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함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5월 3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광국 감독

진행 정성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 님의 글입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는 제목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도 퍼즐이 명확히 풀리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갸웃거리며 상영관을 걸어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 날 자리한 손님들이 무척 반가웠다. 이광국 감독과 정성일 영화평론가였다.

다행히 인디스페이스에는 오늘 다음 회차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날의 인디토크는 무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영화 칭찬만 하는 GV만큼 따분한 게 없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지론처럼, 감독이 난처할 법한, 그러나 여태 망설이느라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에 이끌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러분도 긴 글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 안녕하세요. 정성일입니다. 우리들의 대화가 감독에게 응원이자, 어떤 논쟁적인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광국 감독을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이광국 감독(이하 이광국): 안녕하세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연출한 이광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일: 아무래도 이미 백 번쯤 들어보았을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제목을 들으면, 도대체 이 제목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호랑이가 직접 나온 것은 아닙니다만, 호랑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과 호랑이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오기도 합니다. 제목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이광국: 2016년 여름에 집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저희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말씀 중에 그러니까 여름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들 하지 않냐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관용구잖아요. 예전에 에어컨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을 시기 한 여름에 누군가 집에 오면 얼마나 접대하기 고역이었을지 생각하니 직감적으로 영화 제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이 제목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여름이었으니까 여름부터 구상을 해서 가을쯤에 시나리오가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든 부지런히 움직여서 겨울에 촬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고,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촬영을 꼭 해야 된다는 각오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제목을 겨울손님으로 바꿔보았어요. 겨울에 찍으니까. 제목을 겨울손님으로 바꾸고 나니까 이 제목에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더 생겨나고 본격적으로 하나씩 갈피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는데, 저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목을 짓고 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영화가 시작하는 부분에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을 하면 어떨까였어요. ’한 남자가 같이 동거중인 여자친구로부터 영문도 모르고 버림받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이어지고 그 이후에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맥락 구상을 시작한 것 같아요.

 

정성일: 고현정이라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습니다. 고현정이라는 배우를 이광국 감독께서 처음 본 건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을 했었던 시절, <해변의 여인><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일겁니다. 홍상수 감독은 배우의 성질, 능력, 특질 같은 것을 매우 특별하게 이끌어내는 연출자인데, 그걸 조감독의 자리에서 지켜보면서 아마도 남다른 것들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보면서 제 기대와 달랐던 건, 의외로 고현정의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현정 배우가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그녀가 갖고 있는 아우라 때문에, 혹은 카리스마 때문에 거의 영화를 멱살을 잡듯이 끌고 갈 것이 자명한데, 한편으로 이런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광국: 말씀해주신 것 중에 재미난 지점이 고현정 선배님이 갖고 계신 어떤 아우라에 대한 것인데요, 이 영화 안에서도 일종의 착시가 있긴 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분량으로 치면 고현정 선배님이 연기한 '유정'은 경유’ 역의 절반의 절반이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서브캐릭터일 수 있는 역할이고, 실제로 시나리오도 경유가 혼자서 쭉 끌고 가는 이야기로 썼어요. 하지만 고현정 배우가 갖고 있는 어떤 아우라가 착시를 만들어주면서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조감독 때 처음 고현정 배우를 만나 뵀었는데요, 말 그대로 카메라 뒤에서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거나 혹은 감독님이랑 말씀하시는 걸 듣기만 했는데 되게 독특한 리듬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말씀하실 때나 연기하실 때, 고유한 리듬인데 불규칙적이고 예측이 안 되는. 대사만 그런 게 아니라 선배님 행동, 몸짓도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이상한 리듬이 있더라고요. 저 대사를 어떻게 저런 호흡과 저런 리듬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고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저 혼자 고현정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공상에 빠졌던 거죠. 영화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후 한 2년 있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때 좀 선배님하고 얘기를 많이 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이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시나리오는 유정역할에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쓴 부분도 있고요. 10월 말 경에 시나리오가 나왔는데, 정말 무턱대고 선배님한테 말씀을 드려서 시나리오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선배님이 통화하시다가 따로 그럼 날을 잡지 않고 지금 바로 만나서 받겠다고 하셨어요. 저도 생각보다 빨리 시나리오를 전해드리게 됐고, 쓴지 이틀 만에 드렸기 때문에 사실은 드리고 나서 후회를 엄청 많이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 쓸 때 수정을 여러 번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 때 보여드린 게 초고였거든요. 드리고 나서 더 다듬고 드릴 걸 그랬다 싶고 너무 보여드린 게 후회가 되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제작비도 하나도 없는데 선배님한테 ‘2월 달에 무조건 촬영에 들어갈 거니까 선배님이랑 같이 하고 싶다, 제작비를 못 구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도 들고 찍을 텐데 그런 상황이 되어도 선배님이랑 하고 싶다라고 되게 무모한 부탁을 드렸었거든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시나리오 드린 지 이틀 만에 전화로 되게 재밌게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먼저 캐스팅을 하고 거기에 맞는 서브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게 순서인데, 본의 아니게 유정먼저 캐스팅이 된 거죠. 선배님이 함께 하시기로 하면서 동기부여나 독려 같은 것들도 생기고, 마찬가지로 김형구 촬영감독님께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내가 선배님하고 영화를 찍은 게 맞나싶을 정도로 저한테는 되게 막연한 희망 같은 일이어서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합니다.

 




정성일: ‘유정역을 연기할 고현정 배우가 먼저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경유를 연기할 이진욱 배우는 그 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텐데요.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상대가 고현정입니다할 때 약간 망연자실 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고현정은 그냥 배우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진욱 배우가 보였을 반응이 조금 궁금한데요.

 

