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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두 개의 문을 지나 마주한 공동정범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은 2018. 1. 25.

두 개의 문을 지나 마주한 공동정범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사방에서 거센 물줄기를 퍼붓는다. 망루가 쓰러질 듯 위태롭게 휘청인다. 잠시 후 커다란 화염이 망루를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 위로 온갖 소음이 밀려든다. 망루 안에는 사람이 있다. <공동정범>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작 <두 개의 문>(2011) 당시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듣지 못했던 다섯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카메라에 담아낸다.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늦은 오후, <공동정범>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과 이혁상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철거민들이 망루를 짓고 점거농성을 시작한 날로부터 정확히 9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공동정범>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간단한 소감 한 말씀씩 부탁드려요. (2018.01.19 인터뷰 진행)


이혁상 감독(이하 이혁상): 전작 <종로의 기적>(2010)이 개봉한 게 벌써 7년 전이에요. 저도 젊었을 때였죠.(웃음) 그래서인지 지금은 몸이 좀 피곤하기도 해요. 김일란 감독은 더 그렇겠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렇게 피곤할 정도로 바쁘다는 건 여전히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사라지지 않았단 신호인 것 같아서 조금 힘들어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김일란 감독(이하 김일란): 순간순간 ‘이 영화가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무리 된 시점에서는 ‘개봉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쨌든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감격스러운 면이 있어요.




먼저 작품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김일란: <두 개의 문>을 마무리할 즈음 영화가 성취해낸 것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이 사회적으로 조금 더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단 바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못 미쳤던 것 같아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철거민 분들이 감옥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별사면까지, 당시 이 세 가지를 걸고 상영활동을 했는데, 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회적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후속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기획이 있거나, 어떤 내용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진 않았어요. 그냥 막연하게 ‘두 개의 문 2’라는 작품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이 2013년 1월에 출소하게 되면서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계속 이혁상 감독을 꼬셨죠, 같이 하자고.(웃음) 


이혁상: 저는 아주 선명하다 못해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한 순간이 있어요. 2012년 대선 당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종로의 기적>을 상영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권이 바뀔 거란 희망을 조금 가지고 있었어요. 마침 상영이 끝나고 GV가 진행될 타이밍이 딱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인디스페이스 스크린에 TV 화면을 띄웠죠. 축배를 들어야한다며 맥주와 안주를 손에 하나씩 들고 보는데 “박근혜 당선 유력”이 나오는 거예요.(웃음) 그 순간 희망으로 들떠있던 인디스페이스가...사람들도 나가고...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를 중간에 취소했어요. 그리고 각자 술을 먹으러 갔죠. 그런 절망의 연속이 결국 <두 개의 문> 이후 무엇인가 해야겠단 마음을 먹게 만든 것 같아요. <공동정범>을 향해 운명의 수레바퀴가 데굴데굴 구른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당시 상황이 너무 암울했기 때문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 같은 게 있었어요.


김일란: 서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견딜 수 없겠다 싶은 일들이 쭉 있었어요. 그즈음 최강서 열사도 돌아가시고. 박근혜 정권은 너무 암울했죠. 







