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칭의 세계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23일(일) 오후 2 30분 상영 후

참석 이영 감독

진행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불온한 당신>의 시작과 끝의 에피소드를 장식하는 ‘이묵’. 그는 생물학적으론 여성이다. 하지만 남자 같은 차림새로 여자를 사랑한 이유로 ‘바지씨’라 불렸다. 바지씨는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던 6-70년대에 사용된 은어다. 영화는 70대 노인 이묵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커밍아웃한 일본인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한편으로 상당한 분량을 2014년 당시 혐오 프레임으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세력의 노골적 행동과 언사를 담는 데 할애한다. 그래서일까. 이날 인디토크에서는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 목이 멘 이들이 많았다. 관객들은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이영 감독은 차별받고 소외되는 성소수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전달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관객들의 질문에 차례로 대답했다.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이하 진행):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어요. 첫 번째 봤을 때는 탄핵 전이어서 더 참혹하고 우울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 이묵 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의 집회 장면이 나오면서 되게 우울해졌어요. 그들의 북소리로 영화가 끝날 때, 알 수 없는 미래,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 마치 양념처럼 이 영화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묵 님은 개인적인, 드러내기 힘든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털어놓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영 감독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의 전작 <이반 검열>(2005)과 <아웃 -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인터뷰이와 라포(rapport) 형성이라 해야 할까요?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이영 감독(이하 감독): 이묵 선배님은 <불온한 당신> 개봉 준비하던 4월에 돌아가셨어요. 관객 여러분도 만나 뵙고 싶었을 것 같고, 저 역시도 개봉관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많이 슬퍼요. 선배님께서 남긴 말이 있어요. 당신의 뜻을 많은 관객에게 전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위안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에 많이 나누려고 힘내고 있어요.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영화에서 보셨듯이 제가 리어카도 끌고 밥도 해요.(웃음) 논과 텐은 밥을 함께 먹고 친해지는 게 시작이었어요. 이묵 선배님 처음 뵀을 시기가 전작을 막 끝냈을 때예요. 전작이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요. 그 친구들이 저한테 “30대도 레즈비언 해요?”라고 물었고 저 역시도 선배 세대들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어요. 옛날 신문 펼쳐놓고 그 안에 저와 닮은 분들이나 운동선수, 택시 운전사, 또는 여성 두 분이 굉장히 오랫동안 산 경우 등을 찾았어요. 무작정 찾아가 지역 노인 분들에게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셔요?” 묻고 다녔어요. 그리고 문을 두드리며 “제가 바지씨 후배입니다”라고 소개했어요. 그중에 한 분이 이묵 선배님이었어요. 선배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 하니까 성소수자 후배들의 삶이 당당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밥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일상을 보내는 것이에요. 친해져서 그 사람의 표정을 녹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해요. 그런 부분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묻어났다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진행: 영화에서 이묵 님이 살림을 꾸렸던 사람만 14명이고, 만났던 사람들은 셀 수 없다고 한 부분에서 이묵 선생님의 '여자 꼬시기 노하우'를 영화에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감독: 말미에 ‘꼬시는 건 너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죠.(웃음) 저한테 직접적으로 지침을 주진 않았어요. 선배님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요. 젊은 시절에는 더 매력이 넘쳤을 거예요.





진행: 일본의 커플이 나와요. 처음 봤을 땐 흐름상 약간 생경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로 보니 이야기들의 연결 지점을 알겠더라고요. 논과 텐의 이야기를 넣은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감독: 한국도 경주에서 지진이 있었죠. 사실상 지진이라는 재난이 우리나라에도 가까이 와있는 위험이라 생각해요. 영화를 처음 기획한 게 2012년이었어요. 완성까지 3년이 걸렸어요. 첫 기획을 할 당시, 한국은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많은 사람을 종북으로 몰고 성소수자를 ‘종북 게이’라고 불렀어요. 적대와 증오, 공포를 이용한 정치적 상황들이 당사자로서 굉장히 염려스러웠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 공격이 심각해져서 마치 재난의 상황으로 여겨졌어요. 그리고 LGBT 안에서 청소년을 이제 막 벗어나 성인이 된 한 친구가 따돌림과 외로움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가 동일본 대지진 얼마 후였던지라 ‘도대체 재난 상황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듬해 일본 성소수자들에게 직접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상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실제 재난 상황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대피소로 가지 않고 참혹한 폐허의 현장에 그냥 남기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피소 안은 가족 중심적, 남성 중심적인 질서로 운영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이야기들에 가슴 아프게 공감했고 논과 텐을 만나 그 집에 한 달 동안 살면서 이야기를 담았어요. 논과 텐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커밍아웃하면서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했죠. 그들은 딜레마적인 상황,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선택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선택이요. 굉장히 존엄한 결정이고 또 성소수자들의 특수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진행: 이해를 받기 위해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관계를 알리기 위해서 커밍아웃한 것이라는 논과 텐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 퀴어 축제를 반대하며 북을 치는 사람들이 나와요. 올해는 저 정도는 아니었어요. 참여자 수는 거의 10배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비해 참여자는 늘고 혐오 세력은 줄었어요. 조금만 늦게 촬영했어도 저런 스펙터클한 장면을 못 담았겠구나 싶었어요. 



