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한줄 관람평

송희원 | 나답게 살려면 솔직해져야 해

이현재 | 나에게도 당신을 아파할 여유가 있다면 좋으련만, 헿

박영농 | 히치콕과 고다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홍상수

이지윤 | 수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해변으로 밀려드는 무용한 문장들. 한데 모이는 아득한 고독

최지원 | 고독에 닿은 사랑. 홍상수식 고백적 문법의 경지

김은정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 리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는 사뭇 달라진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된다. 공포 영화의 공포는 배가 되고 범죄 영화의 잔혹함은 더욱 깊숙이 다가온다. 영화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화 시작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문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관객은 자연스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탐색하기 위해 한시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것은 두려움에 떠는 공포 영화도, 마음 졸이는 범죄 영화도 아니다. 얼마 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두 사람의 영화이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의 흥미를 끌기는 충분하다. 

이 영화를 논하기에 앞서 김민희라는 배우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둘의 호흡. 먼저 감독이 김민희라는 배우에 대한 이해력과 표현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점이 느껴진다. 그 배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고 있고 어떤 힘을 뿜어내는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 특히 지인들과의 술자리 장면에서 영화 자체가 ‘영희’라는 인물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고 관객은 그 존재감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김민희 배우는 영희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 매우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그의 연기에 매혹 된 것인지, 영희라는 인물에게 빠진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배우인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외국으로 간다. 이후 영희는 한국에 잠깐 방문해 지인들을 마주한다. 그리곤 말한다. 아무도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세상에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그는 불륜관계로 손가락질 받는 자기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기 위해 저렇게 말한 것이었을까. 사랑이란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자격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고, 단지 자신은 사랑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한탄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던 걸까. 영희의 지인들 또한 그를 두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영희와 감독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거냐고. 영화 내에서 영희와 감독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물들은 그들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영희와 감독 자신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부남 감독과 여배우의 불륜이 아니라 두 사람 간의 사랑이라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사랑이 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지에 대해 묻는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호소한다. 이 관계는 사랑이 아니냐고. 

영화에서 영희가 해변에 혼자 누워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알고 보니 우연히 만난 감독과의 일은 그의 꿈에 지나지 않았고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약속했던 대로 그를 찾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영희가 꾼 꿈에서 마주하게 되는 감독의 모습, 그리고 지인들과의 대화로 관객은 그가 오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영희가 한국에 와서 지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푸념을 털어 놓고, 해변가에서 감독과의 조우에 관한 꿈을 꾼 이유가 감독이 그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라면. 그는 사실 감독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영희와 감독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유지했을 그 둘의 삶. 어쩌면 그 꿈은 그가 미처 표현할 수 없었던 아쉬움의 토로가 아니었을까.



영희는 이 세상에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자칫 피로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열정적으로 외친다. 우리를 인정해달라. 그러나 설득 당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는 것이었다면, 관객들에게 영희와 감독의 사랑을 호소하려는 목적이었다면,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너무 솔직하고 필사적이기에, 천진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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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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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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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목) 14:20

4월 14일(금) 10:40

4월 17일(월) 16:00

4월 18일(화) 12:10

4월 19일(수) 11:00

4월 20일(목) 17:20

4월 21일(금) 15:10

4월 22일(토) 11:00

4월 23일(일) 13:00 | 19:30

4월 24일(월) 15:10

4월 25일(화) 10:10

4월 26일(수) 13:00

4월 27일(목) 13:00

4월 28일(금) 20:00

4월 29일(토) 11:00

4월 30일(일) 13:00

5월 1일(월) 17:20

5월 2일(화) 15:10

5월 3일(수) 19:30



이후 상영일정은 추후 공개됩니다.





