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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발> 인디토크

by indiespace_은 2017. 3. 27.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발>  인디토크


일시 2017년 3월 17일(금)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조재민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눈이 내리던 계절은 지나갔지만, 스크린 위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흩날리던 눈발은 땅 위에 쌓이지 못하고 공중을 천천히 맴돌다 스크린 밖 관객들의 마음속에 살포시 내려 앉아 잔잔한 여운으로 변했다. 금요일의 늦은 저녁, 채 가시지 못한 먹먹한 감정을 안고 <눈발>의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조재민 감독이 함께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조재민 감독(이하 조): 고성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억압이나 죄의식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근처의 창원으로 가게 되었다. 스스로 갇힌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기 때문에 고성이라는 곳을 빨리 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한참이 흐른 뒤에도 이 기억들이 맴돌았고, 이야기해보고자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안: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조: 친구들에게 벌칙을 받는 장면이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일 수 있고, 왜 당하고만 있나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기억에서 출발했다. 다른 이야기들과 합쳐지면서 덩어리가 생겨난 것 같다.


안: 마을의 인물들이 선한 모습의 탈 뒤에 잔인한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인물들이 ‘민식’(박진영 분)을 둘러싼 모양으로 배치되어있고 그로 인해 남자 주인공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짜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조: 우선 지역성을 중점적으로 굳혀가야겠다 생각했고 그것을 유일하게 흔들 수 있는 사람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학 온 인물로 설정을 했다. 그가 지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 안에 다시 갇히게 되는 아이러니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을 방관자적인 입장, 제 3의 시선으로 계속 끌고 나가려 했다.


안: ‘눈발’이라는 제목에서 담고자 한 것이 있을 것 같다.


조: 남쪽 지역에서 내리는 눈은 대부분이 진눈깨비다. 금방 녹아 없어져 쌓이지 못하는 신뢰 관계나 믿음, 구원에 대한 의미로 시작되었다. 흩날린다, 사라진다, 홀연히 떠난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눈발’이라는 제목을 골랐다. 처음에는 ‘고성’도 생각했는데 <곡성>, <밀양>, <파주>가 이미 있었다.(웃음) 지역 제목이 많아서 그것은 피하고자 했다.


안: 민식을 연기한 박진영 배우가 인상적이다. 그 배우가 가진 표정들과 작품에서 보인 모습들이 <눈발>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것 같다. ‘예주’를 연기한 배우 지우에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된 사연이 듣고 싶다.


조: 박진영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그가 마치 민식처럼, 전학생이 고성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맞닥뜨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표정과 말을 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있었던 캐릭터의 모습, 성격과 실제로 굉장히 비슷했다. 민식은 선한 친구다.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가 약하고, 손을 내밀긴 하지만 본인이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박진영이라는 배우의 첫 인상이 그랬다. 인내심과 동시에 약간의 허약함도 느껴졌다. 박진영 배우는 진해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만났을 때 서울에 와 힘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에 적응해나가는 본인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민식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 점을 뒤집어 생각하면 잘 맞겠다고 느꼈다. 지우 배우 같은 경우 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 첫 만남에서 지우 배우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많다고 했고 그 점에 나도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관객: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눈발>을 봤다. 그때 예주의 손에 카레가 부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과 함께 있던 민식이 “뜨겁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왜 그 장면이 편집되었는지 궁금하다.


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한 이후 편집을 하다 보니 바뀐 부분들이 조금 있다. 전체적으로 쳐질 수 있는 호흡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 같다. 빼기 싫었지만 뺀 부분도 있고 빼길 잘했다 싶은 부분도 있다. 결이 많이 달라졌다. 질문주신 장면은 씬들 사이의 호흡과 워딩이 조금 걸려서 삭제되었다.


안: 다시 복구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조: 민식이 가족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이 영화 시작 부분에 있었다. 유일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빠졌다. 그리고 엔딩의 논두렁 씬 전에 민식이 버스 정류장에 예주의 흔적을 느끼려 갔다가 그의 흔적을 보고 상념에 빠지는 장면이 있는데, 다시 넣고 싶다. 아마 DVD로 제작할 때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관객: 민식이 예주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궁금하다.


