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三人行): 영화 공간 탐방기 

- <최악의 하루> 서촌, 남산 / <춘몽> 수색 / <혼자> 신당9재개발구역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최미선,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때때로 영화 속 공간은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인물들의 행동, 벌어지는 사건, 흘러가는 시간 모두 공간 위에 적히고 쌓인다. 우리는 공간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보고, 나아가 그 영화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렇게 기억된 공간은 그 영화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인디즈는 2016년 하반기에 개봉한 영화 중 특히 공간이 돋보였던 세 편의 영화 <최악의 하루>, <춘몽>, <혼자>의 장소를 탐방해 보았다. 최미선 관객기자는 <최악의 하루> 속 서촌과 남산을 다녀왔다. 매일 연습실에서 나와 걷는 길에서 다시 한 번 살짝 벗어나 한여름과 초가을의 그 날을 문득 떠올릴 ‘은희’를 상상하며 그녀의 시점으로 새 하루를 구성해보았다. 한예리 배우의 발걸음이 향하는 또다른 곳인 <춘몽> 속 수색역 근처는 전세리 관객기자가 찾았다. 수색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와 시간성을 되짚으며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번 기사의 제목으로 차용한 ‘삼인행’은 <춘몽>의 제목 후보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형주 관객기자가 <혼자>의 신당9재개발구역을 방문했다. 온전한 동네의 이름조차 잃어버린 이곳은 주인공 ‘수민’이 끝끝내 지우지 못한 기억들이 묻어나오는 곳이다. 구부러진 골목들 사이에서 길을 헤매다 문득 자신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이 세 공간 탐방에서 인디즈 '삼인'이 만난 스승은 작품에 한껏 밀착한 일상의 시간들이었다. 작품-나-공간의 교류가 매우 묘한 느낌으로 우리를 채워주었다. 이제 3인을 따라 작품 속을 걸어보자. 



1. <최악의 하루> 은희 따라 걷기


초록이 물든 뜨거운 여름날의 남산은 폭발 직전이던 은희의 하루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시간으로부터 여러 달의 흐른 지금, 그곳은 오히려 흑백에 가까운 장소가 되었다. 어디서도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빼곡히 들어찬 앙상한 나무들과 그것을 실감케 하는 차가운 공기만이 가득했다. 어떤 아쉬움도 없이 이렇게 변해버린 계절 속에서 은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뜨거웠던 여름이 주춤하고 가을이 올 것만 같았던 날, 끝도 없이 걸었던 그 길을 은희가 되어 다시 걸어보았다.



아… 그날 진짜 최악이었지

‘서촌은 이제 나에게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연습이 끝나고 골목 골목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끔 여기 오는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는데 이젠 어디든 능숙하게 잘 찾아준다. 그때마다 그 일본인이 생각난다. 이름이 료헤이였던가? 아무튼.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은 하늘이 작정하고 나를 괴롭히나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는 일로 먹고 살고 여전히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다. 아,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날 이후로 SNS는 안 한다. 그 모든 일이 다 트위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지워버린 후 아직까지도. 좀 심심하지만 그 덕에 연기 연습에 더 집중하고 있다.’



여길 다시 올 줄은 몰랐다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남산은 겨울이다. 절대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이 길에서 그날을 회상했을 때 가장 나를 사로잡는 기억은 끔찍했던 삼자대면의 순간이 아니다. 하루의 끝에서 료헤이와 우연히 다시 만나 걸었던 어둑해진 산책로, 그리고 의미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는 언어로 서툴게 나눴던 대화이다. 이곳이 여름을 잊은 것처럼 나도 그날을 지나 보낸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날 료헤이가 말해준 소설 속 여자도 이맘때쯤 이 길을 걸었을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다던 무표정의 그 여자. 어쩌면 그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좀 안심했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돌아보았던 캄캄한 산책로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이야기는 해피엔딩일 테니까.’



‘날씨가 좋다. 그날도 이 말을 했던 것 같다. 겨울은 그 계절만이 가질 수 있는 온도와 냄새가 가장 잘 느껴지는 계절인 것 같다. 바람이 코 끝에 닿을 때 괜히 공기도 좋게 느껴지는 정도의 냉기. 하지만 곧 계절은 변하겠지. 그런데 료헤이는 정말 그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마쳤을까? 얼마 동안은 서점에 들러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을 찾을 것 같다. 팬레터를 보내야지.’ 



 INFORMATION 


제목: 최악의 하루

각본/감독: 김종관

출연: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이희준(특별출연)

개봉일: 2016년 8월 25일











 SYNOPSIS 


‘어떻게 오늘, 이래요?’

늦여름 서촌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이희준)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과연 이 하루의 끝은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2. <춘몽> 다음 계절이 봄이라 하니 


<춘몽> 주요 배경지인 수색에 다녀왔다.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수색은 흑백 정서를 가진 곳이다. 그는 5년 동안 상암에 살았지만 수색이 컬러로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상암은 신도시이고 수색은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친 곳이다. 이곳은 언뜻 서울 교외나 다른 지역에 다다른 느낌을 준다. 



