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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이인칭의 세계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8. 7.


 이인칭의 세계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23일(일) 오후 2 30분 상영 후

참석 이영 감독

진행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불온한 당신>의 시작과 끝의 에피소드를 장식하는 ‘이묵’. 그는 생물학적으론 여성이다. 하지만 남자 같은 차림새로 여자를 사랑한 이유로 ‘바지씨’라 불렸다. 바지씨는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던 6-70년대에 사용된 은어다. 영화는 70대 노인 이묵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커밍아웃한 일본인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한편으로 상당한 분량을 2014년 당시 혐오 프레임으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세력의 노골적 행동과 언사를 담는 데 할애한다. 그래서일까. 이날 인디토크에서는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 목이 멘 이들이 많았다. 관객들은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이영 감독은 차별받고 소외되는 성소수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전달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관객들의 질문에 차례로 대답했다.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이하 진행):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어요. 첫 번째 봤을 때는 탄핵 전이어서 더 참혹하고 우울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 이묵 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의 집회 장면이 나오면서 되게 우울해졌어요. 그들의 북소리로 영화가 끝날 때, 알 수 없는 미래,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 마치 양념처럼 이 영화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묵 님은 개인적인, 드러내기 힘든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털어놓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영 감독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의 전작 <이반 검열>(2005)과 <아웃 -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인터뷰이와 라포(rapport) 형성이라 해야 할까요?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이영 감독(이하 감독): 이묵 선배님은 <불온한 당신> 개봉 준비하던 4월에 돌아가셨어요. 관객 여러분도 만나 뵙고 싶었을 것 같고, 저 역시도 개봉관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많이 슬퍼요. 선배님께서 남긴 말이 있어요. 당신의 뜻을 많은 관객에게 전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위안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에 많이 나누려고 힘내고 있어요.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영화에서 보셨듯이 제가 리어카도 끌고 밥도 해요.(웃음) 논과 텐은 밥을 함께 먹고 친해지는 게 시작이었어요. 이묵 선배님 처음 뵀을 시기가 전작을 막 끝냈을 때예요. 전작이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요. 그 친구들이 저한테 “30대도 레즈비언 해요?”라고 물었고 저 역시도 선배 세대들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어요. 옛날 신문 펼쳐놓고 그 안에 저와 닮은 분들이나 운동선수, 택시 운전사, 또는 여성 두 분이 굉장히 오랫동안 산 경우 등을 찾았어요. 무작정 찾아가 지역 노인 분들에게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셔요?” 묻고 다녔어요. 그리고 문을 두드리며 “제가 바지씨 후배입니다”라고 소개했어요. 그중에 한 분이 이묵 선배님이었어요. 선배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 하니까 성소수자 후배들의 삶이 당당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밥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일상을 보내는 것이에요. 친해져서 그 사람의 표정을 녹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해요. 그런 부분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묻어났다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진행: 영화에서 이묵 님이 살림을 꾸렸던 사람만 14명이고, 만났던 사람들은 셀 수 없다고 한 부분에서 이묵 선생님의 '여자 꼬시기 노하우'를 영화에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감독: 말미에 ‘꼬시는 건 너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죠.(웃음) 저한테 직접적으로 지침을 주진 않았어요. 선배님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요. 젊은 시절에는 더 매력이 넘쳤을 거예요.





진행: 일본의 커플이 나와요. 처음 봤을 땐 흐름상 약간 생경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로 보니 이야기들의 연결 지점을 알겠더라고요. 논과 텐의 이야기를 넣은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감독: 한국도 경주에서 지진이 있었죠. 사실상 지진이라는 재난이 우리나라에도 가까이 와있는 위험이라 생각해요. 영화를 처음 기획한 게 2012년이었어요. 완성까지 3년이 걸렸어요. 첫 기획을 할 당시, 한국은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많은 사람을 종북으로 몰고 성소수자를 ‘종북 게이’라고 불렀어요. 적대와 증오, 공포를 이용한 정치적 상황들이 당사자로서 굉장히 염려스러웠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 공격이 심각해져서 마치 재난의 상황으로 여겨졌어요. 그리고 LGBT 안에서 청소년을 이제 막 벗어나 성인이 된 한 친구가 따돌림과 외로움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가 동일본 대지진 얼마 후였던지라 ‘도대체 재난 상황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듬해 일본 성소수자들에게 직접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상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실제 재난 상황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대피소로 가지 않고 참혹한 폐허의 현장에 그냥 남기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피소 안은 가족 중심적, 남성 중심적인 질서로 운영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이야기들에 가슴 아프게 공감했고 논과 텐을 만나 그 집에 한 달 동안 살면서 이야기를 담았어요. 논과 텐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커밍아웃하면서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했죠. 그들은 딜레마적인 상황,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선택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선택이요. 굉장히 존엄한 결정이고 또 성소수자들의 특수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진행: 이해를 받기 위해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관계를 알리기 위해서 커밍아웃한 것이라는 논과 텐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 퀴어 축제를 반대하며 북을 치는 사람들이 나와요. 올해는 저 정도는 아니었어요. 참여자 수는 거의 10배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비해 참여자는 늘고 혐오 세력은 줄었어요. 조금만 늦게 촬영했어도 저런 스펙터클한 장면을 못 담았겠구나 싶었어요. 



