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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해법> 리뷰: 언론, 그리고 창 너머의 진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2016년의 끝자락, 오랜 시간동안 모습을 교묘히 감춰오던 부정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수많은 촛불들이 거리로 나왔다.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사람들과 그들의 탐욕이 줄줄이 세상 밖으로 쏟아졌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를 국민 앞에 꺼내놓고 있는 것은 언론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말도 안 되는 비리들에 침묵해온 것 또한 언론이었다. 언론은 때로 진실을 숨기기 위해 왜곡을 일삼기도 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권력과 자본이라는 이해관계에 얽혀 ‘권력의 감시자’ 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고, 명백한 현 세태의 공범이 되었다.





태준식 감독의 <슬기로운 해법>은 이런 언론의 현실, 특히 한국 사회의 주류 언론인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현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다큐멘터리다. 2014년에 개봉한 해당 작품은 다양한 기사들과 풍부한 통계자료,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재조명한다. 작품은 5개의 장(章)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5개의 장을 통해 차분한 어조로 언론이 지닌 문제점들을 모두 아우른다. 언론이 거짓말을 일삼는 ‘양치기 언론’이 된 이유, 언론재판을 부추겨 한 사람의 삶을 비극으로 치닫게 만든 총보다 강한 펜의 힘, 미디어 법을 통해 주류 언론사들의 방송 진출을 허가하고 특혜를 제공한 과거의 정권, 언론사의 수익 중 80%를 차지하는 광고 수익을 손에 쥐고 거침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과 현 상황에서 필요한 ‘슬기로운 해법’까지, 작품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언론의 문제를 알기 쉽고 명쾌하게 드러낸다.





<슬기로운 해법>은 언론이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기업화되는 과정을 다루며 어떤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삼성그룹과 언론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2007년,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그리고 보도 바로 직후인 11월, 삼성은 두 신문사에 대한 광고를 전면 중단한다. 독보적인 국내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광고 중단으로 인해 한겨레와 경향, 두 신문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절대적인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경향신문은 2010년, 삼성을 비판하는 논조의 칼럼을 미게재한 후 사과문을 올린다. 언론에서 일종의 굴복과 반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사례는 단순히 기업화된 언론을 넘어서 언론 앞의 절대자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부여한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 군사 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언론의 비폭력 저항을 상징하던 말이다. 언론은 사실을 밝혀 알리기 위해 존재했으며 사실의 전달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했다. 그러나 언론의 의미는 퇴색 된지 오래다. 2014년 <슬기로운 해법>이 개봉하던 당시에도 그랬으며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었던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침묵과 거짓의 기정사실화가 반복되며 ‘펜은 총보다 강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언론은 창(窓)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진실을 보곤 한다. 창이 맑고 깨끗할수록 진실은 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창에는 먼지가 쌓이고 물때가 끼곤 한다. 그렇게 더러워진 창 너머의 진실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온통 부옇게 보이게 된다. 다시 진실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창문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슬기로운 해법>은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권력과 기업의 자본이라는 큰 이해관계 속에서 본질적인 변화는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고,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나서는 것 자체가 어쩌면 치열한 전쟁일 수 있다. 그러나 부패라는 무게에 눌려 무너지려는 언론을 감시하고 언론의 도구화를 인지하여 올바른 판단력을 구축한다면 언젠가는 깨끗한 창 너머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슬기로운 해법>은 언론의 도구화를 인지하게끔 하고 언론에 대한 고민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작품의 이런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한 해를 맞은 현 시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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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먼 집>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615





<할머니의 먼 집> 리뷰: 당신이 멀어져가도 변하지 않을 마음을 담아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했다” 이 영화에 이보다 강력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이소현 감독)를 키워준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할머니가 계신 화순으로 내려가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먼 집>은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밥은 묵어쪄?” 묻는 할머니와 “잉, 먹었지.”하는 손녀의 대화에서 따뜻한 애정이 비친다. 할머니가 잡초를 캐는 모습, 낮잠을 주무시고 약을 챙겨 드시며 “요놈 하나 묵어”라며 나에게 카스테라를 내어주는 모습.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고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 역시 그렇다. 마치 일기와도 같은 사적인 기록임에도 보는 이는 영화를 따라 울고 웃게 된다. 





