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목) 14:20 | 19:30 인디토크

12월 21일(금) 11:00 | 17:40

12월 22일(토) 12:00 | 20:00

12월 23일(일) 11:00 | 16:10

12월 24일(월) 12:30 | 17:30

12월 25일(화) 17:30

12월 26일(수) 18:00


이후 상영일정은 추후 공개됩니다.



 예매하기 

맥스무비 http://bit.ly/2vULqyh

예스24 http://bit.ly/an5zh9

다음 http://bit.ly/2qtAcPS

네이버 http://bit.ly/OVY1Mk











 인디토크 



<버블 패밀리> 인디토크

● 일시: 2018년 12월 20일(목) 오후 7시 30분

● 참석: 마민지 감독 | 주인공 마풍락, 노해숙

●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INFORMATION 


제목 버블 패밀리 (Family in the Bubble)

- 감독 마민지

- 출연 노해숙, 마풍락, 마민지

- 제작 쌍마픽처스

- 공동제작 나파필름즈

- 국내 배급/홍보마케팅 무브먼트

- 해외 배급 시소픽쳐스

- 개봉일 2018년 12월 20일

- 등급 전체관람가

- 영화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물결

제14회 EBS국제다큐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대상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다큐쇼케이스

제3회 대구청년영화제

제8회 광주여성영화제

제22회 인천인권영화제

제17회 헬싱키다큐멘터리영화제 DocPoint 

제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

제9회 부산평화영화제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제10회 로테르담건축영화제 

제22회 토론토릴아시안국제영화제




 SYNOPSIS 


영원히 부자일 거 같던 우리 집은, 망했다.


순식간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던 1980년대,

소규모 건설업, 소위 '집장사'를 하던 나의 부모님은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한 방 터뜨려 재기하겠다는 부모님은 15년 째 월세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대책 없는 부모님이 미웠던 나는 집을 떠났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2010년대,

어느 날, 비가 새는 월셋집에 살던 내게 부모님의 월셋집이 원룸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오고 노심초사하는 나와 달리 부모님은 기약 없어 보이는 부동산 투자에만 관심을 보인다.


거품이 꺼져도 결코 지지 않는 욕망의 도시 서울 

잠실의 아파트 왕국에서 무너지는 월셋집까지

마가네 세 식구의 롤러코스터 같은 거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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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월례비행 12월 단편선 - 연약한 마음의 힘

일시 2018년 12월 26일(수) 오후 7시 30분

대담 참석 강예은, 박현주, 박홍준, 이지연, 정승원 감독 진행 송효정 평론가

관람료 7,000원 (인디스페이스, 인디포럼 후원회원 무료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천 원 할인)



 예매하기 

맥스무비 http://bit.ly/2vULqyh

예스24 http://bit.ly/an5zh9

다음 http://bit.ly/2qtAcPS

네이버 http://bit.ly/OVY1Mk




<치치 ChiChi> 강예은 | 6' 36" | Color | Experimental 


시놉시스

우리는 치치(恥恥)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치치의 시간은 끊임없이 치치를 침범해오는 '다른' 시간들로 인해 중단되고, 치치는 때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다.


연출의도

이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욕망과 금기가 얽힌 은밀한 기억들. 그 기억을 폭로하기 위해, 그러나 모든 사태를 여전히 하나의 비밀로 간직하기 위해, 나는 흩어진 조각들을 줍고, 모으고, 잇는다. 채집된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사운드 요소들은 서로 가까워졌다-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줄곧 그 결합은 텅 빈 곳을 지시하는 듯하다. 이 수직 몽타주, 혹은 다층의 몽타주가 단일한 의미로부터 계속해 빠져나갈 때, 지금, 여기, 우리는 과연 무엇을 소환해낼 것인가.


스탭

감독 / 편집 : 강예은

촬영 : 이병기, 강예은

출연 : 김현정


상영 및 수상경력

2018 제23회 인디포럼2018 신작전



<매미 죽던 날 The day cicadas died> 이지연 | 2018 | 14' 41" | Color | Fiction 


시놉시스

피임약을 먹는 이유를 오해받아 학교에서 벌점을 받은 수연. 수연은 같은 반 친구와 봉사활동을 갔다가 우발적으로 첫경험을 하게 된다.


연출의도

우발적으로 첫경험을 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느꼈던 설렘, 불안감, 통증, 혼란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스탭

제작 : 박하람

감독 : 이지연

촬영 : 이동길

편집 : 이지연

녹음 : 이석민

믹싱 : 배광표

출연 : 한초원, 김종하


상영 및 수상경력

2017 제19회 대전독립영화제



<물고기 소년 Fish Boy정승원 | 2018 | 15' 56" | Color | Fiction


시놉시스

물 밖에서 고통을 느끼는 물고기병에 걸린 일우를 학생들과 선생님이 고치려 한다. 일우가 물 밖에서 멀쩡한 인간처럼 행동하려 할수록 그림자는 일우가 영원히 물속으로 들어가도록 유혹한다. 결국 선생님이 준 약을 먹고 소리는 옅어지지만 그림자는 영원히 일우와 함께할 것이다.


연출의도

마음을 물에 비유해 마음속, 마음 밖을 물속, 물 밖으로 표현한다. 이야기 속 세계에는 물고기병이라는 가상의 병이 존재한다. 마치 물고기처럼 물고기병 환자는 물 밖에서 괴롭다. 즉 마음 밖에서 사람들 틈에서 괴롭다.


스탭

제작 : 김민정

각본 / 감독 : 정승원

촬영 : 목충헌

녹음 : 정요중, 한지웅, 윤형섭

음악 : 배준희

미술 : 나예지

조연출 : 김민정, 김태윤

스크립터 : 나예지, 이명주

출연 : 신재훈, 임채연, 이정민


상영 및 수상경력

2018 제23회 인디포럼2018 신작전


<이삿날 Moving day박홍준 | 2017 | 13' 03" | Color | Fiction


시놉시스

자취를 시작하게 된 선미, 제한된 예산으로 방을 구하다 보니 반지하방을 구하게 된다. 반지하방 창 너머로 보이는 낯선 풍경, 그리고 창을 너머 들어오는 낯선 도시의 소음들. 선미에겐 이 모든 것이 새롭기도, 그리고 한켠으로는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던 중 멀리서 어릴 적 동네에서 들었던 것 같은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선미는 괜히 반갑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내 위협이 된다.


연출의도

누군가 의도치 않게 저지르는 실수와 그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스탭

프로듀서 : 김지은

각본 / 감독 / 편집 : 박홍준

촬영 : 김지안, 장경환

조명 : 김재훈

녹음 : 김혜영

조연출 : 이수진

붐오퍼 : 김정현

제작부 : 서정습, 이준상

출연 : 박세재, 박창순, 황승민, 김지은


상영 및 수상경력

2017 제19회 부산독립영화제 경쟁부문

2018 제23회 인디포럼2018 신작전

2018 제14회 인천여성영화제

2018 제9회 광주여성영화제



<깊고 푸른 밤 A Deep Blue Night> 박현주 | 2018 | 31' 35" | Color+B&W | Fiction


시놉시스

영원은 소소한 영화들에 출연한 배우 지망생이다. 부산으로 여행을 간 그녀는 친절해 보이는 남자 정연을 만난다. 영원은 정연 앞에서 슬픈 척 연기를 한다.


연출의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사람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그 관심이 어떤 느낌일 수 있는지 담고자 했다.


스탭

각본 / 감독 / 편집 : 박현주

촬영 : 조은진

녹음 : 김현규

음악 : 조성욱

조연출 : 이수아

제작부 : 권순형

출연 : 박현주, 박성태, 박준혁


상영 및 수상경력

2018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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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삶에서 발견하는 공감과 연대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구르는 돌처럼>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8일(목)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박소현 감독

진행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EBS국제다큐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거쳐 온 <구르는 돌처럼>이 인디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획전 'I-독립영화여성감독전'의 첫 번째 인디토크로 찾아왔다. 함께 어우러지는 몸짓에서 수많은 서사를 담아내고 연결시키며 순환하는 삶들을 마주하는 영화가 끝난 후에는 열정과 관심 어린 질문과 진솔한 답변이 오고 갔다.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박소현 감독이 참석하였다.


