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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도란도란인디토크후기] 지슬│오멸 (with 변성찬, 김선우)

by 도란도란도란 2013. 5. 13.


영화 : 지슬_오멸

일시 : 2013년 4월 2일

진행 : 변성찬 영화평론가

참석 : 김선우 시인





변성찬: <지슬>은 말하고 싶은 것 혹은 확인하고 싶은 것을 참 많이 담고 있는 영화죠. 비록 오늘 대화에 참석한 저와 김선우 시인이 감독은 아니지만 그를 대신해 함께 이야기 나눠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선우 시인님은 영화를 보신 소감이 어떠셨나요?


김선우: 저는 오늘 영화를 두 번째 봤는데,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이 자리에 기꺼이 오려고 했던 이유는 딱 하나에요. 무조건 잘 되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객 분들과 한 마디라도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의 입장에서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가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해요. 작년 <두 개의 문>같은 경우에도 비슷한 심정으로 많은 분들께서 영화를 아꼈는데, 단지 영화의 미학적인 부분을 떠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영화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 비극이죠.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비극을 통과하여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흔히 학습된 눈물이 줄줄 흐르는 비장한 전쟁 영화도 많은데 이 영화는 참 많이 다르죠. 눈물이 흐른다기 보다는 가슴 안 쪽으로 삼켜지는 먹먹함이 있잖아요. 제가 시인임에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맥락이 잘 잡히지 않는 접근을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정말 놀라운 영화가 왔다는 생각을 해요. 오멸 감독은 제주 출신이죠. <지슬>은 제주의 엄청난 비극을 다룬 영화인데, 영화 제작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 절제된 영상을 담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자 봐! 이게 비극이지?’하고 눈물샘을 바로 자극 한다기보다 우리 마음 속에 여러 겹으로 짜여진 비극의 무늬들을 쿡쿡 찌르듯이 돌진해 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요즘 제가 강정마을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요, 제주도는 정말 관광하기 좋은 보석같은 섬이죠. 그 아름다움에 반해 7개월 이상 머물렀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제주의 4.3항쟁을 그저 교과서적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주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아픔들이 있더라고요. 통계적으로 열 명 중에 한 명은 가족 중에 4.3사건에 연류된 희생자가 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연류되어 현실적으로 말할 수 없는 극히 내재된 비극성이 마음 속에 존재하는거에요. 그런 트라우마가 현재 강정과도 같은 곳에서 반영되어져요.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민 80% 이상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데 왜 강력히 항의하지 않냐’라고 궁금해 하셔요. 이 분들에게 4.3사건의 트라우마가 그렇게 발현되는거에요. 국가 혹은 관공서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내보이는 것 부터에 죽음과 연결된 아주 짙은 비극의 그림자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죠. 그 65년 전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생생하게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곳이 제주도이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미군정에 의해 참혹한 비극을 겪은 땅에 또 다시 미군해군기지가 들어오면서 한 마을을 산산히 망가뜨려가는 비극이 다시 재현되고 있어요.

그러한 역사적인 맥락이 지슬 속에 겹쳐 보입니다. 끝난 과거가 아니라는 것, 현재형으로 저질러지는 일이라는 것이 <지슬>이라는 영화를 통해 강정마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오멸 감독님께서 65년전 죽어간 억울한 넋들을 해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처럼 우리가 이 비극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하는 예술가적인 자기명령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성찬: 말씀을 듣다보니 <잼 다큐 강정>이라는 영화의 김태일 감독 연출 부분에서 한 할머니께서 쉽게 입을 열지 못하다가 4.3의 악몽이 오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목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예술가의 자기명령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오멸 감독님은 그것을 운명이자 숙명이라고 이야기 하셨어요. 사실 오멸 감독은 어렸을 때 그저 주변 어른들 사이에서 쉬쉬하는 분위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왠지 버겁고 부담스러워 알려하지 않았다더라고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다양한 예술행위를 하면서 고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죠. 김경률 감독님이 돌아가시면서 선배에 대한 부채감과 아울러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4.3사건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이어도>를 제작했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오멸 감독 자신은 직접적인 연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님을 통해 큰 고모 역시 4.3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대요. 그만큼 섬 전체가 진동했던 대사건이었는데, 오랫동안 깊은 어둠에 묻혀있었죠.


김선우: 제주도에 괸당 문화라는 것이 있어요. 제주 말로 친척이라는 뜻인데 그 친척의 범주가 보통 10촌, 12촌이 되는 거에요. 제주라는 섬에서 살아온 이 사람들에게는 한 다리 한 다리 넘어가면 다 친척이 되는거죠. 그렇게 제주 토박이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마치 연좌제처럼 연관되지 않은 사람 없이 말할 수 없는 비극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지금 강정마을의 모습이 더 화가나요.