왜 죽으려고 했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성가신게”라고 답한다. 죽음은 할머니에게는 가깝고 손녀인 나에게는 가깝지 않아서 할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듯 죽음도 그러하기에, 나는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저 상처를 치료해드리고 가족 몰래 영양제를 놔드리고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이 영화는 특정한 메시지를 위해 설계된,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할머니와 할머니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가장 따뜻했고 다정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그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다. 아흔 셋,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나는 아직도 할머니, 할머니와 함께하는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이 기록으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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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플러그 <부곡 하와이>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014







<부곡 하와이> 리뷰: 삶을 재생하는 배우의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어느 시골의 정신병원에서 두 여성이 탈출을 감행한다. 중년 여성 ‘자영’은 가끔 발작 증세가 있고, 아직 십대인 소녀 ‘초희’에겐 자살 시도의 흔적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 탈출 목적이 있다. 자영은 아들이 이민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꼭 만나기 위해, 초희는 정신병원 원장으로 인해 임신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 나가려 한다.



<부곡 하와이>는 이들이 병원을 탈출하여 목적을 향해 떠나는 로드 무비이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 길 위에서의 우여곡절, 그리고 이들을 쫓는 수사꾼까지 장르의 전형성이 모두 담겨있다. 영화는 특히 여성의 연대와 화합을 강조한다. 이들이 만난 남성들은 모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며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만 한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길일 수 있는 이 영화의 여정에서 관객의 손을 잡아주는 건, 자영 역의 박명신, 초희 역의 류혜린 배우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말하지 않은 슬픔까지 눈빛으로 담아낸다.



박명신 배우 특유의 야생적인 눈빛과 몸짓은 자영의 모성애가 부딪히고 깨졌던 시절을 복원한다. 자영이 주변을 위협하는 듯해도 결국 할퀴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반면 류혜린 배우가 그리는 초희는 아픔과 동시에 재생을 담아낸다. 삶을 멈추려 한 흔적이 가득한 그지만, 자영과 먼저 관계를 구축해가는 건 초희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관계를 충실히 복구해나간다.



<델마와 루이스>(1991)처럼 폭력적인 세상을 탈출하는 꿈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배우들이 만들어낸 두 여성의 모습만으로도 영화는 가치가 있다. 깊은 절망 속 어딘가에서, 삶을 재생해내는 배우들의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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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플러그 <평범한 날들>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1220







<평범한 날들> 리뷰: 사람도 사회도 더 이상 병들지 않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하루 동안 우리를 스치는 수많은 얼굴들은 신기하리만큼 서로 다른 표정을 가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뒤에 제각각 어떤 사연들이 감춰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의 얼굴 뒤에는 그가 가진 것의 모든 숨결을 빼앗아버릴 만큼 아픈 것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평범한 날들>은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처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리고 아픔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 세 사람이 상처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지만, 그 상처의 근원은 모두 ‘죽음’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병들고 마침내 상처를 대면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Between> 평범한 직장인 ‘한철’(송새벽 분)은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린다. 일도 잘 안 풀리고 매번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의 연속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의 흔적을 더듬는다. 어느 날 아침, 그의 핸드폰엔 그 날이라는 알림이 뜬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강가에 있는 무덤이다.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내가 널 안아도 되겠니”  

<Among> ‘효리’(한예리 분)는 자주 가던 카페의 문 앞에 붙은 ‘근조(謹弔)’라는 메모를 보고 발길을 돌린다. 단어의 뜻을 찾아보다 문득 기억 너머의 어떤 사건을 흐릿하게 떠올린다. 어느 날, 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 받은 효리는 설상가상 교통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다친다. 상처가 다 나았을 무렵 잠에서 깬 효리는 어딘가로 뛰어가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 이별이나 교통사고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만든 손수건에는 ‘상처를 기억하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Distance> ‘수혁’(이주승 분)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고아가 되었다. 숨을 거둔 할아버지 옆에 앉아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담배 한대를 태워 입에 물려드린다.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수혁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를 보고 화가 난 채로 그의 뒤를 쫓는다.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세 인물은 모두 상처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상처를 한 순간 외면해 버린 후 그것은 고질적인 병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 채 병들어가는 영화 속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ET가 그려진 시계나 근조가 적힌 메모, 그리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나뭇잎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연결고리는 공통적으로 상실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지만 상처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상처를 망각하면 결코 치유되지 못한다. 잔인하리만큼 아픈 대면의 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나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순간이다. 아픔을 기억하고 곱씹고 극복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몫이니 빨리 잊으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개개인의 상처와 상흔이 무시되는 순간 사람도 사회도 병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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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리뷰: 다시 돌아올 희망에 대해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안선경 감독의 <파스카>는 ‘가을’(김소희 분)과 ‘요셉’(성호준 분)의 사랑과 삶을 다룬 영화다. ‘파스카’는 ‘건너간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에서 유래된 말로, 기독교에서 예수의 수난과 부활 사이의 기간을 의미하는 ‘파스카 성삼일’과 연관된다.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파스카>는 가을과 요셉이 겪게 되는 고난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그들이 키우던 고양이 ‘희망’이 죽으면서 시작된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가을과 배달 일을 하는 요셉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40세인 가을과 19세인 요한의 사랑은 사회적 기준 아래에서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관계는 둘만 있을 때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제3자의 시선이 더해지면 정상이 아닌 관계로 비친다. 주변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가난함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채로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 희망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아이가 생긴다. 