 




박소현 감독(이하 박소현): 안녕하세요, <구르는 돌처럼> 감독 박소현입니다.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배주연):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배주연입니다. 이 영화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의뢰를 받아서 만든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소현: 서울 영등포구에 하자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작은 규모의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네트워킹을 하고 있어요. 그 중에 하자작업장학교는 하자센터에서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학교인데요. 저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영상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영화 초반에 나왔던 것처럼 남정호 선생님과 2012년부터 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마스터클래스라는 프로그램으로 만나왔는데, 작년 여름이 10번째가 되는 때였어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10번째니까 기념으로 기록을 하길 바랐고 제가 주문제작을 의뢰받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 즈음에 다른 영역과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제가 전혀 흉내낼 수 없는, 무용을 하는 분들과 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마침 재미있을 것 같길래, 그리고 제 작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길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주연: 영화를 보다 보니 크게 3가지의 축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요. 먼저 주문내용에 충실한 마스터클래스 과정이 담겨있고, 남정호라는 무용수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또다른 한 축에 있어요. 또 다른 한 축에는 하자작업장학교의 친구들이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담겨있고요. 처음 구성과 지금의 구성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달라지기 보다는 새로 발견한 것이 있어요. 처음에 저와 하자작업장학교나 둘다 당황을 좀 했던 것이, 이전 아홉 번의 마스터클래스는 이번 프로그램과는 되게 다른 프로그램이었어요. 원래는 즉흥춤 클래스였어요. 즉흥춤을 추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수업 시간에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학생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아주었으면 했고 저도 그걸 상상했어요. 그런데 남정호 선생님도 무언가 기념으로 남기고 싶으셨고, 이게 마지막 마스터클래스가 될 거라는 걸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셨어요. 원래 구르는 돌처럼이라는 작품은 한예종 무용창작과 학생들하고 3,4개월에 걸쳐서 만든 안무고 공연도 올렸는데, 그걸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는 학생들하고도 8일 만에 같이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예상했던 즉흥춤 마스터클래스하고는 다르겠구나 싶어서 당황했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같이 촬영을 했던 홍효은 감독하고 저도 같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처음에 의뢰를 받았을 때는 충실하게 메이킹 필름을 찍었고, 내 작업으로는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하면서 사람들의 몸을 담아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참여자들이 무용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써보지 않았던 근육을 사용했을 때 달라지는 몸에 대한 감각, 이런 이야기를 잘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촬영감독이랑 어떤 장비로 어떻게 담아낼지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그런데 8일 동안 수업을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남정호 선생님께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어요. 이 작업을 할 즈음에 제가 너무나 불안한 상태였어요. 내가 여성작업가로서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생계에 대한 불안함이 커졌어요. 여성으로서, 작업가로서 나이가 계속 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의 영역은 점점 너무 좁아지는 것 같고, 일을 해나가는 것에 있어 굉장히 불안한 상태고, 저의 생애주기에 있어서도 과도기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에 막 눈을 뜨고 집중을 하기 시작한 때였거든요. 남정호 선생님께서는 10, 20대 참여자들을 보시면서 본인의 젊은 시절을 투영하셨는데, 저는 남정호 선생님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얼마나 불안하실까’라는 마음이다가, 나중에는 굉장한 자극이 되고 영감을 주는 감정으로 바뀌었어요. 특히나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50, 60, 70대의 여성작업자, 롤모델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분들이 존재하고 계시겠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여성작업자를 발견한 것이 저에게 너무 반가운 일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새로이 발견한 것을 담고 싶었어요.

 

배주연: 사실 저는 보면서 남정호 선생님은 춤을 추시는 분이니까 몸의 움직임을 많이 보여줄 줄 알았는데 카메라가 얼굴도 열심히 쫓아가고 있더라고요. 남정호 선생님도 가장 남정호스러운 얼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잖아요? 여성 예술가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이 카메라의 시선에서도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에 관한 질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어떻게 독립영화 쪽으로 일을 시작하셨는지, 또 지금까지 작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영화를 공부하는 학교에 가면서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감독처럼 안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간호학과나 유아교육과, 선생님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 게 어렸을 때는 굉장히 콤플렉스였어요. 예술가 같은 아우라가 나한테는 없구나. 그래서 머리도 볶아보고 여러 가지를 해 보았는데요.(웃음) 그리고 특히 한 겨울에 밤샘 촬영할 때 체력적으로 현장일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들 말로는 극영화 감독을 하려면 뭔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는데 저한테는 그런 아우라가 없었고요. 그래서 나는 연출의 그릇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편집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같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편집작업을 주로 제가 했을 정도로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현장 수업이 있었는데, 제가 많이 의지하고 존경하는 여자 교수님이 계셨어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전 공동집행위원장이셨던 분이에요. 교수님께서 항상 영화 현장에 계신 여성들을 찾아가서 견학을 시켜 주셨는데 여성 작업자분들은 주로 편집실에 계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학우들에게 나도 나중에 편집실에서 일하고 싶어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졸업하고 우연히 독립영화 작업에서 편집을 할 수 있는 조감독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편 다큐멘터리 조감독을 하게 됐어요. 벌써 10여년 전 일인데요. 다큐멘터리 현장을 경험해보니 제 성향에는 훨씬 더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극영화 연출자에게 요구하는 역량과 다큐멘터리 연출자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확실히 다른 지점이 있었는데, 다큐멘터리 작업 속 촬영 대상자와 관계 맺는 일이 제 성향에 더 맞는 것 같았어요.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요. 첫 작품이 신선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줬어요. 그 후로 장편 다큐멘터리 조감독을 세 작품이나 했어요. 이미 한 작품 조감독을 끝냈을 때 서른이 넘어 있고, 세 작품을 하니 나이만 먹었고요.(웃음) 이제 조감독 좀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계 때문에 취업을 했어요. 직장 생활을 2년 밖에 안 했지만 제가 살면서 가장 길게 조직 생활을 한 거였고, 그만 두고나서 그 곳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은 게 저의 전작 <야근 대신 뜨개질>(2015)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저의 동료들인데요,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제 마음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더 가깝게는 저와 현재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는 여성 작업자 동료들, 저와 비슷한 경험을 살았던 제 또래의 여성 감독들이에요. 내일 8시에 상영할 <이태원>(2016)의 강유가람 감독, <의자가 되는 법>(2014)의 손경화 감독과 공동작업한 <, 이제 댄스타임>(2013)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 때부터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같은 팀은 아니지만 서로의 작업에 있어서 품앗이처럼 돈이 필요하면 돈을 빌려주고, 같이 밥도 해 먹고, 모니터링도 해주고, 스텝도 필요할 때 가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저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는데 ‘선생님도 마찬가지구나, 그런 동력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구나하는 마음이 이 영화의 엔딩에 담긴 것 같아요.

  

배주연: 그런데 팀을 만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웃음).

 

박소현: 일단은 강유가람 감독은 이미 영희야 놀자라는 팀이 있고, 저는 조직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네요.(웃음) 송경화 감독도 이미 이전에 반이다라는 팀을 한 번 경험해봤고요. 일단은 지금처럼 느슨한 연대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에 모두 만족을 느끼고 있고, 구체적으로 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레이블 같은 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요. 서로 꿈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객: 몸의 움직임들을 느끼면서 영화를 즐겼는데요. 저는 영화에 나온 무용가 분에게 관심이 가요. 제가 지금 남정호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고,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원치 않는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요. 저 자신을 믿고 에너지를 많이 주려고 하고, 저 자신을 잃었을 때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힘들기도 한데요. 그래서 그 이야기에 대해 더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옷을 하나씩 벗는 무용에서 마지막에 다시 옷을 입는 모습을 보여주던데요. 그런 연출을 한 이유나 상황을 혹시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박소현: 남정호 선생님께서 소위 말하는 기 센 여자라는 표현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아오셨어요.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어떤 소신에서 나온 것일 텐데요. 아무래도 살아오면서 본인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이건 그냥 제가 추측하는 건데, 정년퇴임을 하시고 이 정도 경력이면 퇴임 후에 어느 협회 회장 같은 직함을 가지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게 하나도 없고 유일한 사회적인 직함이 한예종 교수 하나더라고요. 물론 명예교수로 남아계시기는 하지만 은퇴 후에는 사회적인 직함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더 많은 직함을 가지거나 출세할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세 보이는, 센 척하는 기질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는 말씀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터뷰에서 이어졌어요.

