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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할머니의 먼 집> : 먼 기억 사이를 그리며

by indiespace_은 2016. 10. 5.



 <할머니의 먼 집한줄 관람평

상효정 | 보는 내내 할머니의 그 까슬까슬하고 보드라운 손이 내 볼을 쓰다듬었다

최미선 | 분홍색 스웨터 속에 안긴 듯 따뜻하고 포근한 이야기

홍수지 | 자꾸만 작아져 가는, 당신의 멀고 먼 집

전세리 | 우리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할머니의 먼 집리뷰: 먼 기억 사이를 그리며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 시도를 한다. 소현(나)은 화순 할머니 집으로 내려가 할머니와의 시간을 담는다. 손녀의 방문을 늘 환히 반기는 할머니는 늘 그의 끼니를 걱정하고, 용돈을 손에 쥐어주고, 간식을 사준다. 할머니의 눈에 소현은 언제나 어린 아이지만, 소현은 다 커서 아흔 넘은 할머니와 함께 술을 마실 수도 있다. 그 애정으로 무럭무럭 자란 아이는 고운 시선으로 할머니의 지금에 화답한다. “할머니, 내가 영화 열심히 찍을 테니까 다 보고 돌아가셔. 그 전에 돌아가시면 안 돼." 할머니는 마당의 풀을 고르고, 나는 옆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함께 고추를 사러 가기도 한다. 할머니를 향한 손녀의 투박한 핸드헬드는 그를 길러낸 손길처럼 따스하다. 



소현의 카메라는 백미러처럼 비틀린 기억 사이를 비추고, 어떤 물건들은 오래된 애정의 기표로 삼을 수 있다. 함께하는 지금, 할머니의 일상과 우리의 대화를 따라 소현의 어릴 적 일기가 삽입 된다. 이 은유로 할머니와 가까이 지낸 그의 유년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그 일기는 변치 않는 애정의 모습과 겹쳐진다. 소현은 할머니의 고장 난 시계를 고치려다 새 시계를 선물하는데, 적적한 할머니의 일상에 손녀의 방문은 다시 흐르는 시간과 같다. 



할머니의 자살 시도를 기점으로 소현에게는 죽음보다 살아내는 앞으로의 삶과 흘러가는 지금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가족 간에 벌어지는 사건과 생각들로 둘의 관계는 가족 범위로 확대된다. 지병을 앓던 외숙이 어느 날 예상치 못한 형태의 죽음을 맞고 할머니는 아들을 여읜 슬픔으로 기력을 잃어간다. 기력이 떨어진 할머니를 위해 소현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영양제 주사를 맞히는 것이었고 엄마는 그런 소현을 다그친다. 가족들은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로 고민을 하는데, 막상 반대를 하는 이는 엄마이기도 하다. 가족 간의 갈등을 통해 사회의 아픈 면모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이 관계의 단위를 통해 연명에 대한 가치를 재고하게 된다.  



원래의 '나'는 취업 준비를 하던 '소현'이다. 취업 준비를 미루고 할머니에게 간 소현이지만, 취업이 된 소현은 더 이상 함께 머물 수 없게 되었다. 나 또한 나의 생계를 차치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를 자주 방문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영화 말미, 손녀와의 나들이에서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인자 가자, 깐다깐다 구경 잘 했다. 어디 먼 길 구경 온놈메." 손녀의 눈이 그를 응시함으로써 탄생한 시적 발화이다. 나는 우리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 불명의 주소를 인식한다.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 지성사, 1992,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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