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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누구에게나 말 못 한 이야기가 있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 김수정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한솔 2018. 1. 17.




누구에게나 말 못 한 이야기가 있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 김수정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은 김수정 감독이 한 때 같은 곳에서 일했던 여성을 떠올리며 만든 이야기다.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던 그 여성이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김수정 감독은 그녀에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주로 사람 안에 숨어 살다가,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었을 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이 영화의 방식과도 닮아있다. 인물의 뒤를 쫓다가 그의 심연을 통과해내기까지, 김수정 감독이 마주하려 했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에 눈이 아주 많이 온 어느 날, 부산에서는 보기 힘든 눈을 오랜만에 보았다는 김수정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제목이 특이합니다.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A: 저는 원래 제목을 먼저 떠올린 다음 글을 쓰는 편인데 이번 시나리오는 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니 서영의 얼굴이 붓 터치가 드러나는 두꺼운 질감의 유화로 떠올랐어요. 소통을 잘 못 하는 상태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에 파란 입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어떤 단어보다도 그 이미지가 떠올라서 짓게 된 제목입니다.

 


Q: 독특한 제목과 달리 화면은 굉장히 정적입니다. 인물들의 위치, 공간의 구성이 매우 회화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나요?


A: 논리적이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머리에 그려진 그림대로 시나리오와 콘티 작업을 했고, 여건이 힘들기는 했지만 준비된 콘티와 거의 똑같이 촬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촬영감독님께서 제가 짠 콘티를 많이 존중해주셨어요.

 


Q: 원래 희곡을 썼고, 2011년부터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 서영과 영준의 집을 180도 팬(pan)하는 장면은 마치 연극 무대를 훑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형식은 아닌데, 연극은 객석에 앉으면 무대를 전체적으로 보는 시선을 갖게 되잖아요. 이런 장면은 어떤 의도로 촬영한 건가요?


A: 기본적으로 제 작업에 연극적인 정서가 깔려있는 것 같아요. 타이트한 숏을 거의 쓰지 않고 공간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편입니다. 180도 팬 같은 경우, 그냥 그 장면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직관이 있었지만, 촬영감독님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제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인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관계를 한 눈에 보이도록 화면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절에서는 책상을 두 개씩 쌓아 그 위에 올라가서 촬영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화면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고생 끝에 나온 장면이에요.

 


Q: 전반적으로 컷이 길고 줌은 적어서 배우들의 연기가 오히려 돋보였습니다. 그런 연출 방식이 배우들의 연기를 더 자유롭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 배우들의 에너지를 관객 분들이 다 받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있어요. 그건 연극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멀리서 인물과 공간을 함께 비추는 이미지가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최대한 배우의 진심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Q: 서영 역의 장리우 배우와 영준 역의 진용욱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했나요?


A: 두 분 다 전작을 보고 매력을 느꼈습니다. 장리우 배우는 <고갈>(2008)이라는 작품에서 너무 인상적이었고, 진용욱 배우는 <무산일기>(2010)에서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과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속 캐릭터의 이미지가 닮았다기보다 배우 분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끌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빈곤과 노동

 


Q: 서영과 영준 남매의 상황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상황 전반에 걸쳐 가난에 대한 문제의식이 짙게 깔려있습니다. 전작 <달을 쏘다>(2013), <이매진>(2011)에서도 노동 문제를 통해서 인물들의 갈등을 형상화했고요. 빈곤과 노동 문제를 영화의 테마로 삼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제 나름대로 생각해볼 때, 항상 예술이 조금 더 사회 참여적이었으면,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런 마음을 계속 표현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찍고 나니까 제 예술관으로 인해 표현에 한계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가진 시선 속에 제가 매몰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비로소 그런 강박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Q: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빈곤과 노동 문제의 구조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A: 교과서나 책처럼 설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서영이 속해있는 조직의 이야기를 통해 제 나름대로 구조를 표현해본 것이고요, 사실 이것조차도 너무 설명적이지 않나 고민을 했습니다. 그들의 현재 삶을 더 충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작품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A: 아무래도 가장 큰 건 재정적인 문제겠지만, 그보다도 이 영화가 받았던 시선 때문에 힘들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지원 사업의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낙관적인 이야기를 써도 될 것을 왜 굳이 이런 영화를 만드냐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주변사람들에도 독립영화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힘들었습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힘든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감독님께서 꼭 지키고자 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물을 표현할 때 상업영화에서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포인트를 만들면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실 저도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좋을지 혼란스러웠는데, 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진심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추슬렀어요. 서영이라는 여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마음, 그걸 생각하면서 끝까지 작업한 것 같습니다.

 


Q: 그 박수는 서영을 향한 응원과 격려의 박수인가요?


