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군의 발톱>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전쟁과 국가권력으로 처참히 파괴된 순수와 평화

주창민 |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우화극의 재현 vs 관심병사 오장군의 의식의 흐름

승문보 | 국가의 폭력에 의해 잠몰하는 개인의 삶

권정민 | 인물, 화면, 이야기, 방식 모두 어색하기만 하다







 <오장군의 발톱>  리뷰 : 국가의 폭력에 의해 침몰하는 개인의 삶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총이 무섭습니다. 총은 우리 편과 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 시민 1000여 명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에 완성된 김재한 감독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 극작가의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이며,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개봉했다. 물론, <오장군의 발톱>은 연극과 달리 시간 및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이점을 갖고 있지만, 그 이점을 살리지 못한 큰 아쉬움을 낳는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아직도 휴전 국가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주제의식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오장군의 발톱>이 함의하고 있는 상징성에 주목한다면, 국가의 권력과 폭력에 의해 소모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장군의 발톱

 

평화로운 시골에서 농사밖에 모르던 오장군은 잘못된 징집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지만 오장군은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터로 끌려간다. 왜냐하면 국가가 실수하든 안 하든 명령을 내렸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적 비약이 묵인되었기 때문이다.오장군은 훈련소에서 노모약혼녀 꽃분이에게 보낼 발톱을 깎는다. 카메라는 발톱을 깎는 그의 모습을 먼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지된 시선으로 전달한다. 이와 같은 시선은 한없이 어두운 공간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극심한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는 오장군이 의인화된 순수성이 점차 빛을 잃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오장군의

 

극 중에서 종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린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오장군은 꿈을 꾼다. 꿈은 그가 유일하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심리적인 공간이자 노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다. 꿈에는 항상 보고 싶은 노모꽃분이가 등장하고, 때로는 애지중지 키우던 소 먹쇠도 나타난다. 이들은 오장군과 더불어 개인의 순수성과 이념이나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성을 체현한다. 그러나 오장군의 꿈은 길게 지속하지 않는다. 그가 꿈에 더 깊숙이 빠져들려고 할 때마다 위기 상황이 도래하거나 누군가 그의 앞에 서서 바라본다. 이는 곧바로 꿈과 극단적인 대조를 형성함으로써 오장군의 행동과 모습을 비웃을뿐더러 순수성과 자연성을 짓밟는 국가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오장군의

 

전쟁의 승리에만 혈안이 된 국가에 의해 이용당하던 오장군은 결국 버림받는다. 적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고 죽음이 그의 곁에 다가온다. 그래도, 그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계속 찾는 건 다름 아닌 환한 빛이었다. 왜냐하면 빛은 그에게 유일한 한 줄기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햇빛 아래에 남은 건 그가 훈련소에서 깎은 발톱뿐이었다. 천에 얼굴이 가려진 채 황량한 들판에 놓인 오장군의 모습은 빛과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는 국가 권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희생당하는 개인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는 끝까지 진정한 평화를 위한 방법을 관객들에게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상징들과 의인화된 추상적 관념들을 곱씹어 생각해본다면 관객 스스로가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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