옷을 다시 입는 것의 의미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몇 년 사이의 제 상황하고도 비슷하셨을 것 같은데, 역할이 너무 많으니까 감당하기가 힘드신 거예요. 그래서 일단 벗어볼까? 하고서는 극을 통해서 벗어봤는데, 벗어보니 그래도 내가 그걸 가지고 있는 게 훨씬 더 좋겠다, 느낀 거예요. 잠깐의 이탈이었던 거죠. 역할에 대한 현실적인 통념 같은 것 있잖아요? ‘그래도 내가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해.’ 이런 식의, 그 세대 분들이 가지는 책임감, 짐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면 다시 입자이런 심정으로 다시 옷을 입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가지고 있고 싶지만 벗어놔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고다를 통해서 옷을 주워 입지 않고 돌아서요. 남정호 선생님의 옛 작품 자화상에서처럼요. 발견하신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고다가 처음에는 옷을 다 벗었는데 사실은 모자를 다시 쓰고 나가거든요. 여전히 내려놓고 벗어놓을 수 없는 욕망 같은 것을 되게 솔직하게 표현하시는 분이셨어요.

 

배주연남정호 선생님의 무용 장면이랑 하자작업장에서의 공연 장면을 연결을 시키셨잖아요의도하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소현처음부터 생각한 건 아니고요. 8일 동안 지켜보고 마스터클래스 공연이 완전히 끝난 후에 남정호 선생님을 계속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작업의 구성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0대 참여자들도 있었고, 20대 참여자들도 있었고, 60대의 남정호 선생님이 계셨고, 40대의 선생님이 계셨고, 30대의 제가 그 사이에 있었던 거거든요. 남정호 선생님이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은,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하실 때의 모습이 잠깐 나오는데 그때가 지금의 제 나이예요.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남성참여자들도 있었지만 여성들의 몸의 연대와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고다를 비롯한 다른 참여자들을 대하시는 모습도 그렇고, 참여자들이 남정호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상상하는 것도 그렇고, 제가 남정호 선생님을 보면서 그리는 몸의 역사도 그렇고요. 연결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남정호 선생님께서 펜싱을 하다가 중학생이 되니까 도장에 있는 남자애들이 짓궂게 굴고, ‘여자 냄새라는 표현을 들었다고 하시는데 고다도 여자 냄새라는 표현을 인터뷰할 때 썼었어요. 그건 고다가 스스로 말한 게 아니라 자기 몸에 남겨진 손길, 신체에 남겨진 흔적에 대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들은 말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같이 일을 했던 오빠가 너도 남자를 만나보면 여자 냄새가 날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의 표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남정호 선생님이 그런 표현을 언급한 이야기는 저만 들었는데, 고다도 돌고 돌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요. 계속 연결되는 순환도 느꼈지만, 남정호 선생님도 삶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는 불안 속에서 그래도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보면서 위안을 받았고, 고다를 비롯한 다른 참여자들도 앞으로가 불안한데 남정호 선생님 같은 분을 보고 영감을 받았잖아요. 작업하는 여성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느낌,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영감을 주면서 순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마침 옷도 서로 비슷한 것을 입어서 연결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관객: 중간에 남정호 선생님이랑 고다씨랑 서로 조우하고 있는 장면에서 남정호 선생님이 고다한테서 나의 모습을 종종 봐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둘이 대면하고 있는 모습처럼 감독님이 특별히 의도하셔서 연출을 하셨던 부분, 혹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불안함이나 순환 같은 메시지를 잘 보여주기 위해 연출을 하셨던 부분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니면 감독님 특유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소현: 아까 말했듯 <아무도 꾸지 않는 꿈>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홍효은 감독이랑 8일동안 촬영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화를 같이 만들었는데, 이 작업은 홍효은 감독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어요. 제가 평생 노예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너무 고마운 친구고 힘이 되는 동료예요. 다른 사람이나 남성 촬영감독님이 촬영을 했으면 어땠을지 생각을 해보면 상상이 안 되기도 하고요. 홍효은 감독이랑 촬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긴 말이 필요 없이 살아왔던 세대 속에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여성 작업자로서 함께 맥락을 읽어내는 부분이 있었어요. 촬영을 할 때 제가 별다른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말씀하셨던 장면도 둘이 마주보게 찍어달라고 한 적은 없어요. 물론 큰 틀, 큰 맥락에서는 항상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요. 이건 홍효은 감독의 시선이 저하고 맞았던 지점이 되게 컸던 거죠. 촬영된 소스를 가지고 구성을 짤 때 장면들을 제가 의도하는 대로 배치를 해줬고, 다시 한 번 편집을 하면서 평생 노예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이 학생들하고 손을 맞잡고 남정호 선생님이 무아지경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제가 발들을 메인 스틸 이미지로 쓰는데, 춤을 추는 몸, 그 중에서도 특히 춤추는 여성에게 항상 요구되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발은 다 다르게 어떤 사람은 양말을 신고 있고, 어떤 사람은 벗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무릎이 늘어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바지 한 쪽을 걷어 올렸고, 그런 다양한 다리와 발 모양이 보기 좋아서 강강수월래처럼 도는 장면이 제일 좋아요.

 

배주연그 장면에서 남정호 선생님의 몸이 너무 가볍고 자유롭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남정호 선생님이 댁에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끝나잖아요? 그것도 감독님께서 순환적인 구조를 생각하신 건지,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일단 거실에서 스트레칭 하는 장면을 엔딩으로 써야겠다고 찍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오프닝은 일단 한 번 붙여봤어요. 같은 장면인데 다른 카메라 렌즈로 찍었거든요. 같은 공간에서 찍은 비슷한 장면인데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첫 장면에서 선생님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때 석양이 얼굴에 진 것이 왠지 쓸쓸해 보이고 많은 생각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거친 촬영본이었지만 그걸 오프닝으로 했어요. 엔딩은 그래도 희망차게 끝나는 느낌이어서요. 그런데 얼마 전에 남정호 선생님과 제주도에서 상영이 있어서 같이 가는데 그게 마음에 좀 안 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엔딩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점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셨어요.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끝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남종호 선생님께서는 본인도 아무래도 창작자다 보니까 그것들을 가끔 이야기하시기는 하지만, 절대 강요하시거나 잘못이라고 하신 적은 없어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다시 집으로 오면서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하신 거고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공감이 되었어요. 그런데 고다가 밖에서 춤을 추잖아요? 그 장면이랑 대비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배주연마지막 장면이 되게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고다는 영화 속에서 대부분 실내에서 찍힌 장면이잖아요? 그런데 고다가 춤추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야외에서 확 펼쳐지는 느낌이 있어서 조금 더 해방감이 느껴지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춤으로 다큐를 찍고 싶어서 너무 재미있게 관람했는데요. 원래대로 즉흥춤 클래스였다면 그때는 촬영을 어떻게 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제가 극작업을 할 때는 항상 먼저 기획을 해놓고 그대로 작업해나갔는데, 다큐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쭤보고 싶고요. 세 번째는 촬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여쭤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박소현: 원래 몸을 잘 담자라는 것이 제일 큰 목표였고요. 몸을 예쁘게 담기보다는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썼을 때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발견하는 참여자들의 얼굴, 그런 것들을 담는 것이 큰 목표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만약에 즉흥춤을 했다면 참여자들의 말을 많이 담았을 것 같아요. 저는 즉흥춤 마스터클래스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상상만 할 뿐인데, 참여자들이 즉흥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영화에도 잠깐 즉흥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거든요. 아마도 각자 지금의 고민, 마음이나 기분 같은 것을 얘기했을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을 많이 담았을 것 같아요.

 

배주연추가해서 질문 하나 더 드리면, 카메라가 춤추는 장면을 찍을 때 너무 잘 조직되어있다고 해야 하나요? 되게 유려하더라고요. 사람들의 동작을 따라서 계산된 카메라처럼 움직여요. 아마 즉흥춤이었다면 그렇게 찍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계획을 해서 찍으신 거죠?

 

박소현: , 계획을 했는데요. 제가 즉흥춤을 경험을 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즉흥춤이라 해도 이렇게 담길 거라고 예상을 해왔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홍효은 감독 덕분에요.(웃음)

 

배주연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기획을 어떻게 하는지도 물어보셨어요.

 

박소현: 다들 그렇겠지만 일단 다큐멘터리도 기획과 방향을 가지고 시작을 하죠. 그렇지만 만들어가면서 발견하는 것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요.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식상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무언가 완성된 상태에서 작업을 이어간 것이 아니라 만들면서 공부하고 발견하고, 그러면서 새롭게 정리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작할 때는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시작해야하죠, 단지 그것이 바뀌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고요.

 

배주연: 마스터클래스 후에 대화를 나누면서 방향을 구체화시키셨다고 하셨는데, 그 이전에 촬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요.

