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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Choice] <만신> : 영화가 삶을 구성하는 방식

by indiespace_은 2016. 4. 5.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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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 영화가 삶을 구성하는 방식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낯선 것들과 마주하곤 한다. 어쩌면 이를 경계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작게는 문밖을 나서는 일부터 크게는 국가나 인종까지, 우리는 수많은 경계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시간도 그중 하나다. 시간을 단일하게 묶이는 하나의 연속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단절되고 분할되어 있다. 마치 시간과 같이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은 수많은 경계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만신 김금화의 삶을 다루면서, 과거를 재현하는 배우(김새론-류현경-문소리)와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인물 김금화를 공존하게 한다. 그렇지만 단지 과거와 현재의 경계 설정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만신 김금화와 영화 <만신>이 지니는 경계 지점은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무당의 삶은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게 흘러갈 것만 같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내림굿을 받은 금화(김새론 분)가 무당의 삶을 시작한 뒤, 그는 시대마다 수많은 경계를 마주해야 했다. 조선 시대는 무당을 신성한 존재로 칭송했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한국전쟁 시기에는 신을 모신다는 이유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유신 시대에선 무속이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고 하여 철저히 탄압받으며 생활 밖으로 내쳐진다. 그러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정치적인 이유로 무속을 다시 일상 속으로 불러들인다. 이 시기에 김금화의 여러 공연이 대중의 이목을 끌면서 그는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고 ‘나라만신’으로 거듭난다. 김금화라는 인물은 한 개인이지만, 그가 여러 시대를 거치며 마주한 경계를 살펴보면 그의 삶이 단지 한 인물의 역사로 그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만신>의 흥미로운 지점은 김금화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에 있다. 영화는 김금화를 연기하는 세 명의 배우와 실존인물 김금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라는 경계를 확실히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무너트린다. 이는 인물의 응시에서 비롯되는데, 영화 사이사이 실존인물 김금화가 자신을 재연/재현하는 배우를 바라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러한 시선은 특히 돋보인다. 배우 류현경, 문소리 그리고 김금화는 동일한 시선으로 어린 금화를 연기하는 김새론을 바라본다. 이로써 역할로 구분됐던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너지고,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또한 붕괴된다. 덧붙여 실존하는 김금화가 영화 안에서 전적으로 논픽션의 인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김금화를 세 명의 배우와 동등한 어떤 한 사람의 배우라고 본다면, 배우이면서 실재하는 인물이기도 한 김금화와 죽은 자이면서 산 자인 무당이라는 구도는 대등한 일치를 이룬다. 만신 김금화는 여러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인 동시에 이를 무너트리는 존재인 셈이다.



<만신>은 실재인물과 배우의 시선 교환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 경계를 보여주고 또 무너트린다. 영화는 실제 촬영된 영상과 과거의 TV 푸티지를 연결하는 작업으로 구성된다. TV 프로그램에선 무당을 초인의 힘을 지닌 단선적인 존재로 그리지만, 김금화는 미디어에 소비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무속신앙과 무당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김금화를 자연스레 체화한다. 영화는 조각난 푸티지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낸 김금화를 보여주는데, 여러 개의 TV 푸티지 조각을 한 화면에 넣으며 혼란을 일으킨다. 이로써 대중의 일방적 시선을 무너트리며,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김금화를 단선적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 형식적으로 <만신>은 (시네)다큐멘터리와 극영화, TV 다큐, 애니메이션, (심지어 설치미술 전시장 같은) 아트 필름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화는 경계를 넘나들며 무속의 전통을 새로운 미디어 프레임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금화(김새론 분)가 “쇠걸립 왔시다”를 외치며 연신 마을을 뛰어다닌다. 헌 쇠를 새 쇠로 만드는 쇠걸립 작업의 경계에 영화는 위치하고 있다. 금화가 외치는 쇠걸립 작업이 <만신> 전체를 관통하는 것만 같다. 이때 지미집 카메라 그림자가 화면에 노출되고, 배우를 따라가는 카메라와 스텝들이 영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찍는 것과 찍히는 것에 대한 경계가 무너진다. 부감 샷으로 찍은 영화의 엔딩 촬영 장소는 짚신처럼 보이기도 하고 김금화가 굿을 했던 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 공간은 카메라 무빙을 하면서 산 끝자락에 연결된 도로와 이어진다. 영화는 끝내 과거와 현재라는 공간의 경계를 소멸시키고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이러한 여러 형식적 시도를 통해 감독은 김금화의 어떤 모습을 표현해낸다. <만신>에서 김금화는 국가적 분쟁이나 위기 상황(대구지하철/삼풍백화점 참사…) 그리고 이념분쟁(한국전쟁,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있어 어느 한쪽의 편에 가담하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경계를 이리저리 횡단하며 경계 자체의 의미를 붕괴시킨다. 그에게 중요한 일은 경계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의 감정에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를 자신의 몸으로 다시 표현해내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신 김금화는 인간이 지닌 경계를 붕괴시키며 자신을 어떤 소통 창구로 작동하려고 시도한다. 감독 또한 영화가 지닌 경계를 무너트리면서 김금화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렇게 <만신>은 김금화의 삶을 영화라는 양식을 빌려 새롭게 구성한다. 어쩌면 이것이 수많은 경계를 넘나들던 만신 김금화라는 인물에 가장 맞닿아 있는 방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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