수색역 옆 굴다리를 지나면 장엄한 신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그곳에서 모종의 시간차를 느꼈다. 수색역 굴다리에 ‘수상한 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기도 했다. 그 이름처럼 수색은 수상하고 오묘한 곳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거쳐 출퇴근 한다. 영화에서 ‘예리’와 세 남자는 수상한 굴을 통해 한국영상자료원에 간다.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 없이 목도리를 뒤집어쓴 채로 잠시 거닐었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향수 비슷한 여운이 남는다. 입구에 채소와 과일을 잔뜩 내놓은 슈퍼마켓, 문방구 앞 뽑기와 게임기, 비 오는 날의 분식집, 아이들의 하굣길. 굴다리 하나만 지나면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들이 아주 묘한 느낌을 주었다. 동네 이곳저곳을 거닐다 ‘주영’이 고양이 밥을 주던 주택 앞에 가보기도 했다. 그 집은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오르막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렴풋이 방송국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 사람들이 길을 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리와 세 남자가 앉아있던 슈퍼에 갔다. 가게 이름을 몰라 사진만 가지고 물어물어 갔다. 행인에게도 묻고 주민센터에 들어가 묻기도 했다. 덕분에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간판에는 ‘윤창슈퍼’라고 쓰여 있었다. 이전 사진에는 가게 앞에 평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카시아 까페로 바뀌어 있다. 주민들은 그곳에 옹기종기 앉아 추운 몸을 녹일 것이다.   

다시 역으로 가는 길, 멀리서 역을 바라보다 역 계단을 내려오던 예리의 모습이 스쳤다. 밤이 되니 여름처럼 비가 쏟아졌다. 많은 비. 맑은 날 다시 가보고 싶다. 햇살 잔뜩 스미는 겨울 끝 무렵, 또는 어느 봄날에.



 INFORMATION 


제목 : 춘몽 春夢

각본/감독 : 장률

출연 : 한예리,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이준동, 이주영

특별출연 : 신민아, 유연석, 김의성, 김태훈, 조달환, 강산에

개봉 : 2016년 10월 13일












 SYNOPSIS 


 “바보 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물간 건달 익준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정범

어리버리한 집주인 아들, 어설픈 금수저 종빈

그리고 이들이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예리가 있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가 운영하는 ‘고향주막’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오아시스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그들만의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예리의 고향주막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3. <혼자> 기억도 철거될 수 있을까 


밤에 작업실에서 이곳을 보고 있으면 꼭 내 뇌, 머릿속 같아

<혼자> 속 수민은 이상한 꿈에서 계속 헤맨다. 깨도 깨도 다시 돌아오는 이 골목을 보며 그는 마치 자신의 머릿속 같다고 말한다. 그 대사처럼 <혼자> 속 공간은 분명히 기억,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상징이다. 가파른 계단, 꾸불꾸불 끝없이 이어진 골목들로 이루어진 신당9재개발구역은 시대와 삶의 시간이 가득 배어있음과 동시에 기한 없이 연장되는 철거를 앞두고 버려지고 낡은 모양새로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골목을 들어서면 종종 대문이 열린 집들이 보인다. 장독대와 빨래가 널려있어 마당인가 기웃대보면 또 다른 집으로 연결된 길이 숨어있다. 마당이자 마당 아닌 곳, 문이지만 닫을 수 없는 문들이다. 애초부터 계획적으로 지어지지 않은, 필요에 따라 들어오고 팽창하고 쇠퇴하며 남은 공간의 틈을 엿본다.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깡그리 다, 새로, 시작하게

다른 골목으로 들어오니 빨간 깃발들이 가득하다. 이 빨간 깃발은 재개발에 반대하는 표시이다. 현재 재개발 찬반이 강력히 대치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경각심이 느껴지게 묻는 분들이 있었고, 하루 아침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이야기를 처음 보는 나에게 하는 분도 있었다. 아마 ‘더 나은 삶’이 철거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현재의 부정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 공간을 다 부수고 새 건물을 뚝딱 짓는다면 갖고 있던 모든 기억이 다 없어지는 걸까 궁금했다. 이곳에 수민의 아픈 기억들이 숨은 건 쌓인 시간들을 너무 일찍 놓아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골목을 돌다 보니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아까 지나친 곳을 다시 보았다. 뭉개지고 부서진 채로 원망의 눈빛만 쏘아붙이던 그들이 떠오르자 문득 내 한계의 잔해들도 자꾸 떠올랐다. 골목을 내려오며 나의 동네를 생각했다. 자로 잰 듯한 택지지구의 아파트. 7년의 시간 동안 번지르르해 보이던 대리석에 먼지가 끼고 위태하던 소나무는 결국 시들어 잘렸다. 시간이 쌓일 틈 없는 나의 장소에서 훗날 내 기억은 어디에 숨을 수 있을까. 


 INFORMATION 

제목 혼자 (Alone)

연출 박홍민

출연 이주원, 송유현, 이성욱, 윤영민, 김동현

상영시간 90분

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16년 11월 24일









 SYNOPSIS 

“잘 생각해봐,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달동네가 배경인 다큐멘터리를 준비중인 한 남자,

우연히 건너편 옥상에서 벌어지는 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살해 장면이 남자의 카메라에 찍힌 것을 눈치챈 복면의 괴한들은

즉시 작업실로 찾아와 거대한 망치로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잠시 후 건너편 동네의 정자에서 알몸으로 깨어난 남자.

모든 게 이상한 꿈이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또 다시 괴한에게 죽임을 당하고

정신을 잃은 남자는 또 한 번 같은 골목에서 눈을 뜨는데…




스크린을 넘어 재생되던 영화들


이 세 공간은 재미있게도 모두 서울이지만 전혀 한 도시처럼 보이지 않는다. 남산은 겨울임에도 청명하고, 수색은 차갑고도 아련하며, 재개발 지역은 친숙하면서도 날카롭다. 이처럼 다양한 동시에 본질적인 정서를 담아낸 건 독립영화 특유의 깊고 분명한 시선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공간에 새로운 색칠을 한다기 보다 수북이 떨어져있던 낙엽 하나를 주워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것. 고인 바람이나 하수구의 악취 또는 창문에서 새어 나온 보글보글 끓는 찌개 냄새 같이 그곳에만 가면 나던 내음을 기억하고,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쌓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모습을 찾는 것. 독립영화가 공간을 직면하는 힘을 갖는 법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간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 속 공간을 방문한다면 영화의 확장이 이뤄질 수 있다. 각 영화의 주요한 영감과 정서를 만들어 낸 공간을 직접 방문하며 우리는 영화를 되새김과 동시에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고 공간의 역할에 대해서 사유해보기도 하며 나아가 공간과 나를 직접 이어 보기도 했다. 우리의 감상이 영화를 얼마만큼 담았을 지는 모르지만, 스크린을 넘어 재생되는 영화를 엿보았던 건 분명하다. 다시 영화의 막이 내렸기 때문일까. 조금 씁쓸하지만 한 켠에 따뜻함을 갖고 위로를 받으며 돌아왔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6.12 소소대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 