김일란 감독님은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 모두 연출로 참여했어요. 용산참사에 대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계기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김일란: 10년 가까운 시간에서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진 않아요.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어쩌면 당연하게 참사 현장에 갔고 그곳에서 미디어 활동을 했어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재판을 모니터링하며 용산참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 순간들이 있어요. 이야기 자체가 새롭다기보단 저의 경험치에서 새로웠던 거예요. 한 사건의 재판 모니터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재판 시작부터 판사가 선고를 할 때까지의 과정들을 보니 용산참사를 바라볼 때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국가와 권력이 작동하는 원리로써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경찰이라는 제복을 입은 시민들에게 인간이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 경찰 특공대 역시도 용산참사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단 걸 재판 과정에서 본 거예요. 그것이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두 개의 문>을 만들게 되었어요. 경찰의 행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그에 어울리는 형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되었죠. 그것이 의미와 만났을 때 갖게 되는 잠재력을 확인한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해보자 한 게 <공동정범>인 거죠. 혼자였으면 힘들었을 텐데 파트너가 있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연분홍치마’, 그리고 함께 작품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님이 굉장히 든든한 파트너였던 것이군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은 상상한 것을 구현해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머릿속에서 뼈대를 만들면 이혁상 감독이 그 뼈대를 조각해주는 느낌? 디테일을 만져줘서 그 이야기 자체에 분위기를 불어넣어줘요. 그래서 <두 개의 문>도 가능했고요.(*이혁상 감독은 <두 개의 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 <두 개의 문>은 후반 작업을 통해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공동정범>은 처음 기획 단계부터 그런 부분들을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혁상 감독님은 <두 개의 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고 이번 <공동정범>은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두 개의 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이혁상: <두 개의 문> 때보다 제가 숨을 수 있는 곳이 없죠.(웃음) 연출로, 공동감독으로 책임을 다 해야 하니까요. 제작부터 개봉까지 계속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사실 <두 개의 문>의 후반 작업 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개봉하고 다시 보니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요. 여러 가지 고민들이 다시 생겨나면서 다음번에는 모자란 부분들을 잘 채워봐야겠다고 계속 생각한 것 같아요. 그게 결국 <공동정범>을 하게 된 스스로의 동력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두 개의 문> 때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쏟아 부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도 쏟아부었지만요.(웃음) <두 개의 문>은 후반 작업이 중요한 작품이었어요. 현장에서의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그걸 기반으로 한 후반 편집과 여러 가지 영상 효과 등이 현장 참여 비중만큼 중요했어요. 그런데 <공동정범>은 김일란 감독과 기획부터 같이 시작해야했죠. 그리고 인물 다큐멘터리잖아요. <두 개의 문> 때에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인물들과의 관계 맺기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어요. 그 안에서 캐릭터를 구축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지점이 제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마음을 부여잡고 영화를 보았어요. 섭외는 물론,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김일란: 예전에 한동안 둘이 필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인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신저로 계속 쓰는 거예요.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 이야기 속 사건으로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해서요. 만약 이것이 시나리오, 극영화라고 하면 캐릭터 분석 같은 거죠. 그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미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로 갈지 전제가 공유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크게 이견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때로는 가공의 인물처럼 분석할 때도 있었고, 만약에 극영화라면 어떤 인과성으로 이 사람을 설명할까 상상하기도 했어요.






<공동정범>의 흐름은 <두 개의 문>과 사뭇 달라요.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이 출소한 직후에 촬영이 시작된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촬영 중에 작품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공동정범>이 지니고 있는 흐름이 계획된 것이 아닌, 찍어나가는 과정에서 완성된 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보았거든요. 작품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이혁상: <두 개의 문>이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안에 있던 철거민 분들이 이미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만날 수가 없었던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찰의 시선을 통해 법정 증언자들과 여러 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 했던 거고요. 처음에는 철거민 분들이 출소했으니 이들 버전의 '두 개의 문 2'가 나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철거민 분들의 기억은 각기 다 달랐고 때로는 없어져버리기도, 왜곡되어버리기도 했어요. 계속 촬영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계속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연대 철거민들의 마음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틈이 너무나도 많은 이분들의 깨진 기억을 맞춰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게 너무 무모하다 싶었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조각나버린 이들의 관계부터 맞춰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감정에 귀를 기울여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연스럽게 이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하는지, 또 이들로부터 어떤 변화를 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이후의 진상규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기반이 될 거라 여겨졌어요.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저희에게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것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 드러난 것 같아요.