강정마을은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전통이 강한 마을이라서 하나를 결정하더라도 토론을 통해 결정해 왔대요. 그런 마을에 어느날 갑자기 해군기지를 짓겠다며 들이닥친거죠. 차분한 설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뜸 찬반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어요. 2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87명 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찬반 거수를 통해 결정된 청천벽력같은 일이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이미 매수된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러다 주민 분들이 뒤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반대하기 시작했어요. 마을 전체가 새까만 경찰들 즉 공권력에 포위 당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4.3사건 때 토벌대에 쫓겨 동굴로 올라가고 밀폐된 곳에서 생존에 대해 고민했던 것과는 강도가 다르겠지만 여전히 되풀이되는 비극이 현재형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끔찍했어요.

오멸 감독이 <지슬>을 만들 때 예술가로서 태어나 자란 고향의 예술가로서 자기명령이 있었겠죠. 우리에게는 관객으로서의 자기명령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이 먹먹한 것들이 찔러대는 비극을 목도했다면 그런 자들에게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멸 감독은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어요. 열악한 상황에서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고, 이제는 관객의 몫이 남았죠. 그래서 그 관객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고민해보는 계기가 이 영화를 통해 이루어졌으면 해요.




변성찬: 영화가 그리고 있는 4.3이 단지 60여년 전의 과거가 아니라 굉장히 현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는 것을 힘주어 말씀해 주시네요. 제가 말씀드린 <잼 다큐 강정>의 할머니 말 속에서도 4.3의 악몽이라는 것이 두 가지로 표현되는데, 하나는 원인을 알 수 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과 괸당으로 표현되는 공동체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 <지슬> 안에서도 복합적인 느낌으로 나타나죠. 상표가 토벌대가 아닌 만철에 의해 죽임을 당하잖아요. 둘의 관계는 공동체 일원이며 선의의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게 어떤 덧에 씌여 행동이 일어나는 양상이 현재 강정의 모습과 같아요. 민주적이지 못한 해군기지 찬반의 과정으로 어제까지 이웃사촌 이상의 친척이었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분열되어버렸으니까요.


김선우: 영화를 보면 정말 모든 인물들이 실제 인물 같아서, 주로 어떤 배우들이 연기를 하신건지 궁금해요.


변성찬: 오멸 감독의 캐스팅 원칙은 제주도 사람은 제주도 사람이 육지 사람은 육지 사람이 맡는 것이에요. 방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어도 같은 경우에는 대사가 한 마디도 없음에도 제주도 분이 역할을 맡으셨었죠. 이 영화에서 가장 구박받는 불멸의 귓것이라고 별명을 붙여드린 이경준 씨는 전문배우가 아니에요. 경준씨와 만담커플을 이루는 용필 역의 양정원씨 같은 경우에는 꽤 알려진 가수 분이시고, 굳이 <지슬>에 출연하시는 분 들 중에 생업이 배우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은 오멸 감독이 이끄는 자파리 연극집단에 속한 분들이 계시지만 거의 조연에 가깝고, 우리 인상에 강하게 남는 역할들은 실제 전문 배우가 아니세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표현해낼 수 없는 연기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김선우: 연기가 정말 사실적이었는데, 놀랍네요. 저는 특별히 마음에 각인이 됐던 장면이 순덕이가 죽고 제주의 울음이 그 능선과 순덕의 몸으로 비춰질 때 가슴 속으로 날카로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심지어 그 장면으로 꿈도 꿨고요.


변성찬: 사실 제가 <지슬>에서 정서의 복합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던 장면 중 하나가 그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장면이 정길의 마지막 행위인데, 이 영화에서 가장 기이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 바로 주정길이죠. 김선우 시인은 정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김선우: 감독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슬>이 4.3의 비극을 우리의 시각에서 보여주려고 작정한 영화라고 한다면 봤을 때 불편한 장면들이 꽤 많아요. 정길의 마지막 장면 역시 몹시 불편하죠. 저라면 굉장히 망설였을 것 같아요. 오멸 감독이 그래서 예술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관객: 말씀하신 정길의 마지막 장면처럼 제주도민에 대한 분노와 슬픔만을 표현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토벌대의 슬픔까지 표현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변성찬: 저는 <지슬>에 두 편의 영화가 합쳐져 있다는 느낌이 강해요. 영화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그리는 방식과 토벌대를 그리는 방식이 둘로 나뉘어지죠. 아주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토벌대를 그리는 방식은 상업영화 혹은 장르적인 영화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토벌대의 인물들 하나하나가 역사적인 전형성을 갖고있는데, 예를 들어 마약을 하는 김상사의 경우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병사나 장교로 참전하면서 마약 습관이 들어 그대로 토벌대에 파견된 사람들이 있어서 토벌대의 지휘관들이 종종 마약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악명높은 고중사의 경우에도 당시 빨갱이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토벌대에 투입했기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고요. 이러한 인물들이 굉장히 압축적인 방식으로 역사적 전형성을 갖고 설정되었죠. 어느정도 토벌대에 대한 묘사가 압축적이긴 하나 당시 역사적인 전형성을 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선우: 역사적인 전형으로서의 군인들이 상업영화적인 구도라면 악인으로 등장해야하잖아요. 악인으로서 사람들을 토벌하고 억압하지만 이 사람들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고통과 슬픔까지도 함께 포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질문하신 것 같아요. 저는 <지슬>이 예술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상업송을 갖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출발점 자체가 다른 영화니까요. 우리에게 벌어졌던 비극의 연원을 찾아내고 그로 인해 맺혀있던 한을 해원하려는 즉 예술이 갖고 있는 고유한 치유의 욕망이 상업적인 욕망보다 강력하게 작동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선과 악으로 완전히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잖아요. 그 한 인간 속에 존재하는 희노애락에 대해 간과하지 않으려 한 작가의 노력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변성찬: 아울러 마을 사람들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 앞서 말한 역사적 전형성과 구별하자면 신화적 상징성을 찾아볼 수 있어요. 오멸 감독이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이러한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스스로를 60년 전에 돌아가신 그 분들의 혼이 깃든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뒷말은 ‘사실 그 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삶과 죽음에 대해 억울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고 했답니다. 극 중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웃음 코드가 많잖아요. 60년 전의 제의 형식을 빌려 원혼을 불러오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원혼이 결코 원기로 재현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한 모습과 대응되는 토벌대의 모습이 조금 전 김선우 시인이 말씀하셨던 방식과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말을 보태봅니다.





