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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그녀들'이 '우리들'이 될 때까지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그녀들의 점심시간> 대담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6. 7.


'그녀들'이 '우리들'이 될 때까지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그녀들의 점심시간>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0일(토) 오후 4 30분 상영 후

참석 구대희 감독,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첫 번째 작품으로 <그녀들의 점심시간>이 관객들을 만났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상영된 배경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을 앞둔 시간, 구대희 감독과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가 함께했다.



<그녀들의 점심시간> 발제문: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http://indiespace.kr/3434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소현): 이 영화는 가사노동을 비롯한 노동환경 속에서 여성성과 식사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어떻게 공동체적 가치를 지니며 연대의 의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이하 이지원): 이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주목했다. 많은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공통적으로 삶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보통 우리가 취업준비 기간을 단지 준비 혹은 허비의 시간으로만 치부하지 않나. 그러나 그런 시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시간들이다. 또한 육아, 가사, 돌봄 노동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분명히 노동의 영역에 속하지만 ‘모성’이라는 신화 속에서 그 가치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먹는’ 행위로부터의 공동체와 연대가 주는 느낌이 좋았던 영화이다. 출연자들의 식사시간에서 느껴지는 끈끈함, 힘든 일상의 시간들을 서로 견딜 수 있게끔 하는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안소현: 실제 이 영화는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식사를 세대별, 직업별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구대희 감독(이하 구대희):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가 벌써 2년 전이다. 당시 자취 10년 차였는데, 하려던 것들이 다 잘 안 돼서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다. 매일 밥을 챙겨먹는 것도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가 그런 내 모습이 곧 인생으로 느껴졌다. 초라하게 자취방에서 대충 차려서는 밥상을 꺼내기도 귀찮아 바닥에 놓고 먹는 모습이 궁상맞으면서도 서글펐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의 식사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 혹은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점심시간을 통해서 한국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소현: 두 분 다 여성이라는 삶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계기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 따라 맺는 관계와 능력 발현이 달라질 것이고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많다보니 그 책임감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출연자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힘 같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지원: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여성의 문제가 전면적 담론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가령 청년 문제가 ‘N포 세대’로 담론화될 때 여성의 입장에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 얘기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중년층 여성 노동자들은 매우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찬값을 벌러 나왔다’는 인식 하에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노동문제 같은 부분들이 사회적 담론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이 아쉬워서 활동으로 이어나가게 됐다.





안소현: 여성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 않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벌어진 여성들의 자발적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녀들의 점심시간>은 다양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라운 점은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한 기준과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방점을 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점심식사라는 행위로 한국의 다양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달하고자 했다.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을 다루고자 했고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기보다는 우선 인터뷰가 가능한 분들을 물색했다. 처음엔 지인들을 섭외하기도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영화에 담기가 어려웠다. 여성이 많은 직업군인 식당, 환경 미화 종사자 분들을 꼭 섭외하고 싶었다. 



안소현: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식사하는 행위를 세세하게 쪼개어 보여줌으로써 그 사이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밥을 해서 먹(이)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라는 행위가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좀 더 이어가보고자 한다. 작년 페미니즘 운동을 재촉발 시키기도 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명백히 드러났다. 사건의 범죄자가 ‘피해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 죽였다’라고 정확한 워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검찰은 ‘묻지마 살인’으로 한정지었다.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성은 폭력 가까이에 놓여있는데, 언론과 사회 분위기는 이를 여성문제와 철저히 구분 짓고 있는듯하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 가져다준 변화는 여성과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보편적으로 나아가게끔 한 점이다. 시위 현장 속 얼굴 노출의 위험 등 여러 제약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꿋꿋이 동참했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작용했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불안을 느껴왔다는 것에 기반한다. 이런 목소리가 하나의 큰 움직임으로 터져 나온 데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응답했다면 결코 정신질환자의 일탈로 치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편의 경험으로 문제의식이 터져 나온 것이라면 적어도 사회는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우리 사회, 문화, 제도 등 전반에 도사린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단순히 성전쟁, 남녀갈등 조장 등으로만 몰아가는 점이 매우 아쉽다. 여성과 페미니즘의 이야기들을 보편의 영역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관객: 먹는 행위의 양상이 세대별로 다른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챙겨먹는 것도 힘든 것 같은데, 또 다른 세대에서는 먹는 것이 유일한 낙으로 기능하고 대화의 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구대희: 이 영화는 큰 갈등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배열순서가 매우 중요했다. 처음엔 그냥 쉽게 연령별로 배열했는데, 그렇게 하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같은 점심식사라고 해도 각각의 점심마다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나 재미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재밌게 느낄 수 있도록 순서를 다시 배열할 필요가 있었다. 크게 보면 연령대별로 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딱 그 틀에 맞춰서 구성한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장치들을 넣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연령대보다는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듯하다. 가령 경마장 환경 미화원 분들은 워낙 일이 고되다보니 같이 모여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자 휴식인 거다.