일시: 2016년 12월 16일(금) @인디스페이스 관객라운지 
참석자: 상효정, 이형주, 최미선, 홍수지, 전세리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의 날씨는 어느덧 인디즈 활동도 후반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듯 했다. 이번 만남에서는 삶 그 어딘가의 모습을 포착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 <나의 살던 고향은>과 보통의 연애를 그리는 <연애담>, <비치온더비치>, 그리고 실험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혼자>와 <우리 손자 베스트>가 있었다. 우리를 푹 빠지게 한 영화가 있는 반면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작품들도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는 여섯 편의 영화들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삶 그 어딘가의 다큐멘터리



1. <야근 대신 뜨개질>

리뷰 & 한줄평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이들을 향한 물음표" >> http://indiespace.kr/3188


홍수지: 우선 대화가 있는 기업 문화가 신기했다. 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런 곳이 많지 않다. 대화가 있어서 고민을 하는 것이 가능한 곳인 것 같다. 


이형주: 이 시대를 그리는 다큐멘터리에서 세월호가 빠질 수 없다는 점이 인상 깊다. 단순히 직원들이 야근을 거부하고 그 대안을 찾아가는 내용인 듯 보이지만, 영화는 개인의 문제도 결국 사회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 있는 것이 세월호이다. <노후 대책 없다>(2016, 이동우)도 세월호로 귀결되는 지점이 있다. 이 시대에 세월호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비극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총체적인 사회 구조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다. 영화가 그것을 직시 할 수 있는 용기를 냈다는 점이 좋았다.


상효정: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한 취미활동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처음엔 여행, 뜨개질 이야기가 나오다가 중간부터 노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거기서부터 빠져들었다. 


이형주: 지난번 <걷기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큰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단순히 누군가의 가치관을 바꾸라는 정도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실제 그 가치관을 바꿨을 때 닥치는 문제를 그려냈다. 그 점이 우리에게 더 와 닿는 것 같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 아니라 야근 하나 안 하는 것뿐인데, 이렇게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2. <나의 살던 고향은>

161124 인디토크 기록 - 역사를 보고 미래를 긍정할 시간 >> http://indiespace.kr/3212

리뷰 & 한줄평 "시간을 초월한 숨결을 따라" >> http://indiespace.kr/3210


상효정: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이 참 좋았다. 


이형주: 교육적인 목적의 영상과 개인의 감상 사이에서 헷갈리게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유적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감탄하는 도올 선생에게 집중한 부분이 그렇다.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풍경이 잘 보이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도올 선생의 감정과 표정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미선: 수학여행 같다고 한줄평을 썼다. 다들 수학여행을 가봐서 알겠지만, 앞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설명을 해도 정작 놀러 온 것이 더 중요한 우리들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영화를 만든 취지는 참 좋다.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임은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꼭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선 안된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홍수지: 영화 속 도올 선생의 생각이 일반 관객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고 보면 보통의 연애 이야기



3. <연애담>

161120 인디토크 기록 - 누구나 다 하는, 가장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연애담’ >> http://indiespace.kr/3192

리뷰 & 한줄평 "<연애담>이 '보통의 연애'인 이유" >> http://indiespace.kr/3189


전세리: <연애담>과 같은 퀴어물에서는 남녀 성 역할의 구분이 덜하고 경제적 논리가 더해진다.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그만큼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일자리, 경제적으로 궁핍한 젊은이들, 취업과 같은 사회의 문제들이 성 역할의 구분 없이 동등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최미선: 다른 퀴어물보다 퀴어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연애를 다룬 것 같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시기나 주변에 들키지 않으려는 과정 같은 것들이 없었다. 영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니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이형주: <캐롤>(2016, 토드 헤인즈)이 일종의 시대극처럼 특수한 상황 속인 것에 반해 <연애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좋았다. 


상효정: 감독님이 대단한 것 같다. 감정선을 표현하면서 윤주의 얼굴을 포착하는 것이 놀라웠다. 대사나 배우들의 표정을 담는 섬세한 연출, 윤주와 지수의 밀고 당김을 표현하는 서로의 공간이 인상깊었다. 


이형주: 공간들이 인상깊다. 같은 공간임에도 분위기가 달라지고, 초반과 후반의 벽 색깔이 같은 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홍수지: 영화 속 인물들이 여성이나 성소수자로 대상화가 안 된 느낌이라 좋았다. 영화는 <우리들>(2016, 윤가은)처럼 그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근래 봤던 퀴어 영화 중에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상희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깊었다. 감정을 많이 쓰지 않는데도 그 속에서 몰입하는 연기가 대단했다.





4. <비치온더비치>

161212 인디토크 기록 -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가영 >> http://indiespace.kr/3228

리뷰 & 한줄평 "주체이고 싶은 그녀의 도발" >> http://indiespace.kr/3219


최미선: 재미있는 영화이다. 흑백이고 인물도 둘 뿐이고 특별한 사건 없이 대사로만 진행이 되는 영화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대사가 위트 있다.