감독: 정권이 바뀌며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상대적으로 보수 정권의 혐오와 증오를 배양하는 환경들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분명히 변화가 있죠.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100대 국정과제에서 사실상 빠졌어요.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요.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는 없어졌을지라도 여전히 혐오의 정치 프레임은 현재진행형이고 좀 더 복잡해진, 은폐된 형식으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객: 혐오 세력 집회는 영화를 통해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갔어요. 그 장면들을 보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어요. 괴로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다른 동지들 모습,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이묵 선배님 모습 보면서 힘을 많이 받았어요. 혐오 세력의 적나라한 장면을 많이 넣은 이유가 있나요?



감독: 영화가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 존재를 지키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엮이면서 진행되고 있죠. 저는 존재를 지우려는 사람들, 혐오 선동 세력의 주장이 삶을 반대하는 논리라 생각해요. 존재와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존엄한 힘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느꼈고요. 혐오는 최근 몇 년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에요. 점점 더 확산되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삶의 지반 위에 놓이고, 또 밀려나게 돼요. 적대와 공포를 이용하는 증오 정치의 프레임에 대해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묵 선배님, 저, 논과 텐, 혐오 선동 프레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게 어떤 폭력인지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공공연한 장소에서 노골적인 혐오의 폭력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이 현상 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서 다신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관객: 슬픔, 기쁨, 분노 등 여러 감정들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는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혹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요.



감독: <이반 검열>을 보면 학교에서 학생을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검열해요. 그 친구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고 퇴학이나 전학을 시켜요. 영화는 이러한 인권침해 이야기와 성장담이에요. 이 주인공들이 30대가 되었어요. 지금의 그들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그리고 2009년부터 찾아다닌 바지씨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빨리 관객들에게 선보이려 해요. 



관객: 감독님 전작들을 다 봤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시더라고요. 판타지스러운 우리들 이야기도 담아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행복하게 함께 오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라든지 다 같이 모여서 축하하는 금혼식이라든지요. 그런 걸 볼 수 있으면 더 기쁘지 않을까요? 혹시 그런 내용도 준비하고 있나요? 



감독: 많이 괴로우셨죠?(웃음)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영화가 불안한 삶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죠. 왜 그렇게 되는지, 그 환경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행복하게 보이지만은 않죠. 그렇지만 알면 세상이 덜 무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직 탐구해야 할 영역이 많다고 생각해서 더 실험하는 길로 가보려고 해요. 제 인생관과도 연관이 있어요. 보통 인생은 다 고(苦)라고 하잖아요. 간혹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좀 더 재미난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어요. 아마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드러날 것이라 생각해요. 행복이 가득 차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웃음이 나는, 견뎌볼 만한 힘이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 속에서 이묵 선배님, 다른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저도 위안을 드리고 싶어요. 관객 분들이 그걸 느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혐오 세력은 풀샷으로, 주인공들은 클로즈업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혐오 세력 개개인을 악마화 혹은 미화할 의도는 없어요. 혐오 프레임, 우리 사회가 변화해 나아가야 할 부분 자체를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주인공들의 존엄함과 힘을 통해 용기를 얻길 바라면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관객: ‘바지씨’, ‘치마씨’ 같은 은어를 여기서 처음 들어서 흥미로웠어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예전 용어들은 분리가 안 돼서 혼란이 있을 것 같아요.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요? 그리고 영화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상영했나요?



감독: 영어 제목은 <Troublers>,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에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을 지었어요. 바지씨의 ‘씨’는 우리말에서 성별 중립적인 용어인데 번역이 쉽지 않아요. ‘MR. 팬츠’라고 할 수 없잖아요.(웃음) 영화가 표현하는 바와 맞지 않아서 성별 중립적이면서도 뜻을 살리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을 많이 고민했어요. 영어는 주어가 ‘he’, ‘she’처럼 성별을 드러내는 명칭을 쓰는데 이묵 선배님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지칭할 수 없어요. 어떻게 세계적인 추세 안에서 표현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죠. 그리고 바지씨에는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지금의 용어로 하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intersex), 부치(butch) 등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관점과 용어로 그 당시를 재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커밍아웃을 한 논과 텐은 말한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이묵 역시도 성소수자 후배들이 당당히 사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흔쾌히 영화 찍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당신’이라는 호칭, 이 이인칭 용어는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나의 인권이 소중하듯 당신의 인권 또한 보장받아야만 한다. <불온한 당신>은 나 자신만의 세계를 넘어 상대방의 정체성과 인권까지도 존중하는, 관계 지향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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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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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나라, 이웃 나라, 나라 아닌 나라 <올 리브 올리브>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14일(금) 오후 7 40분 상영 후