이광국: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경유역할이 너무너무 어려웠었거든요. 다 쓰고 나서도 말 없는 이 답답한 친구를 누가 연기하는 게 좋을지 막막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고현정 선배님이 유정을 하기로 한 이후에는 남자배우의 폭 자체가 좁아지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는 건데, 시각적으로나 기운으로 눌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이진욱 배우를 신인 때 만났던 기억이 났어요. 너무 잘생겼는데 그냥 잘생긴 느낌이기보다는 눈빛이나 얼굴의 모양 같은 것들이 저에게 되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진욱 배우가 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타이트하게 남은 상태에서 혹시 모르니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고 누구라는 말씀도 드렸는데, 약간 갈증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이진욱 씨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한편으로는 소모된 것이 있었는지 본인이 되게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약간 다른 방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상대역에 대한 당연한 부담도 있었겠지만 어떤 호기심 같은 것들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정성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를 멈춰 세운 것은 배우가 아닌 김형구 감독이었습니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살인의 추억><괴물>을 찍었고,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연인>도 촬영했고요. 또 조명에 이의행이란 이름이 있는데, 이의행 씨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계속 조명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스텝은 얼마든지 누구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고현정, 김형구, 이의행, 그리고 이들과 함께 조감독 시절을 보냈던 감독의 이름을 함께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조합이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어떤 효과를 염두에 두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김형구 감독이 임권택 감독님의 <화장>을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서도 김형구 촬영감독은 자기가 완전히 선택이 안 되면 그냥 찍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보다는 저게 어떻겠습니까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영화를 사진에서부터 시작한 촬영감독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광국: 촬영감독님도 제가 조감독 하면서 같이 작업을 했던 분이고요, 제 첫 영화 <로맨스 조> 만들 때 시나리오를 드렸었어요. 시나리오를 보시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으나 촬영 스케줄이 안 맞아서 작업을 같이 못하게 되어 아쉬웠는데, 제가 김형구 촬영감독님의 샷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물론 많은 분들이 좋아하지만 그 중에 저는 정적인 샷에서 되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봄날은 간다>도 촬영 하셨는데 그런 고요하면서도 핸들이 느껴지는 샷들을 제 영화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고, 카메라는 최대한 안 움직이고 여백이 있는데 어떤 기운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저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촬영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드리자 운이 좋게도 흔쾌히 작업을 승낙을 해주셨고, 감독님하고는 촬영 컨셉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카메라가 땅에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안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두 번째로 인물들에게 서서히 다가갔으면 좋겠다, 경유의 뒷모습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다가가서 결국엔 타이트한 바스트 샷으로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컨셉에 대한 말씀들을 많이 드렸습니다. 촬영감독님께서 본인이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시면 마찬가지로 감독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어렵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정성일: 최근 한국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 헬드 촬영이 거의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다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보면 거의 완강하리만큼 카메라가 멈춰 서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도 거의 동선이 없습니다. 대부분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하죠. 이 멈춰 서있는 카메라와 함께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건 영화가 인물들로부터 갖고 있는 독특한 거리감입니다. 인물들이 아주 특별하게 상대가 반대편에 서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투 샷, 한 구도에 두 인물이 같이 있는 구도로 나오는데,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약점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상 인물의 표정을 거의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경유’나 유정이 대사를 할 때 어떤 표정을 보여주는 지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유정은 제스처가 크지만 경유를 연기하는 이진욱 배우는 그 소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의 어떤 제스처도 보여주지 않거든요. 표정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마음은 더더욱 더 불투명하게 보이는 점을 각오하고서라도 완강하게 멈춰 선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가진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광국: ‘경유캐릭터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경유가 가진 그 답답함, 혹은 어떻게 보면 무능력하고 누구와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며 카메라 역시 인물의 감정을 도와주거나 아니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철저히 경유의 곤경과 난처함을 지켜보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감독님이랑 인물을 어디서부터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었던 것 같고요. 카메라가 인물 캐릭터를 도와주지 않으면 이 인물이 좀 더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처음 이광국 감독이 설명하신 것처럼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겨울손님으로 바꾸셨는데, 간단하게 겨울에 찍느라고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전작 <꿈보다 해몽>에 이어서 다시 한 번 겨울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정이 이광국 감독에게 이 영화에서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이었으면 아 그냥 배경이 여름으로 바뀌었겠구나가 아니라 완전히 모든 게 바뀌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많은 장면이 야외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계절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겨울은 고양이가 돌아다니기에 좋은 계절이 아닙니다. 단지 제목 이상으로 저는 이 영화에서 겨울이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광국: 제가 평소에 생활 패턴이기도 하고 습관이기도 한데, 길에 많이 있어요 평소에. 걸어 다니거나 어디 앉아서 사람들 구경한다거나 실내보다는 야외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20대 후반쯤, 조감독 하다가 작업이 끝나면 그 다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냥 지낼 때, 한 마디로 그냥 백수생활 하게 될 때, 집에서 제가 있지를 못하더라고요. 집에서는 밥 먹고 씻기만 하고 일단 무작정 나오는데 막상 정류장에 섰을 때 갈 데가 없더라고요. 어디를 가야 될 지도 모르겠고. 이게 그냥 하루면 모르겠는데 계속 몇 달, 일 년, 이렇게 반복이 되니까 어느 날에는 정류장에서 한 시간 서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갈 곳이 없다는 느낌이 그나마 봄, 여름, 가을에는 저를 치명적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았었는데, 겨울에 그렇게 서 있다 보면 춥기도 하고 스스로 더 위축되고 더 쓸쓸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던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저한테 겨울에 대한 인상은 그런, 어딘가 목적지가 없이 거리에 던져진 인상이 제일 크고요. 이 영화의 제목을 겨울손님이라고 정한 이유가 단순했다고 말씀드렸고 그게 사실이지만,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겨울에 대한 정서가 담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성일: 배경이 겨울이 되면서 이야기에서 뭘 더 강력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광국 감독에게 홍상수 감독은 좋은 스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에게 없는 것이 이광국 감독에게 있습니다. 그건 영화에서 다루는 빈곤이었습니다. 경유는 빈곤 때문에 한겨울에 거리를 떠돌아야 하고, 대리기사를 하면서 못 볼 꼴을 보게 됩니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만나는 손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제목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렇게 짓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빈곤에 대한 의식은 <로맨스 조><꿈보다 해몽>에도 있었지만 매우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는 빈곤의 감정, 또는 감각이 전면에 나서서 영화를 끌고 가는 힘 같다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또 몇몇 대목에서는 이광국 감독이 그 빈곤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의 감정도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어떤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광국: (웃음) 이건 저 혼자 스스로 생각하는 건데요, 사회적인 각자의 사이클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 나이대가 갖는 기대치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서로에게 갖게 되는 이정도 나이 되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사회적인 기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제가 그 기준에 저를 대입해봤을 때 평범한 제 나이또래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사이클이 한 10년 정도는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빈곤이라는 것에 대해 되게 막연한 낭만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막연한 낭만. ‘뭔가 하나를 붙잡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겠지’ 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생각으로 30대까지 보낸 것 같아요. 그런데 40대가 되면서부터는 갑자기 , 이게 진짜 대책이 없는 거였구나, 내가 독립영화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게 경제인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민폐를 누군가에게 끼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는제가 빈곤하다고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웃음) 독립영화작업이 경제활동 면에 있어서는 '직업'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되게 큰 낙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40대 지나서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그런 것들이 좀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계속 독립영화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그럼 이 시점에 내가 영화를 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뭘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더라고요.

 

 

 


정성일: ‘경유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유정이 몇 번 물어보아도 이제는 안 쓴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유정경유가 쓴 소설 <나그네>를 자기가 고쳐서 발표해도 괜찮겠냐고 질문했을 때, 사실상 자신이 소설을 포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겁니다. 하지만 경유가 왜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 부분은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이광국: 이번에는 되게 미니멀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저한테 항상 딜레마이긴 한데요,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찍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제가 찍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고, 그러다 보니 '경유'가 글을 그만 둔 이유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고 그 이후에 다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성일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현지'가 '경유'를 내보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현지'는 그냥 이별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해서 '경유'를 쫓아낸 다음 연락처를 바꿉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를 추론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유정보다 현지가 훨씬 미스테리하게 여겨집니다. 이 인물은 어떤 각도로 다가가도 잘 설명이 안 됩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미스테리한 인물을 놓고 영화를 시작했을 때 여기서 얻고자 한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광국: ‘현지경유한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을 했고요, ‘경유의 비겁함들이 쌓이고 두려움들이 쌓여서 결국 상대들이 떠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날 아침에 경유가 용기를 냈다면 현지는 그렇게 가버리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래서 '현지'가 사라진 사건이 영화 전체에 그림자처럼, ‘경유밑에 깔려서 공기처럼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마지막에 경유가 전화를 한 번 걸어보는 것으로 첫 장면의 현지를 환기했습니다.

 

