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인디포럼 월례비행 <빨간 벽돌>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2월 28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주현숙 감독ㅣ주연 성훈화
진행 백재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기 님의 글입니다.
구로동맹파업은 여성과 연대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지금 이 시기에 새롭게 읽을만한 텍스트처럼 보인다. 여성들의 용기와 선택이 모여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요즘, 30년 전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연대했던 구로동맹파업을 다룬 <빨간 벽돌>이 인디포럼 월례비행에서 상영되었다. 그 현장에 두 발 딛고 서 있던 민주 인사들이 참석했고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과 공간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재호) : 오늘 진행을 맡은 인디포럼 소속의 백재호입니다. 주현숙 감독님과 성훈화 님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한 인사 한 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주현숙 감독(이하 주현숙) : 날도 궂은데 오시고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빨간 벽돌> 만든 주현숙입니다. 반갑습니다.
성훈화 주연 (이하 성훈화) : 안녕하세요. 구로동맹 파업 때 가리봉전자에 근무했던 성훈화입니다.
백재호 : 먼저 <빨간 벽돌>을 어떻게 기획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주현숙 : 의도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영화예요. 오늘은 자학을 안 해야지 마음을 다지고 왔는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이 영화 만들 때 내가 염세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할 때 많이 우울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잊어버렸을 수도 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을 보내면서 ‘앞으로 30년은 이런 보수적인 정부안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서 많이 우울했어요. 괴롭기도 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 때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결정적인 순간의 마음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어요. 드라마틱한 선택의 순간에 대해서 몰두하다가 구로동맹파업을 한번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살 초반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노동운동사에서도 아주 특이한 일이거든요. 물론 60, 70년대 노동운동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선택에서 봤을 때 연대 파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사건 직후 보다는 한 30년 정도 지나서 ‘그때는 어땠지’하면서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제가 그 시기에 갱년기 같은 것이 왔는데 오히려 그분들을 만나면서 많이 위로 받았어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를 거창하고 멋지게 표현 안 해도 쿨하게 받아 주실 거 같았어요.(웃음)
백재호 :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좋은 영화를 많이 탄생시킨 거 같습니다. 성훈화 님께 여쭤볼게요. 인상 깊었던 것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어요. 서울대 학생이 와서 노동운동을 하는 걸 보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학생들이 와서 하는구나’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훈화 : 중학교 졸업하고 구로공단에 들어갔어요. 도자기로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산업체 특별학급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졸업의 차이가 엄청나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구로공단에서 벗어나려고 회사를 그만뒀죠. 그러고 나서 시골에 내려가 있는데 일할 곳이 없는 거예요. 저랑 같이 고등학교 다녔던 친구가 공단에 조건이 좋은 회사가 있는데 같이 들어가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공단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서 며칠을 버텼는데 갈 데가 없더라고요. 결국 회사에 가게 됐어요. 84년에 구로공단 가리봉전자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조건이 다른 회사들과는 달랐어요. 공장도 새로 지어서 깨끗했고 직원도 고졸 이상을 뽑았어요. 그리고 잔업이 없는 거예요. 다른 데는 일이 끝나면 기본적으로 잔업을 서너 시간은 해야 했어요. 근데 가리봉전자는 그런 게 없었어요. 8시간, 3교대로 꼭 돌아가기 때문에 근무조건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공단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그때도 야간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가리봉전자가 1년이 막 돼 가는 시기였고 노조가 생겨났어요. 같이 하자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바빠서 안 된다며 항상 빠져나갔던 거예요. 관심도 별로 없었고요.
그러다가 노동조합에서 나오는 ‘노고(勞稿)’라는 게 있는데 어느 날 거기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 친구 글씨가 있더라고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편집부에서 일하는데 굉장히 괜찮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독서모임에 들어와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독서모임에 들어가게 됐어요. 사람들이 교대 근무를 하고 부서도 다 다르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 안에서 다 만날 수가 있었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같은 기계를 쓰는 친구가 모임을 이끌고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냥 너무 좋았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 생산할 때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다른 사람이 10개를 했으면 저는 12개를 해야 하는 거예요. 이기기 위해서 늘 더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하루는 저한테 쪽지를 남겼어요.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내가 너무 힘들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내가 혼자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안 되나 보다 싶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자기가 서울대학교 나와서 수학 선생을 하다가 공장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했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어요.
