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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지친 아버지를 말없이 보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안녕 히어로>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9. 29.

지친 아버지를 말없이 보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안녕 히어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 8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한영희 감독, 손아람 작가,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

진행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사회적 비극에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한 첫걸음은 비극의 당사자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한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가 대상화의 문제를 피해가는 방법은 다소 독특하다. 영화는 투쟁하는 노동자가 아닌 그들의 가족의 시점에서 비극을 조망한다. 투쟁의 지난함을 버텨내는 과정에는 수많은 이들의 말없는 성원이 있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일까. 한영희 감독, 손아람 작가,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가 <안녕 히어로> 인디토크에 함께 했다.





김일권(이하 진행): 관객과의 대화에 특별한 세 분을 모셨다. 각자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린다.



한영희 감독(이하 한): <안녕 히어로>를 연출한 감독 한영희입니다.



손아람 작가(이하 손): 작가 손아람입니다.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이하 김): 평택에서 온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김득중입니다.



진행: 기존의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들과 달리 아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점이 인상 깊었는데, 영화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한: 활동하고 있는 ‘연분홍치마’에서 <두 개의 문>(2011)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그 영화를 배급할 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분들이 최전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지지가 필요했을 텐데, 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을 힘겨워 하고 또 죄책감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영화가 그 소통의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다.



손: ‘현우’는 아버지를 응원하는 아들이자 한 명의 평범한 중학생이다. 아버지의 패소판결을 치킨을 뜯으면서 보는 장면처럼, 아버지의 싸움이 아들 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게 흥미로웠다. 역설적으로 당사자의 시선에서 멀어질 때 정서적으로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이 영화가 노동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결국에는 가족 영화다. 가족 영화의 포맷이 훨씬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게 가능 하려면 구성이나 캐릭터 설정이 잘 되어야 했고, 그런 방향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진행: 지부장님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영화에 많이 등장했다. 당사자의 깊은 이야기들이 덜 다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쌍용차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좀 더 알리고 싶었다. 1년 3개월 동안 갇혀 있었고 9년 가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싸웠다. 그 기간 동안 김정운 동지(현우 아빠)를 잘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김 동지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장면 장면이 가슴이 아프더라. 영화에서 현우가 검찰청으로 교복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등장하는 지하 터널이 김 동지와 내가 재판 때문에 같이 돌아다녔던 곳이다. 그 행사에 현우를 보내자고 한 게 나다. 숙제처럼 겪어야 한 시간이 괴로웠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몇 년을 달려왔는데, 그게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끝나지 않은 문제가 해고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얼마나 파괴하는지, 또 그것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행: 촬영에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



한: 영화를 찍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 카메라를 가족 구성원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찾기가 힘들더라. 현우 아버지께 고민을 털어놓으니 바로 좋다는 말을 하셨다. 지부장님과 현우 아버지 중 어느 분을 찍어야 할 지 고민했는데, 현우 어머님께서 유독 좋아하시더라. 해고 때문에 가족이 어려운 일들을 쭉 겪어왔는데 아이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야기를 듣고 현우의 동생 민서는 너무 신나 했는데, 정작 현우는 나오기 싫다는 말을 했다. 그 이유를 듣기 위해 현우와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현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생겼고, 현우도 이야기를 나눈 후에 영화를 찍겠다는 말을 했다.



관객: 현우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



한: 현우보다 부모님들의 변화가 더 많이 엿보였다. 현우의 변화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복직을 계기로 더 밝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현우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을 너무나도 많이 알게 되어 놀랐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현우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는 말을 하셨다. 현우 부모님뿐만 아니라 해고자 분들이 거의 다 그런 것 같다. ‘왜 그 때는 몰랐을까?’라는 미안함이다. 그런데 저는 굳이 그 분들이 미안해 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부정적인 영향과 긍정적인 영향을 모두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이니까 너무 죄의식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물론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게 그러기 쉽지 않지만 말이다.





진행: 이 가족이 참 부러웠다. 가족들이 서로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렇게 화목한 가정을 계속 유지한다는 게 대단했고, 그 가정을 누군가가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한: 지부장님은 주로 무엇을 들고 귀가하시나.



김: 저도 주로 치킨을 사 들고 간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못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활동 때문에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눴다. 그런 점이 미안하다. 요새는 아들과 맥주 한 잔씩 한다. 뽀뽀도 고2 때까지 했다. 지금은 좀 싫어한다.(웃음)



관객: 한신대 학생들이다. 교내 문제로 저희도 농성을 일 년 정도 했는데, 정말 외롭고 힘들더라. 그런데 쌍용차 투쟁은 9년 가까이 이어오지 않았나. 지부장님께는 현우에게 아버지가 그렇듯이 버틸 힘을 준 ‘히어로’가 있었나.



김: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해준 분들 모두가 힘이 되었다. 우리들만 있었다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2009년에 지도부 97명 전체가 구속 연행되고, 조합원들이 몇 년을 외롭고 힘들게 보냈다. 2011년 하반기부터 다시 문제가 알려지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외부의 적 앞에서는 똘똘 뭉쳐 있지만, 오히려 먹고 쓰고 생활하는 데에서 내부의 갈등이 많다. 8월 중순부터 공장과 청와대 앞에서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주신 도움들 하나 하나 기억하면서 지금도 당당하게 싸우고 있다. 한신대에서도 함께 해주셨는데, 저희가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진행: <안녕 히어로> 제목의 의미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다.



한: 제목의 ‘굿바이’는 현우의 상반된 두 가지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가 이겼으면 하는 소망과 지는 싸움을 계속 보게 될 때 함께 지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생각했다. 현우는 절망하지만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스무 살이 된 현우는 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건 현우가 대답을 하는 시점이다. 힘이 없는 안타까운 영웅인 아빠를 마주하는 현실과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제목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힘없는 자들이 힘있는 영웅처럼 대접받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영화가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노동자들이 좀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 받는 세상에 대한 제안서로 보였으면 한다.



진행: 모두가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외부의 히어로가 필요 없는 세상이 진짜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한다.



관객: 영화라는 매체는 소설과 다르게 시각적 효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만들 때 그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한: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특정한 감정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감정이 나침반이 되는 것 같다. 쌍용차 투쟁이든 촛불집회든 세월호든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열망이었다.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은 곧 영상 작업에 닿아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연분홍치마는 페미니즘 이론 세미나로 시작했는데, 이론이 아닌 활동을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다.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다 보니 영상을 시작하게 됐고 어언 12년을 이어오고 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힘이 된다.



관객: 개인적으로 지부장님의 팬이다. 쌍용차 동지 분들이 밀양, 강정, 용산에서 함께 해주시는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 저는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다. <안녕 히어로>가 곧 평택에서도 상영될 텐데, 아직 복직하지 못한 130명의 동지들이 어떻게 볼 지 걱정되기는 한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해고자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영화를 많이 알리고 도와주셨으면 한다.



진행: 아직 쌍용차 투쟁은 갈 길이 멀다. 주변에 영화를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GV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현우 가족의 싸움은 일단락되었지만 쌍용차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고,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뒤에는 다시 그들을 남몰래 응원하는 수많은 가족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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