정성일: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 나오는 두 인물 경유유정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 속 이야기 이후에 아마 상태가 더 나빠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벼워 보이는 이 영화의 내면은 사실상 참담하고 참혹하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로맨스 조><꿈보다 해몽>은 인물들이 더 나아지려고,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유'는 점점 더 나쁜 손님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심지어 맨 마지막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소녀까지 포착하게 됩니다. ‘유정은 새 삶을 살겠다는 듯이 소주를 다 갖다 버리지만 또 술에 손을 댑니다. 심지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작가로서의 경력도 끝납니다. 말하자면, 두 인물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앞의 두 영화에서 보여준 더 나은 삶, 더 나은 인간으로 가려던 노력에 관한 태도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이광국: 제가 스스로한테 어떤 절망감 같은 것들이 전보다 좀 크게 생긴 것 같고요, 제가 시나리오 쓰면서 경유유정이 결국은 한 사람의 모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조금씩 이루면서 사는 사람이 둘 다 불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고, 계속 영화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지만 이어 나간다고 해도 그렇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섞이다 보니 이야기가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정성일: ‘유정은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습니다. 창작의 재능이 고갈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유정은 처음에 경유를 만났을 때 자기가 결혼했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뜻은 나한테 조금도 가까이 오지 마라는 방어선일 겁니다. 그런데 소설이 써지지 않자 유정경유에게 연락합니다. 영화는 모호합니다. 한편으로는 경유가 보고 싶었다는 느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유가 남겨 놓은 소설 <나그네>에 관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은근히 들게 만듭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경유유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반대의 방식으로 창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재능이 있는 경유는 포기하고, 재능이 없는 유정은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광국: 결국 이 이야기는 저의 고민에서부터 나온 것 같은데, 제가 다른 인터뷰에서 많이 얘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이야기를 쓰면서 제 안의 두려움하고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그 동안은 도망치거나 스스로 무서워서 피하거나 모른척하면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그럴듯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가도, 또 어떤 날은 다른 좋은 영화를 접하고는 나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고 싶으니까 지금까지 했는데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과연 내가 이것을 업으로 평생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매일매일 있거든요. 꿈을 포기한 사람과 꿈을 이룬 사람이 한 사람으로 보이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이 결국에 동전의 양면처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물음 같은 게 이번 이야기에 담긴 것 같아요. 결국 제 딜레마들이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 우리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에 관심 갖고 있는지 그 사람의 책상을 보면 정확하게 알게 되지 않습니까. '유정'의 집에 우리들의 시선을 유난히 끌었던 건 여러 권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한 권도 아니고 여러 권이 있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노인과 바다>는 상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경유가 유일하게 가방에 넣고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삼중당 문고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노인과 바다>가 무언가 '경유'와 '유정' 사이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저는 사실 이게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연결시켜주면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광국제가 뒤늦게 소설을 좋아하면서 번역에 따라서도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좋아하는 소설이 있으면 출판사별로 보면서 어떤 게 내가 읽기에 제일 좋은 번역인지 살피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재밌고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유라면 좋아하는 소설을 그렇게 출판사별로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유정집에 있는 <노인과 바다>들을 다 '경유'가 선물했다고 설정했습니다, 아까도 살짝 말씀드렸듯 저는 이 영화의 큰 맥락이 결국 <노인과 바다>와 닿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치열하게 실패하고, 거기서 오는 쓸쓸함이 저에게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경유혹은 유정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과정들이 <노인과 바다>와 닿아있다고 생각하여 그 책을 선택했습니다. 삼중당 문고는중학생 때부터 갖고 다니는 작은 문고판 책이 있으면 좋겠어서요. 여전히 연결은 안 되시겠지만.(웃음)

 


관객: <노인과 바다>에서 나오는 노인이 청새치한테 뜯기고 꾸는 꿈이 아프리카 초원 속의 사자 꿈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호랑이잖아요. 호랑이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마치 꿈처럼 존재하는데, <노인과 바다> 속 사자와 꿈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만드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영화를 보면 사는 공간과 생활, 결혼에 대한 문제에 있어 감독님이 개인적으로도 뭔가 난감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역시도 궁금합니다.

 

이광국: <노인과 바다>의 사자 꿈 부분을 의식하고 책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책 안에서의 사자는 제가 느끼기에 희망적인 느낌인데 이 영화에서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비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 타이밍을 한번 놓쳤고요. 그 때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제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후로는 당연히 결혼을 못했고, 계속 결혼에 대한 공포감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결혼이 여전히 무섭고, ‘결혼 절대 안하고 혼자 살 거야보다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 무서운 호랑이 같은 존재다라는 생각인 것 같고요.

 

 

정성일: 마지막 장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양수역. 그 역까지 가시려면 경의선 전철 타고 양수리 근처까지 가셔야 됩니다. ‘경유는 거기에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의 제목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입니다. 그때 호랑이 마스크를 쓴 사내가 나타납니다. 이 장면을 볼 때 갑자기 영화 중간의 유정이 떠올랐습니다. ‘유정이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자신의 글 호랑이가 우리에서 탈출하던 날을 쓰다가 계속 지울 때, 여러 명의 아이들이 호랑이 마스크를 쓰고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어떤 초현실주의적인 인상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그 둘이 동일하지만 그만큼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정은 지나가는 호랑이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며 어떤 예술적 감흥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재능이 없는 거죠. 마지막 장면에 양수리에서 '경유'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쓰다가 한 사내를 마주쳤을 때, 한 번도 쓰지 않은 와이드 앵글을 써서 갑자기 화면이 늘어나고 그것은 어떤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둘의 삶만큼이나 다른 엔딩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엔딩을 조금만 설명해주시면 우리는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광국: ‘유정이 글을 쓸 때 지나가는 아이들이 가면을 쓴 것은 호랑이가 우리를 탈출한 상태지만 도심의 사람들이 이를 무감각하게 느끼는 모습, 그 사실이 공포가 아니라 하나의 뉴스이자 놀이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모습입니다. ‘유정은 되게 절실하게 자기 주위의 모든 것들에서 쓸 수 있는 ‘꺼를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그 타이밍에 지나갔기 때문에 호랑이에 관련된 뭔가를 써보게 되고, 자기 일상에서 뭔가 빨리 캐치해내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면서 그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하구요. 엔딩에서 나온 '사내'라고 말씀하신 그 인물은 소년이에요. 10살 정도의 키 작은. 엔딩은 경유가 자신 안에 있는 어떤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장면으로 생각하고 썼는데, 어떻게 보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다 취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는 상징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환영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실제로 그 공간에 꼬마아이가 호랑이 가면을 쓰고 경유 앞에 우연히 서게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환영 쪽이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실제 그 공간에서 어린아이를 만났다기 보다는 하나의 해석의 여지로 작용했으면 더 좋겠고, 자기 안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한테 갖는 바람이기도 하고, ‘경유한테 갖는 바람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장면입니다.

 

 

관객:경유라는 인물이 감독님 자신이 투영된 분신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보다가 궁금한 건데 유정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삼청각에서 입고 있는 옷과 머플러, 가방, 신발 이 모든 것들이 출판사 블랙리스트 이야기하는 장면과 똑같거든요. 시나리오 쓰실 때 출판사 장면의 유정이 먼저 등장을 하고, 그 다음에 '경유'를 만나는 그런 상황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광국: 정확하게 보셨는데요, ‘유정이 편집자 먼저 만나는 씬이 시나리오 상에서는 앞부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화를 찍고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붙여보니까 흐름이 너무 뻔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유정이 갖고 있는 곤경은 뒤에 보여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나리오랑 다르게 그 씬을 뒤로 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의상이 의도치 않게 같아진 건 저는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질문은그냥 뭐 외모 빼고는 제가 많이 투영 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관객: 감독님의 전작들을 모두 봤는데요, 환상과 현실 두 가지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혼재 또는 발현으로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광국: 이유라기 보다는요, 예를 들어 잠을 자며 꿈을 꿨을 때 꿈 안에서는 그게 현실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가끔 꿈에서 깼을 때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싶을 정도로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 마다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면?’이라는 하는 물음이 항상 있었고, 만약에 내가 잠을 하루에 12시간 꼬박 잔다면 정확히 인생의 절반을 꿈속에서 보내는 건데,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혼자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미학적인 접근을 위해서 하는 생각이라기 보단 그냥 제가 평소 생활에서 하는 질문이고, 그 지점들이 이야기를 쓸 때 들어있었던 것 같고요.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그런 지점들이 줄어들기는 한 것 같아요.

 

 



정성일: 그러면 제가 마지막 질문을 하면서 이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공식상영으로는 마지막 GV 자리인데, 이 세 번째 영화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광국 감독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 같습니까?

 

이광국: 저한테는 가장 오래 꾸던 꿈같은 건데, 고현정 선배님하고 작업하고 싶은 제 소망이 현실이 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격할 때 영점이라는 걸 잡잖아요, 자기 눈에 맞는. 제가 많은 영화를 찍은 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제 스타일, 앞으로 평생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제가 붙잡고 가야 되는 영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격할 때도 딱 세발 쏘고 영점이 잡히면 좋다고 하거든요. 장편 영화를 세편 만들었으니까 다음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가야 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제 영화를 보고 구조적인 재미가 있다고들 하시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작업을 계속 재미있게 해나갈 수 있는 근거를 찾고 있어요. 그래야지만 제작비가 있건 없건 제가 영화를 적극적으로 찍을 동력이 생길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에 다양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냥 움직여서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다음으로 빨리 또 넘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정성일: 이광국 감독님의 네 번째 영화를 원하면서, 여러분들을 이광국 감독의 다음 영화 GV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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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  416 4주기 추모상영회 <오, 사랑>, <초현실>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4월 29일 오후 4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응수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인디스페이스의 4월 마지막 기획전은 416 4주기 추모상영회였다. 최근 개봉한 <눈꺼풀><그날, 바다>부터 김응수 감독의 <, 사랑><초현실> 그리고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까지 다섯 편의 영화가 관객을 만났다. 이중 <, 사랑><초현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스크린으로는 최초로 상영되었다<초현실> 상영 후 김응수 감독과의 인디토크가 이루어졌다. 진행은 정지혜 평론가가 맡았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 맡은 정지혜입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께서도 오늘 영화를 스크린으로 처음 보셨대요. 저도 영화를 큰 화면으로 보니 느낌이 다른 것 같습니다. <, 사랑>을 보시고도 조금 우셨다고요.