홍수지: 남자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볼 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너무 웃으면서 재미있게 봤다.


전세리: 어떻게 그렇게 긴 대사를 소화했는지. 대단하다.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상효정: ‘리틀 홍상수’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느낌이다. 정가영 감독만의 느낌이 있는 영화였다. 신선하고 좋았다.


최미선: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봤다. 술, 키스 등 그 중심에 ‘여자’라는 키워드가 반복된다.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솔직한 여성을 계속해서 만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감독 자체가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형주: 인디토크를 봤는데 생각보다 영화에 명확한 의도가 있지는 않더라. 그런 지점들이 영화에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메시지를 생각하고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감독의 생각들을 직관적으로 만든 게 아닐까. 머리 속으로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연출한 것 같다.







놀라운 그러나 쉽지 않은 실험적 영화들



5. <혼자>

161127 인디토크 기록 - 의식과 무의식의 출구 없는 미로 >> http://indiespace.kr/3214

리뷰 & 한줄평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 http://indiespace.kr/3205


최미선: 놀라웠다. 혼자 봤는데, 좀 무섭더라. 오프닝이 인상 깊었다. 남자가 피를 닦고 있고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데, 죄책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옷에 뭍은 피에 짜증만 느낀다. 그런 남자의 머리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처음에는 스릴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꿈이 반복되고 꿈에서 깨어나도 현실이 아니다. 이런 한 남자의 혼란스러운 정신 세계를 나열하는 것을 연출로 담아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홍수지: 롱테이크 방식과 계속해서 나오는 골목길이 인상깊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분열하는 캐릭터가 좋았다. 


상효정: 우리의 인생 자체는 하나의 롱테이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시도들이 굉장히 좋았다. 이 영화도 공간에 대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재개발되는 달동네라는 공간적 의미가 인상 깊었다. 그 공간이 남자의 뇌라는 설정도 놀랍다. 주인공에게 처음엔 이입이 안 됐었는데 공간과 연결 지어 생각을 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 자신의 나쁜 기억 같은 재개발 구역을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의 여자친구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되지 않냐고 말한다. 그 둘 사이의 갈등이 너무나 잘 표현이 됐다.


이형주: 이 영화는 몰입하게 하는 힘이 대단하다. 힘들게 구현한 롱테이크 장면이었다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처음엔 스릴러로 몰아치다가 내면세계로의 전환이 되는데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긴장이 유지된다. 영화 자체가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좋았다.


최미선: 동감한다. 몰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과 관객이 가지는 정보의 양이 동일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한 쪽이 많이 알면 다른 한 쪽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과 인물이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여 꿈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정보를 얻어간다. 같이 알아가면서 극의 몰입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종종 영화에서 정해진 답을 주는 듯한 장면들이 있었다. 조금씩 정보를 알아가던 흐름에 반하는 느낌이었다.




6. <우리 손자 베스트>

리뷰 & 한줄평 "우리 손자 팩트(fact). 윤리를 고민하는 시간" >> http://indiespace.kr/3232


이형주: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불편했다. 명확한 스탠스 없이 재현의 반복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보통 사회적으로 비판한다던가 동정한다거나 하는 주제가 있는데, 이 영화속에서는 그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재현되는 표상들이 정말로 그들을 꿰뚫고 있는 걸까. 


상효정: 초반엔 그런 생각이었는데, 다 보고 나니 괜찮았다. ‘일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모두가 그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해 우리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안에 있는 불편함을 통해서 사회의 문제점을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한다. 두 인물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정의 시선이 들려고 할 때마다 용납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때문에 섣불리 동조를 할 수가 없게 만든다. 


홍수지: 피로했다. 그들이 가지는 일상적인 부분들이 많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특정 집단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들 속에는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사회에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에 영화는 굉장히 사실적이다. 


전세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명확한 스탠스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인물들이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나열되는데, 그것에 질문을 던지고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윤리가 부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입장이 담기지 않는 점과 여성에 대한 서사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최미선: 동감한다. 다들 불편함을 가지고 본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깊이가 있다. 네번째 만남인 오늘도 역시 한층 풍성해진 이야기와 날카로운 시선들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된 영화 이야기와 웃음이 인디스페이스 관객라운지를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한 해를 끝맺음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독립영화와 독립영화가 살아있는 이 공간을 위해 하고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했다. 앞으로의 얼마 남지 않은 인디즈 활동에 벌써부터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화였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의식과 무의식의 출구 없는 미로  <혼자>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1월 27일(일) 오후 3 상영 후

참석: 박홍민 감독, 이주원 배우

진행: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거머쥔 화제작 <혼자>. 18개 해외 유수 영화제들의 초청을 잇달아 받으면서 궁금증과 기대를 동시에 자아냈던 이 영화가 마침내 국내 정식 개봉을 하여 상영 중이다. 한 남자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90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인디토크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남): 영화 <혼자>는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좋은 평가도 받았다. 우선 박홍민 감독에게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묻고 싶다.