 

박소현: 촬영을 하면서 계속 구성하고 바뀌는데요. 촬영된 소스 안에서 최대한 만들어 보려고 했고 후에 추가 촬영을 진행했죠. 사실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아요. <구르는 돌처럼> 메인 촬영이 8일 동안 진행됐는데, 아까도 말씀 드렸듯 장편 조감독을 하나 하고 나니까 나이가 이만큼 들어 있었거든요. 보통 작업 하나가 2년은 기본이고, 그 이상도 걸리잖아요? 사실 8일 동안 촬영한 걸로 장편을 만드는 경우는 드문 것 같은데요. 우선 제가 8일간의 소스를 메인으로 찍고 그 후에도 계속 촬영을 이어갔어요. 선생님께서 정년퇴임 하실 때까지, 그리고 고다랑도 촬영을 했고요. 올 초까지도 보충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필요하면 추가 촬영을 했어요.

 

 



관객: 이 작품을 의뢰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마스터클래스에 대한 관심이 생겨요. 남정호 선생님께서 마스터클래스를 더 이상 안 하시는 건지, 아니면 이후에도 클래스는 계속 진행이 되는 건지 궁금하고요. 두 번째는 이 작품을 찍으신 감독님께서도 남정호 선생님께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고, 남정호 선생님도 고다라는 친구가 자기 자신을 표현해주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요. 남정호 선생님이 고다라는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에 많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을 것 같아요. 관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박소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드리자면, 제가 하자센터에 오랫동안 있었어요. 마스터클래스의 참여자들과 모두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건 아니어도 저라는 존재가 낯이 익고 익숙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들 마음을 잘 열어주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남정호 선생님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수업에 굉장히 몰입을 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촬영하는 저희의 존재감이 전혀 안 느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것도 여성 촬영감독이라는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시선이라든가 그런 면에서요. 그리고 남정호 선생님의 인터뷰는 세 차례 정도 이뤄진 것을 모은 거고요. 고다의 집으로 가서 촬영을 하다 보니 고다랑도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고, 10, 20대의 참여자들하고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저는 10, 20대 참여자들보다 남정호 선생님한테 너무 깊게 감정이입을 해서요. 미래가 너무 불안해가지고 계속 희망을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이런 방향을 가지게 된 첫 단추가 무엇이었나 하면, 원래 남정호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하시겠다고 하셔서 퇴임식 같이 연출을 했는데요. 제가 영상을 하니까 PPT를 잘 만들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사실 저는 PPT를 잘 못 만들어요PPT에 사진과 글씨밖에 얹을 줄 몰라요.(웃음) 그런데 PPT를 맡게 되어서 제가 선생님 학교연구실로 찾아갔고, 선생님이 사용할 사진들을 넘겨주시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어요. 남정호 선생님께서 좋아하신다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사실 요즘 나의 얼굴이 너무 적응이 안 된다. 60대의 이 얼굴이 적응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저도 지금 그렇거든요. 너무 공감이 되는 거예요. 저도 작년까지 10년 전에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었는데 애들이 이제 양심상 그만 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특히나 남종호 선생님께서는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분이잖아요? 무용가가 나이 들어갈 때 그 심정은 어떨 지 궁금하고 계속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남정호 선생님의 하자 마스터클래스가 있을 수 있게끔 만드신 분이 여기 와 계세요. 하자센터에 남정호 선생님을 초대해서 마스터클래스를 열어달라고 설득하신, 선생님의 동료시죠. 올해부터 은평구에 크리킨디센터라고 하자센터 2호점 같은 곳이 새로 생겼어요. 마스터클래스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하자작업장센터가 은평구에 있는 크리킨디센터로 이사를 갔거든요. 최근에 크리킨디센터에서 마스터클래스가 한 번 열렸어요. 이건 그냥 추측인데 남정호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셨잖아요? 지금까지는 조교 역할로 세 분의 대학원 학생들이 마스터클래스에 함께 했는데요. 이번에 새로 마스터클래스를 여셨을 때, 예전에 같이 췄던 고다랑 까르랑 푸른이 조교 역할로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쩌면 일상의 변화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제 학교에서 학생을 만나진 않으니까요. 혼자 추측을 해봅니다.

 




배주연: 마지막으로 끝인사를 부탁드리려고 하는데요. 인생의 시련기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극복하신 건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극복하며 살아가시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마무리를 지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소현: 저의 불안함은 끝은 없을 것 같고요.(웃음) 그렇지만 얼마 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90살의 나이로 영화를 찍기도 하셨잖아요? 그런 존재들이 계속 보여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대학 졸업 후에 생계를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데, 이 일에 있어서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계를 느끼거든요. 교육자로서도 남정호 선생님을 보면서 많이 영감을 받았어요.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작업자들이 계속 눈에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인사가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지만, 여담으로 제가 이 작품을 만들고 춤을 다루는 잡지와 인터뷰를 했어요. 제가 60대 이후에도 작업을 하고 있는 여성 작업자 롤모델 이야기를 꺼냈더니, 기자분이 무용 쪽은 다 여자뿐인데요?’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60대 이상의 여성들이 한국 무용이 아닌 현대무용을 추는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왜 주류 미디어에서 춤추는 여성의 이미지는 고정되어 있고, 나는 이런 여성들은 보지 못했을까?’라고 질문했을 때, 우리에게 고정된 시선을 만들어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미디어의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불안함을 떨치고 길을 이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롤모델이 될 여성 작업자분들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다큐를 처음 만드시는데 어렵다고 하신 분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는데요. 이번 여성감독전 상영작에 많은 다큐멘터리가 있거든요. 꼭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오셔서 다양한 작품들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주연: 박수와 함께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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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감독 장혜영은 묻는다. 그는 다큐를 찍고 노래를 만들며,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사회이슈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인권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18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아온 중증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을 다시 사회에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사회에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영화는 그가 동생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함께 보내는 일상을 유투브 영상으로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펀딩을 통해 세상에 나온 <어른이 되면>은 감독이자 언니인 장혜영과 제작팀 사람들이 시설 밖 세상에서 혜정과 만나 서로를 키워가는 이야기다. 자매는 우리가 질문하게 한다. 함께라면, 제도를 바꾼다면, 무사히 나이 들 수 있지 않을까?



 



Q. 반갑습니다. 인터뷰나 시사회 등 공식 일정이 없는 날 장혜영, 장혜정 자매의 하루일과가 궁금해요.


A. 같이 살아보니 둘 다 엄청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리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일정이 없으면 둘 다 새벽까지 놀아요. 같이 놀지는 않아요. 동생은 동생의 방에서, 저는 제방에서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가끔 혜정이 저에게 말을 걸 때가 있죠. “언니! 유쾌 상쾌 통쾌 해줘!” 귀찮아서 나오지도 않고 방에서 소리치거든요. 저도 안 나가고 제 방에서 유쾌! 상쾌! 통쾌!” 그러면 이제 충족돼요. 제가 요즘 동생한테 나는 너의 아이폰 시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춰라.” 그런 이야기를 해요.(웃음자고 일어나면 혜정이 커피를 찾죠. 그럼 혜정이 원두를 갈고 제가 내리고, 귀찮은 날엔 같이 나가서 커피를 사먹고, 밥 먹고, 동네 마실도 하고. 혜정은 요새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다큐멘터리 찍을 때는 음악수업을 주3회 했었는데 인서가 혜정의 활동지원사를 하면서 음악 수업은 그만하게 됐어요. 영화 끝나고 나서도 2-3개월 정도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서 고생했어요. 인서가 자기가 해보겠다고 교육을 이수하고 활동지원을 했는데, 늘 같이 있는 사람이 되다 보니까 갑자기 각 잡고 음악선생님으로서 수업하면 혜정이 싫어하는 거죠. 그렇다면 다른 것을 할 때가 됐다, 미술수업을 해보자 해서 그림을 그리게 됐죠.



Q. 지금도 인서님께서 활동지원사를 하고 있나요?


A.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인서도 사정이 있어서 쉬게 되었고 지금은 또 보다 못한 다른 친구가 교육을 이수하기로 한 상태예요.

 


Q. 활동보조인이 구해지면 편하겠다고 두루뭉술하게 짐작은 가지만, 구체적으로 자매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A. 지금은 전적으로 사적인 자원으로 혜정을 돌보고 있으니까, 제가 혜정 옆에 붙어있거나 늘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야 하거든요. 말 그대로 개인적인 부탁’을 해야해요. 활동지원제도는 보조서비스를 하는 사람의 급여를 90% 정도 국가가 지원해요. 그러면 더 이상 개인적 부탁이 아닌 거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적법하게 찾아서, 그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줄 수 있어요. 충분한 대가로 보기엔 아직은 너무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대등한 입장에서,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기 보다는 원하는 서비스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훨씬 풀도 넓고 자유로워요. 고맙지만 미안하지는 않은 일이 되죠.