 예매하기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INFORMATION 


제목: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각본/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송선미, 정재영, 문성근, 안재홍, 박예주

제작사: (주)영화제작 전원사

배급: (주)영화제작 전원사 / (주)콘텐츠판다

해외배급:  (주)화인컷

홍보/마케팅: 무브먼트 .MOVement

개봉일: 2017년 3월 23일

영화제: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Silver Bear for Best Actress) 수상 





 SYNOPSIS 


외국 어느 도시. 여배우인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고, 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고, 그게 자신의 순수한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겼다. 그는 이곳으로 온다고 했지만, 영희는 그를 의심한다. 지인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같이 해변으로 놀러 간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 같은 선배 언니에게 묻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의 강릉. 지인 몇 사람. 불편하고, 술을 마시고,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다. 초연한 척, 거친 척을 하는데 인기가 좋다. 혼자 남은 영희는 해변으로 놀러 가고, 해변은 맘속의 것들이 생생하게 현현하는 곳이고, 그리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곳이다. 사랑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어야 할까? 영희는 정말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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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제목: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각본/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송선미, 정재영, 문성근, 안재홍, 박예주

제작사: (주)영화제작 전원사

배급: (주)영화제작 전원사 / (주)콘텐츠판다

해외배급:  (주)화인컷

홍보/마케팅: 무브먼트 .MOVement

개봉일: 2017년 3월 23일

영화제: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Silver Bear for Best Actress) 수상 





 SYNOPSIS 


외국 어느 도시. 여배우인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고, 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고, 그게 자신의 순수한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겼다. 그는 이곳으로 온다고 했지만, 영희는 그를 의심한다. 지인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같이 해변으로 놀러 간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 같은 선배 언니에게 묻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의 강릉. 지인 몇 사람. 불편하고, 술을 마시고,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다. 초연한 척, 거친 척을 하는데 인기가 좋다. 혼자 남은 영희는 해변으로 놀러 가고, 해변은 맘속의 것들이 생생하게 현현하는 곳이고, 그리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곳이다. 사랑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어야 할까? 영희는 정말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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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각본/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송선미, 정재영, 문성근, 안재홍, 박예주

제작사: (주)영화제작 전원사

배급: (주)영화제작 전원사 / (주)콘텐츠판다

해외배급:  (주)화인컷

홍보/마케팅: 무브먼트 .MOVement

개봉일: 2017년 3월 23일

영화제: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Silver Bear for Best Actress) 수상 





 SYNOPSIS 


외국 어느 도시. 여배우인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고, 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고, 그게 자신의 순수한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겼다. 그는 이곳으로 온다고 했지만, 영희는 그를 의심한다. 지인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같이 해변으로 놀러 간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 같은 선배 언니에게 묻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의 강릉. 지인 몇 사람. 불편하고, 술을 마시고,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다. 초연한 척, 거친 척을 하는데 인기가 좋다. 혼자 남은 영희는 해변으로 놀러 가고, 해변은 맘속의 것들이 생생하게 현현하는 곳이고, 그리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곳이다. 사랑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어야 할까? 영희는 정말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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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어떤방문 : 디지털삼인삼색2009>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OwZ1T8






<어떤방문 : 디지털삼인삼색2009> 리뷰: 홍상수의 <첩첩산중>을 위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코마>, 라브 디아즈 감독의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와 더불어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으로 소개된 단편들 중 하나다. <첩첩산중>은 전주에서 촬영했고 그의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도 전주에서 촬영한 바 있다. <첩첩산중>, <코마>,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이 세 단편을 묶어 <어떤방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미숙(정유미)은 형부가 준 중고차를 몰고 전주에 있는 친구 진영(김진경)에게 간다. 그들은 작가 지망생이다. 미숙은 진영의 사정으로 스승이자 옛 애인인 상옥(문성근)을 만난다. 미숙과 상옥은 술도 마시고 모텔도 간다. 미숙은 상옥에게 말한다. “제가 쓰려는 건 선생님이 벌써 다 쓰셨잖아요!” 그에게 상옥은 동경과 애증의 대상이다. 그러나 질투를 비롯한 미숙의 감정들은 상옥에게 가닿을 리 만무하다. 이튿날, 미숙은 진영의 집에서 상옥의 시계를 발견하고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된 미숙은 분노에 찬다. 미숙은 배신감에 오열하는데, 곧 누그러뜨리기로 한다. 그는 또 다른 옛 애인 명우(이선균)를 전주로 부르고 둘은 명우와 술자리를 가진다. 명우도 잘 나가는 신예 중 하나다. 취한 미숙은 진영을 두고 명우와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다. 그들이 간 뒤, 진영은 상옥을 부른다. 