참석 김태일, 주로미 감독

진행 이송희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두 집단의 갈등이 마냥 자극적으로, 폭력적으로 혹은 잠깐의 눈물을 목적으로 전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영화 <올 리브 올리브>에 주목해볼만 하다. 담담한 시선으로 팔레스타인을 담아낸 이 영화는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을, 비상 같지 않은 비상을 복합적으로 전달한다. 자극도 눈물도 선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무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면 이들의 남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태일, 주로미 감독과 진행을 맡은 이송희일 감독이 함께했다.





이송희일 감독(이하 진행): <오월愛>(2010)와 <웰랑 뜨레이>(2012)를 잇는 ‘민중의 세계사’ 세 번째 작품인데 어떤 취지로 작업을 했는지, 이 작품은 그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궁금하다.



김태일 감독(이하 김): 사실 3부작까지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은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상황,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떤 한 가지 입장에만 치우쳐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제3세계의 이야기들에 있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1세계 중심적 사고관을 전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관습에서 벗어나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품었다. 처음에는 매우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전문가적으로 찍어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방식은 원래 의도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찍다보니 육아를 대신 맡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다 완성할 수나 있을까 우려를 많이 했는데 이렇게 극장에서 상영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좋다.



진행: 국내에도 다큐멘터리로 다룰만한 주제들이 많이 산적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우 특이하게 해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주항쟁을 다룬 <오월愛>에서부터 시작해 캄보디아 내전 이야기를 담은 <웰랑 뜨레이>를 거치면서 과연 과거에 말씀하신 ‘민중의 세계사 10부작’을 완성하겠다는 포부가 정말 진행되고 있구나 생각을 했다. 10부작을 다 채우려면 앞으로 7편의 영화가 남았는데 <웰랑 뜨레이> 이후 5년 만에 새 작품을 내지 않았나. 영화 한 편에 5년의 제작 기간이 걸린다 치면 앞으로 7 곱하기 5...35년이 남았다.(웃음) 감독님 두 분이 제작자(제작사 ‘상구네’)이자 부부이다. <웰랑 뜨레이>에 아드님이 출연하는데 “나 영화 싫어, 이제 아빠 안 따라 다닐 거야.”하며 투정을 하는 장면이 있다. 어떻게 가족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주로미 감독(이하 주): 처음부터 가족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 영화를 제작할 땐 아이들이 많이 어렸는데 지금은 상구가 21살이고 둘째가 중학교 3학년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하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다녔던 부분도 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작품까지 아이들이 참여하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저번 작품에서 상구가 투덜거렸는데 사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랬다. 이 작품 도중에 이스라엘에 잠깐 머물러야 했는데 가자마자 다들 스트레스에 시달려 서로 투덕거렸다. 가족끼리 작업을 하는 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촬영 현장에 들어가면 비교적 긴장감을 덜 수 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얼마 전에 얘기하기로는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더라. 그 과정들이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진행: 이 작품은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어떻게 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제작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주: 민중의 세계사를 기획할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팔레스타인에 관한 것이었다. 첫 작품이 아니더라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분쟁 지역으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팔레스타인이고, 건국된 지 70년이 된 이스라엘의 역사만큼 지배를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결코 우리와 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나면 앞으로 다른 이야기를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큰 난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분쟁 지역에 들어가기가 사실 쉽지는 않은데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니 단순 관광객으로 보여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한편 작품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어떤 물음이든 잘 모른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게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김: 상당히 많은 가족들을 만났다. 분쟁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1차 촬영을 3개월 한 다음 1년 뒤에 2차 촬영을 갔다. 그때 그들은 ‘돌아온다는 말은 했지만 이렇게 진짜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의 문을 아주 활짝 열어주었던 것 같다. 첫 촬영 때에는 아주 딱딱한 얘기들만 나눴었다면, 두 번째 촬영에서는 굳이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헤어질 때에는 가지 말고 더 머물라고 몇 번씩이고 권유를 하며 서운해 해서 너무 고마웠다. 마치 가족들을 남겨두고 온 기분이다. 요즘도 가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아서 짧게 건강 안부를 묻는 식이다.(웃음)