 

 





"제 삶으로 대입해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Q. 처음에 동생 혜정의 탈시설을 결심하고, 사회에 나오기 전 함께 거친 적응기가 1년 정도였다고요. 그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A. 시설에 들어간 걸 납득하지 못하는 시간은 길었지만 시설에서 나와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몇 년 안됐어요. 되게 안타까운, 화가 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혜정이 있던 시설에서 불거졌던 인권침해 문제요. 저는 그 문제를 앞장서서 공론화하고 싶어 했던 유일한사람이었어요. 놀랍게도. 당시 제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학부모 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생활재활교사 분들이 내부고발을 하셨어요. 상습적이고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있다고요. 강간이나 살인 같은, 영화가 그려내는 중범죄행위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동등한 인간에게 한다고 볼 수 없는 처우들이 보호란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것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공론화를 학부모회에 요청을 하셨고, 긴급 학부모 회의를 개최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저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회의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막으러 오셨던 거더라고요. 공론화 과정에서 문제가 심각해져서 시설이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면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오니까.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돌볼 여력이 없다는 거였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동료보호자가 저에게 그렇게 싫으면 혜정이 언니가 혜정이 데리고 나가세요. 우리는 여기 좋으니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 이게 원초적인 욕망에 관계된 것이구나. 이 사람들도 살고 싶어서 이러는구나. 놀라고 슬펐지만 이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적어도 알게 된 한 가지는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시설의 전문적인 지원이나 보호, 이런 것들이 모두 환상이었다는 거예요.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되어서 격리되어 있던 것이고, 격리 수용된 사람들의 인권은 바닥도 없이 떨어지는구나, 싶었어요.

 

그 당시 함께 했던 단체 중에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란 단체의 활동가가 있어요. 지금은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그 활동가가 처음으로 저에게 혜정 씨는 자립준비 안하세요?” 하고 저에게 화두를 주었어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저는 당연히 자립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활동가가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대신에 시설에서 생각을 시작하지 말고 혜정의 삶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면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한참을 고민해서 제가 나름대로 해석한 그 뜻은, ‘내 인생을 내가 바라보는 것처럼 동생의 삶을 바라보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냐.’예요. 혜정의 삶에서 일어난 일을 제 삶에 대입해보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오랜 시간 동생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생각해왔지만, 한 번도 제 삶에 대입해보는 식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는 거잖아요, 사랑과 차별이 함께일 수 있구나. 그걸 알았어요. 그때 탈시설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결심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걸 내가 믿는다면, 이걸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적어도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하는구나. 아주 유려하게 해결할 수는 없어도, 본질적인 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형태를 고민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먹은 후에 동생의 법적보호자인 아버지에게 계획을 털어놨고,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죠. 네 인생을 살아야지 왜 부모 죄를 네가 짊어지느냐, 혜정에겐 시설이 오래 살아온 집일 텐데 네가 생각을 바꿨다고 동생의 삶을 결정하는 것도 폭력이지 않느냐. 반대의 이유는 이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 이유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나의 행동은 부모나 동생에 대한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다. 나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내가 세상을 보는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럼 내가 혜정을 직접 설득하겠다, 혜정에게 프로포즈를 해서 예스를 받아내겠다, 한 거죠. 그 프로포즈의 과정이 1년이었는데, 그건 제가 스스로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함께 살아간다는 건 정말 많은 자원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준비해야 했고 저를 둘러싼 관계를 재정비해야 했어요. 탈시설을 하겠다는 결심은,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었어요. 그 전까지 저는 너무 독불장군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Q. 독불장군이요?


A. . 그런데 영화보고 제가 교우관계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Q. 저도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의지가 굳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김예슬 선언이 있을 때 대학을 자퇴하며 쓰신 대자보를 보고 짐작을 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 혼자 가셨을 때 친구들이 혜정과 함께 지내잖아요. 나에게 같은 상황이 닥치면 누가 나를 저렇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너무 부러웠거든요.


A. 환골탈태했다고 할 수 있죠. 그 계기가 혜정이에요. 그 전까지 중증발달장애인의 비장애인 형제라는 저의 아이덴티티는 사회적으로 숨겨야하는 것이었어요. 차별이 싫어서도 있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 사람들이 거북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어쨌든 우리가 대놓고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기는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이건 사적인 문제니까 내가 잘되어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도움을 요청하는 건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동정 받는 일이고.

근데 혜정과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내가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닌 이상, 시간이라는 자원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존재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타인의 존재 자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 거죠. 내 곁에는 누가 있나? 내가 진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누구에게 말해왔지? 살아가면서 '나는 당신이 사귈만한 사람이에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일들은 계속 해왔지만, ‘나는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이런 삶을 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꼭 아름다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라는 마음은 처음으로 솔직하게 드러내게 됐어요.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나마 한줌 남아있던 친구들에게 한 거죠. 그게 작품과, 작품을 떠나서 혜정과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동력이 됐어요. 결정적이죠. 그게 없었다면 전혀 다른 양상이었을 거예요.

1년간의 적응기 동안 혜정을 틈만 나면 보러 가거나, 데리고 나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혜정이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해보고. 그 과정에는 혜정과 서로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자꾸자꾸 만나게 하는 것도 있었어요. 혜정의 세상이 그 야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건물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느꼈으면 했어요. 분명히 호기심을 느낄 것 같으니까. 제가 아는 혜정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으니까요. 결정적으로는 디즈니랜드에 다녀오면서 혜정의 혼을 쏙 빼놨죠. 매일매일이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 같은 날들은 아니겠지만. 너 나랑 살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이런 거죠. (웃음)

 




Q. 혜정님이 그때 만난 인어공주를 아주 좋아하시죠.


A. 인어공주랑 토이스토리를 진짜 좋아했어요. 그때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 이런 얼굴도 있구나. 기쁨을 주체 못하는 얼굴은 이런 거구나.’ 싶죠. 퍼레이드가 지나가면 진짜 기쁨으로 소리지르는 얼굴로 춤 추고. 일본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죠.

 


Q. 혜정님 이야기 하실 때 정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네요.


A. 맞아요. 유투브 생방송할 때 저는 덕질을 한 적이 없다.” 하니까 사람들이 막 성토했어요. “동생 덕질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한 적이 없다니요!”(웃음) 그래서 저는 성덕이라고 그랬어요. 덕질 대상과 함께 살고 있잖아요.

 


Q. 아까 혜정과 서로 좋아할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A. 혜정은 약간 엉뚱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문법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하고 약간 엇박자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특히 인서님을 좋아하시던데요.


A. 인서는 정말 반사회의 아이콘입니다.(웃음) 일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여름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덥잖아요. 모두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자기 것만 딱 따라 마시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입이 아니냐?” 하니까, “필요하면 달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하더라고요. 혜정하고 만나니까 인서의 그런 점이 특장점이에요. 무언가를 미리 가정하고 만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서는 정말 딱 혜정이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요.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고. 따로 짐작하지 않고 맨눈으로 혜정을 보는 사람이에요. 혜정은 그런 사람들하고 빨리 친해지는 것 같아요.

 


Q. 인서님이 편곡하시고 감독님이 작사, 작곡한 배경음악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등이 모두 좋아요. 원래 음악을 하셨는지요.


A. 아니요. 제가 이번 작업 하면서, 또 혜정과 같이 살면서 얻은 게 참 많아요. 음악을 만드는 취미도 그런 거죠. 이 영화를 음악영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혜정 자체가 음악과 춤을 항상 옆에 두는 사람이기도 하고, 인서가 본격적으로 생활에 합류를 하면서 집안에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어요. 인서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에도 기타를 치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걸 곁에서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주 특별한 과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훌륭한 노래를 만드는 건 소수의 일이겠지만 노래를 만든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싶었어요.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이면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나도 해볼까 싶고. 또 무의식 저편에는 영화에 음악이 들어가야 할 텐데 예산이 없네.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웃음) 그렇게 만들었는데 즐겁더라고요.

 






"우리에게도 평범함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Q. 두 분이 함께 살기 시작하신 이후로 또 어떤 새로운 즐거움, 행복이 있었나요?