감독: 정권이 바뀌며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상대적으로 보수 정권의 혐오와 증오를 배양하는 환경들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분명히 변화가 있죠.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100대 국정과제에서 사실상 빠졌어요.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요.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는 없어졌을지라도 여전히 혐오의 정치 프레임은 현재진행형이고 좀 더 복잡해진, 은폐된 형식으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객: 혐오 세력 집회는 영화를 통해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갔어요. 그 장면들을 보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어요. 괴로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다른 동지들 모습,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이묵 선배님 모습 보면서 힘을 많이 받았어요. 혐오 세력의 적나라한 장면을 많이 넣은 이유가 있나요?



감독: 영화가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 존재를 지키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엮이면서 진행되고 있죠. 저는 존재를 지우려는 사람들, 혐오 선동 세력의 주장이 삶을 반대하는 논리라 생각해요. 존재와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존엄한 힘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느꼈고요. 혐오는 최근 몇 년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에요. 점점 더 확산되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삶의 지반 위에 놓이고, 또 밀려나게 돼요. 적대와 공포를 이용하는 증오 정치의 프레임에 대해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묵 선배님, 저, 논과 텐, 혐오 선동 프레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게 어떤 폭력인지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공공연한 장소에서 노골적인 혐오의 폭력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이 현상 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서 다신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관객: 슬픔, 기쁨, 분노 등 여러 감정들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는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혹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요.



감독: <이반 검열>을 보면 학교에서 학생을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검열해요. 그 친구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고 퇴학이나 전학을 시켜요. 영화는 이러한 인권침해 이야기와 성장담이에요. 이 주인공들이 30대가 되었어요. 지금의 그들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그리고 2009년부터 찾아다닌 바지씨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빨리 관객들에게 선보이려 해요. 



관객: 감독님 전작들을 다 봤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시더라고요. 판타지스러운 우리들 이야기도 담아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행복하게 함께 오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라든지 다 같이 모여서 축하하는 금혼식이라든지요. 그런 걸 볼 수 있으면 더 기쁘지 않을까요? 혹시 그런 내용도 준비하고 있나요? 



감독: 많이 괴로우셨죠?(웃음)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영화가 불안한 삶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죠. 왜 그렇게 되는지, 그 환경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행복하게 보이지만은 않죠. 그렇지만 알면 세상이 덜 무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직 탐구해야 할 영역이 많다고 생각해서 더 실험하는 길로 가보려고 해요. 제 인생관과도 연관이 있어요. 보통 인생은 다 고(苦)라고 하잖아요. 간혹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좀 더 재미난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어요. 아마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드러날 것이라 생각해요. 행복이 가득 차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웃음이 나는, 견뎌볼 만한 힘이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 속에서 이묵 선배님, 다른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저도 위안을 드리고 싶어요. 관객 분들이 그걸 느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혐오 세력은 풀샷으로, 주인공들은 클로즈업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혐오 세력 개개인을 악마화 혹은 미화할 의도는 없어요. 혐오 프레임, 우리 사회가 변화해 나아가야 할 부분 자체를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주인공들의 존엄함과 힘을 통해 용기를 얻길 바라면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관객: ‘바지씨’, ‘치마씨’ 같은 은어를 여기서 처음 들어서 흥미로웠어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예전 용어들은 분리가 안 돼서 혼란이 있을 것 같아요.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요? 그리고 영화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상영했나요?



감독: 영어 제목은 <Troublers>,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에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을 지었어요. 바지씨의 ‘씨’는 우리말에서 성별 중립적인 용어인데 번역이 쉽지 않아요. ‘MR. 팬츠’라고 할 수 없잖아요.(웃음) 영화가 표현하는 바와 맞지 않아서 성별 중립적이면서도 뜻을 살리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을 많이 고민했어요. 영어는 주어가 ‘he’, ‘she’처럼 성별을 드러내는 명칭을 쓰는데 이묵 선배님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지칭할 수 없어요. 어떻게 세계적인 추세 안에서 표현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죠. 그리고 바지씨에는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지금의 용어로 하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intersex), 부치(butch) 등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관점과 용어로 그 당시를 재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커밍아웃을 한 논과 텐은 말한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이묵 역시도 성소수자 후배들이 당당히 사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흔쾌히 영화 찍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당신’이라는 호칭, 이 이인칭 용어는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나의 인권이 소중하듯 당신의 인권 또한 보장받아야만 한다. <불온한 당신>은 나 자신만의 세계를 넘어 상대방의 정체성과 인권까지도 존중하는, 관계 지향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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