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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인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시선 사이>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6. 21.

인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시선 사이>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18일(토) 오후 5 상영 후

참석: 이광국 감독 | 배우 박주희 

진행: 김민아 국가인권위원회 팀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님의 글입니다.


올 여름도 어김없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작품이 우리를 찾아왔다. 올해는 최익환 감독과 신연식 감독, 이광국 감독의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과대망상자(들)>, <소주와 아이스크림>이 <시선 사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모였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던 토요일 저녁, 세 단편 중 가장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소주와 아이스크림>의 이광국 감독과 박주희 배우가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김민아 국가인권위원회 팀장(이하 김): 제가 같이 작업을 해보니, 감독님이 정말 섬세하시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영화 제안 받고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광국 감독(이하 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3년동안 진행했고, 좋은 감독님들이 많이 참여하셨던 프로젝트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고독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됐길래 사람들이 점점 더 고립되는 걸까,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곤경에 처해있는 한 아주머니가 먼저 떠올랐는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아서 한 주인공의 이상한 하루를 통해서 다양한 것들을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험설계사도 감정노동자니 그분들의 어려움도 간접적으로 다뤄볼 수 있겠다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김: 박주희 배우님은 <어떤 시선>(2013)으로 민용근 감독님과 같이 작업했었어요. 인권영화 제안이 또 들어왔을 때 어떠셨나요?


박주희 배우(이하 박): 또 ‘인권’이라 달랐던 점은 없었어요.(웃음) 감독님한테 먼저 시나리오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시나리오 보고 얘기 해달라고 하셨죠. 저는 사실 고독사를 다룰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마냥 진지하고 어두울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신선해서 놀랐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빨리 만나서 감독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관객: 소주와 아이스크림, 이 두 개가 서로 느낌이 너무 다른데, 소재로 가져오신 이유가 궁금하고 소주병에 바람을 불어넣는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여름에 아버지와 같이 산책하면서 "아버지,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돈 있어?" 이런 대화를 여러 번 했었어요. 사소한 건데, 저한테 뭔가 남았는지 그때부터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할 수 있겠단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권영화 제안 받았을 때 막연하게 ‘아이스크림’이 제목에 들어가겠구나 싶기도 했고요. 아이스크림을 제목으로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보니 단어 자체가 주는 달달함 때문에 이야기랑 동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반대의 것을 같이 붙여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소주가 생각났습니다. 또 실제로 제가 아는 분이 알코올중독 상태까지 가셨는데, 그분이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안주로 술을 마시기도 했었어요. 그 잔상도 영향이 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긴 소주병을 보면서 아버지의 한숨 같은 것을 느꼈다는 뉘앙스의 시가 있어요. 종이컵에 실 묶어서 전화하는 것처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끈이랄까요? 소주가 줄어들수록 마시는 사람의 깊은 한숨, 숨소리 같은 것들이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 옴니버스 영화인데, 감독님 세 분이 같이 모여서 방향을 잡거나 조율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김: 감독마다 성향이 달라요. 주제를 한정해주면 그 주제 안에서 고민해보겠다는 분도 있고, 본인 생각대로 해보겠다는 분도 있어요. 이번에는 감독님들께서 각자 원하시는 주제를 잡으셨어요. 저희가 사실 약간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웃음) 제작하는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이야기가 됐건 감독님들께서 진심을 다해서 최선으로 만들어주시면 그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생각해서 크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 말씀 드리지 않고 감독님들의 자율에 맡기는 편입니다. 


