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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랑이 흘러가는 길 [궤도]

by Banglee 200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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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금호

두 팔이 없는 나는 외톨이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진 채 홀로 생을 견디고 있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웃옷 소매 자락이 아직도 쓸쓸하지만
튼튼한 두 다리로 두 팔이 하는 일을 다 할 줄 압니다.
담배도 말아 피고, 기타도 튕기고,
밥도 지어먹고, 약초도 뜯습니다.

어느 비 많이 오던 밤,
빨간 블라우스의 그녀가 나의 집에 흘러왔습니다.
그녀는 한참을 앓다가 일어났고,
나는 두 발로 밥을 지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두 발이 분주합니다.

나는 두 팔이 없고,
그녀는 두 귀가 먹었습니다.

나의 손이 그녀에게 닿지 못해도
그녀의 말이 나에게 오지 못해도
우리의 삶은 함께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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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향숙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나는 벙어리입니다.
도시에서 파출부 일을 했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버텨낼 수 없었습니다.
무작정 기찻길을 걸었습니다.
비를 피해 당도한 곳은 언덕배기의 외딴 집.

두 팔이 없는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쓰러져 한참을 자고 일어나 보니
밥 냄새가 납니다.
남자의 두 발이 대견합니다.

약초 뜯으러 가는 그를 따라 나섭니다.
열 발자국 뒤에서 갑니다.
그가 돌아다 봅니다.
나는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는 다시 뒤돌아 갑니다.

나도 말이 없고,
그도 말이 없습니다.

나의 말이 그에게 가지 못해도
그의 손이 나에게 닿지 못해도
우리의 마음은 함께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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