노동조합 활동을 두 달도 안 하고 동맹파업에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의원이 됐어요. 사람들이 하라니까 한다고 그랬던 거 같아요. 동맹파업에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짧은 기간에 70년대 노동운동했던 사람들이 각개 격파되고 민주노조가 깨졌던 부분들이 학습이 돼 있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동맹파업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백재호 : 이 자리에 영화에 출연한 분들이 몇 분 오셨어요. 감독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주현숙 :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면인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 불러주신 권영자 님 와 계시고요, 그 옆에는 같이 투쟁한 정영인 님 계십니다. 계속 일하시느라 작품을 못 보셨는데 오늘 마침 와주셨습니다.
관객 : 극 후반부에 젊은 사람들이 가상 토론을 하고 결과를 안 보여주잖아요, 그 결과 내용이 궁금해요. 감독님이 의도한 바가 있었는지, 의도한 대로 흘러갔는지 궁금합니다.
주현숙 : 논쟁적으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닌데 논쟁적으로 되어버린 게 있어요. 기본적으로 제 역사관은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지도 않고,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한 선택이 있더라도 이후에는 그 선택에 반하는, 자기 선택을 책임지지 못하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투쟁이라는 선택은 고민이 되더라고요. ‘투쟁하면 블랙리스트가 되고 먹고 살 데도 없고 당장 취직도 못하는데 왜 투쟁을 할까?’ 생존권 투쟁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빨리 관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게 더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투쟁을 한다는 건 이타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선택을 하는 어떤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 선택의 순간을 눈으로 직면하고 싶었어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서 선택의 순간을 담아보겠다는 욕망이었던 거죠. 말씀하신 장면은 처음부터 기획안에 있었는데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봤어요. 여러 안들을 생각했는데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자는 게 저희의 기본 원칙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더 곤란한 상황이 연출이 된 거예요. 저 사람이 나쁘게 보이면 안 되는데, 그러려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고민을 하면서 모니터링을 많이 했어요. 저보다는 청년 세대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는데 콧방귀를 뀌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데 저 정도 가지고 못됐다 그러냐고요.
실제로 몇 번 안 만난 사이에 누군가를 위해 그만두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그게 좋고 어떤 '순간'처럼 느껴졌어요. 일부러 한 사업장의 노조가 아닌 각각 다른 곳에서 참여자 분들을 데리고 왔고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고민했지만 넣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 때 많이 배웠어요. 청년들의 현실, 객관적인 삶의 조건 같은 것들이요. 그것까지 구구절절 넣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약간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은 청년에게 맡기고 단호하게 이 부분만 보여주자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었습니다.
백재호 : 그럼 토론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섭외를 했나요?
주현숙 :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만나서 우선 기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흥미로워하는 분들을 섭외했어요. 한 번 더 하자고 한 분도 있었어요. 저는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되게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조합을 잘 구성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어떤 사람은 수용적인 사람, 어떤 사람은 까칠한 사람, 어떤 사람은 조용하더라도 묵직한 사람. 사람을 범주화하면 안 되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백재호 : 성훈화 님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어쨌든 30년 전에 그런 비슷한, 혹은 더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 있었던 분인데 젊은 친구들이 이걸 가지고 토론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성훈화 :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저만 보였어요. 다른 사람들이 안보이더라고요. 구로동맹파업에 나왔던 사람들은 보이는데 젊은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입은 잘 안됐어요. 근데 오늘 다시 보면서 이 사람들에게서 연대 의식이 만들어지길 바랐던 거 같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관객 : 일주일 동안 파업을 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해산된 이후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걸로 표현이 돼 있는데요, 살아오면서 본인들의 가치관 등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치하는 분들 중에 보면 노동운동을 하다가 변절해서 악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50세 이상의 연배에는 태극기 부대에 가까운 분들이 많잖아요. 주변에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의 가치관과 주변의 가치관의 충돌이 상당히 많았을 거 같아요.
