건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한 여덟 명과 각각 친한 정도가 다른데, 그 중에서 가장 친해지기 어려웠던 친구가 시영이었습니다. 시영이가 단장이니까 선생님과 시영이를 중심으로 찍는 게 편해서 많이 찍긴 했지만요. 어려운 이유를 한참 고민했는데,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듣게 되었습니다. 희망퇴직을 한 시영이 아버지가 대회 당일에 서울로 올라가서 창업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시영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아버님의 동의를 구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본인이 서울에 올라가 있는 동안 딸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는 것도 좋고, 덕분에 자신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영이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어서 영화의 전체적인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관객: 포스터에 끌려서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포스터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 일단 포스터를 촬영하게 될 줄 몰랐어요. 포스터를 담당한 작가 분이 친구들을 한여름 땡볕 아래 해수욕장에 세워놓고 이런저런 춤 동작을 시켜서 찍었습니다. 친구들이 협조를 안 할 거라고 말했는데,(웃음) 의외로 촬영이 즐겁게 잘 끝났습니다. 결과물도 마음에 듭니다.



관객: 친구들의 공연이 카메라에 잘 안 잡힙니다. 춤을 어떻게 줬는지, 무대를 어떻게 완성했는지 궁금한데, 친구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춤 장면을 굳이 영화에 넣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GV 때마다 이 질문을 받는데, 제가 뭔가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이유부터 말씀을 드리면, 이 영화가 미션을 완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의 완성과 그 결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춤이라는 게 그렇거든요. 대회에서 상을 받는 건 기쁨의 비명을 지를 만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 목표만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니까요. 제가 찍고 싶었던 것은 친구들의 가장 빛나는 지금 이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희처럼 조명 밑에 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무대 바깥의 모습을 한 번 더 각인시킬 수 있도록 찍었어요. 별개로 대회 촬영본을 편집한 버전이 있긴 한데, 어떤 방식으로든 공개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진행: 선생님이 댄스 스포츠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이: 선생님이 체육 담당이고 잡기에 능해요. 처음에 선택한 건 줄넘기였는데, 본인이 힘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고 해요.(웃음) 그러다가 댄스 스포츠를 우연히 보고 늙어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배워왔대요. 그 때 선생님은 남자 공업고등학교에 있었고 댄스 스포츠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는 친구들을 본 거죠. 저 아이들을 데리고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들을 모아놓고 당구 내기를 해서 이기는 사람 소원을 들어주자고 했대요. 4대 1로 당구를 쳐서 이긴 다음 바로 댄스 스포츠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헌신적인 선생님과 열정 가득한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나간 ‘땐뽀반’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땐뽀걸즈>의 주인공들은 머지 않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 각자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조선업으로 부흥했던 거제에 칼바람이 불어 닥쳤듯이 삶은 때때로 그들을 배신할 것이다. 그러나 열정 하나만으로도 가장 밝게 빛날 수 있었던 추억의 한 자락이, 앞으로 그들이 걸어나갈 길을 끝까지 비춰 주지 않을까. 그 소중한 기억들이 거제에 오래도록 남아 이어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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