김일란: <두 개의 문>을 만들 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다 구해서 거의 24분의 1초 단위로 쪼개 보았던 것 같아요. 경찰이 컨테이너를 타고 투입될 때부터 불이 날 때까지,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전부 다 맞춰보았어요. 불빛 하나를 놓고도 그것이 어느 각도에서 촬영한 것인지를 맞추며 편집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집요했어요. 어디에서 불이 났을까, 왜 이것이 철거민 탓일까, 그런 단서를 하나라도 발견할까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공동정범>에 나오는 일정 부분을 밝혀내기도 했죠. 지석준 씨의 기억에 관한 부분들처럼요.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이성수, 윤용헌 열사가 망루 안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단 정도까지는 밝혀냈어요. 결정적으로 불이 어디서 났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요. 그래서 이혁상 감독이 말한 것처럼 철거민 분들이 나왔으니 <두 개의 문> 때 집요하게 찾았던 것들이 뭔가 완성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당연히 되었죠. 초반에는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돌아가신 분들의 위치가 어딘지 가늠하기 위해 망루를 직접 지을까 구상도 했어요. 그런데 더 놓쳐선 안될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변하게 됐고 그대로 영화 안의 플롯이 된 거예요. 영화 초반에는 불이 어디서 났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철거민 분들이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또한 감독들이 헤맸던 시간을 관객들도 고스란히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플롯이기도 해요.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하셨군요.


김일란: ‘망루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았어요. 지석준 씨의 기억을 역추적 하는 과정은 정말 중요한 문제거든요. 그가 7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이 있잖아요. 두 분이 자신을 살리고 돌아가신 게 아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석준 씨에겐 큰 의미거든요. 사실 그런 게 진상규명의 한 과정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것은 무용하지 않았고, 그것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이 감정을 해결할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고요. 전체 기획 방향이 수정되긴 했지만, 이전의 방향들이 이야기 곳곳에 숨어있어요.




<두 개의 문>에서 촘촘한 재구성이 돋보였다면 이번 <공동정범>에서는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의 감정을 과잉되지 않게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 와 닿아요. 드라마틱한 장면들도 눈에 띄었고요. 


이혁상: 사실 인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두 개의 문>에서도 굉장히 노력했어요. 저희가 확보할 수 있었던 건 법정에서 사용된, 경찰이 망루 안에서의 상황과 감정을 적은 자필 진술서였어요. 이것을 가지고 감정을 만들어내야 했던 게 그 당시 저의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화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자막의 글씨체와 사운드가 어때야 하는지, 어떤 색감과 밝기의 변화로 감정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번 작품보다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공동정범>에서는 인물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카메라를 통해 포착할 수 있잖아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은 조금 다른 차원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동정범>은 인물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인터뷰와 진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일상을 팔로우 업 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캐릭터를 특징지을 수 있는 어떤 단서를 찾아내야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과 굉장히 자주 접촉했고 삶의 공간에 가서 촬영을 계속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분들이 지닌 삶의 패턴이 눈에 들어왔고 인물의 감정을 인터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공간에 들어가면 모든 정보를 스캔해요. 그것은 하나의 물건일 수도 있어요. 화초일 수도 있고 달팽이일 수도 있고 술 먹고 자는 모습일 수도 있고. 그런 조각들을 계속 확보해서 촬영한 거죠. 조각들을 붙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상의 패턴들이 인터뷰와 만나게 됐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드라마틱한 구성이 가능해졌던 거예요.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하며 시작한 다큐멘터리에요. 물론 팩트에 대한 초반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의 축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그런 연출들이 극영화의 어떤 것을 닮아있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것들이 어쩌면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혁상: 모든 다큐멘터리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의 전통 속에서, 특히나 다이렉트 시네마의 전통 속에서 카메라를 통해 인물을 오랜 시간 관찰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다큐멘터리는 또 그런 방법론을 택해서 촬영하고요. 온전하게 다이렉트 시네마는 아니지만, 그런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활용하며 영화를 만들었어요. 사람들을 계속 반복해서 찍다보면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어요. 회고하며 외로움이나 아픔을 토로하지 않더라도요. 결국 그걸 취해서 편집하고 구성을 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건 극영화적인 구성이라기 보단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관찰인 거죠.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다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혁상: 지금은 각자 생계유지를 위해 계속 일을 찾는 상황이에요. 예전부터 하던 일을 다시 하는 분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해서 전과 다른 분야를 찾은 분도 있고. 결국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요. 트라우마, 후유증은 있겠지만 일상을 유지해야하는 거죠. 천주석 씨는 계속 상도4동 현장에 있어요. 해결이 안 된 상황이니까 어떤 불안감들을 계속 가지고 있겠죠.




다들 만남을 이어가고 있나요?