영화는 가을과 요셉이 겪게 되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에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성과 잔인함이 더해진다.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고양이의 수술을 두고도 돈 걱정이 앞서게 되는 모습, 고양이 희망이 죽었을 때 장례비용 때문에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지 못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그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직시한다. 가을이 태아의 망가진 몸을 보게 되는 장면 역시도 생략이나 과장 없이 담담히 전시한다.





<파스카>는 가을과 요셉의 ‘희망’이 죽고 난 뒤 맞이하게 되는 고통의 시간을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다시 찾아오는 ‘희망’에 대해 말한다. 가을과 요셉은 고통의 기간을 보내고 다시 새끼 고양이 ‘희망’을 만나게 된다. 영화 속 인물 혹은 현실 속 모두에게는 각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을’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듯,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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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리뷰: 1등의 공식은 존재하는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상효정 님의 글입니다.



누군가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 말처럼 재능을 갖고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다보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성공의 메달이 순위권에게만 주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그저 고군분투하기만 하다가 빛을 발하지도 못하고 사라져가는 이름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만큼의 노력을 가해야 1등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1등으로 가는 공식이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깔끔한 스토리와 인상적인 연출


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열두 번째 인권영화로 <해피 엔드>(1999), <사랑니>(2005), <은교>(2012)를 통해 사회적 통념과 금기에 도전해오는 감독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정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인권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영화는 깔끔한 스토리와 연출로 과도한 순위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교육계의 현실과 스포츠계의 체벌 문제를 꼬집는다. 실력은 없었지만 노력을 통해 1등이 되었다는 누군가의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수영을 좋아하지만 매번 수영 대회 4등에 머무르고 있는 ‘준호’의 시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또한 푸른 물속에서 그려지는 수중촬영 장면들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준호의 숨소리와 수영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담아내 준호가 느끼고 있는 떨림과 긴장의 순간이 고스란히 스크린 너머로 다가오게 된다.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세 가지 유형


수영선수 준호에게는 매번 체육관에 차를 태워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전폭적인 지원 투수 엄마가 있다. 수영 대회 1등인 아이를 둔 엄마로부터 노하우를 얻기 위해 교회를 열심히 따라다니고 절에 나가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소원은 빌지 못하는 엄마이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는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준호에게 걸고 준호의 성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 한다. 또한 준호가 수영을 그만둔다고 하자 준호 동생인 ‘기호’에게 자신의 희망을 건다. 이처럼 그녀는 준호가 4등을 할 때면 아이들을 다그치지만, 2등을 했을 땐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당근과 채찍질’의 모습을 보인다. 이에 반해 아빠는 엄마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수영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준호를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모습은 언뜻 자상한 아버지 상으로 보이지만, 그는 아이의 교육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있는 위치를 취한다. 뿐만 아니라 돈을 통해 갈등을 풀어내려하고 하는 모습에서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체벌은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교육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준호의 코치, ‘광수’는 한때 아시아 신기록을 깨며 국가대표로 우뚝 설만큼 유망했던 수영선수였다. 그는 체벌에 대한 반항심에 수영선수의 길을 그만뒀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준호에게 가하는 체벌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스포츠 계에서 관습적으로 대물림되는 체벌의 방식이 단순히 군기를 잡는 다는 이유로 혹은 사랑의 매라는 이유로 용인 될 수 있는 것일까. 광수는 준호에게 사랑의 매가 있었다면 내가 더 잘 됐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타인의 채찍질은 순간적인 성과를 낼지는 몰라도 온전한 동기부여는 되지 못한다. 





1등하면 기분이 어때요?