박홍민 감독(이하 박): 2012년에 <물고기>라는 영화로 해외 영화제에 갔고 2014년까지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2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잘 안돼서 힘들었다. 그후 조금 힘들어서 작업실에 계속 있었다. 영화 속 작업실은 실제 나의 작업실이었다. 여러가지 정리를 다시 해서 그 곳에서 영화를 찍었다. 작업실에 계속 있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적으로 더 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졌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로 표현을 많이 했던 지라 이 시기에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남: 영화 속에서 이주원 배우가 고생을 많이 했다. 영화 내내 고통스러워하는 연기가 많고 헐벗고 있는 연기도 있다.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처음 시나리오 받아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주원 배우(이하 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영화의 기승전결이 잘 이해가 안됐다. 이게 내용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얘기를 해서 좀 더 구체화된 장면들도 많다. 이 영화를 하게 된 건 당시 나의 입장에서는 시켜만 준다면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변함없다.(웃음)


남: 작업실을 중심으로 한 달동네가 배경인데, 그것이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이 영화의 또다른 캐릭터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 속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인 ‘수민’이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감독 개인적으로 동네에 대한 각별한 느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박: 영화 속 달동네는 실제 재개발 진행중인 동네이다. 동네 맞은편에 있는 나의 작업실에서 항상 바라봤던 곳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고 평화로운 곳이다. 재개발이라는 개념이 한국과 중국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모든 걸 철거하고 새로운 것은 짓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이 되다 보니 좋았던 기억이 분명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힘든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고 그것을 좀 잊고 싶었다. 그런데 기억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안고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워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상징, 기호에 대한 표현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남: 영화 속에서 마을이 수민의 뇌랑 비슷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생각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돼서 이런 개성적인 영화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실제 독립영화를 보면 대체로 기술적인 실험을 도전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야간에 촬영했고 넓은 지역을 화면에 담고 있고 조명 하나하나 신경을 쓰는 등 촬영 방식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것 같다. 특히나 연결과 분리의 구분이 인상깊다. 촬영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박: 전작처럼 이 영화도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것처럼 생각을 하시는데, 사실은 기본적인 관점은 반대다. 주로 감정적인 고민을 먼저 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다양한 연출 방식들을 다 펼쳐놓고 하나씩 고민한다. 이 영화의 경우 한 남자의 의식의 줄기를 한번에 쫙 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연출 방식들을 하나하나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우선 집에 있는 작은 카메라로 움직여봤는데, 많이 흔들려서 안되겠다 싶어서 다른 장비를 구매해서 테스트하고, 그것을 팔고 다른 것을 사서 테스트 해보고, 이런 과정을 3, 4개월 정도 반복했다. 촬영감독과 배우들과 계속해서 리허설을 했다. 이처럼 내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계속 겪었다. 나는 영화를 계속 그런 식으로 했다. 마음에 닿는 것이 없으면 다른 것들을 계속 시도해보고 찾아봤다. 지금도 단축키 하나 모르지만,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남: 예전에 배용균 감독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하나하나 직접 테스트 하고 매뉴얼을 보고 배웠다고 했다. 한번도 제대로 영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홍민 감독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수공업 느낌이 많이 난다. 실제 살고 있는 동네에 하나하나 장치를 하고 카메라를 들고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 느낌이 들었다.


박: 늘 그랬듯이 CG를 최소화한다. 최대한 리허설을 많이 했다. 의식의 흐름을 한 줄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매 장면에서 영화적 기호와 상징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한 방향으로 향하게끔 고민을 많이 했다. 롱테이크 방식이 잘 맞아떨어졌다. 특히 편의점 장면의 경우, 하늘에서 시작해서 남자와 여자가 둘이 걷다가 골목에 들어가고 대화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골목을 빠져 나오고 남자가 화가 나면 위압적인 구도로 여자를 바라보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이런 식으로 동선 구도를 짜놓았다. 필요 없는 장면을 최소화 하고 싶었다.


남: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동선 짜는 게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다. 그만큼 리허설도 많았을 것 같은데, 배우들에게 어려운 작업이기도한 반면 쾌감도 있었을 것 같다. 장면이 대부분 롱테이크고 전체가 37컷이었다. 이주원 배우는 이런 점들이 어땠나?


이: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다.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이 배우들이 편할 수 있게 연기에 맞춰서 촬영을 잘 해주셨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진 않았다. 다만 롱테이크 방식에서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한번 NG가 나면 곤란한 상황이 많았다. 편의점 장면에서는 라면을 8번은 먹을 것 같다.(웃음)


남: 길게 찍는 것도 그렇지만, 굉장히 추울 때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이: 정말 추웠다. 특히나 벗은 날이 제일 추웠다. 그날이 제일 춥다고 해서 휴대용 가스 버너를 쬐려고 했는데, 불이 너무 크게 붙어서 사용도 못했다. 그래서 담요만 덮었다. 무엇보다 발이 너무 시려서 아팠다. 그런데 이상하게 촬영된 장면을 보면 하나도 추운 느낌이 안 나더라. 심지어 입김도 안 보였다.


박: 그 날은 실제 온도가 영하 9도였다. 카메라 배터리가 얼어서 자꾸 꺼졌다. 롱테이크였고 30번 가까이 촬영을 했다. 포기하려던 참에 마지막에 오케이가 났다. 배우들에게 미안했다.


남: 시나리오상에서 독백 장면 등 몇 군데 포인트처럼 내지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연극을 하셨는데 그런 장면들이 어떻게 다가왔나?


이: 그런 장면에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카메라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런데 테이크가 길어서인지 무대에서 공연할 때의 느낌과 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몰입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만약 끊어서 촬영하는 식이었다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관객: 영화 속 1인칭 시점으로 나온 장면은 그렇게 한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암전되는 장면은 어떤 의미가 있나?