관객: 저는 <지슬>을 보면서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오멸 감독님께서는 어느 한 쪽을 비판한다기 보다 기억하자는 의도를 갖고 영화를 만드셨다고 하는데,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유시민 전 국회의원의 저서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심판대 위에 올려놓아야 더욱 민주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저는 그 점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오멸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판단에 어떠한 의도가 없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안정숙(인디스페이스 관장): 저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갖고 감독님께 질문을 한 관객이었어요. 오멸 감독님은 제주도 사람으로서 어떠한 것을 주장한다기 보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부 보여주고자 하셨어요. 김선우 시인님께서 참 적합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오멸 감독님은 제주에서 65년전 있었던 일에 대해 어떻게 말 해야 하는가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기명령을 수행하신 것이고, 그 이후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이죠. 이 이야기를 역사적인 심판대에 올려 어떻게 더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김상사를 솥에 넣은 장면이 참 그로테스크하지만 의미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길 역을 한 배우를 유심히 보시면 여자 배우에요. 제주도에 ‘설문대 할망’이라는 설화가 있어요. 제주를 만든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데, 땅이 척박하고 식량이 없으니 오백명의 자식들에게 끼니를 챙기는 일이 어려워 불을 지피고 솥 안으로 들어갔대요. 그리곤 자식들이 집으로 돌아와 솥 안의 죽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었는데 어머니의 뼈를 발견한 것이죠. 그 ‘설문대 할망’ 설화를 제주 출신 작가로서 꼭 영화 안에 넣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지슬> 안에서 정길은 역사를 지켜보는 사람과 솥 속으로 들어간 설문대 할망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같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솥 속에 들어간 설문대 할망을 함께 먹은 것과 같아요. 그런 사람으로서 4.3이라는 역사를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어떻게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선우: 저는 지금 선생님 말씀을 듣고 정길 역을 한 배우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멸 감독님은 더 위대한 분이셨군요.


변성찬: 사실 이 영화의 처음 시작은 ‘꿀꿀꿀’이라는 제목으로 감자가 아닌 돼지가 주 모티브였는데, 중간에 포기한 이유가 영화가 끔찍해지기 때문이었어요. 제주 4.3 사건을 어떤 형태로든 겪었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악몽을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순화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각자 키우고 있는 돼지를 돌볼 수가 없으니 배고픈 돼지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채 매장되지 못한 시체들을 먹었대요. 그리고 그 돼지들은 토벌대에게 잡아먹혔죠. 그러므로 마지막에 김상사를 솥에 삶은 행위는 이러한 일종의 윤회를 군인의 죽음으로써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과거를 불러내어 지금 시점에 ‘복수하자’라는 의미보다는 근본적으로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신화적인 예술성을 오멸 감독이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김선우: 처음 뒷간에서 큰 일을 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제주도는 화장실 아래에 돼지를 두고 키우는데, 그렇게 키운 돼지를 사람이 잡아 먹죠. 그렇게 먹고 먹히는 순환이 ‘설문대 할망’ 이야기와 완벽에 가깝게 딱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삶과 죽음의 맞물림 그리고 순환과 윤회적인 어떤 소통이 예술적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절되어 있지 않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이 열리는 모습이 제주의 여신인 설문대 할망의 꿈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오늘 <지슬>을 두 번째 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 있는 것처럼 여러번 볼 때마다 발견할 수 있는 무늬, 깊이, 넓이 이런 것들이 아주 다채롭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배우게 되면서 관객의 몫을 실천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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