옛 애인들, 친구의 배신, 그리고 그가 가질 수 없는 것들. 미숙은 너절한 관계들에 집착하게 된다. 미숙은 다른 유명 작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모텔에서 나가는 상옥과 미숙을 보았다고 말한다. 일상을 떠나와 새 관계를 도모해도 미숙이 처한 굴레는 첩첩산중과 같다. 다음 날 아침, 넷은 해장국 집에서 마주친다. 명우와 미숙은 진영과 상옥을 뒤에서 욕하고 나갈 때 인사도 하지 않는다. 상옥은 그들을 쫓아가 혼낸다. 상옥에게 중요한 것은 체면이다. 그러나 미숙은 “선생님, 됐거든요. 창피한 줄 알아요.”하며 다시 차를 몰고 어딘가로 간다. 종국에 그는 그들 관계의 논리와 구도를 박찬다. 미숙의 열정은 ‘옥희(정유미)의 영화’로 다시 그려진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모두가 이야기 하는 ‘선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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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도 독립영화인: 거장들의 독립영화 
-<지리멸렬>,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심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여행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봉준호, 홍상수, 박찬욱, 류승완, 이창동.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감독들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의 롤모델인 이들. 그들의 시작도 독립영화였다.



1. 봉준호 감독 <지리멸렬>(1994)



<지리멸렬>은 1994년 당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던 봉준호 감독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영화는 조롱과 풍자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비교적 짧고 단순한 스토리로 이루어진 각 에피소드 안에는 봉준호 감독의 재치 있는 유머가 녹아들어있다. 또한 각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로 만들어졌는데,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플란다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등)를 보면 인물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이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데, <지리멸렬>에서도 긴박감 있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고작 30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을 굳이 세 개의 에피소드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연결된 세 개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마지막 에필로그에 도달하면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낸다. 그것은 청년 봉준호가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를 보며 던졌던 어떤 제스처일 것이다. 영화는 즐겁지만, 영화의 바깥으로 벗어나면 마냥 웃을 수 없는 씁쓸한 현실. <지리멸렬>은 영화 안의 세계와 영화 밖의 세계를 교묘하게 연결하면서 우리 사회를 냉소적으로 응시한다.

덧붙여서,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은 소수의 스탭들과 16mm 필름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 속에는 봉준호 감독이 시도한 다양한 영화 기법들이 엿보인다. 그중에서도 트래킹 쇼트, 180도 팬, 핸드헬드 그리고 의외로 긴 롱테이크 등이 돋보이고, 재치 있는 장면 구성과 편집이 인상적이다. 그의 꼼꼼한 장면 구성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홍상수 감독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지난 20년 동안 홍상수 감독은 열일곱 편의 장편영화와 세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스무 편의 필모그래피에도 여전히 홍상수 감독 영화에 대한 감상은 언어로 풀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독특한 작업 방식에서 나오는 영화의 자연스러운 톤,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의 특징 등 감독의 영화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 이런 스타일은 스무 번의 체험을 통해 관객들에게 체득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낯선 감독과 낯선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국내의 어떤 시상식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은 홍상수라는 인물의 등장을 ‘한국영화사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모의 세계에 등장한 동그라미는 도형의 역사를 다시 썼으며, 이 영화는 그 시작이 되는 작품이다(홍상수 감독은 보통영화들이 삼각형이라면 자신의 영화는 원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효섭(김의성), 동우(박진성), 민재(조은숙), 보경(이응경)은 내연과 짝사랑으로 얽힌 사이다. 영화에는 인물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시점이 등장하며 암전으로 시점이 바뀐다. 홍상수 감독은 네 명의 공동 각본가에게 인물 별로 시나리오를 담당하게 했다. 촬영현장에서 바로 시나리오를 쓰는 홍상수 감독의 현재작업방식과는 꽤 다르다. 선한 인상과 나긋한 말투로 등장한 소설가 효섭이 점차 살기를 띄어가는 모습이 초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송중기를 떠올리게 하는 서른 살의 배우 김의성은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가 현실을 향한 분노를 쌓아가는 모습을 점증하는 연기로 표현한다. “우리가 문학을 얘기하는데 왜 고기굽는 사람들이 끼어듭니까”처럼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찌르는 대사를 비롯,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홍감독 특유의 대사들은 데뷔작에서도 등장한다. 처음 40분간 아예 나오지 않던 음악은 스릴러에 어울릴 법한 무드를 띄며 뒤로 갈수록 짧게 자주 쓰인다. 아니나 다를까, 제 5의 인물이 개입하며 치정극의 익숙한 결말을 따르지만 결말을 보여주는 방식이 신선하다.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는, 흡인력이 대단한 영화다.