박: 이 남자의 감정으로 들어가는 과정 안에서 남자의 머리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카메라의 위치가 남자의 머리 위치이다. 1인칭 시점으로 남자가 보고 있는 것을 굳이 이야기 하면, 현실인 것 같은 장면에서 남자의 시점으로 함께 방을 둘러보는 식이다. 남자의 피해의식과 자기 중심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한 기호들을 매치했다. 가령 여자친구를 자기가 죽였을 수도 있었음에도 마치 다른 사람이 여자친구를 죽인 것 마냥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자의 내면으로 차근차근 들어가는 구조를 생각했다. 그래서 앞 부분은 피가 많이 나오고 육체적인 행동들이 많은 반면 뒷부분은 오히려 감정적인 행동들로 배치했다. 남자가 점점 자신을 둘러싼 정황들을 관객과 비슷한 속도로 파악해 가면서 결국 자신의 치부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 느낌을 알았으면 했다. 마지막 장면은 판타지 같은 것이다. 동네가 남자의 뇌라고 상징됐을 때 동네의 입구에서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다시 돌아본다. 그러나 곧 등을 돌리고 가버린다. 남자가 주위 사람들을 다 잃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마저 등을 돌리는 것으로 남자의 죄책감과 여러가지 관점들이 드러난다. 그래서 남자는 결국 동네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불이 꺼지고 새벽이 온다. 이 전체가 판타지일수도 있다. 나의 관점에서 느꼈던 피해의식과 강박에서 스스로 깨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이 영화는 나의 치부를 마주하고 내가 나를 다시 바라보는 감정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에 도달하고 인지했을 때 새벽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관객: 남자의 심리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이미지가 작업실에 붙은 마을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이 대부분 밤으로 표현된 반면 사진은 낮으로 표현되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박: 사진이 파편적으로 쪼개져있다. 그리고 작업실 앞부분에는 넓은 마을 사진이 있는 반면 뒷부분에는 조각조각 쪼개져 있다. 그래서 낮과 밤이라기보다는 정신 없이 흩어진, 남자의 파편적이고 분열적인 모습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관객: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골목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대사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도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이 영화를 퀴즈쇼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 장면에서 앞부분의 대사가 중심이 아니고 뒷부분에 중점을 뒀다.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재개발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해야하는 말이어서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대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으면 했다. 앞부분에서 말하는 직설적인 내용들은 이미 영화에서 충분히 던져졌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불편해하신 분들이 많았다. 얼마전 김경묵 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 남자의 대사로 혼자 알고 싶었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 느낌이었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나는 그 대사를 영화의 솔루션으로 하려고 했던 의도는 아니었다. 감정과 상황의 링크를 위해서였다. 


관객: <혼자>라는 제목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박: 영어 제목은 ‘Alone’이다. 내가 힘들다 보니 가까운 사람에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외로워질까’였다. 영화 속 인물들이 대부분 그렇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면 뭉클한 부분이 있고, 어머니가 실제 한 말씀이 대사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예전엔 어머니가 미웠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힘들었던 그 시기에 사실은 어머니도 많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버지의 이해되지 않던 행동도 생각이 많이 났다. 아버지도 나름대로 힘든 것을 가정에 푼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소통의 방식이었지만, 나이 들어보니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당시 아버지에겐 외로움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행동들을 보고 스스로 고립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고 많이 외로웠다. 그런 고민에서 ‘혼자’라는 제목을 쓴 것 같다. 


관객: 옥상 인터뷰 장면에서 처음으로 수민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언급한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모호한데, 그 속에 유일하게 명확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신의 뇌라고 일컬어진 동네를 아름다우니 찍어달라고 표현한다. 동네가 주인공의 뇌라면 과거의 기억을 외면하고 싶을 텐데, 예쁘다고 한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박: 반어적 표현의 일부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민은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있는 인물이다.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는 척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의 피해의식만을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자기 말만 늘어놓고 남 탓을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때 그 남자의 무의식 속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면적으로 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객: 영화 속 달동네는 실제 동네라기보다 세트장 느낌이 들었다.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린 수민 역을 맡은 아역 배우가 연기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의 접근을 어떻게 하셨는지?


박: 우선 그곳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영화 찍기 한 두 달 전부터 동네를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 뵈었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들이 있는 반면 문도 안 열어주는 분들도 있었다. 재개발 지역이다 보니 예민하고 날카로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통장님과 알게 돼서 통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동네 분들도 통장님이 말씀하면 잘 이해해주었다. 주로 영화의 동선이나 촬영에 관해서 설득을 많이 했다.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 장면은 후시 녹음으로 하기도 했다. 설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조명 같은 경우 전기를 끌어올 상황이 되지 않아 가까운 가정집에 부탁해서 전기를 빼기도 했다. 그곳이 재개발이 될 것이니 지금의 모습을 많이 남겨달라는 분들도 있었다. 

어린 수민의 경우 아이가 표현하기 복층적이고 어려운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와 인물, 상황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보다 어머니와 많이 대화를 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영화에 대한 디테일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부분이 내가 생각한 인물의 표정이나 질감과 유사한가 고민을 했다.


남: 감독님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었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박: 영화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치유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고민을 드러내고 나도 나 자신을 다시 관찰한다. 그 속에 나의 진짜 마음이 있다. 나의 고민을 말하는 진심이 있어야 보는 관객들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찍었다고 하셨고 나에게 질문도 많이 하시더라. 어머니는 영화를 보고 울컥하셨다. 그때 뭉클함이 있었다. 영화로 치유를 많이 받았고 그런 점에서 나에게 참 소중한 영화다.


이: 이 영화를 찍은 지 벌써 2년 정도 됐다. 마침내 이렇게 개봉을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참 감사한 마음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운 좋게 상도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 연기하는 데 자신감을 준 영화이다. 이 영화와 올해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기억은 지우고 싶은 조각일수록 더 날카롭게 되돌아온다. 영화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남자의 해체된 자아를 따라가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고립의 구렁텅이에 한없이 미끄러지는 남자를 보았을 때 묘한 불안이 맴돈다. 의식과 무의식의 거대한 분열을 강렬하게 이끌어낸 놀라운 연출 방식은 신선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도한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외로워질 수 밖에 없나?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비밀 2016.12.16 15: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GV때 질문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글로도 남겨주시니 더욱 감사하네요. 즐거운 GV였습니다.