 

김응수 감독(이하 김응수): 불행하게도 완성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었어요. 저도 오늘 스크린으로 처음 봤거든요. 아버지 표정이 이렇게 슬픈 건지 지금 알았어요. 그리고 <, 사랑>을 보며 팽목항 풍경이 몹시 비통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정지혜: 두 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영되고 관객을 만나는 날이라 감독님께서도 남다른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어떻게 이번 영화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여쭈어보고 싶어요. 관객 소감도 궁금하고요. 그전에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김응수: 안녕하세요. <, 사랑><초현실>을 만든 김응수입니다. 1996년부터 영화를 만들었어요. <초현실>은 열두 번째 영화입니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근근이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정지혜두 편의 영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가장 궁금해요. 사실 세월호에 대한 작업은 한국의 영화인이라면 다들 고민하시지요.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에세이필름이라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에 감독님의 영화 궤적 안에서도 이 두 편의 영화가 가지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아요. 세월호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신 과정, 그 출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김응수: 저는 이 자리가 영화나 미학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길 바랍니다. 관심 있는 분은 책을 읽거나 인터뷰를 보세요. 그런 내용은 개인적으로 공부하시면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우연히 다가오는 것을 얼마나 강도 있게 받아들이는지입니다. 우연히 다가오는 상황을 두고 자신이 어떻게 감응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삶의 태도라 생각합니다. 사실 실천하고 싶지 않아 지식적인 부분에 탐닉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지식으로는 많이 알지만 그것이 용기 있는 태도를 말하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그런 욕망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쉬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중으로서 나누는 이야기는 쉬워야 해요.

<, 사랑>이라는 영화는 제가 <옥주기행>을 촬영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2014년 진도에서 <옥주기행>을 제작하면서 세월호의 현장을 많이 보았어요. 하지만 영화 <옥주기행>에는 조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몹시 강해 <옥주기행>을 잡아먹을 것 같았어요. 사실 저는 진도에 머물면서 세월호 유가족도 우연히 많이 만났습니다. 옆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데 이게 정말 사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영화를 찍으러 와 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났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요. 힘들었습니다. <옥주기행>을 촬영하면서 남겨둔 몇 개의 이미지가 <, 사랑>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올 때까지 나왔기 때문에 <, 사랑>은 조금 달라야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뭘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에요. 아는 것이 넘치는데 계속 더 알고자 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탐욕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만 알아도 됩니다. 그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동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를 내 삶의 욕망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J의 이야기를 접한 거예요. 사실 J와는 예전부터 거래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편집기를 고치러 갔는데 정말 노란 리본이 문에 붙어 있었어요. 한참 서서 혼자 리본을 바라봤어요. 저는 그 사람이 가게에 리본을 붙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더니, 이거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라 하더라고요, 자영업자가 노란 리본을 상징적으로 붙이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행동으로 돌아오는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J에게 그의 이야기로 영화를 구성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풍경이 의미를 가지려면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세월호와 거리 풍경이 의미를 가지려면 말이에요.

<초현실>은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있는 선배와의 상담에서 시작되었어요. 세월호 사건을 심리학적으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물어보니 학과 MT에 가보라 하더군요. 정말 그냥 갔습니다. 무언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MT의 상황이 너무 초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이곳에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두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그에게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절실하게. 아들을 대신해서라도 그곳에 앉아있고 싶고, 아들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의 눈에서 보이는 슬픔과 인내가 너무 슬펐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영화로 만들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찍다보면 우연히 이런 일들을 겪어요. 촬영 대상이 촬영본을 나중에 편집해 보내달라고 부탁하곤 해요. 우리는 그런 약속 잘 안 지키거든요. 대부분 받아도 잘 보지 않아요. 하지만 아버님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꼭 보내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정지혜 영화 제작과정을 천천히 들어봤습니다. 제가 감독님께 한 가지만 여쭈어보고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영화를 보면 내레이션이 있거나 자막이 있거나 사운드를 제거하거나 음악을 삽입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참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가 부재한 상태 혹은 부재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이냐는 고민의 결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랑><초현실>에서는 (부재한)가족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위치를 설정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내레이션과 자막 형태의 에세이로 제시하셨는데, 이러한 형식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응수:  이런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데요. 어떤 영화를 볼 때, 특정한 틀을 가지고 보는 분이 있어요. 그 틀에 들어오면 재밌고 그 틀에 들어오지 않으면 재미없는 것이지요. 반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직관적으로, 감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가 좋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에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에세이 영화를 만들겠다, 이텍스트와 사운드를 어떻게 사용하겠다고 미리 설정하지 않아요. 특히 다큐멘터리일 때는요. 저는 찍힌 재료를 보며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찾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찍힌 재료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우리가 촬영한 현실이 생각보다 힘이 넘치거나 무언가 함축되어 있는 많지 않습니다. 한두 번 있을까 말까. 극영화도 마찬가지에요. 그렇게 만드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요. 저는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 뒤에 있는 것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합니다. 고민의 결과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거예요. , 내레이션 등등이요.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사용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영화 <초현실>에서 특이한 부분은 침묵이에요. 사실 보기 상당히 힘들거든요. 그렇다고 이 소리를 넣으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삶이라는 것도 사랑이냐 아니냐 아니겠어요? 무언가 하나 선택하면 잃어야 하는 게 있어요.

오늘 이 영화를 보는데 사실 침묵이 조금 괴롭더군요. 중화시키는 게 없으니까요. 여러 가지 실험해봤는데, 그럼에도 역시 침묵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실험 끝에 간결하게 음악과 침묵 그리고 글만을 사용하는 것이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건우 아버님께 상영회에 참석해달라 연락을 드렸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복잡하고 어렵나 봐요. 문자를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죄송하다고, 도움을 많이 주는데 자신은 이렇게 말만 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아버님을 돕기 위해 영화를 하지 않는다고요. 이건 제 영화고 이것이 우리 일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요. 우리가 유가족으로 하여금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관객: 침묵이 정말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침묵이 굉장히 힘든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반복적인 에세이가 부모의 절절한 감정과 떠나보낸 자식을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음악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대조적으로 부각되는 것 같아요. 저는 감독님이 에세이를 어떻게 써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부분은 공감이 되고 어떤 부분은 공감이 잘 안 되었거든요.

 

김응수: 질문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어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에세이의 대상을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저 개인이 절절하게 원하는 그림의 대상이라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대부분의 상황을 것 같았어요. 감각적으로 쓸 수 있는 말들이 있지요. 그리고 제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던 눈빛과 아버지에 대해 제가 어느 순간 깨달은 것 그리고 아버지가 저를 무서워했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제가 청년일 때 아버지는 어떤 심정으로 저를 바라봤을까 생각해봤어요. 건우 아버님께는 어떤 것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힘들더라고요. 사실 아버님이 영화를 보시는 것도 조금 두려웠는데, 본인 마음이라고, 영화가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해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지혜<,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에세이를 쓰신 분이 따로 계시고, 감독님께서는 내레이션을 하셨어요. <초현실>과 다른 선택을 하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의 내용이 어느 순간, 그러니까 J의 목소리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순간 어떤 부분은 감독님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지 의문스럽더라고요. 의도적인 전략인지 궁금합니다.