3. 박찬욱 감독 <심판>(1999)



<심판>은 박찬욱 감독이 <달은... 해가 꾸는 꿈>(1992), <3인조>(1997)를 연출한 이후에 만든 단편영화이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배우와 연기의 중요성을 이해한 것이 <심판>을 찍은 이후”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이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쌍의 부부와 장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미묘한 웃음을 유발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 한편으로는 영안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친절한 금자씨>(2005)의 교실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영화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행위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와 장면 구성이 돋보인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담당 공무원, 기자, 장의사, 한 쌍의 부부 그리고 여성의 시신-이 어떻게 조화롭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이 실마리가 되어, 이 영화의 예측 불가능한 결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제목 <심판>에 걸맞게 이 영화는 묵시록에 가까운 기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지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휴머니즘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즉, 현실과 상상의 미묘한 접점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4. 류승완 감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중학생 류승완은 동시상영관에 박혀서 하루 두 편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게 일상이었다. 상영관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는 스크린 속 세계를 동경하게 됐다.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은 후 고등학생 때는 점심을 거르고 모은 돈으로 캠코더를 사 초등학생 동생(류승범)과 영화를 찍고, 성인이 된 후엔 생계를 위한 일과 연출부 생활을 병행하며 데뷔의 꿈을 키워나갔다. 1996년, 류승완은 첫 단편영화 <변질헤드>(1996)로 감독이 됐다. 그리고 2년 후, 또 하나의 단편 <패싸움>(1998)을 만들었다. <패싸움>이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자 류승완 감독은 그 상금을 바탕으로 다음 단편을 만들었다. 한 작품의 성과를 다음 작품의 밑천으로 삼는 식으로 연달아 네 편의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편들이 모여 그의 첫 장편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가 됐다.

<패싸움>, <악몽>, <현대인>, 그리고 단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까지, 영화는 독립된 네 편의 단편영화로 구성돼있지만 하나의 중심 플롯이 작품들을 관통한다. 우연히 살인에 휘말리게 된 두 친구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하며 벌어지는 비극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 곳곳에서 저예산의 비애가 드러난다. 감독 본인이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밝힌 바 있듯 화면 내에 붐마이크가 등장하기도 하고, 마지막 씬에서는 이전과 달리 갑자기 눈이 내린 설원이 등장하나 돈이 없어 재촬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렌즈에 먼지가 묻어 멀리 있는 주인공이 안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제작상의 어려움이나 자잘한 실수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다. 대사가 끝나는 지점에 타이밍을 맞춘 화면 전환, 빠른 속도의 교차편집으로 재기발랄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질서 없는 막싸움부터 정교하게 합을 맞춘 액션까지 다양한 액션을 선보인다. 마지막 장면의 충격적인 비주얼까지. 데뷔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한 사람의 영화에 대한 지독하고도 뜨거운 열정이 영화가 된다면 이런 모습일 테다.




5. 이창동 제작 및 공동각본, 우니 르콩트 감독 <여행자>(2009)



<여행자>는 이창동 감독이 공동 각본 및 제작으로 참여하고, 우니 르콩트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중점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여행자>를 선택하였다. 이 영화는 아버지에 의해서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 픽션이 더해진 이 영화는 정적인 스타일을 통해 주인공 진희와 보육원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섬세하게 담아낸다. 특히, 주인공 진희의 얼굴을 담은 클로즈업 장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서글픈 정서를 전달한다. 또한 이 영화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특정 장면들은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주인공의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아마도 이창동 감독의 섬세한 시나리오 작법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여행자>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주인공 진희와 우니 르콩트 감독이 하나의 인물로 겹쳐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니 르콩트 감독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보육원 안의 이야기는 상당수 픽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인물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또한 우니 르콩트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히 감독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진희를 따라 각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것이다.



