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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시인의 사랑>: 네 마음의 쓸모

by indiespace_은 2017. 9. 25.




 <시인의 사랑한줄 관람평


이지윤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조휴연 | 예술가(이고 싶은 사람)의 일상이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최대한 | 시와 제주, 그리고 진정성과 유머러스함

김신 | 시적인 영화가 되고 싶었던 시인의 영화

남선우 | 슬픔, 그 사랑의 효용







 <시인의 사랑> 리뷰: 네 마음의 쓸모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고즈넉한 제주의 풍경이 담긴 영상 위로 시를 읊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메라가 그의 목소리를 쫓아 숲도 바다도 아닌 ‘곶자왈 문인 합평회’가 열리는 카페에 도착한 순간, 관객은 남자의 시가 비평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애 없이 부른 꽃노래라며 남자의 시는 가혹한 평가를 받는다. 영화는 시인 현택기(양익준 분)가 처한 문제 상황을 첫 장면에 바로 보여준다. <시인의 사랑>은 슬픔이 부족한 시인이 슬픔을 만나 헤매는 이야기이다.





현택기는 시인이지만 시를 잘 쓰지 못 하고, 시인이라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시인인 것과 별개로 정자도 별로 없다. 방과 후 글짓기 교실 아이들에게는 시인인데 왜 뚱뚱하냐는 소리를 듣는데,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현택기라는 사람은 ‘어쩌다 등단을 하게 된 시인’이라는 특이사항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띌 것이 없는, 오히려 어딘가 조금 비어보이는 사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택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시인이라는 자의식만큼은 뚜렷하게 갖고 있어서 언제고 시를 쓰려 노력한다. 그러나 욕심만큼 괜찮은 시를 짓게 해 줄 전환점은 그를 찾아오지 않고, 그는 절망한다.


전환을 갈망하다 뻗어버린 택기에게 아내 강순(전혜진 분)은 도넛을 사다 준다. ‘뉴욕의 맛’이라며 익살을 떨어도 쳐다보지 않던 택기가 아내의 강요에 못 이겨 둥근 빵의 맛을 보게 되면서, 희한하게도 그의 삶에 전환이 찾아온다. 달콤한 맛에 이끌려 하루가 멀다 하고 도넛 가게로 뛰어 다니고, 그러다 만난 ‘함부로 아름다운 것’에 눈길이 꽂혀 지어본 적 없는 미소를 짓게 되고, ‘그 어린 것의 고통에 내가 가진 것을 하나 둘 내놓게 되’는 택기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시를 쓴다. 그에게서 곶자왈 문인들이 보고 싶어 했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리얼 월드’. 그 세계에서 아무도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소년을 만나 ‘슬픔이 재료가 되는’ 시를 쓸 줄 알게 된 택기를 보며 관객은 ‘이것이 시인의 사랑이구나’하고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끄덕임은 제목과 영상을 짝짓는 데에 성공했다는 안도의 표시에 그친 것일 수 있다. ‘현택기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 ‘시인의 사랑’ 세윤(정가람 분)이 어떤 캐릭터로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세윤은 방에서 투병 중인 아버지,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약간은 반항적인 소년이다. 학교를 그만뒀다는 언급이 있지만, 그가 무엇을 위해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종종 또래 한 무리와 술을 마시며 화장실에서 은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만한 사이의 여자 친구가 있다. 그렇게 방황하는 와중에 기회만 생기면 자신을 돕는 시인 택기를 만난다. 이야기 안에서 관객이 세윤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는 이 정도이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말로 뱉지도, 택기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표현하지도 않는 세윤은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대사가 몇 번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애정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닌 불운에 지친 아이의 안타까운 외침으로 들려온다.





세윤에 대한 정보의 결핍은 도리어 관객을 블랙 코미디의 국면으로 몰고 간다. 사실 택기는 세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택기 자신에게 없는 결핍을 쫓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택기가 세윤에게 끌리고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식하는 지점이 화장실 장면이 아니냐며 슬픔에 대한 갈망 이전에 성적인 끌림이 선행했다는 점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을 ‘시인의 사랑’이 시작된 상황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는 택기가 자신이 양성애자일 수도 있음을 견지하게 돕는 서사적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화장실 이후의 떨림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양성애자일 거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택기를 영화는 스치듯 비추고 만다. 끝내 이 영화가 찾아 헤매는 것은 ‘슬픔’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문밖에 있다가 도망을 갔’다고, ‘슬픔은 시인이 시를 쓰는 재료’라고, ‘슬픔이 말라’간다고. 여러 차례 슬픔을 부르짖는 대사들이 다소 노골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택기가 슬픔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려준다. 택기가 아내 강순에게 예전에 좋아했던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또한 이 맥락에서 의미심장하게 읽을 수 있다. 택기는 어떤 여자를 좋아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때 자신이 힘들었노라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어쩌면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그때의 슬픈 마음일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택기는 왜 그런 사랑을, 그때보다 더 복잡해진 상황(결혼한 상황, 처음으로 남자를 좋아하게 된 상황)에서 반복하는가. 결국 영화의 ‘최종보스’는 슬픔도 사랑도 아닌 ‘시’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답은 쉽게 구해진다. 소년이 처한 상황의 슬픔에서 자신의 구애에 응답 없는 소년을 인내하는 슬픔으로 재료를 달리하면서 시인은 계속해서 시를 쓴다.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생의 한 가운데에서 슬픔이 필요했던 시인이 꾸역꾸역 이어간 사랑의 행보는 그렇게 시 말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쓸모가 있었다. 대답 없던 네 마음은 할 일을 다 했다. 시를 남겼기 때문에. 시밖에 남기지 못 했기 때문에.





선택적 슬픔과 효용적 사랑이라는 블랙 코미디 상황을 시인의 소명과 연결시킨 예민함에는 아쉽게도 지구력이 부족했다. <시인의 사랑>은 후반으로 가면서 초반의 위트를 잃고 블랙 코미디를 실현하지 못한다.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로 테마를 끌고 가려 했지만, 전형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었기에 주변 인물들이 점차 기능적으로 활용되고 만다. 할 이야기가 많이 남은 것 같은데도 영화가 만년필의 촉 대신 뭉뚝한 연필의 심을 골라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창작자 혹은 예술가로서의 결핍을 느낀 이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가본 적 없는 생의 이면에 도달하려는 설정은 예술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의 단골 소재이다. 최근에 이 소재를 가장 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로 <블랙 스완>(2010)과 <위플래쉬>(2014)가 대표적이다. 예술가 영화는 아니지만 <캐롤>(2015)이 <시인의 사랑>과 유사한 인물구도를 어떻게 그려내고 결말을 끌어가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들과의 비교는 <시인의 사랑>이 가진 미덕과 허물을 선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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