A. 우리에게도 평범함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그게 느껴질 때요. 저 어렸을 때는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장애는 질병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것이고,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니면 절대적 불행의 상징이었거든요. 그러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어쨌든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이 있어요. 그런 일상의 순간이 기뻐요. 아주 평범하게 시간이 가는 걸 보고 있을 때. 밥 먹고 같이 소화시키면서 멀거니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요. 그럴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Q. 안다고 생각했던 동생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 장혜정의 몰랐던 모습도 많이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A. 인간의 영혼이 언제 생동감을 얻는가. 그런 생각을 혜정을 보면서 많이 했어요. 시설에 있었을 때의 혜정이 하는 말은 사과가 대부분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도 그 모습이 드러나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진짜 많이 봤어요. 늘 혼날 것에 대비해서 싹싹 비는 것을 많이 봤었어요. 그게 너무 가슴 아팠고요. 이제 혜정은 라고 하는 사람의 욕망이 존중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드러나는 성향도 있어요. 트로트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줄은 몰랐죠. 음식에도 명확한 기호가 있고요. 디테일한 부분을 알게 될 때 그 사람을 알아간다고 느끼게 되잖아요. 혹은 감정적인 경험을 공유할 때도요. , 이 사람은 농담을 좋아하는구나. 장난꾸러기구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것들을 알게 됐어요.

제가 잠들면 혜정이 나와서 집안을 탐험하거든요. 평소엔 저의 오더가 있잖아요. 저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느끼기 때문에 제가 거실에 있으면 방에서 잘 안 나오고, 제가 방으로 들어가면 혜정이 거실의 지배자가 되죠. 요새는 술맛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술을 되게 싫어했는데, 하루는 뭐하나 싶어서 노크하고 방에 들어갔더니 혜정이 한손에는 청하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물병을 들고 번갈아 마시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혜정이 액체는 한 번에 쭉 마시는 버릇이 있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알콜류는 자기 전에 다 제 침대 밑으로 빼놓고 자죠. 그렇게 혜정이 세상을 탐험하는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하면 제가 몰랐던 면들을 보게 돼요.

 


Q.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A. 주눅 들어 있지 않다는 것. 이제 지나칠 정도로. 나한테 너의 욕구를 맡겨놨니? 할 정도로.(웃음) “나는 너의 시리가 아니야하게끔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걸 조절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겠죠.

 




 



Q. 편집을 위해 촬영본을 시간 순으로 쭉 보면서 혜정님 뿐만 아니라 감독님 자신의 변화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가분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실행하는 건 손발이잖아요. 그런데 실행하기 전에 생각을 훨씬 많이 하는 타입이에요. 생각으로 이미 저만큼 가버리기 때문에 그냥 실행해보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들도 도식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커요. 장애라고 하는 요소를 지나치게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많이 벗어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장혜정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특징은 장애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다보니까 초반에 저희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장혜정이라는 인간이 아니라 장애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걸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제 모습이 보여요. 사실 그것 때문에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거든요. 혜정한테 더 많은 것들을 더 빨리 하게 원하게 되고,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못하면 되게 스트레스받고 그랬어요.

그 정점이 이제 노들야학이었죠. 노들은 저에게 혜정이 사회에 나온다는 상징이었어요. 노들에서도 못하면 이 사회 어디에서도 못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그저 저의 생각이고, 혜정의 관점에서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게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저에게 있는 좋은 재능 중에 하나가 일단 멈추고 보자인데요. 그래서 일단 멈추고 제주도에 가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구나, 그게 터닝포인트였어요. 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밟아야 하는 트랙은 없구나, 그런 상징은 없구나. 사실 상징을 만드는 이유는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서가 혜정의 삶을 바라보듯이 나도 맨눈으로 혜정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면, 그걸 적응이라고, 좋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발전이 아니더라도 보면 느낄 수 있잖아요. 이 사람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긴장하지 않고 있구나. 그런 게 살고 있으면 제 자신에게는 잘 안보이는데, 촬영본을 보면서 많이 변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전 제 모습을 검열하고 싶다는 충동을 많이 느꼈어요.(웃음)

 


Q. 하하, 검열 하나도 안하셨나요?

 

A. 검열을 하게 되면 너무 중요한 이야기가 빠지더라고요. 사람들은 이걸 장혜정의 성장스토리라고 생각하며 들어오겠지만, 사실은 제가 변하는 이야기, 혜정을 둘러싼 사람들이 훨씬 더 크게 변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제가 물먹는 건 뺄 수 없는 시퀀스였습니다.(웃음)

 

 




"혜정이는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내게 물었다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혜정이는 그 말을 들어왔을까나 또한 혜정이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나중에' 라고 말해왔지만 대체 그 나중이 언제쯤인지 생각해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영화 <어른이 되면> 내용 중



Q. 제목을 어른이 되면으로 붙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이 정확한 지점을 담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날로그적인 습관이 있어서 기획서를 쓸 때 손으로 쭉 써나갔는데, ‘어른이 되면이라고 써둔 게 눈에 확 들어왔어요. 서른인 혜정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물었을 때 제가 받았던 충격이 떠올랐고요. 이 단어야말로 영원한 미성숙함의 저주에 관한 완벽한 상징이다, 싶었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요. 영원한 미성숙이거나 절대적 불행이라는 것. 그 두 가지를 넘어서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일상성을 회복하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소멸해가는 존재로서의 혜정을 되찾고 싶은 이야기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이 적절했어요. 또 중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처음에는 불행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볼 텐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의미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Q. 장애인을 보는 프레임에는 완벽한 미성숙’, ‘절대적 불행그리고 극복의 대상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는다는 식의 극복 서사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혜정과 함께 춤 대회에 나가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이요.

 

A. 하하, 맞아요. 탈시설을 결심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건 너무 순진한 일이잖아요. 특히나 저는 뭔가를 하기 전에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나와서 혜정의 상태가 더 심해진다 해도 탈시설을 할 것인지 가정해 볼 정도였어요.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데 일조했던 몇몇 사건들이 있잖아요. 부산의 복지관에서 성인 장애인이 갓난아이를 집어던져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아이가 내 동생이었어도 나는 탈시설을 했을까, 라는 질문을 마주하고도 그 답이 그렇다였기 때문에 나왔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대회나 상 같은 것은 제 머릿속에 있을 수 없는 것이었어요. 탈시설의 의미는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액션인 것이지, 장애의 개선을 바라는 액션은 절대 아니니까요. 여전히 경계하는 지점인데, 혜정의 변화가 나오니까 개선됐어요.’라는 식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어요.

 






"‘혜정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순간 이건 엄청난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해요."

 



Q. 동생과 함께하는 언니로서의 삶과 한 사람, 장혜영으로써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나가고 있나요?

 

A. 제가 원래부터 밸런스 좋은 삶을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가지 일에 빠지면 그것에 허우적거리다가 다음 시기로 접어들어요. 처음 혜정과 살 당시에는 장혜영이라는 개인은 집어넣고 혜정의 언니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살아보니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분리되어 있었던 두 삶이 한 삶으로 변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장혜영의 언니이기도 한 장혜영은 이렇게 기꺼이 살아가는 것이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는 성격이 나쁜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혜정과의 삶 중심이 혜정에 있지 않아요. 내가 원해서 이런 실천을 하는 것이죠.혜정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순간 이건 엄청난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게 혜정에게 어떤 영향인지는 마지막에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잖아요. 어쨌든 삶을 대할 때 우린 동등한 인간이지,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다행히 혜정이 그런 언니와의 삶에 함께 해주는 것이고요.

 


Q. 답변을 듣고 보니 질문을 위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의 삶이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차별적이었나 싶기도 하고요. 저에겐 비장애인 언니가 있는데 아무도 저에게 나로서의 나의 삶을 묻거나 언니의 동생으로서 나의 삶을 물어보지 않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이 정말 긍정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단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이 놀라워요.

 

A. 그게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는 든든한 토양인 것 같아요. “결국엔 죽잖아, 그럼 한번 살아볼까?” 이런 식의 생각인 거죠. 최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최악이 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선택이 좀 더 명확해지고, 자신감이 붙는 거죠.

 


Q. 영화 개봉을 포함해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혜영, 혜정 자매가 어느 정도 유명인이 되었는데요. 채널에 댓글들도 많이 달리고요. 부담은 없나요?

 

A. 제가 그런 쪽에 둔감한 것 같아요. 보내주시는 의견들을 보면서 실제로 힘을 많이 받는데, 그걸 통해 제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지 반응 자체에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힘들어질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삶은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이렇거든요. 제 채널에서 다루는 이슈가 다양한데, ‘장애관련해서 활동한 것을 보고 정말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동성애를 옹호하다니, 구독 취소하겠다!’ 이런 반응도 있거든요. 반응에 무심해지는 건 그런 일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는데요. 특히나 발달장애 이슈에 대해서는 제가 가장 마이크를 많이 잡은 사람들 중 하나일 거예요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 간담회에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이 그걸 보여주고요. ‘그렇다면 나는 발언기회를 많이 가지게 된 사람으로서 나의 할 일을 다 하고 있나? 내가 충분히, 한 번도 마이크를 잡지 못한, 시설에서 평생을 보내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엄청 좌절감이 들어요. 개선되고 있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고요. 그런 걸 볼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 뉴스를 보는 것이요. 이번에도 결국 국회에서 발달장애인 관련 예산 증액 논의가 본회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차갑게 식어요. 기운이 빠진다는 건 아니고, 시퍼런 불꽃이 일어나는 거죠. 내가 유명해졌다거나 올라왔다는 생각보단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작품도 살려고 한 거라서, 이제 시작이죠.