데뷔 감독이 독립영화로 시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탄탄한 자본을 등에 업고 시작하는 행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본의 한계에도 자신만의 세계를 얼마만큼 구현해냈는가 하는 것이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다. 지금도 숱한 연출지망생들이 미래의 거장을 꿈꾸며 영화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비롯해 어떤 분야든 꿈꾸는 곳을 향해 막 출발선을 떠난 사람들. 이 글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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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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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플러그 <어떤방문: 디지털삼인삼색2009>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OwZ1T8






<어떤방문: 디지털삼인삼색2009> : 불청객들의 노크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불청객들이 동네를 방문했다. 둘도 없이 각별한 사람, 낯선 사람, 한 때 각별한 사이였던 사람들로 관계의 깊이는 다르지만 초대 없이 찾아온 이들은 모두 불청객이 됐다. 결과적으로 가장 친했던 이는 뒤틀린 관계를 안고 분노한 채 돌아가야 했고, 낯선 사람은 새로운 인연을 만났으며, 한 때 각별했던 사람은 목숨의 위협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의 방문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어떤방문 : 디지털삼인삼색2009>은 새로운 곳에 들어선 이질적인 인물들을 소재로 한 세 편의 작품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한국의 홍상수,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라는 아시아의 영화 거장들이 힘을 합쳤다. 작품성과 예술성으로 손꼽히는 감독들이 영화 외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유롭게 만든 결과물인 만큼 개봉 당시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작품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될 때 매진행렬을 기록했던 것은 물론이고 이후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영화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이다. 미숙(정유미 분)은 전주에 살고 있는 친한 언니 진영(김진경 분)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미숙은 스승이자 옛 연인인 상옥(문성근 분)과 진영이 사제지간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미숙이 제일 존경하는 작가(은희경 분)는 미숙이 상옥과 함께 있던 순간을 목격한다. 한 때 연인이었던 사람은 자신과 가장 친한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거짓말을 한다. 동경하던 대상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켜버린다. 미숙의 예상치 못한 전주 방문은 첩첩산중 고난의 연속이다.



이어지는 작품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코마>다. 준일은 족자를 전해주라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언을 수행하기 위해 일본의 시골마을을 방문한다. 준일은 할아버지가 그 마을에서 어린 아이를 살렸고 그 대가로 족자를 선물 받았음을 알게 된다. 어떤 사연이 담긴지도 모른 채 낯선 곳을 방문했던 준일은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채를 선물 받으며 가족사를 접하고 마음을 나눌 인연까지 만난다.



마지막은 라브 디아즈 감독의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다.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금광회사가 문을 닫으며 희망이라곤 사라진 땅에 오래전 마을을 떠났던 여인 마사가 방문한다. 마사는 떠나던 시절을 생각하며 친구들을 찾아가지만 모두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한다. 화려하던 과거에 얽매여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내던 페르딩은 주변 인물들을 꼬드겨 마사를 납치할 것을 제안한다. 마사의 어린 시절 친구인 윌리는 원치 않는 상황에 고통받는다.


30~40분 분량의 단편이지만 세 편 모두에는 감독들 고유의 인장이 선명히 찍혀있다. <첩첩산중>에서는 권위를 앞장세워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는 교수, 스승의 재능을 질투하지만 애정을 갈구하는 제자 등 복잡한 감정들에 내몰린 인물들과 불편한 관계들이 등장한다. 배신감과 질투심에 휘말려 애매한 관계의 이성과 밤을 보낸 네 명의 남녀가 식당 앞에서 제 권위와 진심을 내세워 치받는 장면이 영화의 백미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코마>는 시냇물소리, 흘러가는 구름,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까지 깊은 산 속의 풍경을 조망하며 시작한다. 주인공과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걸으며 가족에 얽힌 아픔을 나누는 하쓰코는 감독의 자전적 인물이다. 감독은 족자와 부채에 담긴 장대한 가족사를 웅장한 자연 풍광에 담고 있다. <멜랑콜리아>(2008, 441분), <엔칸토에서의 죽음>(2007, 540분) 등 영화를 보는 일이 하나의 ‘체험’임을 인식시켜 온 라브 디아즈 감독에게 40분짜리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은 지나치게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모호한 장르적 특성을 바탕으로 흑백 화면에 필리핀의 근현대사를 담는 감독의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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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줄 관람평

차아름 | 같은 상황의 반복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말과 태도의 미묘한 차이

심지원 | 태도의 차이가 빚어낸 해학적 순간

추병진 | 종착역이 다른 순환선. 긴 호흡 속의 미묘한 변화들.