A: , 맞습니다. 차가운 영화로 느끼셨을지 몰라도 저는 그런 마음이었어요.(웃음)



 




여성과 장애인

 


Q: 이런 신념이 엿보였던 것일까요? 2016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A: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이 영화를 여성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한 인간의 이야기로 만든 것인데, 많이들 여성에 초점을 맞춰서 접근해주시더라고요. 그동안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놓인 여성 캐릭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적기 때문에 이 작품에 그렇게 접근해주신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을 받아서 기쁘고 즐겁기보단 나는 이 사회에서 얼마나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고 있지?’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Q: 주변에서 감독님의 여성 캐릭터들이 세다고 평가한다던데, 평소에 이런 평가는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A: 그만큼 여성들이 표현을 안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죠. 제 기준엔 별로 센 것 같지 않은데, 아직 우리에겐 이런 여성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씨네21 1126호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거칠게 말해 맛이 간 여자들에 관심이 많다는 표현도 했어요. 영화든 문학 작품이든, 아니면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든 감독님이 좋아하는 맛이 간 여자캐릭터가 있다면요?


A: 참 많아요. 프리다 칼로도 재밌고요.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도 정말 좋아합니다. <방랑자>(1985)라는 작품을 좋아해요. 그 분은 지금 연세가 많은데, 젊었을 때의 작품들을 보면 여성 캐릭터들이 험난한 상황에서도 꿋꿋해요. 감독도, 영화 속 인물들도 모두 인상적입니다.


 



Q: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의 서영도 가볍게 접근하면 맛이 간 여자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감독님은 서영이 관객들로부터 이해받기를 바랐나요,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서영 그대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A: 저는 관객이 서영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마다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감독의 이런 마음이 좋은 개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조차도 일상에서 이런 캐릭터를 만났을 때 이해하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인물에게 적응을 하고 나면 어느 순간에 그런 인물에게도 호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들에게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차갑게만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그렇다면 서영이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어떤 형식을 마련하거나 연출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심적으로 서영이란 캐릭터에 많이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시나리오 상의 서영과 장리우 배우가 표현한 서영 사이에 질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촬영을 할 때에는 또 그에 맞게 장리우 배우가 연기하는 서영과 연애하는 느낌으로 마음을 쏟아 부으려고 했어요.


 

Q: 장리우 배우는 서영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장리우 배우와 통화를 했는데, 몸이 다 틀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장리우로 서있었다면 바른 자세일 텐데, ‘서영으로 살고 나서는 똑바로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들고 온몸이 아프다고 했어요. 그리고 장리우 배우가 서영, 영준, 엄마를 표현한 그림들도 많이 그렸습니다.

 


Q: 영화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서영이 노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을 부르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은 마치 서영이 그동안 꽁꽁 숨겨온 마음을 살짝 비추는 것만 같습니다. 이 노래는 가사 때문에 삽입하신 건가요?


A: 꼭 가사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요, 시나리오를 한창 쓸 때 혼자 무안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무안이 여행지로 개발된 지역이 아니라 숙박시설이 열악해요. 여관에서 투숙했는데, 방문도 잘 안 잠기고 거의 무너져가는 불안정한 상태의 방이었어요. 오래 여행을 하는 중이라 빨랫줄을 따로 가지고 다녀서 그 줄로 입구를 묶어 문이 안 열리게 했습니다. 불안에 떨면서 방에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조덕배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저를 불안에서 탈출시켜준 노래였기에 시나리오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영준 역의 진용욱 배우는 어땠나요? 지난 달 개봉한 <프레스>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어요.


A: 제가 진용욱 배우에게 굉장히 고마웠던 것이 본인이 인물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납득할 수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섣불리 연기로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에요. 저는 배우에게 분명하게 연기 디렉션을 주기 보다는 배우와 제가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통했다면 이후의 표현은 배우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진용욱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촬영을 이어나갔는데, 항상 진정성 있게 인물을 연기하려는 게 느껴져서 고마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Q: 영준에게 장애가 있다는 설정은 인물 구상 단계에서부터 있던 건가요?


A: 영화 작업을 하면서 만난 장애인 친구가 있어요. 이후로 그 친구와 자주 만나면서 이들은 바깥 활동을 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나는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애인들을 보호해야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랑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Q: 영준이 도움 없이는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한다든가 집에서도 화장실의 문턱 넘기를 힘들어한다든가 친구들끼리의 여행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된다거나 하는 장면에서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일상적인 폭력들이 드러납니다. 특히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로부터 너랑 가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남겨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 앞서 말씀드린 친구와 생활하면서 많이 느낀 부분이에요. 같이 술을 먹으러 가면 남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조차도 갈 수가 없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장애인 택시가 활성화가 잘 안 되어 있어서 한두 시간 지나 택시가 오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불편함을 느꼈고 그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바로 다음 장면에서 서영이 영준을 데리고 귀가합니다. 이때 영준이 서영에게 디자이너 진희와의 관계에 대해 과장하여 이야기합니다. 영준이라는 인물이 한 번 더 무너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소외된 직후에도 또 다시 관계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허풍을 떠는 것 같았달까요?


A: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마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준에게는 진희와의 관계에 대한 희망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만든 장면입니다.