 

김응수: 아니요. <, 사랑>에서 감독이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날, 바다>의 내레이션을 정우성이 맡은 것처럼.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형식으로든 장치로든 여기서 감독이 내레이션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사실 에세이를 읽는 일이 정우성 배우 정도 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훈련이 되어야 가능해요.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에세이의 당사자도 잘 할 수 없어요. 듣기에는 쉽지만 그렇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익숙한 언어구조가 아닙니다. 할 사람이 저밖에 없어 제가 한 것이죠.

 

정지혜<초현실>을 보면 초반부에 특정 남학생을 이미지가 계속 나옵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건우가 저 학생일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의 흐름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었는데요.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통해 건우의 부재를 인식하면서도 영화 안에 있는 학생들을 두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김응수: 제 표현으로는 솔직한 속임수같은 거예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흔쾌히 속아주는 것이죠. 영화 준비할 때 건우가 어떻게 생겼나 검색해봤어요. 얼굴이 갸름했지요. MT에서 본 학생의 이목구비가 건우와 비슷했어요. 카메라를 잘 빨아들이는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저 학생을 보면 건우와 비슷하다 생각하실 것 같았어요. 제가 생각하기 아버님도 한 번쯤은 이런 느낌 가지셨을 거예요. 건우가 있는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관객: 저는 <초현실>을 보며 감독님이 에세이로 쓰셨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몰입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독님께서도 아쉬우실 것 같아요. <초현실>이라는 제목도 그 아쉬움에 대한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감독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응수: 이번에 영화 보니까 현실적인 말이 머릿속에 훨씬 잘 들어와요. ‘안고 싶다,’ ‘넌 너무 투덜거리기만 한다,’ ‘아빠는 너가 음악 하는 게 솔직히 싫었다,’ 이런 말들이요. 잘 안 들어오는 말은 뭔가 복잡하게 설명하려고 했던 것들이에요. ‘너는 나 없이 살 수 있지만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말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 조금 말을 어렵게 쓰는 버릇은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러려 하는데 쉽지 않네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제가 보기에 <초현실>은 무성영화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러다 결말부에 현장 사운드가 영화 안으로 들어오는데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통제한 것인지, 왜 후반부가 되어서야 영화에 사운드를 삽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응수: 강의는 구체적으로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굉장히 열정적인 강의였습니다. 하지만 그 강사의 소리가 관객으로 하여금 아버님의 표정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들어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강의 내용보다 아버지 얼굴이 중요했어요. 제가 막다른 길에서 선택한 것이 무음이었습니다. 소리를 작게 넣을 수 있고, 자연의 소리를 넣을 수도 있고, 초현실적인 효과음을 넣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살다보면 정말 모든 것이, 설령 그것이 아름다운 음악이거나 좋아하는 사람과의 통화일지라도 소음이 되는 때가 있어요. 아무리 작은 소리도 이 영화에서는 천둥처럼 들려요. <초현실>은 침묵의 운명을 타고난 영화였던 거죠. 뒤에 소리가 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건우에 대한 퀴즈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른들처럼 그럴싸한 감상을 나누지 않고 키와 생일 등 구체적인 것으로 떠나간 사람들 기억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관객: 저는 <초현실>이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좋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침묵이 조금 답답하고 불편했는데, 나중에는 이 침묵이 아버님의 심정과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아버님이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초현실적 슬픔을 지나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어요. 에세이라 하셨지만 저에게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였습니다.

 


정지혜 <, 사랑><초현실>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김응수: 우선 상영 기회를 주신 인디스페이스에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하신 도움을 주셔서 감사한데 저는 감사하다는 말 밖에 못 한다는 말씀 있지요. 이런 말 안 하시도록 하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삶의 욕망이기에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영화에 참여한 스탭들에게도 고맙습니다.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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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모든 오리배에게  <수성못>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4월 28일 오후 3시 30분 상영 후

참석 유지영 감독ㅣ배우 이세영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이었다. ‘배우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13번째 작품으로 <수성못>이 상영되는 날이었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뜻 깊은 일을 고민하다가 상업 영화 한 편을 찍으면, 독립영화 한 편을 지원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유지태의 관객 초대 이벤트는 올해로 벌써 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수성못>은 대구에서 자란 필자에게 아주 반가운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도 친숙했지만, 마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그 곳에서 내가 했던 고민이 담겨 있었다. 수성못이 실재하는 지명인지 몰랐을 관객까지도 모두 영화 속 '희정'에게서 자신의 일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다. <수성못>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수수께끼와 여운 속에서,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기자의 진행으로 유지영 감독, 희정 역의 이세영 배우와 함께 하는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이세영(이하 이세영): 안녕하세요, <수성못>에서 희정 역을 맡은 이세영입니다.

 

유지영(이하 유지영): 안녕하세요, <수성못> 연출한 유지영이라고 합니다. 재미있게 보셨기를 바라면서 질문 많이 부탁드립니다.

 

이은선(이하 진행): 저는 진행을 맡은 영화전문 기자 이은선입니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왜 대구의 수성못인가요?

 

유지영: 석촌호수여도 사실은 문제가 없는 스토리긴 하죠. 그런데 제가 대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거든요. 저는 영화를 만들 때 장소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20대 초반에 힘들 때마다 수성못으로 새벽에 산책을 많이 갔는데 그 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속 희정 같은 삶을 살면서 대구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독립하고 싶었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시기였거든요. 수성못을 대구라는 도시에 빗대어 말하면, 그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지만 앞으로 가봤자 제가 못 안에 갇힌 오리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런 마음들이 작업노트에 기록이 되어 있었고 첫 장편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게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 장편은 내 얘기였으면 좋겠고, 내가 나고 자란 장소에서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성못>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진행: 수성못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겠다는 결심을 한 후 처음 생각한 시나리오는 현재의 영화와 같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전에 생각했던 스토리가 혹시 또 있나요?

 

유지영: <수성못>이라는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는 대사가 많이 없고 장소 위주의, 말하자면 포토제닉한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전위영화에 가깝다고 할까요? 수성못을 배경으로 영상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구상 중에 저의 20대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면서 희정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하여 그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서른다섯인 제가 보는 이십 대의 제 거울이랄까요. 처음엔 이미지 중심으로 구상되었던 영화가 희정의 등장과 함께 스토리 중심으로 나아갔던 것 같아요.

 

진행: 희정이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치열하게 사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주변에도 그 치열함을 강요하는 사람이기도 한데요, 솔직히 조금 피곤할 것 같기도 하죠?(웃음) 희정이라는 인물을 처음 대했을 때의 배우님의 마음이 어땠을 지 굉장히 궁금해요.

 

이세영굉장히 오지랖이 넓고,(웃음자기도 모르면서 쉽게 말하고, 자기 세상에 갇혀있는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한 편으로 시나리오를 받고 촬영을 할 때 저랑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고 충분히 이해가 가더라고요. 또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춘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허투루 보여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진행: 그 노력의 일환이 영화 속 대구 사투리겠죠? 사실 감독님이 이세영 배우에게 대구 사투리를 꼭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해요. 이세영 배우가 희정을 그 캐릭터처럼 치열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희정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배우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부분이 있나요?

 

유지영: 이세영 배우와 제가 유머코드가 되게 잘 맞아요. 극 중 오리배 관리소장님한테 거짓말로 엄마 아프다고 하면서 뒷걸음질 치면서 나가잖아요. 그런 유머코드들이 세영 배우의 아이디어였어요. 가끔 스태프들은 그게 뭐냐고 핀잔도 주는데 저는 너무 웃긴 거예요. 각 씬, 각 쇼트마다 함께 논의하며 촬영했고 연기에 있어서는 제가 이세영 배우에게 의존한 것도 많았다고 봐요.