김가영 | ‘우리의 삶의 표면에 숨겨진 것들의 발견만이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리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태도의 차이가 빚어낸 해학적 순간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감독 홍상수의 영화인생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데뷔 이래로 매년 한 작품 이상씩 성실하게 영화를 만들어 온 그의 최근 행적에서 급물살을 타는 노련한 사공의 모습을 본다. 일 년에 한 편 그의 영화가 대중들에게 공개될 때마다, 그의 마니아층의 신뢰는 겹겹이 쌓여왔으며, 각종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외신의 찬사 역시 끊이질 않았다. 이번 신작 역시 그간의 것을 갱신하며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시공간을 영화적 장치로 영민하게 활용할 줄 아는 홍상수식 유머, 이번에는 ‘수원’ 그리고 ‘지금’과 ‘그때’다.



예정된 특강 날짜 보다 하루 먼저 수원에 도착한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는 행궁을 산책하던 중, 화가 윤희정(김민희 분)을 만난다. 처음 윤희정을 본 순간부터 호감을 느낀 그는 그녀를 따라 커피숍, 작업실, 일식당 등 근방을 전전한다.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시공간의 이동은 이로써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핵심은 이 영화가 크게 1부와 2부라는 두 가지 경우의 수로 나뉜다는 것에 있다. 둘의 시작은 같으나, 끝은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에서 함춘수는 윤희정의 말에 긍정적인 감탄사와 함께 맞장구를 치는 것은 기본, 작업실에서 마주한 그녀의 그림에 관해서도 칭찬일색이다. 그는 윤희정과 함께 하는 내내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알 것 같아요’와 같은 말들로 동조의 뜻을 강력히 내비친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해주는 함춘수로 인해 윤희정은 ‘이 남자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진다. 달콤한 만큼 마음을 일찍 열고, 또 그 만큼 쉽게 상처 받는다. 



이와 달리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함춘수는 감정 표현에 있어 직설적이다. 그가 윤희정에게 하는 말들은 무조건적인 감언이설보다 현상에 대한 솔직한 지적이 주를 이룬다. 예컨대 그는 윤희정의 그림에 대해서도 ‘상투적인 것으로 자기 위안을 얻으려는 작품’이니 ‘좀 더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혹평을 아끼지 않는다. 다소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솔직함은, 1부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고백을 통해 더욱 거침이 없어진다. ‘사랑합니다. 결혼하고 싶어요.’ 이어지는 부끄러움과 난처함은 보는 이들의 몫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버릇처럼 환경을 탓한다. 문제 상황이 생긴 이유는 우리가 하필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그런 사람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1부와 2부를 구분 짓는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주인공 함춘수의 ‘태도’다. 그가 태도를 달리하는 순간, 변화하는 것은 비단 본인만이 아니다. 첫째로 그가 추구하는 바인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대상이었던 윤희정의 태도가 가장 가시적인 차이를 보인다. 더불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의 공기가 달라지며, 이는 곧 전혀 다른 두 가지 양상으로 귀결된다. 사소한 판단이 작용과 반작용을 반복할 때, 미세한 차이는 커다란 영향력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는 사소한 태도의 변화들이 모여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홍상수는 노련한 두 배우를 통해 이에 대해 분명한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린 지’ 비교적 명확한 답을 내린 듯하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순간순간 일구어내는 소소한 깨달음 같은 것일 테다. 판단을 달리하는 것도 우리의 몫, 이를 통해 삶의 매 순간을 호흡해 나가는 것도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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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의 남자들 - 홍상수 영화 주연 배우 4인방 탐구 
-배우 김상경, 유준상, 이선균, 정재영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지난 9월 24일 홍상수 감독의 17번째 장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개봉했다. 이번 작품으로 정재영은 <우리 선희>(2013)에 이어 홍상수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추었다. 이에 정재영이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이 있다. 특히 그의 영화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지는 ‘찌질한 남자’를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 그들의 성격이 그렇지 않을까 의심이 될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김상경과 유준상, 이선균, 그리고 최근 정재영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이른바 ‘홍상수의 남자들’로 손꼽을 수 있다. 여러 홍상수의 영화를 통해 특유의 찌질함을 선보였던 네 배우의 작품과 작품 속 그들의 연기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1. 뻔뻔하게 유쾌한 남자 김상경


홍상수 감독의 초기 영화부터 페르소나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배우가 바로 김상경이다. <생활의 발견>(2002)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극장전>(2005), <하하하>(2010)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김상경 이후 숱한 배우들이 ‘홍상수의 남자들’로 이름을 알려왔지만, 그 중에서 홍상수의 언어를 이토록 뻔뻔하면서도 유쾌하게 표현해내는 배우는 전무후무 김상경이 유일하다.