*포스터를 클릭하면 영화별 상영일정과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12.15 - 2016.12.21 인디스페이스 상영시간표

<비치온더비치> 정가영 | 99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 130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혼자> 박홍민 | 90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나의 살던 고향은> 류종헌 | 95분 | 다큐멘터리 | 전체관람가

<연애담> 이현주 | 99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야근 대신 뜨개질> 박소현 | 98분 | 다큐멘터리 | 12세이상관람가

<자백> 최승호 | 106분 | 다큐멘터리 | 15세이상관람가


예매하기 (실시간 예매 가능)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인디스페이스 좋아요♥ 

● 트위터  Twitter.com/indiespace_kr

● 페이스북  Facebook.com/indiespace

● 인스타그램  Instagram.com/indiespace_kr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혼자한줄 관람평

이다영 | 무한반복의 괴로움

상효정 | 현실이 이따위면 꿈은 얼마나 나아질까, 털어버리고 싶은 머릿속의 롱테이크 재현

이형주 | 결코 철거하지 못한 트라우마의 지도를 구현하다

최미선 |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홍수지 | 죄의식의 미로가 만들어낸 출구 없는 답답함



 <혼자리뷰: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피 범벅이 된 살해 현장에 한 남자가 있다. 바닥에 흘린 피를 닦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자 그만둔다. 그리고 손을 씻다가 옷에 뭍은 피에 짜증을 느낀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죄책감이나 두려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남자의 머리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1인칭 시점으로 설치된 카메라는 마치 남자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 후로 남자는 여러 차례 꿈을 꾼다. 영화는 꿈과 현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한 남자의 정신 세계를 빠른 속도로 추적한다.



첫 번째 꿈 

‘수민’은 자신의 작업실이 마주한 달동네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날이 맑은 날 작업실 옥상에서 살해 현장을 목격하고 마침 들고 있던 카메라로 그 장면을 촬영한다. 복면을 쓴 괴한에게 정체를 들킨 수민은 도망치지만 그들에게 쫓기다 결국 자신의 작업실에서 살해를 당한다. 이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오프닝 장면과 연결 지어 아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곧 꿈에서 깨어난다.  


두 번째 꿈 

수민은 동네의 한 정자에서 알몸으로 잠에서 깨어난다. 집을 찾아 돌아가는 길에 한쪽 계단에선 울고있는 아이, 다른 쪽 계단에선 고개 숙인 여자를 만난다. 모르는 사람들이고 알몸인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재빨리 지나쳐간다. 우여곡절 끝에 작업실로 돌아왔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창문을 깨고 들어간 작업실에서 피가 흐르는 욕실과 목이 잘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곧 복면을 쓴 남자가 다시 나타나 또 다시 살해당한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조금씩 정보가 더해진 장면들이 나온다. 두 번이나 살해 당하는 꿈을 꾼 것과 알몸인 채로 괴로워하는 수민의 모습은 현실에서 그가 어떤 불안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계단에서 울고 있던 두 사람과도 어떤 관련이 있음을 조금은 예측이 가능하다.  



세 번째 꿈 

같은 장소에서 이번엔 알몸이 아닌 옷을 입고 잠에서 깬다. 같은 계단에 두 번째 꿈에서 보았던 아이가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아이의 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고, 뒤쫓아온 아이의 아버지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아이가 칼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리고 수민은 다시 옆 계단에 있던 여자친구 ‘지연’을 만난다. 울면서 헤어지자고 하는 지연에게 미안하다고 그러지 말라고 하다가도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는 누구나 그랬듯 너도 가버리라며 되려 화를 낸다.  

이 꿈은 한층 높은 차원의 정보를 담고 있다. 울고 있는 아이, 칼을 들고 무서워하는 아이, 도움을 청하는 아이,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은 아이의 존재가 수민의 어린 시절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수민은 폭력으로부터 어린 자신을 지키려 한다. 지금의 수민은 어린 자신에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건네지만 다시 나타난 어린 수민은 되려 지금의 수민에게 ‘다 네 탓이야’라고 말한다. 수민은 과거의 어떤 기억이 초래한 현재의 처지에 대해 ‘내 잘못이 아니야’와 ‘다 내 탓이야’라는 명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나쁜 꿈을 꿨어요. 꿈에서 아버지를 죽였어요.’ 라고 말하는 어린 수민의 모습에서 현재의 분열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 되어온 고질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수민이 두려움 속 양 손에 들고 있던 칼처럼 날카로워진 기억은 벗어나려 할수록 자신을 향하고 그렇다고 끌어안을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오빠 안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잖아’라는 지연의 말처럼 그는 그 기억으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네 번째 꿈 

수민의 엄마가 등장한다. 아버지를 그만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고 받지 않는 전화를 통해서 엄마의 자살을 예측할 수 있다. 이어서 옥상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최초로 언급된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필사적으로 경멸한다. 그러니 그것을 깨닫게 하는 외부의 어떤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태도와 말들을 통해 그의 본 모습이 까발려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반복되는 꿈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거대한 분열을 강렬하게 이끌어낸 연출 방식은 신선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러닝타임이 90분인 이 영화는 총 37컷으로 만들어졌다. 그만큼 대부분의 장면이 롱테이크 방식으로 촬영이 되었다. 한 남자의 의식의 줄기를 따라가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선사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서사의 흐름을 예측하기 힘든 장면들의 배치나 마치 방금 꾸었던 꿈을 기억하는 것 마냥 뒤죽박죽인 대사들, 종종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의 카메라처럼 실험적인 기법들로 나열한 기호들이 인상깊다.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 요소 중 하나는 주인공이 관객과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양의 정보를 얻는 데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이 겪는 혼란을 주인공도 함께 공유하는 식이다. 꿈이 계속될수록 조금씩 정보를 파악하게 되는 구조는 주인공과 관객의 연결을 끈끈하게 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며 나아가 공감도 불러일으킨다. 다만, 정보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몇 장면들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앞서 여러 꿈에서 꽁꽁 숨겨두었다 조금씩 풀어놓는 정보의 양에 비해 옥상 인터뷰 장면, 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대화 장면에서 통째로 던져주는 정보는 약간의 허무감이 들게도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모든 분열의 기원은 어떤 기억이다. 기억은 지우고 싶은 조각일수록 더 날카로운 것이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해체된 자아를 따라가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고립의 구렁텅이에 한없이 미끄러지는 남자를 보았을 때 묘한 불안이 덮친다. 어떤 기억으로부터 나의 무의식이 고통받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이 말을 깨닫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나. 깨달은 이후에는 차라리 끌어안을 수 있긴 한 걸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영화는 치유적 속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서사 속에서도 조금의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수민의 머리 위로 밝는 ‘새벽’이라는 시간적 의미와, 더불어 이 모든 것을 ‘용서’의 영역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 때문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포스터를 클릭하면 영화별 상영일정과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12.08 - 2016.12.14 인디스페이스 상영시간표