관객: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에요. 근데 그 중에서도 청소년이나 청년보다 노인 자살률이 약 2배 정도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독사 문제가 심각한데요. 청년이자 이 영화에 참여했던 배우로서 박주희 배우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처음에 고독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압감 때문에 막연하게 어렵고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고독사에 대한 뉴스나 기사를 많이 봤지만, 참고할 만한 게 많지 않더라고요. 근데 사실 이 영화 내용에는 가족해체에 대한 문제도 있고 결국에는 개인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래서 거기에 중심을 둬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도 표현하기 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감독님이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덧붙여 대답하자면 고독사를 떠올렸을 때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층이 노인일 것 같잖아요. 저도 이야기 만들면서 깜짝 놀랐는데, 생각보다 중년 남성분들의 고독사가 많더라고요.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이 그 출발일 텐데 그렇다면 가족이 왜 해체될 수 밖에 없을까도 생각해봤어요. 결국은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에 맞춰져서 돈을 왜, 얼만큼 벌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저만큼 버니까 나도 이만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맞춰지고, 사람들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러다 보니까 당장 매일 보는, 나랑 제일 가까운 사람이 지금 어떤 곤경에 처해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관심이 있다 해도 가족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낯설기도 하죠.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 같아요. 기술 발전으로 우주도 갈 수 있고 당장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전화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사람 마음을 아는 일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고요. 여러 면에서 살기는 편해졌지만, 필요 이상의 편안함 때문에 자신에게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잃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객: 타인은 고독사하는 사람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기 힘든 문제일 수 있다 생각해요.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면 단순히 피해자라기보다는 피의자로 볼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피의자로서의 고독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언론 시사회 때 어떤 기자 분이 저한테 여기 나오는 인물들 중에 집주인 캐릭터가 제일 불쌍하다고, 나머지 인물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답답해졌었는데요, 우리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아플 수 있고 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정말 알 수 없는 문제인데, 마냥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게 첫 번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는 건데, 지금 내가 당장 그렇지 않다고 해서 영원히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내 잘못으로 힘들어지고 고독하게 죽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그래도 한 번 봐준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도 영화를 만들 때 고독사로 죽는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연민은 피하려고 노력했고 꼭 피해자/피의자 둘로 나눌 문제가 아니라 결국 둘 다 힘든 문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냥 불쌍하니까 도와줘야 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되게 폭력적일 수 있거든요. 그 둘 사이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가 다소 거칠게 끝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의도에서 그러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 마지막에 세아(박주희 분)가 언니한테 안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과연 언니가 안아줬을까? 저는 아니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어차피 안아주지 않을 건데 그 이상을 보여주는 건 의미 없고 가족한테도 외면 받고 궁지에 몰려있는 세아의 아픔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거기 나오는 인물들 모두가 결국 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여지를 두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 박주희 배우는 마지막 장면 찍을 때 어떠셨어요?


박: 사실 마지막에 세아가 쏟아내는 저 부분 대사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마음에 드는 대사를 찾기가 힘들어서 현장에서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미뤘거든요. 이 장면 촬영을 앞두고 언니(윤영민 분)랑 감독님이랑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대사들이 금방 나왔어요. 촬영도 한두 테이크 만에 끝났고요.


관객: 소주병을 통해 어떤 소리가 들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이: 주인공과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좀 모호하잖아요. 환영을 만나는,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있는 상태인데, 이 둘을 어떻게 이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어요. 그래서 비현실의 아주머니와 현실의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로 생각하고 찍었던 것 같아요.


관객: 먼저 이 세 영화 중에서 감독님 영화가 제일 인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다고 느꼈는데, 어떤 의도로 그러신 건지 궁금해요. 아주머니의 딸 목소리는 박주희 배우가, 세아의 엄마 목소리는 서영화 배우가 녹음하신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이나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이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모름지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서 그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제가 하고자 하는 걸 하면 어떻게든 인권과 연결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자칫 잘못해서 어떤 교훈을 주거나 뻔한 결과로 안내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 하던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화통화는 아주머니의 상황이 세아의 어머니가 놓여있는 상황과 별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주머니와 딸의 대화가 세아와 엄마와의 상태나 관계를 다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 어떻게든 인권과 연결될 것이라 생각했다는 이광국 감독의 대답이 가슴에 콕 박혔다. 듣고 보니 참 당연한 말인데, 그간 나의 이런저런 행동들을 인권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간 ‘인권’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던 이미지들-어려움, 무거움 등-은 전부 우리의 편견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권위가 ‘시선 시리즈’를 통해 13년동안 우리에게 해온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하나씩 지울 때마다, 인권은 우리 삶에 한층 더 깊숙이, 한층 더 만연히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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