(▲ <하하하>의 '문경'역 김상경)


<생활의 발견>의 경수, <극장전>의 동수 그리고 <하하하>의 문경. 이름조차 비슷한 세 인물모두 배우 김상경이 분했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는 연극판에서 영화로 진출한 배우다. 어리숙해 보이다가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경수의 모습에서 뻔뻔함과 순진함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발견할 수 있다. 무작정 떠난 여행길에 마주한 두 여자 명숙(예지원 분)와 선영(추상미 분)을 향해 은근하게 드러내는 욕망과 합리화가 그 근거다.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이 되지 말자’는 영화 속 대사처럼, 김상경의 경수는 다소 불편하고 어색한 이야기들이 먼 타인의 것이 아니라, 실은 피부로 느낄 만큼 근접한 것임을 인지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극장전>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허상이 모호하게 변주되고 있는 이 영화에서, 10년 동안 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하고 있는 반(半) 백수 동수 역시 찌질한 욕망을 감추지 못한다. 극에서는 ‘죽고 싶다’는 말을 그토록 반복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자기 합리화에 대한 김상경 식 해석이 이 영화의 최대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하하하> 속 문경은 비교적 호쾌하고 솔직하지만, 특유의 후안무치는 여전하다. 문경은 통영에서 우연히 만난 성옥(문소리 분)에게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순정이라는 이름 아래 강력히 호소한다. 적당히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적당히 뻔뻔할 줄 아는 문경은 그 어느 때보다 김상경이라는 배우에게 잘 어울리는 옷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장 뻔뻔하면서도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도맡아 해 온 배우 김상경이 있었기에, 홍상수식 유머 코드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2. 진지한데 웃긴 남자 유준상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을 시작으로 유준상은 <하하하>, <북촌방향>(2011), <다른 나라에서>(2012), 단편 <리스트>(2011)등 홍상수 감독의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하하하>,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 는 칸 영화제에 3년 연속 초청되며 그가 명실공히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것을 입증했다. 


(▲ <다른 나라에서>의 '안전요원'역 유준상)


유준상은 특유의 말투를 가지고 있다. 꾹꾹 눌러 말하는 듯 진중하면서도 어딘가 코믹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이런 점은 관객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남긴다. 여전히 구차하고 찌질하지만 진지하고 서글서글한 그의 캐릭터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처음 주연을 맡은 <하하하>에서 그는 극중 가장 유쾌하지만 우울증에 걸려 약을 달고 사는 괴짜 같은 캐릭터다. 극중 불륜관계에 있는 연주(예지원 분)를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만취상태로 큰아버지에게 생떼를 쓰며 연주를 소개하는 대책 없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런 천연덕스럽고 비논리적인 모습들이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북촌방향>은 선배를 보러 서울에 온 영화감독 성준의 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상황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실수를 되풀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다짐하는 모습이 한없이 구차하고, 그런 모습들로 반복적인 유머를 이끌어낸다. <다른 나라에서>의 유준상은 어쩐지 귀엽다.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서글서글한 그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이 영화에서 그는 단순한 배우 역할만 하지 않았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말했듯이 바닷가 배경에 쓰일 텐트를 준비하고 우연히 챙긴 랜턴이 영화의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됐다. 또한 즉석에서 ‘안느송’을 작곡하기도 하며 그는 점차 배우 그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유준상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 얼마 전 개봉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도 적은 분량이지만 꾸준히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가 감독에게 얼마나 신뢰가 쌓인 배우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3. 버럭 하는 뻔뻔한 남자 이선균


<밤과 낮>(2008),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우리 선희>까지. 우리는 홍상수 감독의 다섯 작품에서 이선균을 볼 수 있다. 그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남자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찌질하고 뻔뻔한 남자로 주로 그려진다. 