조: 민식은 처음에 예주를 연민으로 바라보다가 교감까지 가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한다. 사랑까지는 아닌 것 같고 사랑 이전 단계라고 생각된다. 만약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사랑까지 갈 수 있는 단계 같다. 그 과정에서 민식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주에 대한 확실한 신뢰나 교감보다 아직 자기애가 조금 더 크기 때문이다. 본인을 억압해왔던 것들, 시골에서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예주를 감당해내기에는 본인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관객: 맨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눈발의 의미를 민식에 대한 위로로 해석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조: 크게 보면 위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눈의 의미는 뭔가를 덮어주는 것, 치유해주는 것인 듯하다. 예주가 민식에게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쌓여서 뭔가를 채워주기보다는 자기 앞에서 흩날리다 녹아 없어져버리는 눈 때문에 예주를 조금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안: 앵글, 샷들이 넓기 보다는 인물들의 미시적인 관계들을 보듯 상당히 답답한 구조를 띄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인물 하나하나를 가두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촬영을 할 때 어떤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 답답함을 느꼈을 것 같다. 화면 위아래의 사이즈를 조금 답답하게 가져갈까 고민을 촬영 바로 전까지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눈을 기다리는 프레임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인물들의 거리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계속 16:9의 비율을 생각하고 있다가 화면 위아래를 잘라냈다. 극장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데, 실제로는 예주가 사라진 다음 컷부터 화면의 위아래가 열린다. 극장 배급 및 상영을 그렇게 하기는 힘들어서 화면 크기를 일관되게 했다. DVD가 나오면 예주가 사라진 컷부터 16:9로 바뀔 것 같다.


관객: 작품의 끝 무렵 황석영의 『바리데기』 한 부분이 등장한다. 특별히 그 소설의 구절을 넣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 『바리데기』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작가가 생각하는 것이 <눈발>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소설이 아닌 고전시였는데, 톤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로 바꾸게 되었다.


안: 상징과 은유가 신화적인 부분이 있고 이야기의 서사 구조 자체가 상당히 고전적이다. 영향을 받은 감독이나 작품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


조: 한때 고전에 심취해있었다. <눈발>이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모리스 피알라의 <사탄의 태양 아래서>(1987)나 로베르 브레송의 <무쉐뜨>(1967), 그리고 루이스 브뉴엘을 좋아한다. 그리고 예주의 실제 인물이 <무쉐뜨> 속 소녀와 많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볼 때마다 힘들었고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관객: 이 작품이 감독님의 기억에서 시작된 영화이지 않나. 영화를 만들면서 과거의 기억을 많이 떠올렸을 것 같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그 때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 궁금하다.


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개봉 직전에 영화 속에 나왔던 괴롭히는 친구들의 실제 인물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영화 봐라. 옛날이야기들 나올 거다. 너희 캐릭터 다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들이 기억을 못하더라. 당황스러웠다. 나는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관객: 민식은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민식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감독님이라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조: 문지방에 걸쳐 서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미숙한 청소년들과 나이를 먹었지만 세상 밖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문지방을 과감하게 건너라고 말하고 싶다. 중간에 있으면 본인도 피해를 입게 되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곤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안: 영화가 개봉한지 3주 정도 됐다. 개봉하기까지 긴 과정들이 있었을 텐데,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다. 소회를 듣고 싶다.


조: 처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 시원한 부분이 있다. 아쉬운 것도 많고. 조금 더 잘했어야 했는데, 후회도 많이 된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너무 오만하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방심했던 것 같다. 다음번에는 의심을 좀 해야 할 것 같다.(웃음) 놓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다양하게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반성, 성찰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 


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조: 97년을 배경으로 IMF 직전에 카센터에서 일하는 인물이 겪는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자본과 죽음,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느와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작품은 관객에게 기시감을 안긴다. 그리고 그런 기시감의 결말은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위로하듯 쏟아지지만 채 쌓이지 못하고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먹먹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촘촘히 구성된 시나리오와 세심한 연출은 이런 먹먹함을 또 다른 감동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눈발은 소리 없이 흩어져 날아갔지만, <눈발>이 주는 여운은 오래도록 관객들의 마음속에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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