<비치온더비치> 정가영 | 99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 130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혼자> 박홍민 | 90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나의 살던 고향은> 류종헌 | 95분 | 다큐멘터리 | 전체관람가

<연애담> 이현주 | 99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야근 대신 뜨개질> 박소현 | 98분 | 다큐멘터리 | 12세이상관람가

<자백> 최승호 | 106분 | 다큐멘터리 | 15세이상관람가




예매하기 (실시간 예매 가능)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인디스페이스 좋아요♥ 

● 트위터  Twitter.com/indiespace_kr

● 페이스북  Facebook.com/indiespace

● 인스타그램  Instagram.com/indiespace_kr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Indiespace_Newsletter_20161129




신고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1월 24일(목) 10:30 개봉 | 16:10

11월 25일(금) 12:30 | 18:10

11월 26일(토) 10:40 | 16:10

11월 27일(일) 15:00 인디토크

11월 28일(월) 17:00

11월 29일(화) 10:30 | 18:10

11월 30일(수) 15:00

12월 1일(목) 12:20

12월 8일(목) 13:10

12월 14일(수) 11:00

12월 19일(월) 11:00

12월 21일(수) 17:30 종영
















 예매하기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인디토크(GV) 




<혼자> 인디토크(GV)

● 일시: 2016년 11월 27일(일) 오후 3시 상영 후

● 참석: 박홍민 감독, 이주원 배우

● 진행: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예매이벤트 






온라인 예매 후 <혼자>를 관람하시면 추첨을 통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백팩 + 아모르문디 도서 [단편영화 제작 가이드] (3명) 를 드립니다.


 기간: ~ 12/14(수) 예매분까지 (온라인 예매 시 자동 응모)

● 발표: 12/15(목) 개별 연락







 INFORMATION 


제목  혼자 (Alone)

연출 박홍민

출연  이주원, 송유현, 이성욱, 윤영민, 김동현

제작 농부영화사

배급/마케팅 ㈜인디스토리

상영시간            90분

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16년 11월 24일

공식사이트          www.facebook.com/indiestory1998

영화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 시민평론가상&배우상(이주원)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 심사위원상

제4회 무주산골영화제 – 창 경쟁 부문

제35회 벤쿠버국제영화제 – 용과 호랑이 부문

제45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 브라이트 퓨처 부문

제18회 타이페이국제영화제 – 뉴 탤런트 장편 경쟁 부문

제18회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국제영화제 – 파노라마 부분

제35회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국제영화제 – 아시아 프론티어 부문

제42회 시애틀국제영화제 – 아시안 크로스로드 섹션

제15회 뉴욕아시아영화제 – 한국영화 섹션

제6회 리마독립국제영화제 – 경쟁 섹션

제11회 런던한국영화제 – 인디파이어파워 섹션

제13회 홍콩아시안영화제 – 뉴 탤런드 어워드 섹션

제8회 코펜하겐 국제영화제

제16회 비엔날레국제영화제 

제7회 말라티아국제영화제

제1회 이스트아시아영화제

제47회 인도국제영화제





 SYNOPSIS 


“잘 생각해봐,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달동네가 배경인 다큐멘터리를 준비중인 한 남자,

우연히 건너편 옥상에서 벌어지는 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살해 장면이 남자의 카메라에 찍힌 것을 눈치챈 복면의 괴한들은

즉시 작업실로 찾아와 거대한 망치로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잠시 후 건너편 동네의 정자에서 알몸으로 깨어난 남자.

모든 게 이상한 꿈이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또 다시 괴한에게 죽임을 당하고

정신을 잃은 남자는 또 한 번 같은 골목에서 눈을 뜨는데…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포스터를 클릭하면 영화별 상영일정과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11.24 - 2016.12.01 인디스페이스 상영시간표

<혼자> 박홍민 | 90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나의 살던 고향은> 류종헌 | 95분 | 다큐멘터리 | 전체관람가

<연애담> 이현주 | 99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야근 대신 뜨개질> 박소현 | 98분 | 다큐멘터리 | 12세이상관람가

<걷기왕> 백승화 | 92분 | 드라마 | 12세이상관람가

<자백> 최승호 | 106분 | 다큐멘터리 | 15세이상관람가



예매하기 (실시간 예매 가능)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네이버 http://bit.ly/OVY1Mk

● 다음 http://bit.ly/1srfYBx


인디스페이스 좋아요♥ 

● 트위터  Twitter.com/indiespace_kr

● 페이스북  Facebook.com/indiespace

● 인스타그램  Instagram.com/indiespace_kr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Indiespace_Newsletter_20161115




신고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