이혁상: 오늘도 같이 기자회견을 했어요. 이명박 사무실 앞에서요. 진짜 공동정범인 이명박과 당시 서울 경찰청장 김석기를 <공동정범> 상영회에 초대하는 컨셉으로 기자회견을 하며 ‘진짜 공동정범을 찾아야하지 않겠냐’는 것을 알리는 자리였어요. 지석준 씨의 경우 일 때문에 자리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분들은 행사 등이 있으면 계속 같이 참석해요. 2016년에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고 난 다음 여러 상영 기회가 있었고 주인공들 다 같이 GV도 몇 번 했어요. 어쨌든 그전보다 확실히 만남이 있다는 게 변화겠네요. 영화뿐만 아니라 그분들을 계속해서 호출하는 상황이나 사건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제도 청량리 쪽 재개발 문제 때문에 가서 발언도 하셨어요. 또 9주기가 되면서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환기해야하는, 잊지 말아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느낌이에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두 개의 문>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어요. 맨 마지막 부분, 박진 활동가님이 던진 말이 기억에 남아요. “끊임없이 이런 폭력들이 이 정부 끝날 때까지, 아마 이와 유사한 정부가 온다면 또 오겠죠. 이게 너무나 무서운 거죠. 그런데 언제까지 이런 것에 대해서 시민들이 관용할 것인지 저는 참 궁금해요.” 2016년의 광장을 지난 후 이 말을 돌아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런 과정을 거쳐 과도기적인 단계에 와있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잖아요. 과도기적 단계에서 시작점을 회상하는 <공동정범>이 큰 의미를 지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동정범>이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의미를 지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김일란: <두 개의 문>의 경우 '국가란 무엇인가?'가 질문이었어요. 그리고 소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서, 설사 그것이 무리한 요구라 할지라도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가 핵심이기도 했어요. 국가가 저항하는 국민들, 그리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데에 공권력을 행사했잖아요. <공동정범>의 경우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와 상관없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란 질문으로까지 나아갔어요.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국가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무게가 이동하며 전환된 거죠.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오히려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혹은 거꾸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통해 '사람이란 무엇인가?'로 나아가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공동정범>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줄 관객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김일란: 원래는 기대가 얼마 없었어요. 오리지널(영화제) 버전에는 엔딩에 ‘용산참사 현장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당신마저 기억하지 않는다면’이란 자막이 나와요.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듯한 그런 엔딩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엔딩으로 바꾸며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있어요. 어쨌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죠. 매년 이 시기쯤 되면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해요. 올해는 국화꽃과 함께 장미꽃을 들었어요. 이 변화의 바람이, 바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효과를 내길 기대하는 의미에서 장미꽃을 든 거예요. 이 영화를 보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촉구해주면 현실적인, 손에 잡히는 정도의 결과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경찰 인권침해 감시의 차원으로 5대 사건 진상조사에 들어갔잖아요. 용산참사가 얼마나 무리하고 성급한 진압이었는지 밝혀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검찰개혁위원회에서 검찰의 잘못된 기소와 관련해 사건을 선정하는 중이고 용산참사만큼 검찰 기소가 잘못된 사건들이 반드시 선정되어야 해요. 그렇게 되려면 관객 분들이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됩니다. 예전에는 개봉할 때 별 기대가 없었는데 지금은 이 작은 희망이 약간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그 기대가 오히려 절박하게 하는 부분이 있네요.


이혁상: 참사나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큰 참사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참사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단일한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숭고한 피해자, 엄숙한 피해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피해자의 모습을 박제화 시키죠. 그런데 피해자들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하나의 인간에는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있잖아요. 선한 면도 있지만 악한 면도 있고, 어떤 부분에 욕심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부분에는 여유가 있어서 남에게 조금 더 베풀 수도 있고요. 하나의 거대한 스펙트럼이 한 사람에 존재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서 하나의 모습만 보고 싶어 해요. 권력과 국가폭력에 의해 상처받아 슬프고 불쌍한 사람들로요. 그것이 애도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어떤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그들을 우리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물론 백퍼센트 온전하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저는 그런 식의 숭고한 박제화가 선을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우리가 피해자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것을 이해했을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피해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동정범>이 조금이나마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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