관객: 제작기간, 그리고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 등이 궁금하다.



구대희: 총 제작기간은 2년 반에서 3년 정도이다.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 제대로 갖추고 난 다음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고 제대로 촬영한 기간은 약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사실 엄청 많은 장면을 찍은 다음, 그중에서 아주 예쁘고 잘 나온 것들을 뽑아서 만드는 거다. 등장한 열 분 모두 다 인간극장을 찍을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이야기가 많은데, 어쨌든 콘셉트가 있었고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많이 편집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쉽다.



이지원: 영화를 만들기 전에 기획 의도 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나. 계획과 작품이 얼마나 부합하게 나왔는지가 궁금하다. 촬영한 결과물이 이전 의도와 달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점심시간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득을 하는 과정이었다. 제작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업물의 가치를 설득시켜야만 했다. 구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안도 나왔다. 그런데 다 엎어지고 되게 담백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업물이 완성됐다. 군더더기 없이 내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원: 영화가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점심시간이라는 게 힘이 되는 시간 혹은 즐거운 시간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희망적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구대희: 맞다.(웃음) 모두의 삶이 녹록치 않다.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꿈이나 희망 등을 품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영화 속에서 경마장 점심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반찬을 싸와서 다 같이 먹고 당번으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되게 보기 좋았다.



안소현: 개인적 성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여럿이 같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매우 이상적이지 않았나 한다. 요즘은 SNS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임을 찾는 경우도 있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사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는 여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장해 가져가야 할 것이기도 하다.





관객: 촬영의 원칙, 현장에서 지키고자 했던 윤리, 찍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더 듣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희망적으로 보았다는 활동가님께 질문이 있다. 요즘 현실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데 활동의 동력을 무엇에서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몇 번이고 촬영이 가능한 소재다. 한 번에 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몇 번에 거쳐서 촬영을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촬영을 하니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었는데, 항상 같이 먹자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노인정 촬영이 특히 그랬다.



이지원: 활동의 동력은 활동을 계속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인 듯하다. 돈도 시간도 많이 모자라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선배와 남자교수가 전부였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많이 만나고 있다. 자극이 된다.



안소현: 이 작품은 대상들과의 거리감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대상들과 가까워지려는 강박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진행을 이어나간 배경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듣고 싶다.



구대희: 치밀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웃음) 사람 자체가 아직은 많이 조심스러운 편이다. 카메라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평생 불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연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그들이 소탈했던 탓에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기본적으로 나를 찍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갖고 그 사람의 속마음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경지를 욕심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다가가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고 성격상 어려워하는 편이기도 하다. 출연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할 것도 있어서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은 미뤄두고 있다. 이제 막 이 영화에서 손을 뗀 기분이라 앞으로 차근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안소현: 인물들과의 거리감이 꾸준히 견지된 것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한 점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단면이 영화에서 툭툭 튀어 오를 때 한 개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활동가님의 계획도 묻고 싶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제 일 년 정도 지났는데, 초기 멤버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는 퀴어-페미니즘 활동에 집중해 활동할 수 있도록 이름도 바꾸고 채비를 할 예정이다. 많이들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다양한 여성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점심시간을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구대희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흔히 영화는 항상 특별한 것들, 특별한 이야기들, 특별한 사람들만을 담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도리어 종종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들이 아닐까. 점심시간이라는 한 단면을 통해 마주한 그녀들의 삶은 혹여 전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면 스크린 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역으로 ‘페미니즘’을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극히 일상적인 여성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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