준호는 물속에서 반짝거리는 빛을 발견한다. 레일을 자유롭게 오가며 빛을 따라가던 준호는 수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광수를 다시 찾아간다. 하지만 광수는 1등을 해야만 수영을 계속 할 수 있다고 믿는 준호에게“이번엔 니 혼자 해봐라”며 준호를 보낸다. 이윽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참가한 수영대회에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1등을 거머쥐게 된 준호.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그 다음이다. 준호에게 1등은 무엇으로 남게 될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서 그 다음 수영대회에서도 1등을 계속 도맡아 하는 아이가 될까, 아니면 1등의 짜릿함을 잊지 못한 체 순위권 밖으로 넘어가게 되면 몹시 좌절하는 아이가 될까. 영화는 그 다음 준호의 에필로그를 그려주지 않는다. 다만 “1등하면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흔히 실수도 실력이라 하지만, 그 명분아래에는 그저 열심히 해서 실력을 늘려야한다는 선택지만이 남게 된다. 내가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수를 한 것이고 결국 나만 노력을 다하면 되는 것이 올바른 답안처럼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실력을 높이면 정말 실수를 안 할 수 있는 것일까? 1등은 항상 1등일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실수해도 괜찮다는 식의 위로는 어떨까? 수백 번 도전한 가운 데 수백 번 실수를 했다면 그때도 정말로 괜찮은 것일 수 있을까? 이때 <4등>이 말하고 있는 바는 ‘4등이라는 너의 한계를 벗어나야 해!’나‘비록 4등이지만 괜찮아!’가 아니다. 영화는 1등을 하면 기분이 어떤지를 물으며 타인의 조언이나 평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말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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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역> 리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야만 하는 청춘에 대한 애가(哀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다영 님의 글입니다.



'청춘'은 존재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오늘날 우리의 청춘은 어떠한가 종종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숱하게 그려온 청춘의 이미지는 여름날의 따사로운 햇살과 같다. 뜨겁고 밝고 강한 빛. 사람들은 나에게 지금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가장 빛나는 때라고 하는데, 어찌 나는 이리도 무능력하고 하찮기만 한 것일까. 그런 자괴감에 이 '빛나는' 시간을 제대로 살고있지 않다는 이상한 자책감에 빠져있기도 했다.





<수색역>에서 그리는 청춘의 모습은 이전의 성장영화나 청춘영화에서 다뤄온 것과는 다르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앞두고 경기장을 짓기 위해서 정부는 싸고 넓은 땅을 찾기 시작했고 윤석(맹세창 분), 상우(공명 분), 호영(이진석 분), 원석(이태환 분) 이 네 친구가 어릴 적부터 살아온 수색동도 그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에서부터 기술을 배워 일찌감치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이 네 친구는 사는 게 빠듯해도 서로가 있어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원석에게 재개발 관련업자가 일을 제안하게 되고 이들의 삶에 조그만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너무나 앳된 얼굴로 교복대신 작업복을, 혹은 한치수 큰 정장을 입고 담배를 물고 말 한 마디에 한 번씩 욕을 내뱉는 이들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듯이 사회에서 이들의 위치는 조금 불편한 곳에 있다. 학생과 사회인의 어중간한 그 어디, 아이와 어른의 그 어중간한 경계에서 이들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아직은 미숙하고 어린 이들에게 사회가 쥐여 주는 상황들은 너무나 잔인하기만 하다. 





그동안의 숱한 청춘영화들이 순수한 아이에서 상처를 딛고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왔다면 <수색역>은 그 색이 조금 다르다. 아이의 몸으로 이미 어른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균열이 생겼을 때 가차없이 넘어질 수 밖에 없고 회복의 기회 또한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남는 것은 성장이 아닌, 분노와 열등감, 자책과 좌절뿐이다. 단지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이리도 불안하고 연약한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장의 발판은 없이 무조건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강박 속에서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생존방법을 터득한다. 선미(김시은 분)에게는 그것이 '무조건적인 순응'일 수 있고 상우에게는 '무조건적인 열심’이 될 수 있으며, 윤석과 호영에게는 그것이 ‘방관’이라는 태도로 나타난다. 그 방법들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무도 이들에게 성장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방법을 찾고 결정을 내렸을 때, 또 그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결국 가장 큰 책임을 떠안고 가는 것 역시 자신이다. 그렇기에 더욱 커져가는 자책감과 열등감 속에서 이들의 청춘은 아스라히 사그라든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이들의 청춘. 영화가 마칠 때까지도 마음 속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불편함은 이내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바람에 따라 무조건 따라 달리다가 길을 잃은 오늘날의 청춘을 떠올리게 되면서 애잔함으로 번진다. 뭐든지 처음이기에 아름다운 청춘이라지만, 또한 그렇기에 불안하기만 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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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마리아> 리뷰: 뜨거운 연대의 이름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한국, 일본, 필리핀의 여성들. 카메라는 세 국가의 10명의 여성들을 따라다닌다. 직업도, 가치관도 다양한 이들을 특별한 구분과 연결 없이 보여준다. 한두 명이 아닌 열 명의 이야기가 모여 그려내는 여성은 얼핏 세상 모든 여성을 담아내려는 욕심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는 여성을 설명하는 정말 적절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여성학자 뤼스 이리가라이는 여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녀는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여성은 한 사람이라고도 또 두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여성은 모든 정의를 다 거부한다. 더 나아가서 그녀는 ‘적당한’ 이름이 없다.” 