 



진행: 이 영화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은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져요. 특히 인물들의 마지막을 처리하는 방식이 그렇죠. 각 인물들에게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결론을 모두 열어 준 것도 감독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이 난 섣불리 희망 같은 건 얘기 하지 않겠어라는 굉장히 단호한 의지인데요, 실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가져가고 싶었던 목표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저는 미대를 나왔어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데 이런 창작의 과정에서 항상 경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술로써 메시지를 던지는 거예요. 저도 희정이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모르고 저에게도 인생은 한 번뿐이고 모든 것이 첫 경험인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예술의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항상 예술이란 사회 혹은 개인의 거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 때도 ‘2015년도 대구의 어떤 젊은이의 풍경으로 큰 퍼즐 속 한 조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전이 있었어요. 차이밍량 감독이 했던 말 중에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 영화고, 나의 미래를 걱정하면 예술 영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되게 와 닿아요. 내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 서툰데 영화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서툴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모르는 것까지 내가 말할 수 없고, 저 역시 어떤 사람에게 악한 사람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모호하다는 얘기를 듣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답을 내리는 영화를 만들진 못하고 오히려 질문을 드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행: 감독님이 얘기하는 부분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는 생각에 드네요. 동시대를 얘기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나부터 스스로를 굉장히 열심히 들여다 봐야 하는 작업이거든요. 내가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아니면 내가 이 주인공을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치열하게 해야 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가는 작업일 수 있는데요, <수성못>이라는 치열한 과정을 두 분이서 통과하면서 각자에게 어떤 식의 위로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이세영: 희정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또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 사람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저도 제 스스로가 부족한 면을 좀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어요. 내가 희정이랑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나도 착하지만은 않구나, 나도 오지랖이 넓은 스타일이구나, 그렇게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에도 희정이랑 너무 비슷하게 살아서 누가 연락하면 바쁜데 왜 전화해!” 이런 식으로 굴었거든요.(웃음) 모두 다르다는 걸 알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유지영: 이 영화를 통해서 통과의례를 지난 것 같았어요. 단편을 6편 작업하고 이게 첫 장편작인데, 다 제 이야기를 했거든요. 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제가 투영된 이야기를 했는데, <수성못>을 찍고 나서는 이제는 내 이야기를 그만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것 같아요. 또 개봉일에 <수성못>을 보면서 참 희정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20대 때의 저를요. 그 때는 정말 힘들고 치열하게 살았는데, 누구도 너 정도면 괜찮지 않니하며 저를 위로해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 때는 힘들어서 몰랐지만 지금 영화를 보니 희정이를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제 자신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진행: 이 영화는 청춘들의 얘기잖아요. 젊은 세대를 그려내는 영화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기성세대를 묘사하는 방식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성세대들은 주인공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구체적으로 미치지 않는 모호한 인물들입니다.

 

유지영: 강신일 배우가 연기한 박 씨라는 인물은 말씀하신 대로 이 젊은이들의 곁을 끊임없이 맴돌면서도 어떤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에요. 어른들이 없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박 씨의 입퇴장이 굉장히 우스꽝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희정의 엄마 같은 경우는 희정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없는 세계라는 것은 박 씨를 통해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어른들은 스치듯 지나가게 연출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빠도 있지만 없는 듯한, 대구의 가부장 같은 느낌으로요.

 





진행: 희정이가 서울에서 '퍽치기' 당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어쩌면 그 장면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는 관객 분들도 있을 거예요. 잘 해결해나가면 될 것 같은데, 왜 한 번 더 이런 시련을 만들까 하고요. 그런데 이런 방식이 감독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 순탄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어쩌면 이 감독의 장기라고 느껴졌는데요, 편안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상황들이 싫어요?(웃음)

 

유지영: 시나리오를 쓸 때 수정을 거치면서 여러 장면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만은 처음부터 쭉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오히려 거기서 거슬러갔겠죠. 목표가 없이 인 서울만을 바라보고, 내가 무슨 과를 가고 싶은지, 왜 편입을 하고 싶은지, 왜 서울을 가야 하는 지 모른 채 가던 이 아이에게 네가 '뭣이 중헌지' 알아야 한다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감독은 어쩌면 이 세계를 창조해낸 신이잖아요. 여기서 심리적인 타격이 있는 방식으로 각성을 한 번 주고 싶었어요. 너에게 세상이 녹록하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이상 서울에 온 것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진행: 그 씬을 중심으로 거꾸로 이 영화를 돌아보면 굉장히 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가 있어요. ‘영목이 만들고, 결국엔 희준까지 가세하게 된 자살클럽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중요한 축인데요, 나이브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들에게 죽음은 삶에 대한 예찬과 또 다른 방식의 매혹적인 소재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작품 안에서 죽음을 다루려면 굉장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텐데요, 게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동반자살이라는 소재는 무겁고 대하기 어렵고 극으로 만들려면 난감한 이야기인데 자살클럽은 어떤 의도로 연출했나요?

 

유지영이 영화는 희정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플롯인데, 영목희정과 대비되는 위치에 있어요. 희정이 빛이고 삶을 의미한다면, 영목은 그림자, 죽음을 감염시키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희정과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죽음의 무게를 대변하는 입체적인 요소가 필요했는데 그 때 떠오른 소재가 동반자살이었어요. 항상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거나 혹은 충동적으로 죽으려고 하는데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서 나의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자살예방센터에 취재를 갔을 때 처음에는 기록일지들을 보면서 좀 더 드라마틱한 아이템을 시나리오에 끌어오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들은 내 옆에서 내일 죽는다고 해도 내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평면적이고 피상적인 묘사는 피하려고 했어요. 이를테면 내가 지금 목을 매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에도 바퀴벌레가 있으면 '왁' 하고 놀랄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저에겐 중요했습니다. 영목과 자살클럽은 관객에게 죽음을 상기시키는 기능을 같이 하길 원했죠.

 

진행: 마지막 장면 이후 희정의 모습을 관객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희정의 마지막 표정을 보며 쟤가 바로 집으로 갈까?’ 아니면 설마 수성못으로 걸어 들어갈까?’하며 아리송해지죠. 배우도 그 장면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요.

 

이세영: 마지막 장면 촬영을 앞두고 대사 수정을 계속 했어요. 그런데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것은 저도 싫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에도 저는 5050이다, 희정은 살았을 수도 있고 금방이라도 물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물에 뛰어 들어도 죽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다시 살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요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수성못의 물을 바라보면서 정말 모르겠다는 감정으로 연기를 했어요.

 




관객: 영화 속 희정은 곧 제 모습이었어요. 저도 대구에서 어떻게든 서울에 오겠다고 졸업하고 올라와서 살고 있는데, 꼭 목표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요새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동생 희준이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 무슨 책인지 궁금했습니다.

 

유지영: '이방인'이라는 책입니다. 희준이 읽었던 부분은 마지막 구절인데요, 그 장면에서 희준이 도서관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잖아요. 그 장면을 희준이 이후에 자살클럽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복선처럼 생각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방인'이 계속해서 사회의 대열의 이탈자로 살면서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이 대중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어주겠다며 조롱하는 내용이거든요. 그것이 희준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영목의 심리에 대한 갈피가 잘 잡히지 않았는데요, 영목이 왜 그렇게 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자살클럽을 만들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영상을 찍지만 그게 단순히 공감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지, 영목에 대해서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유지영저도 처음에 시나리오 쓸 때 굉장히 고민을 했던 부분입니다. 우선 희정과 영목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인데, 둘의 공통점은 목표가 없이 실행한다는 거거든요. 영목 역시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죽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중증 우울증을 가진 미루라는 여자친구한테 우울증이 감염이 된 거죠. 그래서 무기력하고 만성적인 죽음,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희정도 맹목적으로 인 서울만 하려고 하잖아요. 그 둘이 그렇게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면서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제 의도였습니다. 영목의 전사(前史)를 넣은 적도 있어요. 아픈 어머니가 있고, 요양원에 있고, 여자친구는 우울증이고, 삶이 너무 우울하고, 그런 내용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넣다 보니까 영목의 드라마가 너무 강해지면서 습관적으로, 또 만성적으로 자살에 젖어있는 모습에 방점이 찍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단서인 미루 하나만 남겨놓고 그 원인을 보여주는 대신에 자꾸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주인공이 묻지마 폭행을 당한 후에 씩씩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울어버리잖아요. 그런데 지갑을 뺏겼는데 어떻게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었는지(웃음)

 

이세영: 예리하시네요. 저도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가방 안에 굴러다니는 동전이라거나 바지 주머니에 천 원 몇 장이 있었겠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 먹었다고 설정을 했는데, 사실 그때 당시 나온 신제품을 먹었거든요. 촬영이라고 좋은 걸로 주시더라고요. 감정연기를 하면서 햄버거를 먹는데 치즈가 막 늘어지고 이걸 후루룩 해서 먹을 수도 없고 우는데 치즈가 막 흘러가지고 더럽다고 NG나고.(웃음) 저도 햄버거에 굉장히 의문을 많이 가졌거든요. 왜 그랬나요?