(▲ <옥희의 영화>의 '진구'역 이선균)


특히 그는 짜증 연기의 1인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버럭 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옥희의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주문 외울날’에서의 그는 아내에게는 핀잔을 듣지만 감독으로서의 허세를 가진 인물이다. 상대를 은근히 무시하기도 하고 애매한 말들도 학생을 훈계하며 버럭 화를 내버린다. 또 송교수(문성근 분)의 비리를 캐묻지만 자신 역시 곤란한 상황에 빠지자 짜증 섞인 대응을 하는 인물이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의 그도 뻔뻔하기 그지없다. 해원(정은채 분)과 불륜관계이지만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구차하게 설명을 하고 교수로서의 지위도 잃고 싶지 않아한다. 그러나 해원의 옛 남자 얘기에 화를 내며 욕하고 심지어 혼자 울기까지 한다. 반면 때로는 어딘가 애틋하고 짠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옥희의 영화>의 ‘키스왕’에서 진구는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만날래? 만나줄래?”, “나 니가 너무 좋아.” 와 같은 말들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을 뱉는다. 다른 친구들에게 또라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진구의 그런 모습이 너무도 간절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우리 선희>에서의 문수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선희(정유미 분)가 아직 자신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고 착각하며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문수를 연기한다. 다른 두 남자 주인공 역시 선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쩐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수가 세 주인공 중에 가장 불쌍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이선균은 욱하고 짜증 많은 전형적인 찌질함을 보이지만 뭔가 애처로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다.   




4. 비범하게 친숙한 남자 정재영


‘홍상수의 남자들’ 가운데 최신의 계보를 잇고 있는 배우가 바로 정재영이다. 그는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대중들에게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러한 꾸준함 덕분이었을까. 그는 우리 주변에 꼭 하나 있을 법한 그런 모습으로 어디서나 존재감을 발한다. 물론 홍상수 영화에서도 그 친숙함은 예외가 없다. 


(▲ <우리 선희>의 '재학'역 정재영)


두 사람의 첫 호흡이 이루어졌던 작품은 <우리 선희>다. 정재영은 선희(정유미 분)를 둘러싼 세 남자 중 선배 재학을 연기한다. ‘뭐든지 깊게 파고, 또 파봐야 안다’는 문수(이선균 분)의 말에는 그저 타박만 늘어놓던 재학이, 다른 시간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선희에게 흑심을 내비치는 술집 신은 단연 이 영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이선균의 문수가 ‘애걸복걸’하고, 김상중의 최 교수가 ‘천진난만’하다면, 재학의 시작은 제법 ‘능수능란’하다. 그러나 결국엔 문수와 최 교수를 능가하는 애걸복걸함과 천진난만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배우 정재영이 성공적으로 끌어낸 재학의 찌질함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첫 신에서 행궁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재영의 익숙한 뒷모습과 구겨진 점퍼는 왠지 모를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특강일 보다 하루 일찍 수원에 도착한 영화 감독 함춘수(정재영 분)는 행궁 산책 중 만나게 된 화가 희정(김민희 분)에 반한다. 그 후 그녀를 따라다니는 함춘수의 모습이 두 가지 경우의 수로 구성되어 영화의 1부와 2부가 된다. 각 부에서 그가 희정에게 취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1부의 함춘수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말로 희정을 꾀어내는 것에 비해, 2부의 그는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다. 태도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 또한 만들어낸 것이 자명하나, 결국 인물이 가진 성급함과 친숙함이라는 본질은 같으며, 그것이 인물의 가장 큰 매력인 동시에 배우 정재영의 매력이기도 하다. 정재영은 실제 모 인터뷰에서 스스로 함춘수와 굉장히 닮아 있어, 애써 연기하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진 캐릭터 분석이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수상의 쾌거를 안겨주었던 것은 아닐까.



김상경, 유준상, 이선균 그리고 정재영까지. 앞서 살펴 본 네 명의 배우들은 각기 각색의 독특한 캐릭터 형성을 통해, 홍상수 영화를 관통하는 ‘찌질함’이란 키워드를 실현해왔다. 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만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 감독 못지 않은 존재감을 발하는 것이 숙명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꾸준했기에, 위 네 명의 배우들은 비단 ‘홍상수의 남자들’에 그치지 않고 ‘홍상수가 사랑하고, 두 번 이상 찾아간 남자들’로 거듭날 수 있었으리라.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행보를 기대하는 동시에 응원한다. 더불어 새로이 홍상수를 사로잡을 배우가 멋진 작품으로 나타나, 그 계보를 이어가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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