이들을 구분 짓고 정의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다양한 흔적들을 가진 ‘배’를 가지고 각자의 노동으로 실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들이 부끄럼을 이겨내고 배를 보여줄수록 논리를 넘어선 몸의 대화가 생겨난다. 영화는 몸의 대화를 통해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연대를 생산해낸다. 






이 연대가 그들에게도 결코 녹록한 것은 아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성 노동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생각은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구, 방편으로서의 몸이 다양한 인물들, 이야기들과 함께 점점 더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생리를 하고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배. 이들의 몸은 도구라도 부끄럽지 않으며 그들만의 특수성을 만들어 낸다. 이 특수성은 단순히 ‘어머니’가 될 잠재성만은 아니다. 





“여성성보다 모성의 특권으로 이해된다면… 권력에 대한 경쟁에서 여성은 자신이 입술들(성기)로 취한 쾌락을 상실한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없이 어머니, 그러나 처녀 어머니이다.”


이리가라이의 말처럼 영화 속 스치는 그녀들의 배들은 ‘숭고한 모성애’로 귀착되지 않는다. 영화는 그보다 노동 아래서 찾아지는 그녀들의 권리, 불합리, 즐거움, 생계 등을 부지런히 담는다. <레드 마리아>, 그것은 모든 처녀 어머니들의 뜨거운 연대의 이름일 것이다.



* 인용_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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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리뷰: 존엄하지 못한 삶에 대해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성실한 나라


21세기 한국의 앨리스는 성실한 나라에 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 속 ‘수남’(이정현 분)이 사는 세계는 토끼 굴에 빠져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맞닥뜨리는 세계만큼이나 이상하다. 수남은 ‘자격증 최연소 최다 소유자’의 타이틀을 땄지만, 담임은 그녀의 몸매를 칭찬할 뿐이고 결국엔 자격증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곳에 취직한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 청소, 식당일 등을 하며 쉬지 않고 돈을 벌어도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수남의 남편 ‘규정’(이해영 분)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고 의사에게 존엄사를 권유받는다. 남편의 존엄한 죽음을 막기 위해 수남은 존엄하지 못한 삶을 택한다. 


“제가 16살일 때, 그러니까 중학교 졸업반일 때, 엄청난 고민이 하나 있었어요. 집 옆에 있는 공장에 취직하느냐. 고등학교에 올라가 3년을 더 공부하느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이었어요. 여공으로 사느냐, 엘리트로 사느냐 결정짓는 거였으니까요.”


수남이 ‘굉장히 중요한 선택’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 선택지들 사이의 차이는 거의 무의미해 보인다. 수남은 ‘엘리트’의 삶을 택했지만 결국 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대출 받아 장만한 집이 있는 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 되어 빚을 청산하고 남편의 병원비를 낼 수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순조롭지 않다. 수남의 삶은 갈수록 나빠질 뿐이다. 슬프지만, 엘리트로 사는 삶에 있어서도, 남편의 존엄한 죽음에 있어서도 애초에 수남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코믹한 연출, 코미디 같은 삶


통장 ‘경숙’(서영화 분)이 군인 출신의 ‘도철’(명계남 분)과 분노조절 장애를 지닌 ‘형석’(이준혁 분)의 폭력성을 이용해 여론을 선동하는 모습이나, ‘계장’(이대연 분)이 수남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 14개나 되는 자격증은 삶에서 쓸모가 없고 명함 던지기, 칼질 등 생계를 위해 배운 수단은 살인에 이용되는 모습. 몸매가 좋은 것을 깨달으라던 담임의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 애교라는 여성성을 이용하는 모습. 집을 사기 위해 진 빚 때문에 고시원에 살지만, 세입자에게 사모님 소리를 듣는 모습. 모두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모순들이다.