진행: 다르덴 형제가 원래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극영화로 진출하지 않았나. 이번 영화를 보면서 어떤 이동, 길 위에서 걸어가는 이미지들로부터 다르덴 형제의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의 작품들 중 매우 새로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의도로 이런 작업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주: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의 여성들의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었다. 흔히 아랍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 그들을 만나서 느낀 점은, 그들이 외양적으로는 억압된 듯 보이지만 매우 낙천적이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고 가정에서도 각자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접근 방식으로 문제의 깊숙한 곳까지 접근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인물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하는 방식을 취해 내용을 끌어갈 수 있도록 했다. 길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저희가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 시내에서는 조금 걸을 수가 있었는데 그 조금을 벗어나면 걸을 수가 없는 곳들이었다. 위험하다보니 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았고 또 그 상황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가 힘든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들고 걸어가면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김: 팔레스타인 곳곳에 난민촌이 있다. 예전에는 천막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대로 주거공간이 들어서게 되면서 그 사이 사이를 걸어 다니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런 골목들을 걸어 다니면서 카메라에 담기만 해도 지금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을 잘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 팔레스타인의 특수한 문화가 있다. 큰 자식이 결혼을 하면 그 집의 바로 위에 가정을 꾸리고, 다음 자식이 또 가정을 이루면 다시 그 위에 집을 세우는 식의 문화가 있다. 그런 문화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을 카메라에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쓰는 카메라가 캠코더가 아니라 DSLR이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영상을 잘 찍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2차 촬영에서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더 많이 담고자 노력했다.



진행: 워낙 팔레스타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많다. 그리고 해외에서 잘 팔리는 다큐멘터리는 어떤 극적인 서사나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이라야 한다. 관객들의 말초신경이나 특정한 정서를 자극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이 영화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을 아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유혹도 많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담담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작업을 한 배경이 궁금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 일상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말씀하신대로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들은 자극적이고 폭력을 전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방송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을 받아 멘토링 과정을 거쳤는데 외국에서 온 멘토가 이 작품을 하지 말라 했다. 일 년에 유럽에서 100편 가량의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데 이 작품에는 그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는 이유였다. 많이 좌절했다. 내가 추구하려는 담담한 형식이 별로 먹히지 않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이 마치 이웃처럼 느껴지게끔 전달하고 싶었고 기조는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정말 그런 작품이 나왔다. 다음 작품에서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



진행: 말씀하신대로 이 작품의 담담함이 정말 이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고유한 시선이 인상 깊은 영화다. 




 

관객: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외왕래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과정이나 절차가 궁금하다.


 

주: 우리가 간 곳은 서안지구다. 가자지구는 아예 봉쇄되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다. 서안지구도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고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분리장벽이 세워진 상태고 서서히 이스라엘 관할로 편입해가고 있는 상황이라 출입이 매우 어려웠다. 이스라엘에서 수감 이력이 있으면 예루살렘 방문도 금지가 되어있다. 한편 그런 와중에도 부유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는 점이 아이러니 했다.


 

관객: 현장에 가기 전 팔레스타인에 품고 있던 생각과 다녀온 후 바뀐 생각이 있을까.


 

주: 팔레스타인에 가기 전 조사를 하면서 자료를 보니 대부분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이 사람들도 일상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것들은 조명되지 못할까. 가서 보니 처음엔 정말 여기가 팔레스타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느껴지는 답답함이 있더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팔레스타인이라고 해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선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가족과 같은 유대를 맺고 감정을 공유했던 기억이 깊게 남는다.


 

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두 집단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정말 그럴 것이다. 우리의 일상 중 많은 부분이 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있다. 가령 스타벅스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쉽게 이용하는 스타벅스 커피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무섭고 무거운 문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라가 아닌 나라, 팔레스타인. 이들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와 닿아있다고 감독 김태일은 말한다. 거리를 조금만 걸어 다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커피전문점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겐 몸서리 쳐질 정도의 아픔이 된다면, 우리는 이렇게도 쉽게 소비하고 혹은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선은 똑같은 듯하다는 주로미 감독의 말처럼 분명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잔해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면 더 더욱 그렇지 않을까. 나가 아닌 나에게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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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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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제목 / 안녕 히어로 Goodbye My Hero

감독 / 한영희

출연 / 소년 현우, 아빠 정운  

장르 / 다큐멘터리

제작 / 연분홍치마  

배급 / ㈜시네마달 

개봉 / 2017년 9월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08분  






 SYNOPSIS 


“아빠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오랜만에 집에 온 아빠와 함께 생활기록부를 쓰고 있는 현우는 

아빠의 직업을 채우는 항목 앞에서 고민에 빠진다. 

해고 노동자? 무직? 사회 활동가? 노동 운동가? 

 

현우의 아빠는 7년째 결과를 알 수 없는 힘든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왔다”라며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연설하는 아빠가 때론 멋지다가도,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상황을 꾸역꾸역 버티는 아빠가 답답하기도 하다. 

나쁜 사람은 안 잡아가면서 정의로운 일을 한 아빠가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년 현우는 아빠에게 묻고 싶다. 

“왜 아빠는 지는데도 계속 싸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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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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