 





Q. 이전에도 <당신은 아름답다> 외 두 작품을 하셨어요. 앞으로도 영상으로 뭔가를 계속 해나갈 생각이신가요?

 

A. . 영상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언어 중 하나예요.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거기서는 친구들이 그림 그리고 만화 만들고 게임 만들고 뭐 찍고, 다 그러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창작을 한다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이어지는 토양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하면서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창작자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어요. 음악을 만든 것도 그 연장선상이에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Q. 그러면 저희가 중년이 된, 노인이 된 장자매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요?

 

A. 저희가 잘 살아남는다면요. 그때가 정말 궁금해요. 그때의 지구가 상상이 안돼요. 조카들이 태어나는 걸 봤는데요, 이제 큰조카가 2, 막내조카가 2개월 정도 됐는데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진짜 걱정돼요. 20년 뒤면 저희는 중년이고 조카들은 20대일텐데 그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지금 뭔가를 해두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을 잘 살면 그때는 그래도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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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목) 10:40 |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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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영일정은 추후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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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무비 http://bit.ly/2vULqyh

예스24 http://bit.ly/an5zh9

다음 http://bit.ly/2qtAcPS

네이버 http://bit.ly/OVY1Mk




 인디토크 



<어른이 되면> 인디토크

● 일시: 2018년 12월 16일(일) 오후 2시 30분

● 참석: 장혜영 감독

● 진행: 뮤지션 시와




 INFORMATION 


제       목    | 어른이 되면

영       제    | Grown Up 

감       독    | 장혜영  

출       연    | 장혜정, 장혜영, 유인서, 이은경, 윤정민 

장       르    | 다큐멘터리  

배       급    | 시네마달

러 닝 타 임    | 98분 

개       봉    | 2018년 12월 13일 

S  N  S       | 유튜브 www.youtube.com/c/생각많은둘째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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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NOPSIS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18년 만에 나보다 한 살 어린 막내동생과 함께 살기로 했다.


동생 혜정은 13살 때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 산꼭대기의 건물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아왔다. 내 삶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이 동생의 삶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혜정아, 왜 언니 눈을 안 봐?”

“언니는 왜 맨날 시켜?”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모든 것이 갑자기 내 결심에 맞게 변하지는 않는다. 혜정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내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힘든 순간들이 찾아온다.


우린 결국 떨어져 살아야 할 운명일까?

우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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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제목 버블 패밀리 (Family in the Bubble)

- 감독 마민지

- 출연 노해숙, 마풍락, 마민지

- 제작 쌍마픽처스

- 공동제작 나파필름즈

- 국내 배급/홍보마케팅 무브먼트

- 해외 배급 시소픽쳐스

- 개봉일 2018년 12월 20일

- 등급 전체관람가

- 영화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물결

제14회 EBS국제다큐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대상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다큐쇼케이스

제3회 대구청년영화제

제8회 광주여성영화제

제22회 인천인권영화제

제17회 헬싱키다큐멘터리영화제 DocPoint 

제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

제9회 부산평화영화제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제10회 로테르담건축영화제 

제22회 토론토릴아시안국제영화제




 SYNOPSIS 


영원히 부자일 거 같던 우리 집은, 망했다.


순식간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던 1980년대,

소규모 건설업, 소위 '집장사'를 하던 나의 부모님은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한 방 터뜨려 재기하겠다는 부모님은 15년 째 월세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대책 없는 부모님이 미웠던 나는 집을 떠났다.


순식간에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2010년대,

어느 날, 비가 새는 월셋집에 살던 내게 부모님의 월셋집이 원룸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오고 노심초사하는 나와 달리 부모님은 기약 없어 보이는 부동산 투자에만 관심을 보인다.


거품이 꺼져도 결코 지지 않는 욕망의 도시 서울 

잠실의 아파트 왕국에서 무너지는 월셋집까지

마가네 세 식구의 롤러코스터 같은 거주기가 펼쳐진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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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한줄 관람평


권정민 | 세상에 내던져진 영주의 성장기. 비틀비틀 걸어가다 마침내 혼자 서는 일

김정은 위태롭고도 애틋한 구원과 용서

승문보 | 축적된 이미지와 서사가 전하는 믿음과 소망

주창민 연민을 강요하는 못된 시선

도상희 | 영주야, 계속 걸어가






 <영주>  리뷰 : 영주야, 계속 걸어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주인공 영주는 열넷에 타인의 음주운전으로 부모를 잃었다. 몇 년 뒤, 영주는 가해자 내외의 두부가게에서 일한다. 부모의 부재 속에 엇나간 동생의 합의금 마련 때문이기도 하고, 그 면면을 똑바로 보고 뭐라 한마디라도 쏘아붙여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영주의 처음 목적인 상처주기는 영주의 정체를 알게 된 가해자 내외가 괴로워하며 완벽히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히 무너진다. 복수의 대상을 이미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언제 한 존재를 사랑스럽다고 느끼는가. 그가 완전할 때? 덧없고 하찮을 때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을 볼 때다. 죄를 지었으나 그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때다. 그렇게 나만큼이나 당신도 불완전함을 깨달을 때다. 결여만이 결여를 이해하기에. 그렇게 영주는 살인자와 그의 아내를 속이고서 부모인양 따르며 지내기 시작한다.


기름진 얼굴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다면, 두발 쭉 뻗고 잘못은 다 잊은 채 사는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맘 편히 복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장 한구석에서 서럽게 하얀 두부를 만들어 파는 것을 보았을 때, 죄책감에 목이 매여 밥을 삼킬 때면 가슴을 치고 밤마다 술을 들이켜는 것을 보았을 때, 두 사람의 아픈 자식을 보았을 때 측은지심이 어린 마음에 깃들었을 것이다.





영주는 빌린 돈을 착실히 갚으며 두 사람 곁에 식구처럼 머물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의 딸이라는 고해성사를-일종의 테스트로서-한다. 지나치게 사랑받고 싶었음으로, 자신의 모든 부분을 사랑해주길 바랐음으로.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순진했음으로. 그리고 고백은 결국 의도치 않은 복수가 되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죽인 사람의 자식인 영주의 얼굴을 다시 보기 힘들어한다.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갓 찐 두부처럼 연약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영주가 고민에 빠져있다 떨어트려 짓이겨졌던 두부처럼 그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진실을 말한 영주에게 죄가 있다면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고해성사의 밤이 지나간 새벽, 영주는 삶을 포기하려다 말고 주저앉아 실컷 울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영화는 끝난다. 영주가 걸어서 계속 걸어 나가서 어떻게든 버텨나갔으면 좋겠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부모를 죽인 살인자라 해도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은 틀린 게 아니니까. 힘껏 행복했으면 좋겠다. 영주야, 계속 걸어 가.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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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영주야 2018.12.08 11:2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울렁거리는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러니의 시대, '나'로 살기 위한 몸부림  <마담 B>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5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윤재호 감독 

진행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이사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마담 B는 생계와 가족을 위해 중국으로 향한 탈북여성이다. 그녀는 브로커에게 속아 농부의 아내로 팔려가지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그를 점차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자식들을 위해 다시 남한으로 향해야 한다. 탈북자가, 여자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마담 B의 사랑은 조금 더 쉬웠을까? <마담 B>는 시대와 한 존재의 사랑의 관련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또한 그 속을 살아가는 한 사람에게 오롯이 주목한 영화이기도 하다. 불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싸워나가고 살아가는 여성을 담고 싶었다말하는 윤재호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를 기록했다

 





성송이 씨네소파(이하 진행): <마담 B> 연출하신 윤재호 감독님은 칸 영화제 초청으로 화제를 모았던 단편 <히치하이커>(2016)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된 <레터스>(2017)나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2018) 같은 영화들을 만들며 다큐멘터리와 극, 단편과 장편을 넘나드는 활동을 해오셨어요. 관객분들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재호 감독(이하 윤재호): 안녕하세요. <마담 B> 연출을 맡은 윤재호라고 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마담 B>3년 동안 제작했고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던 작품입니다. 주위 분들이 많이 보실 수 있게 이야기 해주셔서 같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  다들 영화 보셔서 그 고난과 시련을 짐작할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질문을 먼저 드리려 합니다. <마담 B>는 처음부터 기획한 영화라기 보단 극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다가 찍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마담 B'를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윤재호: 2013년 즈음 영화 시나리오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중국에 갔어요. 그때 마담 B라는 분을 다른 탈북자들을 인터뷰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개인 역할로 만났어요. 그분을 통해서 다른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다가 어느 날 마담 B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어요. 중국인 남편 집으로 가게 됐고, 같이 지내면서 마담 B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죠. 원래는 전혀 몰랐고, 처음엔 그분에 대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가자고 해서 집에 가본 거에요. 주변에 있는 이모 같았고,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었죠, 처음에는. 가끔 제 엄마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저희 어머니가 어마어마한 활동력을 가지신 분이에요. 제가 전화하면 본인 할 이야기만 하고 끊는 성격이고, 언제나 무언가를 활발히 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이었는데, 저희 엄마처럼 활동적이고, 때로는 아들의 이야기를 잘 안 듣는 그런 모습이 좋았어요.