수남은 열심히 산다. 그러나 열심히 살수록 삶은 더 힘들어진다. 한국의 특정 세대가 노력이라는 말을 조롱하고 분노를 느끼는 것이 증명하듯 우리는 수많은 모순이 만들어낸 불행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퉁’치려는 모습들을 오래도록 봐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런 비정한 현실을 직시하며 유머러스한 연출이 더해져 전반적으로 블랙 코미디의 모습을 띤다. 영화 속 수남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은 이제 이 시대에서 코미디처럼 우스운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잘린 손가락


영화의 후반부 쯤 수남이 유리병 속에 보관하고 있던 남편의 잘려버린 손가락을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제때 봉합되지 못한 손가락은 이미 괴사한지 오래다. 유리병 속에 보관된 손가락은 수남에겐 언젠가는 다시 남편의 손가락이 붙을 수도 있다는 가망 없는 희망일지 모른다. 그 손가락을 꺼내보는 순간, 영화 속에서 수남이 다다른 곳도 그러하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은 가망 없어졌고 수남이 저지른 행동들은 괴사해버린 손가락처럼 돌이킬 수 없을 때였다.


한없이 위축된, 왜소해 보이는 여성이 단칼에 그녀를 억압하던 이들의 목을 베는 것을 보아도 이상하게 통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린 한 인간에게 쥐어진 칼은 결국에는 스스로를 향하게 될 것이다. 현실 속에서 수남은 영화의 처음에 등장했던 심리상담소 바깥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여성들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전제되어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존엄이라는 가치는 사실 삶에 있어 절실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나라’에서 존엄은 너무나도 쉽게 잘린 손가락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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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리뷰: 스친 것들에 대한 기록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찰나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을까. 순간은 지나가며, 지나간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들에 아쉬움을 느낀 김종관 감독은 스친 것들에 대해 기록한다. <연인들>은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에서부터 <올 가을의 트랜드>(2008)까지 그의 시선이 담긴 11편의 단편영화를 모은 또 하나의 새로운 영화이다. 새로운 영화라 한 이유는 11편의 영화를 단순히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다양한 연인들이 겪는 연애에 대한 감정의 흐름일 수도 있고 관계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방황과 긴장의 흐름일 수도 있다.





각 영화는 ‘연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크게 두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긴장하고 무료하며 기다리고 화가 나기도 한다. 마치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 말이다. 연애를 하면서 종종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했던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혹은 경멸했던 남의 모습이 실은 자신의 것이기도 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사람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들이 느끼는 고독과 고민은 연인이라는 관계에서의 고민만은 아니다. 남녀 관계에서 나아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한다. 관계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뭔가를 포기하거나 배운다.





11편의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짧게는 3분, 길게는 14분 남짓한 순간에 기록한다. 영화는 짧은 순간을 포착했지만 동시에 그 순간이 있기까지의 평범하기도 하고 위태롭기도 했을 과거의 시간들을 함께 담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단편영화의 매력이자 김종관 감독의 매력이다. 평범하지만 지금 나의 감성과 나의 철학을 있도록 한 과거의 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잊고 있던 삶의 한 켠을 떠올리게 만든다.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일상이란 이름아래 잊혀지고 있나. 그야말로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질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각각의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그저 눈빛으로 말하는 영화이다. 배우는 눈빛에 감정을 담고 감독은 그것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섬세하고도 서두르지 않는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또한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일년의 끝자락, 봄이 오기 직전의 긴장감.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나갈 계절과 잊혀질 기억을 염려한다. 감독은 겨울이 가면 봄은 오기 마련이고 기억하려 한다면 지나는 것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자 위로를 전한다. <메모리즈>(2008)에서 말한다.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지나는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기억밖에 없다. 영화는 잊혀질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연인들>에 수록된 영화를 한편 한편 보고 있자면 최근 개봉한 <최악의 하루>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김종관 감독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걷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최악의 하루>에는 단편영화 11편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 흔적들을 찾아가며 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그만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김종관 감독.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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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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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oung829.tistory.com BlogIcon 영균으 2016.10.02 11:0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읽었습니다~ 짧은 순간순간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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