 

유지영: 저는 항상 주머니에 천 원짜리를 갖고 다녀요. 지갑은 잃어버려도 집에는 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설정을 해버린 것 같고햄버거의 경우는 저희가 7000만원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 아닙니까.(웃음) 가게를 섭외하는데 그 조건으로 신상품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치즈가 쭈욱 늘어나고 우는데 질질 흐르고도저히 안 되겠어서 여섯 번 정도 찍다가 햄버거를 바꿨습니다. 그 햄버거가 아니면 섭외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웃음)

 

 




관객: 희정이 엄마랑 싸우고 나서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희준에게 듣는 말은 여자라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데요. 영화 속 희정은 여성을 향한 폭력에 다양하게 노출되지만 남자형제에게 여자라서 편하게 사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장면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그 상황에서 보면 희준이란 인물은 군대 문제로 정체가 되어있는 인물이잖아요. 희정영목은 그냥 목표가 없이 달려나가고 있다면, 희준은 그 중간에서 머무르고 있고 그런 상황들이 숨막혀오는 인물인데, 자기 입장에서 보기에는 달려나가는 사람이 부러운 거죠. 그게 순간 자기 안에서 꼬인 거였어요. 그 씬은 희준의 감정에 제가 이입을 해서 썼는데, 희준의 입장에서는 그 순간만큼은 누나가 부러운 거예요. 누나의 모든 걸 알지도 못하니까요. 누나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희정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 채 얘는 목표도 있고, 달려나가고, 꿈도 있는데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주인공이 호수에서 헤엄치면서 날갯짓을 해야만 바다로 갈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한 오리배처럼 느껴졌는데요, 혹시 지금의 두 분이 극 중 희정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유지영: 달리다가 넘어져도 되니까 그냥 너무 힘들 땐 콱 넘어져버려서 옆에 뭐가 지나가는 지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면 풍경들이 쌩쌩 지나가잖아요. 그런데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들꽃도 보이고 하늘도 볼 수 있고 창을 내려서 향기도 맡을 수 있죠. 그렇게 비포장도로 가듯이 좀 천천히 가고, 힘들면 좀 세웠다 가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이세영: 저는 희정과 굉장히 비슷했어요. 맹목적으로 발버둥치고 열심히 하면서 목표가 여기서 벗어나자인 거요.(웃음) 다이어리 앞장에 항상 한 해를 다짐하면서 쓰는 글이 있는데, 2015년에 써놓은 걸 보니 가끔 앞만 보고 가면 맞게 가고 있는지 모른다. 잠깐 멈춰서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뒤도 한 번 돌아보고, 주변을 좀 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는 말을 썼더라고요. 누가 쫓아오는 거 아니니까 좀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진행: 우리는 관성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꿈 꿔야 하고, 도전해야 하고, 뭔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잖아요. 뭔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스스로 굉장한 실패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매체도 그런 것들을 강요하죠. 최근 젊은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면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반가운 시선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유지영: 많은 관객분들이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다 눈에 담아서 가겠습니다. 저희 영화와 배우들, 영화 속 희정, 영목, 희준을 마음에서 오래오래 안아주시길 바라며 조심히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이세영: <수성못> GV를 하면서 가장 많은 관객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감사드리고, 저희 영화 오래오래 기억해주세요.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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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운동하는 세계를 응시하는 일  인디포럼 월례비행 <박홍렬 촬영감독 단편선>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4월 25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홍렬 촬영감독

진행 변성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모래사장 위에 더미가 놓여 있다.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 더미의 모습. 카메라는 동일한 장소를 분해해 요소 하나하나의 제각기 모습을 훑는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중심엔 카메라가 있다. 우리의 지각 여부와는 관계없이 세계는 움직임을 이어 나간다. 운동하는 세계 속에서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무궁무진한 운동의 연속에서 어떤 상황과 풍경을 마주할지 택하는 카메라인 만큼 변화에 민감해야만 한다. 미세한 손짓으로도 빛의 색채는 달라지곤 한다. 달라지는 삽시간을 정확히 응시해야만 관객도 그를 그대로 맞이할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기, 촬영이라는 행위란 그런 것이다.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지긋이 카메라를 주시해 온 사람이 있다. 박홍렬 촬영 감독이 인디스페이스에 함께해 본인의 영화 세계를 나누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변성찬 평론가(이하 변성찬): 상영이 제작 순서로 이뤄지진 않았다. 2013년에 선보인 <더 바디>가 처음에, 그 다음으로 2017년 발표된 최근작 <산나물 처녀>, 그리고 2004년의 <빛과 계급>이 마지막으로 상영됐다. 세 영화의 촬영 감독. 박홍렬 감독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출연해 창문을 열심히 닦기도 했다.(웃음) <하하하> 이후로 홍상수 감독님과 촬영을 꾸준히 함께 했다.

 

박홍렬 감독(이하 박홍렬): <하하하> 이전까지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을 맡으셨다. 나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촬영 방식이 변화하던 시기에 부탁을 받아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하게 됐다. 단편까지 포함해 11편을 같이 찍었다.

 

변성찬: 마지막에 상영된 <빛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실험영화이자 독립영화이다. <더 바디>는 미스테리이자 스릴러라는 컨셉을 잡은 대중영화에 가깝다. <산나물 처녀>는 선녀와 나무꾼을 귀엽게 비튼 우화이고. 각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굉장히 다채롭다. 박홍렬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왼쪽과 오른쪽 양쪽 끝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촬영감독뿐만 아니라 시네아스트로서 직접 연출도 겸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다큐멘터리까지 연출했다. 활동의 폭이 그만큼 크고 변화무쌍하다. <빛과 계급>2000년대 초의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급진적인 실험성을 보여준다. 마치 다른 시대를 보는 것마냥 느껴졌다. 근데 감독님은 앞서 말한 큰 활동 폭 때문인지 필모그라피를 카운트하기가 힘들다.

 

박홍렬: 카운트는 따로 못했다. 포털사이트에 이름이 올라간 영화는 50편이다. 현대미술 작품도 했었는데, 다 포함해서 추정한다면 200~300편까지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98년부터 20년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가 활발하던 시기에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그를 감독님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 <빛과 계급>16mm로 촬영한 작품이다. 영화창작집단 곡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할 때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작품에 녹일 수 있을까 논의를 많이 했다. 가령, 자본론 세미나를 두 달 동안 했었다. (웃음)


 



변성찬: <빛과 계급>에 대한 물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빛과 계급>16mm 필름으로 촬영한 후 디지털라이팅을 한 작품이다

 

박홍렬: 필름으로 촬영은 했지만 상영은 HD로 전환될 시기였다. 다섯번째 챕터에서 속도가 빠르게 변한다. 근데 이걸 필름으로 찍으려면 비용이 꽤 든다. 김곡 감독님의 지향점은 영화 안에서의 간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빛과 계급>은 이런 작업을 위해 필름과 디지털이 적절히 잘 만난 영화이다. 김곡 감독님은 필름의 물성, 질감의 힘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최근 개봉한 <곤지암>에도 김곡 감독님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빛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빛보다 중요한 게 질감이었다. 디지털라이팅을 할 때 그 간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변성찬: <빛과 계급>은 촬영 감독과 연출 감독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는 작업이다. <빛과 계급> 속에는 필름으로는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장면 속 움직임이 카메라의 움직임인지 프레임의 움직임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장면들은 어떻게 작업했는가.