 

Q: 결과적으로 영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정적인 이 영화에서 유독 직접적이고, 그래서 자극적인 방식으로 그려졌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반드시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A: 많은 분들이 그 장면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사실 인물들 사이에 감정적으로 싸움이 끊임없잖아요. 서로 배려하려고도 하지 않고요. 갈등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정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앞선 감정적 싸움들과 그 장면이 큰 차이가 없었어요. 여러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고요. 관객들을 괴롭히고 싶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들여다보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


 

Q: 결국 이 영화는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도, 동료와도, 친구와도 서영-영준 남매는 뜻대로 관계를 다져나가지 못합니다.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인간관계로부터 인물들이 소외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건가요, 반대로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기 때문에 인물들의 어려운 사정이 극대화되는 걸 그리고 싶었던 건가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질문이겠지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감독님의 작품관이 어느 정도 설명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 하나의 입장을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에서는 환경에서 오는 결핍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태생적인 결핍이나 영화의 시간 외적인 곳에서 발생한 결핍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한데, 두 가지가 다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Q: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선 남매의 어머니는 영화 초반을 지나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에 제사 지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행방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면요?


A: 어머니가 잘 살아남기 바라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곳에서 잘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배우들과도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 안에서 어머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은 이유는 관객에게 맡기겠다는 것 보다 굳이 이 부분까지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Q: 어머니라는 존재가 두 남매에게 각각 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서영은 매몰차지만, 영준은 자신이 어머니를 찾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죠. 어머니가 아프기 전, 이 가족의 전사에 대해 생각해둔 부분이 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이 부분도 배우 분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영이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고 반면에 오빠 영준은 장애가 있고 조금 더 어머니의 관심을 받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관심을 별로 못 받았을 것이다 정도로 이야기했습니다.

 


Q: 스님도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족발을 시켜 먹기도 하고 서영을 도와주다가도 서영의 사정을 남들에게 말하고 다녀서 그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죠. 후에 노동조합 문제에 있어서는 다시금 서영을 동료들과 갈라서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스님은 어떻게 만들어진 캐릭터인가요?


A: 서영 같은 경우는 일을 하면서 만난 분이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분이 싫었지만 헐레벌떡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어떤 감정이 느껴졌어요. 영준의 경우 주변사람을 통해 제 선입견을 인식하면서 나온 캐릭터이고요. 스님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보통 스님하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살다보니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스님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한 인물이 갖고 있는 입체적인 면, 다양성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Q: 서영의 직장 동료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대변하는 캐릭터 같았습니다. 관객이 서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그들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서영을 마주하죠. 서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다가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까지도 마치 서영과 관객의 관계를 은유하는 것 같고요.


A: 특정한 의도는 아니었고요, 말씀드린 것처럼 서영의 모티프가 된 인물은 일터에서 모두가 싫어한 분입니다. 현실에서 그 분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지만, 만약 사람들이 그분과 어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저의 바람, 혹은 판타지 같기도 합니다.

 


Q: 서영이 직장 동료들과, 영준이 진희와 맺는 관계가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는 관계입니다. 둘 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주인공들의 잘못 아닌 잘못으로 어그러지고 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칭찬을 매개로 주인공들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연다는 점입니다. 서영은 탁구 실력을, 영준은 옷 만드는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비로소 웃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A: 그런 공통점들은 우연인 것 같은데 재밌네요. 누구나 생김이 다르잖아요. 사회에 잘 적응한 분들은 능력을 인정받아서 평안한 삶을 살지만, 그 능력이나 특정한 면이 노출되지 못하면 평가에서 밀리는 게 한국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다 잘하는 게 있고, 평가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 다른 모양으로 살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 인물의 환상과도 같은 라스트신이 인상적입니다. 홀로 탁구를 치다가 멈춰버리는 흐름이 마치 110분인 영화를 한 컷으로 응축시킨 것 같았습니다. 담고 싶었던 의미가 궁금합니다.


A: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소통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의도는 서영에게서 공이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는 형태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랠리를 충분히 하다가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CG를 할 형편이 안 되어서 직접 치면서 촬영했는데요, 장리우 배우도 탁구를 잘 치고, 마주보며 공을 받아준 분이 탁구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탁구대 중간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서 촬영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일 랠리가 길게 된 장면을 쓰게 되었어요.

 


Q: 차기작 <해변의 캐리어>는 어떻게 작업 중인가요?


A: 촬영은 다 끝나고 편집 중인데, 이번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사회참여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탈피를 하고 만든 작품이어서 재밌게 작업했습니다. 작업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도 있었고요.

 


Q: 소설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작업의 연장에서 쓰는 건가요?


A: 소설은 영화와 별개의 작업입니다. 문자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여섯 편 정도의 소설을 썼는데, 그 중에 영화화할 수 있겠다 싶은 게 한 편뿐일 정도로 소설과 영화는 전혀 다른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경우엔 영상처럼 묘사의 제약이 크지 않다보니까 더 자유롭게 쓰게 돼요. 희곡, 소설, 영화를 다 작업해보았는데, 저에겐 각각 별개의 것으로 느껴져서 모두 다르게 접근하게 됩니다.



 




Q: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이 영화가 조금 불편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서영이라는, 그리고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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