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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 - 다큐멘터리로 조망하기

by indiespace_은 2016. 7. 5.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 - 다큐멘터리로 조망하기 

<위로공단>, <소꿉놀이>, <소녀와 여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영 님의 글입니다.



언론은 여성 노동자가 많은 감정노동직의 노동환경 실태부터 전통이란 명목으로 생존이 위협 받는 타국 여성까지 다양한 자료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기표뿐인 수치와 반복되는 내용에 무뎌져버렸기에 그리 놀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사회적 분위기에 젖어들어 당사자인 여성들 또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기가 어렵고 현재 지닌 고민만으로도 벅차기에 타국까지 관심을 두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과거를 끄집어냄과 동시에 현재를 낯설게 보도록 하고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의 힘을 믿으며.





1. <위로공단>(2014)


<위로공단>은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지만 자신이 생산했던 물건을 살 수 없었던 여성 노동자들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들에게 1970년대는 울분이 가득하던 때였다. 1978년, 노동조합의 대의원 선거를 앞둔 여공들에게 동일방직 회사가 똥물을 투척했으며 1979년에는 YH무역 사건(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던 여성 노동자가 강제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큐멘터리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낸다. 인터뷰이의 표정, 눈빛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감각적인 영상 이미지는 여성 노동자의 삶에 절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현재의 여성 노동자들로 이야기가 전환되면 과거와 현재가 별 반 다를 것이 없음에 할 말을 잃게 된다.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휴게공간이 없는 할인마트와 성적 모욕이 난무한 콜 센터, 미소를 강요하는 항공사까지. 노동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70년대의 상황에 한숨을 쉬게 된다면 현재의 상황엔 한숨조차 쉴 수가 없다. 언니, 동생, 친구,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지점에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노동환경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빠져 들어간다.






2. <소꿉놀이>(2014)


6년간의 여정을 거쳐 완성한 셀프 다큐멘터리로 카메라를 잡은 감독이 자신의 결혼, 출산, 육아란 대장정의 기록을 보여준다. 영화의 화자인 감독 수빈은 뮤지컬 조연출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당찬 여성이다. 여느 20대 여성처럼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아래서 차별 없이 학교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영위해 나가지만, 예기치 못한 새 생명의 잉태로 그녀에겐 ‘아내’, ‘며느리’, ‘엄마’란 역할이 더해진다. 그리고 다양한 역할이 부여됨에 따라 멀어져만 가는 꿈에 고민이 많아진다. 이것은 감독 김수빈의 이야기지만, 감독의 이름을 빼고 현 세대 여성들의 이름을 더하면 그것 자체로 우리 이야기가 된다. 저 일련의 과정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누구나 하기 때문이다. 사뭇 진지한 내용이지만, 이런 딜레마를 무겁게 그리기 보단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다. 20대를 대표하는 감독이 가정과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고민은 우리의 것과 같고 분명 녹록치는 않기 때문이다.






3. <소녀와 여자>


할례 혹은 여성성기절제(FGM)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할례를 전통으로 옹호하는 사람들과 할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물을 크게 앞과 같이 나눌 수 있지만, 이러한 분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함유하고 있는 ‘할례’의 의미이다. 혹자에게 할례는 지켜야 할 전통이며 소녀가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이다. 반면 ‘STOP FGM’을 외치는 이들에게 할례는 생존을 위협하는 성인식에 불과하다. 다큐멘터리는 이 두 입장을 여과 없이 담지만, 할례의 존재 이유가 ‘여성의 성욕을 억제하기 위함’, ‘할례를 통해 가정에 충실한 여성이 될 수 있음’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목숨까지 걸면서 그들이 이룩하고자 한 여성의 모습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문의 지점에선 우리나라가 떠오른다. 우리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강요하고 있는 여성상(女性像)이 있는지, 있다면 그 여성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여성상은 여성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다른 나라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종점은 우리나라로 향해 있다.




위 세편이 여성이 살아가는 모든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할 순 없다. 어쩌면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일부분일지라도 여성이 살았던 과거, 현재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 안에서 문제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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