 

박홍렬: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졌다. 편집의 부분에서만 디지털에 의존했다.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빛이라는 물리적인 성질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요지였다. 빛이 자본이라는 세뇌를 감독이 두 달 동안 했다. (웃음) “빛이 자본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빛이 사람을 언제 비추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영화에서는 거울과 유리상을 활용한다. 우리는 평면을 보고 있지만 그 평면 안에는 깊이가 있다. 거울과 유리로 인물과 인물이, 인물과 카메라가 마주보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은 CG가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동선엔 의도가 있다. 영화는 고정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을 많이 한다. 변화는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해준다. 그 도구로써 거울과 유리가 활용됐다. 카메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타이밍을 맞춰가며 거울과 유리, 인물의 움직임을 조정했다.

 

변성찬: 감독과 세미나 외에 공유한 점은 없나. 그리고 챕터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음이 영화 후반에 제시된다. 나머지 장면은 챕터의 구분도 모호하다. 엔딩 크레딧에 가서야 각 챕터의 제목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게 의도된 편집인가.

 

박홍렬: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김곡 감독님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의도를 제작자가 말할 필요는 없다.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빛이 자본일 필요도 없다. 마지막 자막에 주어지는 내용이 이미지와 결부되었을 때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빛과 계급>이며 공산주의의 미래인가, 갑자기 생각하게 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게 영화의 의도이다.

 

변성찬마지막 장면의 구도는 인물을 횡축이 아니라 종축으로 배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초점 이동이 미세하게 이뤄진다. <빛과 계급>뿐만 아니라 <산나물 처녀><더 바디>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우연인가, 아니면 감독이 선호하는 방식인가?

 

박홍렬: 영화에 대한 취향은 없다. <빛과 계급>의 초점 이동은 감독님의 완벽한 의도다. 여성의 몸이 흔들리고, 거울이 흔들리고 이동하는 것들 말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직접 거울을 흔들었는데, 연습이 필요했었다. <빛과 계급>의 포커스 이동도 같은 개념으로 작용했다. 표현하는 단계에서 많이 논의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곡사의 경우는 영화를 위해 감독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 그를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를 익숙하지 않은 서사의 틀로 다루길 원한다.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서사의 틀이 관객으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응시하길 어렵게 만든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서사의 틀에서 벗어날 때,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상업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는 카메라일 수도, 인물일 수도 있다. 촬영은 내 역할이다. 그리고 한 쇼트 안에 서 몽타주를 다룰 때 어떤 변화를 줄지 생각한다. 나는 심도를 가장 깊이 조절한다. 공간의 깊이를 관객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영화를 촬영할 때 나는 서사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그를 어떻게 위반할 수 있나를 고려한다.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부단히 움직이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나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프레임이 깨진다. 우리는 하늘을 볼 때 하늘다운 것을 연관 지어 의미를 유추해낸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움직임이다. 배우의 움직임은 촬영 감독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포커스 같은 촬영 방식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 상영한 세 영화는 그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서사에 종속되어 있으면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가 언급한 촬영 방식은 취향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변성찬: 평균적인 쇼트보다 롱테이크로 흐름을 길게 가져가느냐, 혹은 포커스를 종축으로 이동하며 두 개의 쇼트를 담을 것인가. 이는 배우 혹은 감독에게도 큰 문제이다. 촬영 감독의 지위가 어찌 보면 최상위에 있지는 않다. (웃음) 감독과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는가?

 

박홍렬: 영화는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상업영화도 똑같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시나리오 안에서 영화적이며 만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려 한다. 감독들은 이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다. 만드는 사람, 즉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중요하다. 만드는 이가 정성을 들여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실제 영화도 새로워진다. 필연을 기반으로 한 우연이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우연을 만날 가능성도 커진다.

 

변성찬: 가장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더 바디>의 박진성, 박진석 감독이 인터뷰에서 박홍렬 감독을 유순하고 고집이 세지만, 그만큼 부지런하다고 표현했다.

 

박홍렬: 내가 연출감독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보다도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어떤 감독을 만날지 모를테니까. <간>이라는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의 모든 한국 사극을 숏 단위로 보았다. 중국에서 SF 영화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2008년도부터 2015년도에 사이의 SF 영화를 100편은 본 듯하다. 그러고 어떤 SF 영화를 만들 것일지에 대해 4시간 동안 발표를 했다. (웃음) 감각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다. 가령 다른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양자물리학 책을 3권 읽었다. 물론 영화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웃음) 이러니 감독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 오늘 상영한 영화 외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개 즉흥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들었다. 촬영 감독께서는 보편적인 방식과 홍상수 감독만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준비하는지, 두 가지 방식 간에 차이가 있다면 어느 점이 다른지를 여쭤보고 싶다.

 

박홍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사로만 보면 다른 영화가 맞다. 그러나 형식적, 매체적 특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산나물 처녀>의 콘티가 다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영화는 자본의 안, 그러니까 계량적 틀 속에서 편집을 거쳐 영화가 비슷해질지라도 현장에서 만들어진 소스는 모두 다르다. 촬영 감독이 할 몫은 어느 영화든 동일하다. 어떤 변화를 만날지 모르니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첫 테이크와 두번째 테이크 간 빛의 결이 다르다. 콘티가 있다면 미리 준비하지만 미리 준비해도 현장에선 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달라진 상황을 맞이하는 건 어느 촬영장이나 동일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보통 테스트 촬영도 없고, 성능이 좋지 않은 카메라를 사용한다. 밝기를 다루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건 다르지만 그 안의 맥락은 같게 표현하려 한다.

 

변성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포커스가 아니라 줌을 사용하는데. 홍 감독의 고집과 박 감독의 고집이 만났을 때 어떨지 궁금하다. (웃음)

 

박홍렬: 나는 내가 고집스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촬영장에서 나는 감독이 아니라 배우라고 생각한다. 홍 감독의 영화는 프레임이 이미 정해져있다. 촬영자의 몫은 그의 리듬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하하>부터 <밤의 해변에서 혼자>까지 줌이 다 다르다. 그 차이를 홍 감독님이 알고 찍는 게 아니다. 감독님은 리듬 안에서 줌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신다. 줌은 배우의 연기를 따라간다. 줌이 들어갈 때 내 어깨를 치시는데(웃음) 가끔 테이크가 길게 이어질 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줌이 늦게 들어갈 때도 있다. 근데 홍 감독님은 그 예상치 못한 리듬을 마음에 들어하셨다.





관객: 극영화의 경우에는 다양한 시도가 보장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는 다를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현실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었나. 극영화와 차이가 있나?

 

박홍렬: <산나물 처녀>에서 산을 포착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동일한 산을 카메라만 돌려서 찍은 것이다. 그 뒤엔 바로 농장이 있다. 조금 내려가면 국도가 있다. <더 바디>에서도 똑같다. 다른 장소들로 인식되지만 실은 동일한 장소이다. 틀 안에서 보면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기지 못한다. 다큐멘터리도 똑같다. 다큐멘터리도 열려있는 상황을 포착해야만 한다. 작년에 <늑대부대를 찾아서>의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갔었다. 1975년도에 반일운동 단체가 미쯔비시라는 기업을 상대로 무장테러를 행한 적이 있다. 테러의 주체는 자성하던 젊은 일본인들이었다. 그 사건을 이유로 작년까지도 독방에 갇혀 40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분이 자살한 동료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촬영했었다. 감옥에서 40년간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촬영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나는 카메라의 거리감과 같이 촬영 윤리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러 가는 것을 찍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근데,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냥 들어간 것이다. 일본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주인공 분이 양해를 구한 후에는 울음을 터트리셨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변화를 찍는 행위가 폭력적으로 느껴질까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 장면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순간에는 교감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변화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지는 다큐에서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

 

변성찬: 다큐의 경우가 더 긴장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를 오늘 상영에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는 건가?

 

박홍렬: 후속편을 만들고 있다.(웃음) 완성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영화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빛과 계급>이 그를 잘 드러내 선택한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라는 구분에 상관없이 영화가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지 여전히 고민을 한다. 그래서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2>를 찍고 있는 중이다.

 

변성찬: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아마 내년에 신작 개념으로 선보여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