 

진행: 탈북이라는 이슈에 집중해서 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단독자로서의 인간으로 마담 B를 조명한 것이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윤재호: 아이러니하고 씁쓸했던 점이, 태국까지 여행하고 나서 7,8개월 즈음 뒤에 그분이 서울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는 연락을 아들을 통해 받았고, 제가 취재를 더 하려고 서울에 왔어요. 영화에서 보셨던 것처럼 한국에서의 삶이 더 어려워 보였죠. 중국에서 중국인 가족과 같이 있을 때에 더 미소가 있었고 더 좋아보였어요. 한국에 오니 오히려 안색이 더 안 좋아지셨고요. 보면서 굉장히 씁쓸했어요. 더 좋은 환경이라는 한국에 왔는데 더 좋아져야하는 거 아닌가? 왜 오히려 더 상황이 나빠질까? 그런 아이러니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한국이 더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씁쓸함이요.

 

 



관객: 촬영 분량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 편집하실 때 특별히 어떤 지점에 신경 써서 장면을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윤재호: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그 분과 함께 지내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들, 그 분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마담 B의 일상을 보면서 여운들이 남으실 거예요. 씁쓸하게 끝나잖아요. 두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이야기고, 엄마의 이야기니까요. 그런 감정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마담 B도 그렇고 그 가족들도 한국에서 씁쓸함을 많이 느꼈을 거예요.

 


관객: 감독님께서 나오는 분들에게 연출을 요구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윤재호: 연출한 것은 없었고요, 오랫동안 찍은 것들 중에 선택한 장면들이에요. 특이했던 점은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음에도 저를 신경을 안 쓰셨어요. 그런 게 좋았어요. 보통 다큐멘터리를 찍다보면 대상들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를 믿어서인 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관객: 마담 B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윤재호: 이게 2년 전 영화고, 그는 두 가족 중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어요. 혼자서 독립하셨죠. 경기도 쪽에 바(bar)를 하나 차리셨어요. 가끔 아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요. 영화가 끝난 시점에서 한참 지나 한국 국적도 얻게 되었고 중국에도 다녀오셨지만, 결과적으로 그분은 중국 가족도 아니고 북한 가족도 아닌 독립을 결정하셨죠.

 




관객: 제가 탈북민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어 더 와 닿았습니다. 프랑스 쪽에서 작업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프랑스인들이 탈북민들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지, 마담 B의 느낌이나 감독님의 의도를 잘 이해했는지 궁금합니다.

 

윤재호: 잘 이해 해주셨어요. 불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싸워나가며 살아가는 여성을 담고 싶었어요. 인간다운,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이야기에 초점을 더 두고 싶었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의외로 탈북자의 사정을 잘 알고 관심도 많더라고요. 개봉했을 때 프랑스 관객 분들도 그 감정선을 느끼셨어요. 탈북해서 프랑스로 가시는 분들도 있고, 벨기에나 스위스에도 가서요. 의외로 국내에서 모르는 것들도 많이 알고 계셨어요.

 

진행: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이 되었는데요, 2만명이라는 놀라운 관객 스코어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서도 개봉을 먼저 했어요. 국내에 역수입된 작품이라고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마담 B는 작품을 보고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궁금하고요, 마지막에 초혼을 부르시는 부분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윤재호: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했을 때 보셨어요. 낮에 일하시는 바에 찾아가서 보여드렸어요.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특히 강아지 놓고 부부싸움 할 때 ‘내가 이런 적이 있었나?’ 하면서 웃으셨고, 태국으로 가기 위한 여정을 우리가 그렇게 오래 고생하며 겪었는데 왜 이렇게 짧게 넣었느냐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좋아하셨어요. 잘 받아들여 주셨고요. 초혼 장면은, 마담 B랑 친구 분들이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자주 가신다고 해서 한번 따라가도 되겠냐 해서 갔어요. 초혼은 그분이 부른 노래들, 한 열 곡 중에서 한 곡인데 제가 선정하여 넣은 거예요. 가사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어요. 마치 그분의 이야기처럼.

 

진행: 감독님의 가장 최근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로 가족이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께 가족이란 의미는 무엇이고, 이 시대의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윤재호: 2011년부터 가족과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담고 있는데요, 과연 가족은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으며 누가 정의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사회? 본인 스스로? 생각하다보면 제 스스로 답을 내리게 되는데, 항상 같은 말로 끝나요. 가족은 정의가 될 수 없어요. 가족이란 사회가 정의 내려 줄 수 없고,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질문들을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함께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관객: 서울 상공 하늘에서 아이의 반공 연설이나 국정원 신고 광고도 나오는데요, 연설을 연출하신건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재호: 그 웅변을 처음 접했을 때, 80년대, 그러니까 제 어린 시절 자료인 줄 알았는데, 2015년도 것입니다. 어떤 단체에서 매년 여는 실제 웅변대회 내용입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질문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간첩신고 광고는 실제로 지하철에 많잖아요. 그 내용들을 보면 거기 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마담 B와 같은 위치의 분들에게는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엄청난 무게감이죠. 물론 나라의 입장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 문구지만요. 그런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재호: 2011년에 만든 <약속>이라는 단편 다큐가 있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만났던 분이 파리에서 민박집을 하시는 조선족 아주머니에요. 그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경계인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어요. 그는 파리에서 불법체류자로 머무는 중이었는데, 9년간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못 만났어요. 아들과 헤어진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분이 가진 중간자적 입장, 조선인으로서 외국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저도 파리에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까 그 아주머니가 가족 같았어요. 그렇게 작품을 계속하면서 마담 B라는 인물도 만나게 됐고요. 어떤 단편은 지하철에서 노래하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진행: 영화에서 보면 실제로 밀입국 여정을 같이 하셨는데요, 영화에 담기지 않은 어떤 위험천만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윤재호: 위험한 여정이 영화의 메인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중국에서 태국까지 1주일 정도 걸렸는데,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죠.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산을 넘을 때였어요. 중국에서 저녁에 출발해서 다음날 낮 12시에 라오스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기까지가 제일 힘들었어요. 중간에 내릴 수 없는 버스였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분위기여서 어쩔 수 없이 끝까지 함께하게 됐어요. 제가 다리를 좀 다쳐서 절뚝거리면서요. 태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방콕에 허름한 모텔에 도착해서 중국 이후 처음 거울을 봤는데 정말 거지꼴이었어요. 샤워를 몇 번을 했는지 몰라요. 너무 힘들어서 그 모텔에서 몇 시간을 멍하게 있었어요.

 




관객:  다음 작품은 언제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윤재호: 내년 2, 3월에 들어가요전혀 다른 작품이긴 합니다호러영화예요소재는 편견이에요. <마담 B>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작품이에요우리 사회는 항상 최고가, 1등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잖아요하지만 꼴찌면 어떻고 3등이면 어때서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을 담으려고요.



진행: 감독님이 해외에서 활동도 오래 하시고 다른 작품들도 만드셨지만 국내에서는 개봉기회가 없으셨어요. 올해 아이러니하게도 11월에만 두 편의 작품을 개봉하게 되었는데요, 마지막으로 개봉 소회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윤재호: 국내에서는 처음 영화를 개봉해보는 거라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배급사에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해주고 계십니다. 작은 영화긴 하지만 주위에 많이 이야기하고 응원해주세요. 때리고 부수는 스케일 큰 영화는 아니지만 작은 영화들이 꾸준히 공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또 이 영화가 마담 B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분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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