성훈화 : 가리봉전자에서 해고되고 90년에 결혼할 때까지, 지쳐서 운동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까지 계속 운동권에 있었어요. 원래 일하던 도자기 회사에 노조를 만들려고 다시 들어갔다가 해고되기도 하고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직이 안 되기도 했어요.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 거 같아요. 저는 저를 ‘자생적 사회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운동권이 무너지면서 제가 꿈꾸던 사회주의가 무너졌어요. 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이정표로 삼고 갔던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혼하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그때 굉장히 선명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말을 아예 안 했어요. 저랑 의식적으로 맞지 않는 친구하고는 안 만났어요. 왜냐하면 만나서 말해봐야 싸움만 하니까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런데 결혼을 했고, 집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어울리지를 못했어요. 정치 이야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피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아이 친구들 엄마하고 정치 얘기는 안 하고 살았던 거 같아요. 구로동맹파업 20주년 행사할 때 앞에 패널로 나갔는데 제가 너무 울어서 말을 못 했어요. 제 안에 풀어지지 않은 응어리 같은 게 남았던 거 같아요. 후회도 하고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20주년 행사하면서 다시 운동권 사람들하고 어울리게 되었어요. 구로동맹파업도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지면서 유공자 인증서를 받았거든요. 그거 받고 마치 제가 문익환 목사라도 된 것처럼 감격했어요. 민주인사로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옆에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주현숙 : 흥미로웠던 것은 구로동맹파업이 대우어패럴의 지도부 3명이 잡혀가면서 벌어진 연대투쟁이었거든요. 근데 대우어패럴의 위원장님은 지금 자유한국당에 있어요. 박종철 열사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박종훈 씨인데 그 사람도 자유한국당에 있거든요.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게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계속 투쟁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자기 삶 안에서 그 기준들을 지켜가려고 하는 거요.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방식 같은 것이 있겠죠. 그런 방식으로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게 되게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의 선택을 모두 이해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누가 변절했다고 얘기할 때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백재호 : 권영자 님과 정영인 님께도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영인 : 그 투쟁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달랐지만 같이 합숙을 하면서 운동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노조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같이 논의도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대우어패럴의 세 동지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은 노조를 파괴하려는 음모라고 생각을 했어요. 대우어패럴부터 쳤지만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고 같이 동맹파업을 한 것이죠.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한데 영화로 만들 정도로 큰일이라고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그때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건 참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영자 : 사실은 주현숙 감독이 저를 2년 동안 쫓아다녔는데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어요. 2년 동안 도망 다녔어요. 구로동맹파업의 구술 작업이나 기록 작업이 많았는데 결과를 보면 화가 나는 일들도 있어서 나는 안 하고 싶다고 했어요. 대우어패럴 나와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라는 걸 하기도 하고 경찰서에도 몇 번 가고 계속 싸우다가 서울노동연합으로 이어지면서 조직생활을 했어요. 여성단체에서도 일했어요. 계속 이렇게 살아온 거 같아요. 최근은 아파서 집에 있다 보니까 너무 무기력하고 힘들었는데, 분명한 건 ‘내가 잘 살아왔기 때문에 무기력해도 잠깐만 무기력한 거다’라는 힘이 있어요. 앞으로도 참여할 수 있는 곳에 함께 하며 그렇게 살 거라고 믿습니다.
주현숙 : 권영자 님이 2년간 촬영을 거부하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자기가 이 사회에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서지 않으신 분들도 많이 있고요. 영화에 담고 싶었지만 못 담은 것 중 하나가 경찰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이 노동운동하는 분들께 ‘너네 다 학생 출신들한테 이용당한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분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시거든요. 사람이 살다 보면 계산 없이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라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이 한 번 정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잘 안되기는 했지만 그런 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실제로 이 분들이 상처도 받고 여러 이유 때문에 관두기도 했지만 일상이 권태로워도 잘 영위하며 자기가 선택했던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주인공 분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거고요. 학출(학생 출신)과 노출(노동자 출신)간에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사이 좋게 살아온 분들도 있거든요. 실제로 어떤 연구자 분들은 ‘구로동맹파업은 아름다운 연대이고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이야기해요.
백재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현숙 : 이 영화와 비슷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느 포지션에서 싸워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가 세월호 참사 4주기잖아요. 4주기 정도 되면 새로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바라보고 이 사회가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진행한 4주기 프로젝트를 3월 말쯤에 상영합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훈화 : 구로동맹파업이 30년 전의 일인데 기억해주시고 영화로 기록해주셔서 주현숙 감독님한테 감사드려요. 저도 처음에 안 나오려고 했는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구로동맹파업이나 70, 80년대 노동운동했던 사람들 중 변절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민의식을 가지고 사회 저변에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재호 : 아까 별 것 아닌, 며칠 안 되는 파업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노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그때 하셨던 선택들이 지금 저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제목이 왜 빨간 벽돌일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가 빨간 벽돌 같네요.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자리를 하나하나 채워주시고 경청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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